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한 것을 기뻐하는 시대 (암 6:8-14)
03월 29일 (월)
허무한 것을 기뻐하는 시대 (암 6:8-14) 8.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주 여호와가 당신을 두고 맹세하셨노라 내가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며 그 궁궐들을 미워하므로 이 성읍과 거기에 가득한 것을 원수에게 넘기리라 하셨느니라
시인 김기림은 삼월이 다 되도록 여전히 오지 않는 봄, 아니 쉬 물러가지 않는 겨울을 이렇게 읊었습니다.
아모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무우발인가 해서 나려 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젖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들이 시리다. <바다와 나비>
이것은 단지 계절의 풍경화가 아닙니다. 여기 등장하는 나비란 달이 바뀌면 그저 봄이 자동적으로 오는 것이겠거늘 하는 우리의 <순진함>이며, 때가 되어도 꽃이 피지 않는 삼월의 바다란 그런 순진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너무나도 영악하고 거칠고 허탄해진 이 세상에 다름 아닙니다. 파랗기만 하면 무조건 청무우밭인가 하여 내려앉았다가 그만 사납고 차가운 겨울 파도를 잔뜩 뒤집어쓰고는 오들오들 떨며 돌아오는 딱한 나비의 모습. <정의를 쓸개로 바꾸며 공의의 열매를 쓴 쑥으로 바꾸며 허무한 것을 기뻐하던>(12-13절) 아모스 시대 이스라엘과 이 시대 우리의 모습이 어쩌면 이리도 닮았는지요. 야고보서는 <너희가 허탄한 것을 자랑하니 그것은 다 악한 것>(4:16)이라고 했는데 이 역시도 <허무한 것을 기뻐한다>는 말씀과 그 뜻이 다르지 않습니다. <허무한 것>, <허탄한 것>은 부끄러움이요 치부요 따라서 기뻐하거나 자랑할 것이 못됨에도 그걸 기뻐하거나 자랑하는 몰염치한 시대, 철면피한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느끼며 기도합시다. 아직 만월이 되기에는 한참이나 더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한다는 사실을 저 삼월의 바다 위로 무심하게 떠오르는 <시린 초생달>을 보며 뼈저리게 깨달읍시다. 아모스 선지자처럼 우리도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우리를 주저앉히거나 우리의 길을 가로막거나 낙망에 빠뜨리지 못할 것임을 확신합시다. 그러면 삼월의 바다가 아무리 시려도 우리의 날개는 지쳐 서럽지 않을 것입니다.
-<허무한 것을 기뻐하고, 부끄러운 것을 자랑하는> 현대인들의 삶의 행태를 지적해 보십시오. -아모스 시대 이스라엘 사회의 모순과 이 시대 우리 사회의 모순을 비교해 보십시오. -<정의를 쓸개로, 공의를 쓴 쑥으로>(12절) 바꾸었다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주님, 예나 지금이나 세상 사람들은 허무한 것에서 기쁨을 느낍니다. 분명히 그게 부끄러운 것임에도 도리어 자랑하며 시위합니다. 그만큼 가치관이 전도되어 몰염치해졌다는 의미입니다. 악한 것을 자랑하고 죄악을 기뻐하던 아모스 시대 이스라엘에 대해 <내가 너희를 원수에게 넘기리라>(8절), <한 집에 열 사람이 있다 하여도 다 죽을 것이라>(9절), <내가 한 나라를 일으켜 너희를 치리라>(14절) 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저희는 결코 그런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성령으로 단속해 주시옵소서. |
|
산 다람쥐
“산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뭐니 뭐니 해도 자존감이다. 집에서 나는 평범한 셋째 딸이지만 산에 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등산길에 만 나는 어른들은 꼬마 산쟁이인 나를 하나같이 예뻐해 주셨다. ‘아이고,잘걷네.’‘꼭 산다람쥐처럼 날쌔기도 하지.’(중략) 꼬마가 하루 종일 이런 칭찬과 관심과 사랑을 받았으니 어땠겠나,기 고만장 우쭐해져서 더 열심히 산을 오르락 내리락 했겠지”
한비야 저(著) 《그건 사랑이었네》 (푸른숲, 26쪽) 중에 나오는 구절 입니다. 오지 여행가이자 국제구호활동가인 한비야씨는 산을 좋아하고 산에서 많은 삶의 교훈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3녀 1남 중의 셋째 딸이라고 합니다. 첫째보고는 “예쁘다” 둘째 보고는 “더 예쁘네”라고 하는데, 자신을 보고는 “똘똘하게 생겼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칭찬이 아닌 것을 잘 알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산에 가면 다르더라는 겁니다. 아버지와 함께 산에 자주 올랐는데, 하도 잘 걸어서 산에 온 사람들이 산 다람쥐 같다며 칭찬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이 나서 시간만 나면 산에 갔고, 산에 오르며 삶의 많은 교훈을 얻었었다고 합니다. 나를 인정하고 축복해 주는 사람을 만나면 삶이 변합니다. 루돌프 사 슴은 자신을 인정해 주는 산타를 만나자 삶이 달라졌습니다.
