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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내로남불’ 크리스마스 파티

鶴山 徐 仁 2021. 12. 25. 20:08

[선데이 칼럼] ‘내로남불’ 크리스마스 파티

 

중앙선데이 입력 2021.12.25 00:30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오미크론 변이로 인해 확진자가 십만 명에 달하고 있는 상황의 영국에서, 사람들이 가장 뜨겁게 반응하고 있는 토픽은 ‘크리스마스 파티’다. 영국인들에게 크리스마스는 매우 중요한 날이고 크리스마스 파티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행사 격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크리스마스란 한국의 추석과 설날을 합친 정도의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한국의 크리스마스와는 살짝 다르게 영국의 크리스마스는 가족을 위한 날이다. 대가족이 모이고 다들 선물을 주고받고 음식을 잔뜩 준비해서 즐겁게 먹고 마신다. 가족 모임뿐 아니라 회식 등이 거의 없는 영국의 직장에서도 12월이면 반드시 하는 것이 크리스마스 파티다.

 

문제는 다들 집중하고 있는 것이 올해의 크리스마스 파티가 아니라 작년의 파티라는 점이다. 전대미문의 전면봉쇄를 두 차례나 겪고 난 지난해 12월, 영국인들은 크리스마스 시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전면봉쇄 기간 동안은 같은 가구원이 아니면 아예 만나지 못했다. 부모 자식 간이라고 해도 얼굴도 보기 어려운 채로 일 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힘들었던 한 해를 보냈지만 적어도 크리스마스는 예년과 비슷하게 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팬데믹 상황이 종료되지야 않겠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 아닌가. 만나지 못했던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 힘들었던 기억을 나누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 말이다. 그건 아마도 상상도 못했던 유례없는 한 해의 끝에 앞으로는 일상이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상징 같은 것이 되었을 것이다.

 


코로나로 전면봉쇄 해놓고

총리와 측근들 성탄절 파티

권력의 고질병인 내로남불

국민들이 그리 우스운 걸까

 

이런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크리스마스를 바로 앞둔 지난해 12월 19일, 런던을 비롯한 잉글랜드 지역에 방역지침 4단계가 선포되었다. 4단계는 거의 전면봉쇄라고 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집에만 있어야 했고 출근도 꼭 필요한 경우만 했다. 생필품을 판매하는 가게들만 문을 열 수 있고 그 외에는 영업을 할 수 없었다. 가구원 이외의 사람을 실내에서는 만날 수 없고 야외에서만 단 한 명을 만나는 것이 허용되었으니, 떨어져 살고 있는 부모를 방문한들 그 집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대규모 가족 모임이나 크리스마스 파티는 언감생심이었다. 영국인들로서는 피하고 싶었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실제로 일어난 셈이었달까.

선데이 칼럼 12/25

 

 

그런데, 상황이 대략 이러던 와중에, 영국 보수당 정부의 총리 및 그 측근들은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고 사적인 모임도 하고 함께 흥청망청 술을 마시고 떠들썩하게 놀았다는 것이다! 이런 의혹이 처음 제기되었을 때 총리실 측의 반응은 그런 일은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모이기는 했으되 파티가 아니라 업무상 모임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더니 파티 사진이 등장했다. 사진 속의 참석자들의 모습은 누가 보기에도 업무를 수행하는 중이라고 하기 어려웠고, 방역지침은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총리는 파티에 참석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파티가 열린 사실 자체를 모른다고 주장했다. 이윽고 이들이 벌인 크리스마스 파티가 한 번뿐이 아니라는 증언이 나왔다. 총리는 그중 한 파티에 참석해 인사말을 했고 어떤 파티에서는 크리스마스 퀴즈 대회에 문제를 내기도 했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파티가 아니더라도 이미 작년 5월, 방역지침을 어기고 총리 가족과 측근들이 와인에 치즈를 곁들여 담소를 나누고 있는 사진이 보도되었다. 게다가 이런 스캔들을 조사하라고 임명한 각료 역시 스스로 금지된 파티를 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도무지 어디까지 얼마나 방역지침을 어긴 것인지 그 끝을 알 수 없는 지경이다. 국민들을 향해서는 방역지침을 지키라고 엄중히 촉구를 하면서 말이다. 말하자면 영국식 ‘내로남불’이 줄줄이 벌어진 현장이라고 하겠다.

 

작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뭘 했나 생각을 해보니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아마도 그냥 집에 있었을 것이다.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운이 좋았다는 사실의 방증이라고 하겠다. 만일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이 코로나에 걸렸다면 잊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가 되었을 테니까. 심지어 죽음을 맞이한들, 같이 있어 주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던 때다. 이런 일들을 겪었던 보통 사람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정부에서 하지 말라는 일들은 하지 않으려 애쓰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지침들을 꾹 참고 지켰던 사람들로서는 허탈하고 분노가 치밀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심정들이니 난공불락 보수당의 아성으로 보였던 지역구의 보궐선거에서조차 근 200년 만에 보수당 소속이 아닌 인물을 국회의원으로 뽑은 것일 테다.

 

영국의 이런 어이없는 풍경을 보면서 기가 차고 허탈하기는 해도 그리 화가 나지는 않는다. 기가 찬 거야 당연하고, 허탈한 이유는 정치적으로 더 오랫동안 선진국이었다는 사회에서도 권력을 잡은 집단의 내로남불은 고질적인 병폐이구나 싶어서다. 화가 나지 않는 이유는 익숙하게 많이 본 풍경이기 때문이라서다. 한국사회에서 내로남불이란 적어도 2019년 이후에는 끊임없이 들려오던 소리 아닌가. 다만 풀리지 않는 의문은, 내로남불을 하는 자들은 왜 그러는 것일까 하는 지점이다. 자기들은 그래도 된다는 걸까. 남들이 우스운 걸까.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