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황사와 미세먼지 신 28:20-24

鶴山 徐 仁 2022. 9. 26. 11:27

황사와 미세먼지 신 28:20-24

 
 
 
09월 26일 (월)
   
황사와 미세먼지 신 28:20-24



20. 네가 악을 행하여 그를 잊으므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여호와께서 저주와 혼란과 책망을 내리사 망하며 속히 파멸하게 하실 것이며
21. 여호와께서 네 몸에 염병이 들게 하사 네가 들어가 차지할 땅에서 마침내 너를 멸하실 것이며
22. 여호와께서 폐병과 열병과 염증과 학질과 한재와 풍재와 썩는 재앙으로 너를 치시리니 이 재앙들이 너를 따라서 너를 진멸하게 할 것이라
23. 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 되고 네 아래의 땅은 철이 될 것이며
24.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 마침내 너를 멸하리라
 
하나님을 잊으면 <여호와께서 저주와 혼란과 책망을 내리사 망하며 속히 파멸하게>(20절) 하신다고 합니다. 이는 불순종에 따르는 하나님의 징계를 강조하기 위해 비슷한 말들을 나열한 것으로 우선 <저주>란 히브리어 <메에라>로 <축복>의 반대 개념이자 <하나님의 은혜가 끊긴 상태>를 이르는 말이고, <혼란>이란 <메후마>로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인간들이 겪는 <큰 소동> 혹은 <혼란스러움, 당혹감> 등을 가리킵니다(7:23, 삼상 14:30). 그리고 <책망>이란 히브리어 <미그에레트>로 하나님께로부터 당하는 <몹시 심한 꾸지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징계를 받으면 누구나 파멸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염병> <폐병> <열병> <염증> <학질>(21-22절) 같은 치명적인 전염병이나 질병, 또는 <한재> <풍재>(22절) 같은 자연재해로도 징계하사 진멸케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치다>는 말인 히브리어 <나카>에는 <살해하다>는 뜻도 있어 대단히 강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며 사십시오. 위에서 언급한 파멸 목록들을 기억하십시오. 이 시대에도 이 모든 질병과 재해들이 얼마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의 열매들일 수 있음을 염두에 두십시오.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 마침내 너를 멸하리라>(24절). 
팔레스틴에는 지형상 아프리카에서 지중해 쪽으로 부는 뜨거운 바람 <시로코> 탓에 황사와 미세먼지 재난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이런 자연 재해를 통해서도얼마든지 이스라엘을 멸하실 수 있음을 경고하신 말씀입니다. 적어도 우리 믿는 자들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극심한 대기환경 문제 역시도 하나님과의 관계, 신앙적인 관점에서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성찰하고 점검해 봐야 옳을 것입니다. 
부디 여호와를 잊지 않고 늘 그 말씀에 순종하므로 이런 무수한 저주가 아니라 풍성한 축복을 누리며 사는 성도가 되시길 빕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모든 질병과 재난들이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본문 24절의 재앙과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대기환경의 재해를 비교해 보십시오.
-당신은 본문 23절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주님, 하나님을 잊고, 말씀에 불순종하는 개인이나 민족이 당할 저주와 심판의 구체적인 내용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닫게 됩니다. 숱한 질병들이며 재해, 재앙들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 인간의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일 수도 있음을 생각합니다. 
당장은 지금 저희가 겪고 있는 황사와 미세먼지 같은 재해도 얼마든지 하나님이 내리신 재앙일 수 있음을 믿사오니 저희들 더욱 자신을 살피며 하나님 앞에서 겸허하게 회개하고 늘 말씀에 순종하며 살게 해 주시옵소서. 
 
   
당연시할 때 받는 상처는 더 크다.
 
“사랑을 받기만 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사랑을 받지 못하면 상대 보고 변했다고 따지지만
사랑을 늘 주던 사람이 어느 순간
상대가 당연시할 때 받는 상처는 훨씬 크다.”


전대진 저(著) 《내가 얼마나 만만해 보였으면》 (넥서스, 85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산소,햇빛, 물, 땅과 같이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귀하고 귀한 것
들은 모두 주님이 거저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보는 바람 소
리,흙냄새, 아침 점심 저녁 식사,걸을 수 있는 걸음은 그것을 잃어
버린 사람에게는 일상이 아니라 간절히 원하는 그 무엇입니다.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소리가 들리고, 바람을 실컷 들이마실 수 있고,
웃다가 울다가 고함치다가 뛰어다니다가 다시 저녁을 맞고 아침을 맞
이하고 …. 이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라 너무나 고마운 일입니다.
항상 힘이 되어주는 부모님, 늘 곁에 있어주는 형제,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 세상을 가득 채운 고운 색채와 율동의 파노라마, 풀 한 포
기, 돌맹이 하나, 가을이 오는 것,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것, 생각하
고 느낄 수 있는 것,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믿는 것, 전도 선교 구제하는
거룩한 주의 일을 할 수 있는 것. 모두가 당연한 일이 아니라 눈물겹
도록 소중하고 고마운 것들입니다. 그리하여 ‘반복의 묵은날’이 아닌
‘기적의 새날’을 늘 맞이하면서, 감사하고 기뻐하며 사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엡5:20)
   
야고보서 2장 4절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have you not discriminated among yourselves
and become judges with evil thoughts?
James 2:4 [NIV]
   
뭣이 중헌디?
 2016년,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유행어가 있었다.
사투리, “뭣이 중헌디?”라는 말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놓치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에
 몰두하는 것을 타박하는 말이다.
이 말은 영화 [곡성]에 나오는 대사로 
 이후에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단박에 유행어가 되었다.
 그리고 사회적인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렇다. 참 많은 사람들이 정말 중요한 것은 놓치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에 목숨 건듯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돈 때문에 사랑을 잃어버리고
 일 때문에 사람을 잃어버리고,
 출세 때문에 건강을 잃어버린다.
 이런 사람들에게 가슴을 찌르며 
들려오는 말이 바로 이것이다.
 “뭣이 중헌디?”
-박봉수 목사의 뭣이 중헌디?-에서


 이 말은 그 무엇보다도 힘쓰고 애써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특히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일 때문에
 신앙을 잃어버립니다. 
신앙생활 중에서도 비본질적인 것에 몰두하다가 
본질적인 것을 잃어버립니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께서 책망하시며
 주시는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뭣이 중헌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