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은혜의 바다 왕상 7:23-37

鶴山 徐 仁 2021. 9. 27. 13:09

은혜의 바다 왕상 7:23-37

 

 

09월 27일 (월)

   
은혜의 바다 왕상 7:23-37

23. 또 바다를 부어 만들었으니 그 직경이 십 규빗이요 그 모양이 둥글며 그 높이는 다섯 규빗이요 주위는 삼십 규빗 줄을 두를 만하며
24. 그 가장자리 아래에는 돌아가며 박이 있는데 매 규빗에 열 개씩 있어서 바다 주위에 둘렸으니 그 박은 바다를 부어 만들 때에 두 줄로 부어 만들었으며
25. 그 바다를 소 열두 마리가 받쳤으니 셋은 북쪽을 향하였고 셋은 서쪽을 향하였고 셋은 남쪽을 향하였고 셋은 동쪽을 향하였으며 바다를 그 위에 놓았고 소의 뒤는 다 안으로 두었으며
26. 바다의 두께는 한 손 너비만 하고 그것의 가는 백합화의 양식으로 잔 가와 같이 만들었으니 그 바다에는 이천 밧을 담겠더라
27. 또 놋으로 받침 수레 열을 만들었으니 매 받침 수레의 길이가 네 규빗이요 너비가 네 규빗이요 높이가 세 규빗이라
28. 그 받침 수레의 구조는 이러하니 사면 옆 가장자리 가운데에는 판이 있고
29. 가장자리 가운데 판에는 사자와 소와 그룹들이 있고 또 가장자리 위에는 놓는 자리가 있고 사자와 소 아래에는 화환 모양이 있으며
30. 그 받침 수레에 각각 네 놋바퀴와 놋축이 있고 받침 수레 네 발 밑에는 어깨 같은 것이 있으며 그 어깨 같은 것은 물두멍 아래쪽에 부어 만들었고 화환은 각각 그 옆에 있으며
31. 그 받침 수레 위로 들이켜 높이가 한 규빗 되게 내민 것이 있고 그 면은 직경 한 규빗 반 되게 반원형으로 우묵하며 그 나머지 면에는 아로새긴 것이 있으며 그 내민 판들은 네모지고 둥글지 아니하며
32. 네 바퀴는 옆판 밑에 있고 바퀴 축은 받침 수레에 연결되었는데 바퀴의 높이는 각각 한 규빗 반이며
33. 그 바퀴의 구조는 병거 바퀴의 구조 같은데 그 축과 테와 살과 통이 다 부어 만든 것이며
34. 받침 수레 네 모퉁이에 어깨 같은 것 넷이 있는데 그 어깨는 받침 수레와 연결되었고
35. 받침 수레 위에 둥근 테두리가 있는데 높이가 반 규빗이요 또 받침 수레 위의 버팀대와 옆판들이 받침 수레와 연결되었고
36. 버팀대 판과 옆판에는 각각 빈 곳을 따라 그룹들과 사자와 종려나무를 아로새겼고 또 그 둘레에 화환 모양이 있더라
37. 이와 같이 받침 수레 열 개를 만들었는데 그 부어 만든 법과 크기와 양식을 다 동일하게 만들었더라



<또 바다를 부어 만들었으니 그 직경이 십 규빗이요 그 모양이 둥글며 그 높이는 다섯 규빗이요 주위는 삼십 규빗 줄을 두를 만하며>(23절).
<그 바다를 소 열두 마리가 받쳤으니 셋은 북쪽을 향하였고 셋은 서쪽을 향하였고 셋은 남쪽을 향하였고 셋은 동쪽을 향하였으며 바다를 그 위에 놓았고 소의 뒤는 다 안으로 두었으며>(25절).
<바다>란 옛 성막 시대 물두멍에 해당되는 성물로 대단히 크고 웅장했습니다. 제사장들의 성결 의식을 위해 물을 담아 두는 큰 물통과 같은 것으로, 번제단을 지나 성전으로 들어가기 전 성전 뜰 동남향에서 만나는 그 놋대야가 얼마나 컸으면 그걸 <바다>라고 불렀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물론 그 <바다>와는 별개로 성전 좌우에 다섯 개씩 있었던 물두멍은 그대로 놓여 있어서 성전에서 사용되는 제물을 씻을 때 사용하였습니다(대하 4:6).