주님을 만나면 더욱 그렇습니다. 안드레가 실수와 허물이 많은 시몬을 예수님께로 데려 왔습니다. 예수님은 시몬을 보자‘반석’이 될 것이 라고 하십니다.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요1:42) 안드레도 시몬 자신도, 주변 사람도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시각이었습니 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시몬은 하나님 나라의 반석이 되어 갔습니다. |
|
고린도전서 11장 29절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11장 29절>
For anyone who eats and drinks without recognizing the body of the Lord eats and drinks judgment on himself. <1 Corinthians 11:29> |
|
남에게 줄 수 있는 복만이 넘치는 복이다. 돈을 아무리 가져도 넣지 못하는 은행이 없다. 아무리 많이 주어도 그만 갖겠다는 사람이 없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모자라는 것이 돈이다. 말라기에는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않나 보라’고 했는데 쌓을 곳이 없도록 받아본 사람이 있는가? 창고가 모자라고 금고 속에 못 넣은 사람이 있는가? 돈이란 항상 모자란다. 많든 적든 남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은 넘치는 것이고 못 주는 사람은 모자라는 것이다. 넘치는 사람은 남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이다. -이중표 목사의 ‘온전한 신앙 넘치는 축복’에서-
넘치는 축복은 영적인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옹달샘 물은 겨우 바가지로 퍼서 먹어야 됩니다. 그런데 넘치는 물은 입만 대면 먹을 수 있습니다. 넘치는 복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넘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십시오.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않나 보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랑을 붓지 않나 보라는 말씀입니다. |
03월 29일 (월)
허무한 것을 기뻐하는 시대 (암 6:8-14) 8.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주 여호와가 당신을 두고 맹세하셨노라 내가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며 그 궁궐들을 미워하므로 이 성읍과 거기에 가득한 것을 원수에게 넘기리라 하셨느니라
시인 김기림은 삼월이 다 되도록 여전히 오지 않는 봄, 아니 쉬 물러가지 않는 겨울을 이렇게 읊었습니다.
아모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무우발인가 해서 나려 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젖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들이 시리다. <바다와 나비>
이것은 단지 계절의 풍경화가 아닙니다. 여기 등장하는 나비란 달이 바뀌면 그저 봄이 자동적으로 오는 것이겠거늘 하는 우리의 <순진함>이며, 때가 되어도 꽃이 피지 않는 삼월의 바다란 그런 순진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너무나도 영악하고 거칠고 허탄해진 이 세상에 다름 아닙니다. 파랗기만 하면 무조건 청무우밭인가 하여 내려앉았다가 그만 사납고 차가운 겨울 파도를 잔뜩 뒤집어쓰고는 오들오들 떨며 돌아오는 딱한 나비의 모습. <정의를 쓸개로 바꾸며 공의의 열매를 쓴 쑥으로 바꾸며 허무한 것을 기뻐하던>(12-13절) 아모스 시대 이스라엘과 이 시대 우리의 모습이 어쩌면 이리도 닮았는지요. 야고보서는 <너희가 허탄한 것을 자랑하니 그것은 다 악한 것>(4:16)이라고 했는데 이 역시도 <허무한 것을 기뻐한다>는 말씀과 그 뜻이 다르지 않습니다. <허무한 것>, <허탄한 것>은 부끄러움이요 치부요 따라서 기뻐하거나 자랑할 것이 못됨에도 그걸 기뻐하거나 자랑하는 몰염치한 시대, 철면피한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느끼며 기도합시다. 아직 만월이 되기에는 한참이나 더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한다는 사실을 저 삼월의 바다 위로 무심하게 떠오르는 <시린 초생달>을 보며 뼈저리게 깨달읍시다. 아모스 선지자처럼 우리도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우리를 주저앉히거나 우리의 길을 가로막거나 낙망에 빠뜨리지 못할 것임을 확신합시다. 그러면 삼월의 바다가 아무리 시려도 우리의 날개는 지쳐 서럽지 않을 것입니다.
