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로보암의 죄 왕상 14:11-20
11월 30일 (화)
여로보암의 죄 왕상 14:11-20
11.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가 성읍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 들에서 죽은즉 공중의 새가 먹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니라 하셨나니
12. 너는 일어나 네 집으로 가라 네 발이 성읍에 들어갈 때에 그 아이가 죽을지라 13. 온 이스라엘이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장사하려니와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는 오직 이 아이만 묘실에 들어가리니 이는 여로보암의 집 가운데에서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음이니라 1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한 왕을 일으키신즉 그가 그 날에 여로보암의 집을 끊어 버리리라 언제냐 하니 곧 이제라 1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쳐서 물에서 흔들리는 갈대 같이 되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그의 조상들에게 주신 이 좋은 땅에서 뽑아 그들을 강 너머로 흩으시리니 그들이 아세라 상을 만들어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음이니라 16. 여호와께서 여로보암의 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을 버리시리니 이는 그도 범죄하고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하였음이니라 하니라 17. 여로보암의 아내가 일어나 디르사로 돌아가서 집 문지방에 이를 때에 그 아이가 죽은지라 18. 온 이스라엘이 그를 장사하고 그를 위하여 슬퍼하니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 아히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19. 여로보암의 그 남은 행적 곧 그가 어떻게 싸웠는지와 어떻게 다스렸는지는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20. 여로보암이 왕이 된 지 이십이 년이라 그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아들 나답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여호와께서 여로보암의 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을 버리시리니 이는 그도 범죄하고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하였음이니라 하니라>(16절).
여로보암의 아내는 병든 아이의 생사 여부를 묻기 위해 실로의 아히야 선지자를 찾았으나 돌아갈 때는 여로보암의 집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의 증거로서 자신의 아이가 죽게 될 것이라는 것과 또 그 사실을 여로보암에게 전해야 할 입장이 되었습니다. 여로보암이 아내를 이용해 아히야 선지자를 속이려 한 것이 이제는 거꾸로 아히야가 그녀를 통해 여로보암을 꾸짖게 된 셈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의 특징은 등장인물과 사건의 의미 변환에 있습니다. 즉 여로보암의 병든 아들 아비야의 운명은 단순한 가정사에서 하나님이 그 배후에서 주관하시고 역사하신 구속사로 그 의미가 바뀌고, 여로보암의 아내 역시 속이는 자의 심부름꾼에서 진실을 전달하는 자로 그 역할이 바뀝니다. 또한 아히야는 늙고 눈 먼 사람이지만 젊고 영악한 자보다 더 먼 미래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선지자였음이 드러났습니다. 더욱이 여로보암은 자신을 숨기고 감추기에 급급했지만 결국은 자신이 모르던 운명까지도 낱낱이 폭로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전환>과 <폭로>가 다 본래는 그럴 수 없는 것들이 그렇게 바뀐, 즉 불가능한 것들이 가능해진 것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 못 보는 노인이 젊은 권력가의 술책을 뛰어넘어 오히려 그가 모르던 사실까지도 일러주는 기막힌 반전이 바로 그 단적인 예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주권적 개입을 뜻하며, 바로 이런 점들이 무신론적 풍토 속에서 오로지 인간적인 계산에만 능한 현대인들에게도 큰 경고와 도전이 될 것입니다. 욕망과 권력과 본능을 충족시키는 인생이 아니라 자기에게 맡겨진 거룩한 사명을 깨닫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참다운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고 그 가치의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하고 평가받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은 결코 그렇게 못하고 그의 죄로 인해 도리어 아들이 죽고, 이스라엘이 여호와께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은 읽고 아이의 죽음이 역설적으로 그 자신에게 행운이 된 이유를 적어 보십시오.
-당시 북이스라엘이 만들었다는 <아세라 상>(15절)에 관해 아는대로 적어보십시오(18:19). -북이스라엘의 수도가 된 <디르사>(17절)는 어디에 위치한 성읍이었습니까? 주님, 여로보암의 죄가 결국은 자신과 자식과 나라에 파국을 불렀습니다. 여호와께서 여로보암의 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을 버리셨다고 했고, 여로보암의 집을 끊어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로보암은 자신은 물론이고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하여 마침내는 그의 집도 이스라엘도 다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을 면치 못했습니다. 저희로 하여금 특히 우상 숭배의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늘 성령으로 깨우쳐주시옵소서. 나로 인해 내 집과 공동체가 하나님의 복을 누릴지언정 저주를 받거나 심판을 당하는 불행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켜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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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거절을 하면 신뢰감을 준다
“잘 거절할 줄 아는 사람은 신뢰감을 준다. 이 사람이 ‘No’라고 말
했을 때에는 정말로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되고, 이 사람이 ‘Yes’ 라고 말했으니까 도중에 그만두는 일 없이 제대로 끝까지 해 줄 것이 라는 신뢰감이다. 이것도 인간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신뢰감이다.” 사이토 시케타 저(著) 안중식 역(譯)《느낌 좋은 사람의 99가지 공통점》 (지식여행, 47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예스(Yes)에는 능하지만, 노(No)에는 초보자입니다. 부탁보다 어려운 것이 거절입니다. 거절할 때마다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은 죄의식에 빠집니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 싫고,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지키고 싶고, 갈등을 피하고 싶은 등의 관계적 이유 때문에 거절을 어려워 합니다. 그러나 거절은 죄가 아니고 생활의 필수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정중 하고 아름다운 거절은 오히려 신뢰감을 줍니다. 진솔하게 노(NO)를 말할 수 있어야, 예스(YES)가 진짜 예스로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제안을 거절하시고 홀로 산 으로 가셨습니다. 왕이 되어 백성들을 먹이는 일보다, 우리의 죄를 사 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는 일이 예수님의 사명이셨기에 그러합니다. 정중하고 지혜롭고 아름다운‘거절’은 자신을 지키고, 무엇보다도 하 나님의 사명을 지키는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
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요6: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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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6편 1절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Vindicate me, O LORD, for I have led a blameless life; I have trusted in the LORD without waver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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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권리를 하나님을 위해서 포기하고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수시로 개입하시는데
나를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해서 개입하실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나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다. 즉 내가 당연히 누릴 권리를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포기하고 그 권리를 하나님께 넘겨 드리는 자를 원하시는 것이다. 바로 마리아와 요셉의 모습이다. 마리아와 요셉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건지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일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서 나의 권리를 포기한다는 것은 다른 자를 죄에서 건지는 일이 되는 것이다 -신윤식 목사의 ‘자기 백성’에서- 신자의 삶의 목적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건지는 예수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봉사를 하고 헌금을 해도 나의 귀한 시간과 나의 귀한 돈 때문에 누군가가 죄에서 건짐 받기를 소원하면서 하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모든 일은 귀하고 가치 있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의 권리와 자기의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그 일에 동참하기를 거부하고 그 예수님을 따르기를 거부할 때 그 자는 결국 예수님의 자기 백성이 아닌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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