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미가의 신앙(삿 17:7-13)

鶴山 徐 仁 2020. 4. 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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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월 0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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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미가의 신앙(삿 17:7-13)

7. 유다 가족에 속한 유다 베들레헴에 한 청년이 있었으니 그는 레위인으로서 거기서 거류하였더라

8. 그 사람이 거주할 곳을 찾고자 하여 그 성읍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 가다가 에브라임 산지로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매

9. 미가가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부터 오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유다 베들레헴의 레위인으로서 거류할 곳을 찾으러 가노라 하는지라

10. 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거주하며 나를 위하여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먹을 것을 주리라 하므로 그 레위인이 들어갔더라

11. 그 레위인이 그 사람과 함께 거주하기를 만족하게 생각했으니 이는 그 청년이 미가의 아들 중 하나 같이 됨이라

12. 미가가 그 레위인을 거룩하게 구별하매 그 청년이 미가의 제사장이 되어 그 집에 있었더라

13. 이에 미가가 이르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본문 해석

<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게 거주하니 나를 위하여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먹을 것을 주리라>(10절).

미가는 이를테면 지독한 실용주의자였습니다.

 

실용주의는 진리가 무엇인가 묻지 않습니다. 옳고 그른 것도 따지지 않습니다. 오로지 이 종교, 이 신앙이 내게 이익이 되느냐 그렇지 않으냐 에만 관심할 뿐입니다. 실용주의자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절대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습니다. 자기 집 앞마당에 교회를 세우는 일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아닌지도 고민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가 편하면 그만이고, 자기에게 덕이 되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사사시대에는 하나님이 지정하신 예배처가 엄연히 따로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가 만든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18:31). 이렇듯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었고, 실로는 당시 미가가 살고 있던 에브라임에서 그리 먼 곳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미가는 가까운 곳에 하나님의 집을 두고도 더 가까운 곳을 찾다 아예 자기 집 마당에 신당을 세우고 하나님이라며 신상을 만들어 안치하고 처음에는 자기 아들을, 나중에는 떠돌이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세워 자기를 위해 하나님께 예배하게 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이 아닌 오직 자기 중심, 자신의 유익과 편의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요즘도 가장 문제가 되는 신앙생활의 행태가 바로 이 실용주의입니다. 물론 지금은  더 철저하고 극단적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이웃을 위하기보다 복음을 생각하고 교회의 덕을 고려하기보다 우선적으로 자기의 유익과 행복을 따져보고 그게 보장되지 않으면 언제든 떠나고 미련 없이 모든 걸 버립니다. 그래서 이제는 희생이니 헌신이니 십자가니 고난이니 사랑이니 하는 말이 거의 호소력이 없습니다. 설득력을 잃었습니다. 무조건 편리해야 하고, 쾌적해야 하고, 강요하지 않아야 하고 부담이 없어야 하고 이익이 돼야 합니다. 

어쩌면 이런 실리주의, 편의주의, 실용주의가 이 시대 믿는 자들의 최대 난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결단과 적용

- 미가의 신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실용주의, 편의주의와 관련해 현재 당신 자신의 신앙생활을 평가해 보십시오.

- 본문 13절 말씀에 대한 소감을 적어 보십시오.

오늘의 기도

주님, 미가는 실용주의와 이기주의의 화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 미가가 바로 이 시대 저희들의 모습이고 또 신앙행태입니다. 현재 저희들의 신앙이 극단적인 실용주의이고 이기주의이고 편의주의입니다.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이기보다 모든 게 나의 실리와 편리와 욕구에 따라 결정되고 실행됩니다. 부디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을 위해, 주님의 뜻과 분부를 받들며 좀 더 희생적으로, 좀 더 헌신적으로 사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도서 큐티더 보기
남을 정죄하지 않았는지 물어야 한다

우리가 세리와 죄인들을 향하여 

 바리새인과 율법학자의 자리에 서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돌아보아야한다. 

성속을 나누며, 교회안과 밖을 가르며, 

죄와 의를, 전통과 비전통을 구분하여

 남을 정죄하지 않았는지 물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렇게 유대율법주의로 분리되어 

소외된 작은 자들을 길 잃은 양으로,

 잃어버린 동전으로 보면서 찾았던 분이시다. 

비굴하게 짓눌려 살았던 세리와 죄인들이 

주님께 돌아왔을 때, 아니 그들을 

주님이 건져주셨을 때의 그 기쁨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천국의 기쁨이었다.

 -황남덕 목사의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기쁨’에서-

 

나하고 다른 믿음의 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나하고 다른 신앙의 관점에 있다고 해서, 

가난하다고 해서, 성별이 다르다고 해서,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내 의견과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주변으로 내몰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또 내가 율법주의자는 아닌지?

 복음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기보다는 

이런저런 조문과 조건 속에 스스로가 갇혀서

 죄의식을 느끼며 사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관점으로 쉽게 정죄하지는 않았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