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의 퇴장? 암컷 혼자 새끼 만든 콘도르
샌디에이고 동물원서 “조류 최초 단성생식 확인” 발표
수컷과 정상적 부부생활하면서 혼자서 2세 생산
입력 2021.10.31 08:30
이것은 신의 섭리에 대한 반격인가. 아니면 쓸모없는 수컷의 퇴장과 몰락을 예견하는 전조인가. 고등동물들의 번식은 남과 여, 혹은 암수의 결합으로 이뤄진다는 통념을 깨뜨린 미국 샌디에이고 조류학자들의 연구결과가 주목받고 있다. 이들이 멸종위기종 캘리포니아 콘도르의 무정란이 부화한 사례가 최소 2건 확인됐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수컷과의 결합없이 암컷이 스스로 2세를 증식하는 단성생식(처녀생식 또는 무성생식)은 하등동물들의 전유물로 간주돼왔다. 동물 중에서 가장 고등한 부류인 젖먹이짐승과 새에서는 보고된 바가 없었다. 28일 샌디에이고 동물원 야생동물 보호연합(이하 보호연합) 소속 과학자들이 연구결과를 발표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는 캘리포니아 콘도르. 앞서 죽은 두 마리가 조류 최초의 단성생식 사례로 보고됐다. /샌디에이고 동물원 야생동물 보호연합
보호연합은 이날 캘리포니아 콘도르의 무정란 부화 사례 2건을 최초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이 동물원은 멸종위기종 캘리포니아 콘도르의 보호·증식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모든 콘도르의 유전 혈통을 분석해왔다. 그런데 두 마리의 콘도르 새끼를 분석해보니 부계 혈통이 아예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암컷이 혼자만의 힘으로 만든 2세였다는 것이다. 일종의 자기복제인 셈이다. 이 연구결과는 미국유전학회지인 ‘저널 오브 헤레디티’에 소개됐다.
연구진인 보호연합의 올리버 라이더 박사는 “이것은 정말 놀라운 발견”이라고 했다. 고등동물인 새가 수컷없이 암컷 홀로 2세를 생산할 수 있다는 점도 전례가 없지만, 눈에 띄는 점은 또 있다. 짝짓기 없이 새끼를 만들어낸 암컷은 평소 수컷과 커플을 이루며 살아온 평범한 엄마새였기 때문이다. 통상적인 수컷과의 부부관계를 통해 각각 11마리, 23마리를 부화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더구나 이 중 한 마리는 단성생식을 한 뒤에 다시 정상적으로 두 번 더 교미를 통해 번식을 했다.
샌디에이고 동물원에서 증식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멸종위기종 캘리포니아 콘도르. 앞서 숨진 콘도르 2마리가 수컷과의 짝짓기 없이 태어난 무정란에서 부화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샌디에이고 동물원 야생 연합 측이 발표했다. /야생연합 트위터
단성생식은 몸구조가 단순한 원시적인 하등동물들의 전유물로 인식돼왔다. 하지만 일부 척추동물중에서도 단성생식을 하는 경우가 보고됐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살아있는 공룡’으로 알려진 지상최대의 도마뱀 코모도왕도마뱀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암컷만 있고 수컷은 없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대를 잇기 위한 고육책으로 활용돼왔다고 한다. 이번 캘리포니아 콘도르의 사례는 새가 단성생식을 하는 경우도 전례가 없거니와, 정상적인 부부생활과 2세 증식을 하는 과정에서 확인된 사례이기 때문이다.
조류의 단성생식에 대한 연구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보호연합에 따르면 1965년대 칠면조를 비롯해 핀치와 비둘기 등에서 무정란 번식 가능성에 대한 연구와 단성생식 시도가 있었지만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미 조류의 단성생식은 간간이 일어나는 현상이었지만, 연구기술의 획기적인 발달 덕에 뒤늦게 확인될 수 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야생협회는 지난 30년간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해오면서 동물원 내에서 사육중인 콘도르와 야생 콘도르, 살아있는 콘도르와 죽은 콘도르의 사체 등 다양한 표본을 확보해 첨단 장비를 통해 유전혈통을 분석할 수 있었다.
샌디에이고 동물원 야생동물 보호연합 소속 한 연구자가 콘도르 유전혈통 분석울 위한 자료들을 보고 있다. 이곳은 30년간 콘도르 복원활동을 펼치면서 생존 개체와 사망 개체들에서 뽑아낸 자료를 축적해왔다. /샌디에이고 동물원 야생동물 보호연합
이번에 ‘아빠 없이 태어난 콘도르’로 확인된 두 마리도 이미 불귀의 객이 된 개체다. 한 마리는 두 살 때인 2003년때, 다른 한 마리는 여덟살인 2017년에 죽었다. 콘도르의 수명이 최대 60년인 것을 감안하면 아주 이른 나이에 죽은 것이다. 이 때문에 단성생식으로 태어난 개체는 정상적인 암수의 만남으로 태어나는 개체에 비해서 신체적으로 허약할 수 있을 가능성도 시사한다. 이번에 최초 보고된 새의 단성생식 사례는 과학적 타당성을 떠나서 인간이 속한 젖먹이동물의 단성생식 가능성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 분야는 철저히 신성과 창조의 영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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