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행복경제학이 국민소득경제학 이긴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2.08.06 00:20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석 달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대통령 지지율은 20%대에 불과하고, ‘만 5세 입학 추진’ 같은 어설픈 정책에 시민 저항은 자꾸 불어난다. 불황과 실업, 고금리와 인플레이션, 중국에 역전당한 무역수지 등으로 국민은 불안에 떠는데, ‘어어!’ 하는 사이에 나라 전체에 어둠이 드리운 느낌이다.
정부 비전에 사람들이 공감하지 않은 게 무엇보다 문제다. 자유나 경제를 부르짖지만, 국민 피부에 잘 와닿지 않는다. 경제가 안 중요해서가 아니다. 시민들이 돈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게 있기 때문이다. ‘행복’이다. 내가 더 행복한 나라가 아니면 사람들은 이제 만족하지 않는다.
선데이 칼럼
행복경제학의 창시자 리처드 이스털린의 『지적 행복론』(윌북 펴냄)에 따르면, 사람들은 ‘잘사는 나라’보다 ‘행복한 나라’를 더 좋아한다. 당연하다. 여유 있는 경제생활은 좋은 건강이나 원만한 가정생활과 더불어 좋은 삶의 한 요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1970년대 중반 이스털린은 ‘더 많은 돈이 언제나 사람을 행복하게 하진 않는다’라는 사실을 발견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가난한 것보다 부유한 게 물론 더 낫다. 그러나 행복은 언제나 상대적으로 결정된다. 내 연봉이 100만원 오르면 기쁘다. 그러나 물가가 200만원 올라 실질 소득이 감소하거나, 다른 사람 연봉이 300만원 오르면 오히려 우울해진다.
일찍이 예수가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고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라고 말했듯, 더 많은 돈은 우리를 상대적으로 행복하게 하나, 좋은 건강은 우리를 절대적으로 행복하게 한다. 더 적게 일하고 일정 수입을 얻을 수 있다면, 더 많이 일하고 건강을 잃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 더 오래 일하고 싶은 사람을 원하는 만큼 일하게 내버려 두면 안 되는 이유다.
가정생활도 행복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다. 배우자나 아이와 친밀히 지내지 못하면 행복은 감소한다. 돈 버는 기계로 살다가 늙어서 이혼당하는 삶을 부러워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현실이다. 통계청 ‘2021년 혼인 이혼 통계’에 따르면, 30년 이상 함께 산 부부 이혼율(17.6%)이 갓 결혼한 부부 이혼율(18.8%) 다음으로 높다. 수입 줄고, 건강 잃고, 배우자 없는 노년을 권해선 곤란하다.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데 웬 행복 타령이냐고 사람들은 항변한다. 그래서 정책이 중요하다. 이스털린은 ‘사람이 행복한 나라’의 특징을 몇 가지로 압축해 설명한다.
첫째, 경기가 침체하고 실업이 만연하며 사회 안전망이 붕괴하면 사람들 행복 수준은 급격히 하락한다. 행복에는 자유나 시장 경제보다 나와 가족의 일자리, 가정, 건강이 더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시장 경제든 아니든, 내 일자리를 지켜주고, 삶의 여유를 보장하며, 아파도 걱정 안 하는 나라인가가 행복엔 중요하다.
중국을 보자. 시장 경제 도입으로 중국 GDP는 1990년부터 2020년까지 40.8배 늘었으나, 행복도는 크게 하락했다. 지속적 구조조정과 사회 안전망 파괴로 살기 힘들다는 사람이 늘어서다. 빈부 격차도 심해졌다. 내 삶이 조금 나아져도 남들 삶이 더 좋아지면 인간은 불행해진다.
둘째, 유엔 ‘2022년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행복한 나라는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스위스, 네덜란드 순이다. 한국은 59위에 불과하다. 행복 국가의 공통점이 있다. 복지 혜택이 풍부하다는 점이다.
시민 행복과 좋은 복지 사이엔 강한 연관성이 있다. 좋은 공공 의료 서비스는 건강 우려를 잠재우고, 훌륭한 보육이나 노인 부양 서비스는 가정생활 걱정을 덜어준다. 취약 계층일수록 이러한 복지가 더 소중하다. 부유층은 복지가 있든 말든 행복에 상관없으나, 약자는 복지가 없으면 생존 위기에 처한다. 약자의 행복을 높일수록 사회 전체가 행복해진다.
셋째, 복지는 근로 의욕 상승이나 경제 성장에 도움을 준다. 사람들은 흔히 복지 혜택이 좋으면 열심히 일하지 않으리라 착각한다. 이는 복지 좋은 대기업 직원이 복지 나쁜 중소기업 직원보다 더 게으를 것이란 말처럼 어리석다. 북유럽 국가의 취업 연령대 대비 일하는 사람 비율은 미국이나 유럽연합(EU)보다 대체로 높다. 게다가 1인당 실질 GDP 증가율 역시 다른 선진국보다 높다.
스웨덴인은 인공지능 도입에 따른 일자리 걱정을 안 한다. 스웨덴 국민의 80%는 기업 경쟁력을 높여 줄 로봇 도입을 환영하나, 미국 국민의 72%는 앞날을 염려한다. 차이는 국가 정책이다. 스웨덴 고용통합부 장관은 말했다. “일자리는 사라집니다. 그러면 우리는 새 일자리에 맞게 사람들을 훈련합니다. 우리는 일자리가 아니라 노동자를 보호합니다.” 기업은 자유롭게 경쟁하게 방임하고, 그 과정에서 기회를 잃은 노동자를 국가가 보호하는 나라가 더 경쟁력 있다.
이스털린은 말한다. “국민 행복을 늘리려면 조세 수입을 완전 고용과 소득 지원, 주택 지원, 보편적 의료 서비스, 교육, 보육, 육아 휴직, 노인 부양 등 사회 안전망 확충에 기꺼이 사용하려는 정부가 있어야 한다.” 사람이 행복한 나라가 되려면 부의 증가가 충분한 복지와 결합해야 한다. 이를 잊으면, 국민 행복 수준이 떨어져 시민 저항을 불러일으킨다. 행복경제학이 국민소득경제학을 이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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