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소금을 뿌리라(삿 9:34-45) 외 2

鶴山 徐 仁 2020. 2. 13.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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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종소리 - 365일 하나님과 행복한 삶의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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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월 13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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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소금을 뿌리라(삿 9:34-45)

35. 에벳의 아들 가알이 나와서 성읍 문 입구에 설 때에 아비멜렉과 그와 함께 있는 백성이 매복하였던 곳에서 일어난지라

36. 가알이 그 백성을 보고 스불에게 이르되 보라 백성이 산 꼭대기에서부터 내려오는도다 하니 스불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산 그림자를 사람으로 보았느니라 하는지라

37. 가알이 다시 말하여 이르되 보라 백성이 밭 가운데를 따라 내려오고 또 한 떼는 므오느님 상수리나무 길을 따라 오는도다 하니

38. 스불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전에 말하기를 아비멜렉이 누구이기에 우리가 그를 섬기리요 하던 그 입이 이제 어디 있느냐 이들이 네가 업신여기던 그 백성이 아니냐 청하노니 이제 나가서 그들과 싸우라 하니

39. 가알이 세겜 사람들보다 앞에 서서 나가 아비멜렉과 싸우다가

40. 아비멜렉이 그를 추격하니 그 앞에서 도망하였고 부상하여 엎드러진 자가 많아 성문 입구까지 이르렀더라

41. 아비멜렉은 아루마에 거주하고 스불은 가알과 그의 형제들을 쫓아내어 세겜에 거주하지 못하게 하더니

42. 이튿날 백성이 밭으로 나오매 사람들이 그것을 아비멜렉에게 알리니라

43. 아비멜렉이 자기 백성을 세 무리로 나누어 밭에 매복시켰더니 백성이 성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일어나 그들을 치되

44. 아비멜렉과 그 떼는 돌격하여 성문 입구에 서고 두 무리는 밭에 있는 자들에게 돌격하여 그들을 죽이니

45. 아비멜렉이 그 날 종일토록 그 성을 쳐서 마침내는 점령하고 거기 있는 백성을 죽이며 그 성을 헐고 소금을 뿌리니라

본문 해석

<아비멜렉이 그 날 종일토록 그 성을 쳐서 마침내는 점령하고 거기 있는 백성을 죽이매 그 성을 헐고 소금을 뿌리니라>(4절).

우리나라의 오랜 민간전통과 무속에도 소금은 부패와 부정을 막는 힘의 상징으로 인식돼 왔습니다. 그래서 초상집을 다녀온 사람에게는 소금을 뿌려 부정을 방지했고, 또 부정 탄 듯한 사람이 내 집을 다녀간 후에는 반드시 마당에 소금을 뿌려 정화의식을 치렀습니다. 또 무속에서도 더러운 잡귀를 쫓을 때는 반드시 소금을 썼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아비멜렉이 세겜성을 쳐서 백성들을 죽이고 그 성에 소금을 뿌렸다는 것은 정화의 의미보다는 그곳을 폐허로 만들겠다는 의미가 담긴 행위였습니다. 그 성읍에 대한 저주를 의미했습니다. 소금을 뿌리면 어떤 생물도 살아남지 못하듯 그렇게 점령한 세겜성을 초토화했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사람이란 무엇으로 심든지 결국  그대로 거둔다는 것과, 하나님은 사람이 행한 대로 다 갚으신다는 진리를 잘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악한 영을 보내사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게 하시고, 이에 화가 난 아비멜렉이 결국은 자신을 왕으로 세운 세겜을 치는데 남녀 1천 명가량을 죽이고 망대까지 무너뜨리며 세겜을 함락시켰습니다. 

 

한때는 불의한 반역자 아비멜렉을 도와 왕이 되게 했던 세겜 사람들이 도리어 그 아비멜렉에게 진멸됐다는 사실은 불의는 결국 불의의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을 역설합니다. 

의롭고 선한 사람을 도와 선한 일을 도모하면 축복이 임하지만, 불의한 사람을 도와 불의한 일에 가담하면 마침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임한다는 게 하나님이 정하신 역사와 세상의 이치라는 것입니다. 부디 악에 동조하지 마십시오. 악한 일에 가담하여 교활한 말로 악을 정당화하지 마십시오. 그 옛날 세겜 사람들의 멸망을 기억하며 자신의 어리석은 선택을 깊이 자성하며 회개하십시오.

결단과 적용

-옛 세겜 사람들의 행보와 그 운명을 보며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갈라디아서 6:7 말씀을 옮겨적어 보십시오.

-최근 당신은 그게 악한 일인 줄 알면서도 작은 이익을 위해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 한 적이 없습니까?

