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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社會 關係

[김진국 칼럼] 민주주의는 역지사지다

鶴山 徐 仁 2020. 12. 15. 11:33

[김진국 칼럼] 민주주의는 역지사지다

 

 

[중앙일보] 입력 2020.12.15 00:35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민주주의는 천의 얼굴이다. 정치인은 누구나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내세우지만, 우리가 믿는 민주주의와 다른 경우가 많다. 민주주의는 부서지기도 쉽다. 사람만 바뀌어도 달라진다.
 

다수는 선, 소수는 악 아니다
다른 생각에도 귀 기울여야
정권 잡으면 야당 때 기억하고
산에 오를 때, 내려갈 준비해야

 

미국 민주주의가 흔들린다. 미국을 기준으로 좇아온 나라들은 더 위태롭다. 진실과 가짜가 뒤섞인 ‘탈진실’의 시대에 민주주의도 정체성을 잃어간다. 일부 극단적인 과격분자들만의 소동이 아니다. 서로 다수라고 주장하는 세력이 대립하면서 민주주의의 기반을 허물고 있다.
 
민주주의의 대척점에 서 있는 탈레반이나 홍위병, 보코하람도 처음에는 민심을 업고 등장했다. 탈레반은 외세에 시달린 아프가니스탄인들에게 극단적인 민족주의, 이슬람 원리주의를 내세우며 세력을 확장했다. 그러나 그들의 정치재판, 종교재판은 주민의 일상을 파괴했다. 중국·나이지리아에서도 대기근의 불만을 등에 업고 어린 학생들에게 순결, 원리주의의 완장을 채웠다.
 
민주주의에서 투표를 만능처럼 이야기한다. 다수결이기만 하면 ‘닥치고 민주주의’라고 한다. 요즘 우리 정치가 그렇다. 다수는 선(善)이고, 소수는 악(惡)이라고 한다. 정말 그런가. 독재의 전형이라고 하는 유신체제도 민주주의를 내세웠다.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했다.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K-민주주의’ 정도다.
 
유신 헌법 국민투표에 91.9%가 투표하고, 91.5%가 찬성했다. 그런데 왜 국민은 저항했을까. 3분의 2에 가까운 압도적 국회 의석을 차지한 집권당이 야당 총재를 합법적으로 제명했는데 왜 문제가 됐을까. 왜 부산과 마산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핵심 측근인 중앙정보부장이 권총으로 끝내야 했을까.
 
민주주의에서 투표는 불가피하다. 선거를 돌아보면 한 표로 당락이 갈리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어떤 지방선거에서는 같은 수의 표를 얻어 나이순으로 당선자를 정한 경우도 있다. 당락은 규칙대로 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민주 정치가 ‘닥치고 다수결’은 아니다. 다수결이 선악을 가르는 건 더더구나 아니다. 다수의 탈을 쓴 독재는 위험하다. 소수의 정당한 권리도 보장되어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가 되는 것도 이 지점이다. 대통령은 한 사람이다. 1표만 많아도 당선이다. 그것이 옳고, 그름을 가르는 기준이 아니다. 특정 정파가 무조건 옳고, ‘닥치고’ 따라야 한다는 결정이 아니다. 특정 정당의 후보로 당선되지만, 국정 전체의 운영을 위임받는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사실 이런 약속은 지키기가 쉽지 않다. 어느 순간에는 선택해야 한다. 그래도 자기 생각과 다른 목소리를 악마화하지 않고, 귀를 기울이는 노력은 해야 한다. 유신체제가 비난받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반대 목소리를 반국가세력으로 몰아 탄압한 것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인 삼권 분립의 견제와 균형이 그 체제에서는 없었다. 대통령은 삼권의 위에 군림했다. 그 경험이 아직도 살아있다. 비난하며 배웠다. 집권당은 대통령 지시로 움직인다. 탈당한 국회의장도 여당과 호흡을 맞춘다. 검찰과 법원도 손아귀에 쥐려 한다. 대통령 권한을 쪼개는 개헌 논의를 10여년 째 계속했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한다. 집권 세력은 권력 독점이 영속하리라 믿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권력을 나눌 때 가장 염려하는 게 부패다. 대통령마다 퇴임 후가 비참했다. 권력을 나누면 정치세력의 담합과 부패가 더 심해질 거라고 걱정한다. 그럴수록 사법의 독립, 수사의 공정이 필요하다. 일본은 내각제 나라다. 1976년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를 도쿄지검 특수부가 구속함으로써 성역이 없음을 보여줬다.
 
‘광주 학살’ 책임자로 비난받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재임 중 친인척을 가장 많이 사법처리했다. 동생 경환씨는 공금 횡령 혐의로, 형 기환 씨는 서울 수산시장 운영권 개입 혐의로 구속됐다. 처남 이창석씨, 처삼촌 이규광씨, 사촌 순환·우환씨도 줄줄이 구속됐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아들을 구속하고, 국민에 사과했다. 아버지 때문에 고문을 당한 아들에게도 ‘마음의 빚’을 들먹인 대통령은 없었다. 표적 사정한다고 항의한 대통령도 없었다.
 
검찰은 범죄를 보면 파헤쳐야 한다. 정상을 참작하는 건 법원 몫이다. 정치적 화해와 사면을 검토하는 건 정치인의 역할이다. 검찰이 ‘범죄’가 아닌 ‘사람’을 가려 수사하면 정권의 ‘홍위병’, ‘탈레반’이 된다. 수사기관이 살아있는 권력의 갑옷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집권세력의 정적을 탄압하는 앞잡이가 되어서도 안 된다.
 
민주주의는 쉽지 않다. 쾌도난마(快刀亂麻)가 없다. 타협과 절충의 시간, 인내가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야 한다. 정권을 잡았을 때, 야당이었을 때를 기억해야 하고, 산에 올라갈 때, 내려갈 때를 준비해야 한다.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출처: 중앙일보] [김진국 칼럼] 민주주의는 역지사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