 솔로몬 성전의 <바다>는 제사장들이 성전 봉사를 할 때 씻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그런데 그 규모가 단순히 씻는 수준을 넘어 온몸을 던져도 될 만큼 바다처럼 큰 대야였다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표해 예배를 집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제사장들이 몸을 씻는 바다란 바로 우리를 씻기시고 정결케 하시고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상징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깨끗케 하사 새 출발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감히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고,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입니다. 
그렇습니다. 
온 이스라엘, 모든 하나님의 백성을 다 깨끗케 할 수 있는 게 바로 한없이 넓은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입니다. 이 세상 그 어떤 더러운 죄를 씻어도 결코 오염되지 않는 은혜의 바다가 바로 하나님의 바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에 빠집시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의 발을 씻고, 온몸을 씻어 깨끗한 하나님의 자녀들로 다 새로워집시다. 


-오늘의 본문과 역대하 4:2-5을 비교해보십시오.
-놋바다에 담을 수 있는 물의 양은 얼마였을까요(26절)?
-바다의 받침 수레를 장식한 네 가지 형상은 어떤 것이었습니까(29절)?


주님,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는 저희를 깨끗하게 하고 또 새롭게 살아가게 하는 바다입니다. 
저희의 더러워진 양심과 영혼을 하나님의 은혜의 놋바다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씻으며 살아가는 저희들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주님은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요 13:8)고 하셨사오니 언제나 죄와 허물을 은혜의 바다에서 씻으며 주님과의 아름다운 관계를 보다 지혜롭게 관리해 가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능숙함


“1989년 2월 24일, 뉴질랜드로 가는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항공기가 호
놀룰루 공항을 이륙했다. 그런데 이 보잉 747기가 2만 2천 피트 상공에
이르렀을 즈음, 화물칸 앞문이 뜯겨 나가면서 항공기 옆구리에 커다란
구멍이 났다. 순식간에 승객 아홉 명이 허공으로 빨려 나가 목숨을 잃
었다(중략). 기장 데이비드 크로닌(David Cronin)은 온갖 지혜와 38년에
걸친 비행 경험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짜냈다.”


팀 켈러 저(著) 최종훈 역(譯) 《일과 영성》(두란노, 94-95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위기를 맞은 기장 데이비드 크로닌은 잠시 기도를 한 후에 바로 일에
집중하였습니다. 그는 전문성과 38년에 걸친 비행 실력을 마지막까지
짜냈고,마침내 매끄럽게 항공기를 호놀룰루 공항에 비상 착륙시켜
346명 승객들의 목숨을 살려 영웅이 되었습니다.
팀 켈러목사님은 이 사고를 수습한 기장을 보면서 전공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또 성실하게 경력을 쌓는 것이 얼마나 선한 일인지를
보여 준다고 하였습니다.
“재난을 코앞에 둔 이들에게는 기장이 동료들과 얼마나 사이좋게 지
내는지,또는 어떻게 다른 이들과 신앙을 나누는지 따위는 중요치 않았
다. 결정적인 문제는 파일럿으로서 심각하게 타격을 입은 기체를 안전
하게 조종할만큼 탁월한 능력을 갖췄는가 하는 것뿐이었다(중략). 하나
님이 현재 진행중인 창조 과정에 동참하는 게 크리스천의 사명이라고
할 때, 그 사역을 떠받치는 기반은 ‘능숙함’이 되어야 한다. 각자
가진 달란트를 최대한 노련하고 능숙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97쪽)
우리가 이웃을 축복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 ‘일’을 통해 축
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만드는 것, 내가 서비스 하는 것을 통해
이웃을 축복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혼 없는 일은 이웃에 대한 조롱
입니다. 또한 능숙하게 해야 합니다. 능숙하지 않은 일은 이웃에게 부
담만 줄 뿐입니다.
“일을 통해 이웃을 사랑하는 주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능숙한 사
역’이다. 하나님이 일을 주신 목적이 인간 공동체를 섬기게 하는 데
있다면,그 뜻을 받드는 으뜸가는 길은 주어진 과업을 끝낼 뿐만 아니라
제대로 해내는 것이다.” (94쪽)




“네가 자기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잠22:29)
   
사도행전 1장 5절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For John baptized with water, but in a few days you will be baptized with the Holy Spirit Acts 1:5 [NIV]
   
만나는 그분이 작은 예수이다
가정에서 가족 간에도, 사회에서 일터에서도
 어느 곳에서 누구에게든지 골로새서 3장 23절의 말씀처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했다. 
왜냐하면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내 몸에서 예수의 향내를 풍겨야 한다.
  모든 일을 예수님께 하듯 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께 하듯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정에서 자녀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소유물로 생각하고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데 
자녀뿐 아니라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고신일 목사의 ‘하나님의 뜻이니라’에서-


자녀는 하나님께서 그 가정에 주신 선물입니다. 
잘 길러서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쓰임 받는
 일꾼으로 만들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작은 예수를 대하듯 해야 합니다. 
다른 어느 가족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히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에 대해 함부로 얘기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만나는 그분이 작은 예수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