-<허무한 것을 기뻐하고, 부끄러운 것을 자랑하는> 현대인들의 삶의 행태를 지적해 보십시오. -아모스 시대 이스라엘 사회의 모순과 이 시대 우리 사회의 모순을 비교해 보십시오. -<정의를 쓸개로, 공의를 쓴 쑥으로>(12절) 바꾸었다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주님, 예나 지금이나 세상 사람들은 허무한 것에서 기쁨을 느낍니다. 분명히 그게 부끄러운 것임에도 도리어 자랑하며 시위합니다. 그만큼 가치관이 전도되어 몰염치해졌다는 의미입니다. 악한 것을 자랑하고 죄악을 기뻐하던 아모스 시대 이스라엘에 대해 <내가 너희를 원수에게 넘기리라>(8절), <한 집에 열 사람이 있다 하여도 다 죽을 것이라>(9절), <내가 한 나라를 일으켜 너희를 치리라>(14절) 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저희는 결코 그런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성령으로 단속해 주시옵소서. |
|
산 다람쥐
“산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뭐니 뭐니 해도 자존감이다. 집에서 나는 평범한 셋째 딸이지만 산에 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등산길에 만 나는 어른들은 꼬마 산쟁이인 나를 하나같이 예뻐해 주셨다. ‘아이고,잘걷네.’‘꼭 산다람쥐처럼 날쌔기도 하지.’(중략) 꼬마가 하루 종일 이런 칭찬과 관심과 사랑을 받았으니 어땠겠나,기 고만장 우쭐해져서 더 열심히 산을 오르락 내리락 했겠지”
한비야 저(著) 《그건 사랑이었네》 (푸른숲, 26쪽) 중에 나오는 구절 입니다. 오지 여행가이자 국제구호활동가인 한비야씨는 산을 좋아하고 산에서 많은 삶의 교훈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3녀 1남 중의 셋째 딸이라고 합니다. 첫째보고는 “예쁘다” 둘째 보고는 “더 예쁘네”라고 하는데, 자신을 보고는 “똘똘하게 생겼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칭찬이 아닌 것을 잘 알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산에 가면 다르더라는 겁니다. 아버지와 함께 산에 자주 올랐는데, 하도 잘 걸어서 산에 온 사람들이 산 다람쥐 같다며 칭찬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이 나서 시간만 나면 산에 갔고, 산에 오르며 삶의 많은 교훈을 얻었었다고 합니다. 나를 인정하고 축복해 주는 사람을 만나면 삶이 변합니다. 루돌프 사 슴은 자신을 인정해 주는 산타를 만나자 삶이 달라졌습니다.
주님을 만나면 더욱 그렇습니다. 안드레가 실수와 허물이 많은 시몬을 예수님께로 데려 왔습니다. 예수님은 시몬을 보자‘반석’이 될 것이 라고 하십니다.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요1:42) 안드레도 시몬 자신도, 주변 사람도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시각이었습니 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시몬은 하나님 나라의 반석이 되어 갔습니다. |
|
고린도전서 11장 29절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11장 29절>
For anyone who eats and drinks without recognizing the body of the Lord eats and drinks judgment on himself. <1 Corinthians 11:29> |
|
남에게 줄 수 있는 복만이 넘치는 복이다. 돈을 아무리 가져도 넣지 못하는 은행이 없다. 아무리 많이 주어도 그만 갖겠다는 사람이 없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모자라는 것이 돈이다. 말라기에는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않나 보라’고 했는데 쌓을 곳이 없도록 받아본 사람이 있는가? 창고가 모자라고 금고 속에 못 넣은 사람이 있는가? 돈이란 항상 모자란다. 많든 적든 남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은 넘치는 것이고 못 주는 사람은 모자라는 것이다. 넘치는 사람은 남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이다. -이중표 목사의 ‘온전한 신앙 넘치는 축복’에서-
넘치는 축복은 영적인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옹달샘 물은 겨우 바가지로 퍼서 먹어야 됩니다. 그런데 넘치는 물은 입만 대면 먹을 수 있습니다. 넘치는 복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넘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십시오.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않나 보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랑을 붓지 않나 보라는 말씀입니다. |
'Faith - Hy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모스와 아마샤 (암 7:10-17) (0) | 2021.04.01 |
---|---|
여름 과일 한 광주리 (암 8:1-6) (0) | 2021.03.31 |
기도 할 때 듣는 해금찬송 - cover by Haegeum Minjung 해금민정 (0) | 2021.03.28 |
최고의 영성은 주님을 닮는 것이다 (0) | 2021.03.27 |
메뚜기와 불 (암 7:1-6) (0) | 2021.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