오늘의 기도

주님, 혈연과 지연을 앞세워 악에 가담했던 세겜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멸망을 보며 많은 사실을 깨닫습니다. 자신들이 만든 왕을 스스로 배신하고, 결국은 그 왕의 보복으로 모두 멸망 당한 비극이 오늘 저희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둡니다. 그게 하나님이 제정하신 자연의 순리요 세상 이치입니다. 저희로 하여금 오직 선을 행하며 선한 일에만 참여하도록 성령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성경과 문학
인문학 나눔

“성서는 신성한 영감을 통해 만들어진 유일무이한 책이지만,  

시,설화, 편지,예언 등의 다양한 문학 형식이나 장르가 사용되었다.

C.S. 루이스는 문학이 작용하는 방식을 이해하면 성서를 

더 잘 이해할수 있게 된다고 적절한 지적을 했다.

”피터 J.라잇하르트 저(著) 신국원 역(譯) 《기독교 세계관으로 본 셰익스피어》  

(꿈을 이룬 사람들, 9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문학을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은 소설을 가리켜 성스러운 생활을 흔드는

유혹적인 그 무엇으로 여깁니다.  시의 단어는 허위를 아름답게 꾸미는수단으로 봅니다.  

연극은 관객들의 욕망과 노여움을 부추기기 위해 

부도덕한 행위와 폭력을 묘사한다고 비난 받았습니다.   

한마디로 문학은신실한 신앙인으로 사는 데 유혹과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면, 이해가 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악용될 수 있지만,

특히 언어와 문학은 악용될 소지가 많습니다.  

언어는 하나님이 주시는최고의 선물이자 동시에 가장 위험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좁게 볼 수 만은 없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옷’을입은(=‘문학적 형태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에는시, 설화, 편지, 예언 등 여러 가지 문학의 장르가 나옵니다.  

그리하여우리 시대 최고의 기독교 변증학자인 C.S. 루이스는 

“문학이 작용하는방식을 이해하면 성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함에 있어서  

문학의 옷을 입었습니다.  그리하여 성경을 읽고 해석할 때, 

성령님의도움을 기도하는 것이 첫째입니다.  둘째는, 문학적 해석의 도구도 참고해야 합니다.

기독 메시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3:16)

그림 큐티더 보기
시편4장4-5절
고린도전서 15:10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셀라)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

In your anger do not sin; when you are on your beds, search your hearts and be silent. Selah

Offer right sacrifices and trust in the LORD.(NIV)

도서 큐티더 보기
고통의 터널

기독교는 악은 엄연한 삶의 현실이라고 봅니다. 

고통을 고통으로 보고, 아픔을 겪어서 

고통의 터널을 관통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을 관통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임재가 

필요하고 또한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여 고통을 겪어 내야만 합니다. 

악의 현실을 맞닥뜨린 사람은 

불가피하게 ‘왜?’라고 질문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대답을 알고 싶어서 하는 질문이 아닙니다. 

예상치 못한 악의 현실 앞에서 숨이 막혀 내지르는 비명이거나 

어이가 없어서 토해내는 넋두리입니다.

-김영봉의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아프다] 중에서-

 

우리는 고통을 만날 때마다 악의 역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악과의 한판 승부를 치러야 합니다. 

심지어 악은 우리를 유혹하여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악으로부터 오는 고통의 자리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찾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선으로 바꾸시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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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월 12일 (수)
말씀 큐티더 보기
성경 본문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전도서 4장 7-12절)

7. 내가 또 다시 해 아래에서 헛된 것을 보았도다

8.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있으나 그의 모든 수고에는 끝이 없도다 또 비록 그의 눈은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는 이같이 수고하고 나를 위하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 하여도 이것도 헛되어 불행한 노고로다

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10.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11.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본문 해석

2016년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1인 가구’가 27.2%라고 합니다. 3명 중에 1명은 혼자 산다는 이야기압니다. 그래서 이제는 ‘독거’, ‘혼밥’이라는 말이 어색하기 않습니다. 이렇게 되고 있는 한 가지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혼자 있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하며 혼자이기를 소망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는 이유는 주의에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정말 홀로 존재한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기쁜 일이 있어도 같이 기뻐할 사람이 없고, 무언가를 이루었는데 함께 나눌 계획이 있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혼자이고 싶다.”는 말은 아마도 “잠시 혼자이고 싶다.”는 말일 것입니다. 

