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풍속대로 왕하 17:34-41
06월 15일 (수)
이전 풍속대로 왕하 17:34-41
34. 그들이 오늘까지 이전 풍속대로 행하여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라 이름을 주신 야곱의 자손에게 명령하신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는도다
35. 옛적에 여호와께서 야곱의 자손에게 언약을 세우시고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다른 신을 경외하지 말며 그를 경배하지 말며 그를 섬기지 말며 그에게 제사하지 말고 36. 오직 큰 능력과 편 팔로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만 경외하여 그를 예배하며 그에게 제사를 드릴 것이며 37. 또 여호와가 너희를 위하여 기록한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지켜 영원히 행하고 다른 신들을 경외하지 말며 38. 또 내가 너희와 세운 언약을 잊지 말며 다른 신들을 경외하지 말고 39.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만을 경외하라 그가 너희를 모든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리라 하셨으나 40. 그러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오히려 이전 풍속대로 행하였느니라 41. 이 여러 민족이 여호와를 경외하고 또 그 아로새긴 우상을 섬기니 그들의 자자 손손이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대로 그들도 오늘까지 행하니라 <그들이 오늘까지 이전 풍속대로 행하여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라 이름을 주신 야곱의 자손에게 명령하신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는도다>(34절).
그런데 33절 말 말씀하는 대목이고, 34절은 그렇게 하는 것이 결코 여호와를 바르게 섬기는 일이 아님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경배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한 분 하나님이 있을 뿐이며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신들을 인정하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시 사마리아의 혼합종교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주신 율례를 인정하지 않았고 인정할 수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법도와 모세의 율법이 크게 무시되었습니다. 그 땅에 남아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로운 이주자들과 점차 융합되어갔으며 예배에 있어서도 이교도들인 그들과 연합하였습니다(왕하 23:19, 대하 34:3-7, 33, 요 4:22). 그런데 이런 사마리아 지역이 종교적으로만이 아니라 인종적으로도 혼합되었기 때문에 후에 포로지에서 다시 사마리아로 돌아온 소위 정통 유대인들이 혼혈이 된 그들과 상종을 하지 않았는데 이게 바로 사마리아인과 유대인 간의 적대 관계의 불씨가 되었고,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까지 이 둘의 관계는 언제나 미묘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볼 때 이 혼합 정책은 여호와 신앙을 몰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그로 인해 이스라엘 민족은 서로 반목과 질시, 그리고 깊은 대립에 빠지는 비극의 역사를 떠안게 된 것입니다. <이 여러 민족이 여호와를 경외하고 또 그 아로 새긴 우상을 섬기니 그들의 자자손손이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대로 그들도 오늘까지 행하니라>(41절). 이렇게 하여 <열국 중에> 오직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어야 할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끝을 맺습니다. 이스라엘처럼 위대한 하나님의 약속과 함께 시작한 민족도 없었지만 또 이렇게 엄청난 치욕과 불명예를 안고 끝을 맺는 나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이 쓰라린 역사적 경험을 통해 우리는 <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한다>(잠 14:34)는 말씀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됩니다. - 본문 35절은 십계명 중 제 몇 계명에 해당되는 말씀일까요?
- <혼합주의>(41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주님 시대까지도 이어진 유다와 사마리아 간의 반목과 갈등의 원인을 간략히 적어보십시오. 주님, 유다와 사마리아 간의 대립은 이미 왕국이 분열될 때 싹튼 것이지만(왕상 12:16), 사마리아인이 멸시받게 된 원인은 그들이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지 못하고 종교적 혼합주의에 깊이 빠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백성이 마땅히 지켜야 할 율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과거 이스라엘의 이런 실패와 아픔이 이 시대 저희들에게도 큰 깨달음이 되고 도전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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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대에 꼭 필요한 문해력!
“문명적 삶의 ‘8할’은 읽고 쓰고 생각하고 대화하고 협력하고 판단
하는 방식, 즉 리터러시가 결정합니다. 좋은 삶을 사는 사람들은 좋은 리터러시를 갖추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병영 저(著) 《읽는 인간 리터러시를 경험하라》 (샘앤파커스, 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읽고 쓰는 능력인 ‘문해력’이 4차산업혁명 시대 아이들의 교육에 있 어서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리터러시(Literacy)’는, 문해력을 포괄하는 의미로 다양한 형식의 기호를 읽고 쓰는 능력입니다. 즉, 리터러시는 어떤 특별한 매체나 책, 유튜브, 영상, 그래픽 등 세상에 널려 있는 많은 기호들을 읽고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읽고 쓰면서 생각하는 것이 리터러시입니다. 4차 산업혁명은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인재를 필요로 합니다. 점점 유능 해지는 인공지능들 사이에서 사람은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현 시대에 꼭 필요한 능력은 무엇보다 세상에 퍼져 있는 다양한 정보들을 융합해 완전히 새로운 의미가 담긴 나만의 지식을 이 끌어 낼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이 세상의 기호들을 잘 읽을 줄 아는 문해력이 필요합니다. 즉, 가짜 정보에 속지 않고, 진짜 알맹이 정보를 읽을 줄 알고, 그것을 융합할 줄 아는 능력입니다. 혼자 이사야서를 읽던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빌립 집사가 이렇게 물었
습니다.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행8:30) “읽는 것을 깨닫느냐?” 성경도 잘 읽고 깨닫는 것이 중요하듯이, 세상에 펼쳐 있는 기호들을 잘 읽을 줄 아는 능력에서부터 세상을 이기는 힘이 나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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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9장 13절
너는 네 이웃을 억압하지 말며
착취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 " 'Do not defraud your neighbor or rob him. " 'Do not hold back the wages of a hired man overnight. Leviticus 19:13 [N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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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복을 받으시려면
모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고 미워하는, 불뱀을 일으키는 원망하는 일이 가정에도 없도록 하고 학교에 가는 자녀에게는 ‘절대로 부정적인 말을 친구들에게나 선생님께 하지 말도록 가르치십시오. . 오늘, 직장에 가십니까? 절대로 부정적인 사람이 되지 마세요. 오늘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믿음으로 나아가세요. 어디에 가십니까? 어디에 있습니까? 병원에 가셨습니까? 좋은 병원 만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여러분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병원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을에 있는 작은 병원에서도 다 고침 받을 줄 믿습니다. -김삼환 목사의 ’원망하면 손해‘에서- 우리 안에 큰 병이 들어앉아 있습니다. 그 병은 하늘도, 땅도 못 고치는 원망의 병, 불평하는 병, 이런 것은 사람이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고 의사도 못 고치고 뱀이 와서 삼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지상에 낙원을 만들고 가정 천국 이룩하여 믿음이 넘치고 소망이 넘치고 사랑이 넘치고 감사가 넘치는 긍정적인 사람이 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불평 불만의 사람보다는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긍정의 복을 받으시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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