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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부족주의와 과잉 국가주의의 위기

鶴山 徐 仁 2021. 12. 29. 15:39

Opinion :염재호 칼럼

 

도덕적 부족주의와 과잉 국가주의의 위기

 

중앙일보 입력 2021.12.29 00:47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우울한 코로나의 짙은 어둠이 걷히지 않은 채 2021년이 막을 내리고 있다. 새해를 맞이하는 들뜬 기대감보다는 추운 겨울 날씨보다 더 심한 혹한의 삶을 또 어떻게 견뎌내야 할지 걱정 가득한 새해를 맞게 된다.

 

이제 문재인 정부의 집권도 끝이 나 내년 3월이면 대선을 통해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다. 지난 5년간 한국사회는 질풍노도의 시간을 보냈다. 광화문 촛불집회로 우리는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을 경험했다. 적폐를 청산하고 통합의 리더십으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약속에 우리는 부푼 기대를 안고 문재인 정부의 탄생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지난 5년은 혼란과 분열, 그리고 갈등의 심화로 점철된 시간인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분열 부추기는 도덕적 부족주의

채색된 진실로 호도하는 부족장

위기를 앞세운 국가주의의 유혹

부족과 국가주의 결합 경계해야

 

청와대를 떠나 광화문 시대를 열고, 원전을 폐기하여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고, 취업률을 매일 점검하는 상황판을 만들고, 부동산 문제 만은 자신이 있다고 공언한 수많은 약속들을 국민은 믿었다. 하지만 민주당 정부는 남북대화, 사법개혁, 공수처 설치, 위성정당과 여대야소라는 자신들의 정치적 성과는 이루었지만 소득양극화, 실업문제, 부동산문제, 세금폭등 등 국민의 삶은 더 피폐하게 만들었다. 선한 의지만으로 복잡한 사회문제를 풀겠다는 아집과 무능력으로 그동안 국민들이 받은 상처는 너무 깊다.

 

코로나 팬데믹에 몸살을 앓고 있는 것 말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더 큰 중병은 도덕적 부족주의이다. 독선에 빠져 상대편을 악으로 규정하고 내 편은 무엇이든 옳다는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채색된 진실’로 자신들의 논리를 과장하고 왜곡하는 일들이 넘쳐나고 있다. 정치인들은 거짓으로 국민을 호도하고 나서도 수치심을 느끼지 못한다. 예외적 현상을 일반화시키고, 프레임으로 모든 것을 뒤집어씌워 논점을 흐리게 만들곤 한다.

 

조국 사태를 시작으로 우리 사회는 도덕적 부족주의로 끝없이 내로남불과 편가르기로 이성적 판단력을 상실하고 있다. 왜곡된 사실로 국민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 다음 이에 영향을 받은 국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하여 정치적 편향성을 증폭시킨다. 트윗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SNS 정보의 발신, 개인방송 유튜브를 통해 사실은 왜곡되고 루머는 확산된다. 언론과 지식인들조차 이런 도덕적 부족주의 경향에 편승하고 있다.

 

미국도 정치적 부족주의의 폐해를 고통스러워한다. 하버드 대학의 조슈아 그린 교수는 『옳고 그름』이라는 저서에서 더 이상 도덕의 옳고 그름이 의미를 잃어간다고 분석한다. 예일 대학의 에이미 추아 교수도 『정치적 부족주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산업의 대전환 과정에서 저소득층으로 전락하는 백인노동자들의 감성을 이용하여 다원화된 미국사회에서 파괴적이고 분절적인 부족주의를 조장하며 정치적 이득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도덕과 선을 앞세운 정치적 부족주의는 감성적 논리로 국민들을 집단 최면에 빠지게 한다. 마치 신흥종교 집단이나 축구팀에 열광하는 훌리건 팬들이 빠지는 오류와 닮아 있다. 이것이 이익과 결부되면 판단력 상실은 더 심각해진다.

 

어느 선거보다도 내년 대선에 투표할 후보가 없다고 한다. 여야 모두 후보 선정 과정에서 원칙이나 철학보다는 정치적 부족주의 전략으로 선거에 승리하기 위한 후보를 선출한 결과이다. 진보적 가치로 국민들의 지지를 구하던 여당은 대선 승리를 위해 일 잘한다는 실용주의 후보를 선택했다. 그 결과 후보가 상황에 따른 말 바꾸기로 민주당의 기본 노선까지도 흔드는 일들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야당도 문재인 정부를 심판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만으로 자신들이 뽑은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고 간 장본인을 차기 대선후보로 선택하는 모순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오로지 대선 승리만을 위한 정치적 부족주의의 결과이다.

 

이런 부족주의자들에게 비대해진 국정운영을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다. 국가 전체의 운명과 이익은 뒷전에 두고 부족의 승자독식만 탐한다. 청와대 집중의 비대해진 국가주의 국정운영이 심각한 상태까지 이르렀다. 30년 전 국가의 세금은 27조원에 불과했지만 작년에는 286조원에 달했다. 올해는 부동산 가격 폭등과 증세로 인해 9월말로 이미 274조원을 거두어들였고 연말 전망은 314조원에 달한다. 국가채무는 2014년에 503조원이었는데  내년에는 1000조원을 넘게 된다. 정부부채에 공공부채까지 합치면 올해 1280조원이다. 내년에는 150조원이 더 증가하게 된다고 한다.

 

국가 세금과 부채가 팽창해도 여야 모두 정권을 잡으면 자신들이 쓸 수 있는 돈은 늘기 때문에 이를 줄이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위기를 빌미로 무엇이든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준다는 국가주의의 달콤한 유혹으로 우리를 현혹시킬 것이다. 부족주의와 국가주의가 결합되면 나라의 운명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도덕을 앞세운 정치적 부족주의와 과잉 국가주의를 심각하게 경계할 때이다. 지식인과 언론, 그리고 우리 국민 모두가 깨어 있어야만 한다.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