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美의 의도 왜곡하는 정부
입력 2021.12.22 03:00
“적어도 동맹의 의도를 오독하지는 않아야지요.”
워싱턴의 한 외교 인사는 요즘 한미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바이든 미 행정부가 지난 한 달간 유럽연합(EU), 일본에 차례로 철강 관세를 완화하겠다고 밝힌 것을 두고 최근 우리 외교부가 내놓은 입장문을 예로 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3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 누볼라 컨벤션에서 열린 G20 공식 환영식에 도착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다. 2021.10.30. /뉴시스
2018년 전임 트럼프 행정부는 미 철강 산업을 보호하겠다며 EU와 일본산 철강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한국에도 수출 물량을 과거 평균 70%로 제한하는 조치를 내렸었다. 3여 년 뒤 과거 조치를 철회하겠다며 EU·일본에 ‘선물’을 안긴 바이든 정부가 한국엔 어떤 제안도 내놓지 않고 있다. 안 그래도 타격을 입은 한국 철강 경쟁력이 또 하락할 것이 뻔한 상황이다. 이에 ‘반중 전선’을 강화하려는 미 움직임에 동조하지 않는 한국에 대한 차별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러자 외교부가 갑자기 “미 행정부가 반중(反中) 연대에 호응하는 동맹국에 관세 혜택을 주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EU·일본에 대한 관세 완화는) 미·중 갈등과 무관하다”고도 했다. 타국의 결정과 그 배경을 우리 정부가 대신 나서서 해석한 것을 본 적이 없다. 더 심각한 건 한국 정부가 바이든 행정부의 명백한 의도까지 왜곡하고 있다는 평가가 워싱턴 현지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EU에 대한 철강 관세 완화안을 발표하면서 “중국의 ‘더러운’(dirty) 철강이 우리 시장에 접근하는 것을 제한할 것”이라고 했다. 같은 달 미·일이 철강 관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기구를 설치하기로 합의했을 때도 양국은 ‘중국에 대항한다’고 했다. 곳곳에 중국을 겨냥한 조치라는 근거를 남겨뒀다.
한국이 이런 혜택에서 제외되는 데 대한 미국의 ‘시그널’도 뚜렷하다. 미 통상 베테랑인 웬디 커틀러 전 한미 FTA 수석대표는 지난 4월 한 세미나에서 “중국의 ‘비(非)시장 경제’에 대응하는 데 한국이 미국과 협력하겠다는 결의를 드러낸다면 (수출 제한 완화의) 길을 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이 확실히 미국 편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미 현지 분위기를 외교부가 몰랐을 리 없다. 이런 ‘오독’은 의도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반중의 최전선에서 중국과 치고받는 호주를 찾아 우리 대통령이 ‘조화로운 한중 관계’를 언급하고, 외교부 차관이 미 워싱턴에서 한미 관계를 주제로 열린 간담회에서 “중국은 전략적 파트너”라고 해 오바마·트럼프 행정부 전임 관료들에게 잇따라 면박을 받는 일이 반복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종전 선언을 어떻게든 추진해보겠다고 중국을 바라보며 SOS를 치는 것이란 시각이 많다. 문 정부 전체가 임기 말 대선 이벤트에 목매는 동안, 철강 문제 같은 진짜 먹고사는 문제는 임기 내내 표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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