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징계의 목적(히브리서 12:4~13 )

鶴山 徐 仁 2020. 12. 3. 13:37

징계의 목적(히브리서 12:4~13 )

 

 

12월 03일 (목)

   

징계의 목적(히브리서 12:4~13 )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바른 소리보다는 위로와 격려와 칭찬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입에 쓴 약이 몸에 좋고 병을 고친다는 말처럼 권면과 징계가 유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징계는 나를 사랑한다는 사랑의 증표이기에 이를 경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5) 

징계란 원어적으로 ‘파이데이아’로 벌하심이 아니라 훈련을 의미하는 뜻입니다. 

즉 허물을 깨우치도록 나무라고 꾸짖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혹독한 훈련을 받은 욥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욥5:17). 

시편 기자는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19:67).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육신의 부모처럼 자신의 기분과 감정따라 자녀들에게 무리하게 행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징계가 있다면 무엇인가 이유가 있을 것이고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 목적은 선한 목적이며 우리의 올바른 신앙인격을 양성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징계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6). 

친 아들이기 때문이며 관심과 기대가 크기 때문에 징계를 주시는 것입니다. 

징계는 그 분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싸인입니다. 인간에게는 여러 약점과 부패성이 내재해 있기에 수많은 

죄의 유혹들과 목숨 걸고 싸워야 합니다(4). 이 싸움에서 밀리고 패배하게 되면 우리로 하여금 

정신을 차리도록 징계의 채찍을 드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징계를 통하여 정신을 차리고 겸손해져서 기도함으로 구원을 체험케 되는 것입니다. 

 

징계는 권위에 복종함을 배울 수 있는 기회입니다(6-10). 

인격적으로 부족한 육신의 아버지가 징계해도 자녀는 순종해야 합니다. 

하물며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는 어떠하겠습니까? 

그 분은 전지전능하시어 우리를 너무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구별된 신앙 인격자로 세우기 위하여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순복함을 터득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징계는 장래의 유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11-13). 

징계나 훈련은 당시에는 즐겁지 않습니다. 힘들고 고달프고 아픔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간을 통과한 후 다가오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기억하며 이겨내야 합니다. 

이제 피곤한 손과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발로 곧은 길을 만들어 말씀의 정로를 따라 사명의 길을 가야 합니다. 

저는 다리로 비틀거리면 아니 됩니다. 징계는 하나님의 축복을 싸고 있는 검은 보자기와 같습니다.

 

- 지금 어떤 고난가운데 있는지 살펴보고, 이 고난을 영적으로 해석해 보세요.

- 징계 중에 있다면 이제 인정하고 고백함으로 회개해 보세요.

- 징계를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고, 장래를 생각하며 이길 수 있도록 기도하세요. 

 

거룩하신 주님, 나의 연약함을 아시오니 붙들어 주시고 새롭게 하시옵소서. 

나의 눈을 열어 주님의 뜻을 보게 하시고 죄악의 길에 서지 않게 하시옵소서. 

지금의 이 어려움과 난관을 말씀안에서 이겨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주시옵소서. 

 
   

인간에 대한 조화로운 해석

 

“아담 스미스 이래 주류 경제학이 전제하고 있는 인간은 ‘매우 똑똑

하고 합리적이며 의지도 있는’ 그런 존재였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어떤가? 눈과 귀가 솔깃하여 계획에 없던 물건을 사서 후회하기도 하고,

다이어트를 한다면서 폭식하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바가지를 쓰면서

2차,3차 술집을 전전하기도 하는 ‘어리석고 비합리적이며 의지도

박약한’자연인이 아니던가!”

 

김학재 저(著) 《임계점을 넘어라》 (글로벌콘텐츠, 15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면 두 가지 사실에 놀랍니다.

첫째는, 이렇게 멋진 사람이 있다니.  둘째는, 이런 괴물이 있다니.

우리 인간은 창조론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면 하나님의 아름다운 걸작품

입니다. 따라서 기죽으며 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론적 시각

에서 바라보면 우리는 스스로가 구원할 수 없는 죄와 죄성이 가득한 존

재입니다. 따라서 겸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에 대한 온전한 이해는 창조론적 시각과 구원론적 시각을 동시에

가질 때 가능합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

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시8:3-5)

   

사도행전 1장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장 8절

But you will receive power when the Holy Spirit comes on you;

 and you will be my witnesses in Jerusalem, and in all Judea and Samaria, and to the ends of the earth. 

Acts 1:8 [NIV]

   

기독교

기독교는 강자만을 위한 종교가 아니다. 모든 사람, 특히 정말 중요한 부분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는 이들을 위해 존재한다. 다시 말해, 특별한 힘의 도움으로 다음 사실을

인정하는 이들을 위해 존재한다. 그들은 자신의 결함이 피상적이지 않고, 

마음이 깊이 병들어 있으며, 자기 힘으로는 그 무엇도, 특별히 자기 자신조차도 고칠 수 없다고 고백한다. 

기독교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려면 구주가 필요함을, 

즉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함을 볼 줄 아는 이들의 것이다.

-팀켈러의 [인생 질문] 중에서-

 

하나님 나라의 방식은 강한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끄럽고 연약함을 이용한 방식입니다. 때로는 내게 물질이 없고 배움이 없고 배경이 

없다고 자기 비하를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 안에서 예수를 

만난 사람은 그것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하나님의 방식임을 기억합니다. 

도리어 감사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