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사회[이정향의 오후 3시]
이정향 영화감독 입력 2020-11-07 03:00 수정 2020-11-07 03:00
<22> 더 헌트
덴마크의 소박한 교외. 40대의 루카스는 이혼 후 고향에 돌아와 유치원 교사로 일한다. 전처와 사는 중학생 아들을 데려
오는 게 꿈인 그는 유치원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특히 루카스와 제일 가까운 친구의 딸인 클라라가 루카스를 많이 따른다. 그러던 중, 클라라가 루카스에게 지나친 애정을 표현하고, 루카스는 클라라를 위해 선을 확실히 긋는다. 감수성이 뛰어난 클라라는 상처를 입고, 원장에게 거짓말을 한다. 누가 들어도 루카스가 클라라를 성적으로 학대했다고 믿을 만한 내용을. 다음 날, 클라라는 자신의 거짓말을 후회하지만 이미 흥분한 어른들은 클라라의 말을 사실로 몰아가는 데 몰두하고, 루카스는 온 마을에 성범죄자로 소문이 나 식료품 가게에서도 쫓겨난다. 심지어 다른 아이들도 루카스에게 성추행을 당한 듯이 떠드는데 경찰 조사 결과 아이들의 집단 심리와 부모들의 지나친 의심이 만든 환상으로 드러난다. 루카스의 전처도 아들과 루카스를 못 만나게 한다. 훌륭한 교사였던 루카스는 아이의 거짓말로 모든 걸 잃어버렸다.
‘아이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모든 오해와 불행은 어른들의 이 확신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억울한 루카스의 절규는 그 누구의 귓가에도 닿지 않았다. 영화는 덴마크의 아동 심리학자가 겪은 실제 사례를 다뤘다. 약자는 항상 선할까? 피해자의 증언엔 거짓이 없을까? 피해자의 눈물이 증거라는 말은 위험하다. 피해자인 양 눈물로 호소하며 거짓말을 하는 이들도 많고, 떳떳하기에 눈물도, 변명도 않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우리는 곧잘 거꾸로 판단한다. 편견이 피해자를 가해자로, 죄인을 무고한 피해자로 둔갑시킨다.
순진한 얼굴로 엄청난 거짓말을 한 클라라보다 그 거짓말을 사실로 포장하는 어른들이 혐오스러웠다. 마치 이런 희생양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여태껏 평화로운 질서와 온화한 미소를 유지하며 살았던 날들이 위선이었다는 듯 루카스를 악질로 몰아붙이며 내면에 숨어 있던 폭력성을 남김없이 발휘하는 고향 사람들이 소름 끼쳤다. 영화는 그로부터 1년 후를 보여주며 끝난다. 루카스는 무혐의가 되지만 고향 사람들은 자신들의 오판을 인정하지 않는다. 예전처럼 어울리지만 미소에 가려진 눈빛은 여전히 루카스를 견제한다. 심지어 친구들끼리 나간 사냥터에서 루카스는 총격을 당한다.
집단광기로 인해 벌어진 참사는 누구의 책임일까? 모두의 잘못은 아무도 책임질 필요가 없는 걸까? 자신의 편견이 피해자의 삶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를 아는 것도 또 책임지기도 싫은 우리.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인정하느니, 무고한 피해자를 진짜 가해자로 몰아가는 걸 택하는 잔인한 사회. 낯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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