 오늘 전도서 말씀에 등장하는 사람도 그런 상황 가운데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혼자이면 힘들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사는 이유는 세상 속에서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습니다. 성경의 인물들을 보면, 이런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이삭은 주위 사람들이 계속 우물을 빼앗으며 분쟁하였고, 야곱은 삼촌에게 20년을 속았으며, 요셉은 형들의 손에 팔렸고, 다윗은 장인인 사울과 아들인 압살롬에게 죽을 뻔합니다. 이 세상은 사람이 사는 곳이기에 다툼과 아픔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관계에서도 이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 가운데 우리는 상처를 받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은 일보다 사람들 때문에 위로받고 기쁘고 행복했던 일이 훨씬 더 많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그것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가족 때문에 힘들다고 말하지만, 가족 때문에 얼마나 많이 기쁘고 얼마나 많은 행복한 경험을 했는지를 기억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기쁜 일은 당연히 여기며 잊어버리고 나쁜 기억만을 오래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기억 구조는 나쁜 일을 오랫동안 기억하는 구조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쁜 기억이 있으면, 그 동안의 좋은 기억들을 전혀 떠오르지 않고 오로지 그 기억이 모든 것을 좌우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트라우마’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만남을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기쁨과 은혜가 훨씬 많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사람이 함께하면 ‘두 겹줄’이라고 해야 맞는데, 왜 ‘세 겹줄’이라고 했는지 궁금합니다. 이것에 대해서 한 주석서는 이것이 “사람과 사람관계 속에 하나님이 함께하셔야 온전한 관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세 겹줄”이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관계 속에 함께 하시면 우리의 관계는 온전한 관계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그 속에 하나님이 주신 기쁨을 있음을 믿고, 힘든 관계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해 주셔서 ‘세 겹줄’의 관계를 맺어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결단과 적용

 내가 피하고 싶은 관계가 있다면, 그 관계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복을 기억해 보고 하나님이 그 관계가운데 함께 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도전해 봅시다. 

오늘의 기도

 주님! 내가 받은 상처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힘들어 할 때 주님 함께 해 주시옵소서. 관계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복이 훨씬 큼을 보게 하시고, 주님이 ‘세 겹줄’이 되어 주심을 믿고 먼저 선을 행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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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함
인문학 나눔

“갈대가 강한 바람에도 부러지지 않은 이유는 바람에 

맞서기보다는 바람에 따라 흔들리고 휘어지는 유연성 때문이다. 

갈대는 속이 비어 있어바람에 흔들리지만 자신을 굽힐 줄아는 

유연함 때문에 부러지지 않는다.”신호종 저(著) 

《이솝우화에서 배우는 33역량》 (넥서스BIZ, 205쪽)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너무 둥글어서 자기가 없는 사람이 있고,너무 모가 나서 

자기만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깊이 있는 사람은 자신과 타자에 집중 할 줄 압니다.  

타자에 대해 최면이나 환각처럼 함몰되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상념에서도 벗어나 타자와 세상에 대한 열린 마음이 있습니다 .

《논어(論語》의 ‘자로’(子路)편 23조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군자화이부동(君子和而不同),소인동이불화(小人同而不和)”

“군자는 어울리되 동화되지 않고, 소인은 쉽게 동화되면서도 화합하지않는다” 라는 뜻입니다.  

자기중심이 있으면서도 이웃과 어울릴 줄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 쉽게 홀리면서도 이웃과는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의와 상념에만 집중한 사람들입니다.

반면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과 중심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이웃을 향해 한없이 열린 마음이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도 그러하였습니다.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되어 

그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였습니다.

기독 메시지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구원하고자 함이니” (고전9:22)

그림 큐티더 보기
갈라디아서3장3절
고린도전서 15:10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Are you so foolish? After beginning with the Spirit, 

are you now trying to attain your goal by human effort?(NIV)

도서 큐티더 보기
이런 사회를 용서하실 수 있으실까

갑질이란 권력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자가 

약자에게 하는 부당한 행위를 말한다. 

개저씨란 성 차별, 성 추행을 저지르고도 

잘못을 인정하거나 반성하기는커녕,

 피해자를 탓하거나, 혹은 가부장적인 가치관을 

강요하는 무개념 중년 남성을 이르는 말이다. 

어려운 영어 단어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있다.

 개발이 늦어진 지역에 상권이 형성되면서  

그곳에서 애써 삶의 터전을 일구었던 소상공인들이 

보상도 못 받고 쫓겨나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이런 단어의 유행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천박하게

 변해가고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징표이다.

하나님이 이런 사회를 용서하실 수 있으실까?

-김기석 목사의 ‘하나님과 맞서지 말라’에서- 

 

 여러 프랜차이즈 업체 CEO들의 갑질 행위가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가족들에게 이권을 몰아주거나,

 값비싼 식재료를 강요함으로 이익을 극대화했다고 합니다.

 이런 갑질이 만연하여

인간에 대한 예의나 연민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젠트리치케이션에서는 말을 잘 듣지 않는 이들을 

폭력적 방식으로 몰아내기도 했습니다. 

돈이 주인 노릇하는 세상의 살풍경한 모습입니다. 

형태는 다르지만 아모스의 시대에도 

이런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회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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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월 11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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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변화, 그 위대한 결단(로마서 12: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본문 해석

사회학자들은 지금 이 시대를 가리켜서 ‘상실의 시대’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잃어버렸을까요? 현대인들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생의 의미를 잊고 산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복을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자아정체성을 확립하고, 존재가치를 알고, 자존감이 높아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원래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 살아가는 탕자 인생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세상적인 것만을 추구하고 살아가던 우리가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이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또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함입니다. 

그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요6:29). 하나님의 일을 우리가 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들인데, 그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중요한 것은‘하나님의 선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에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2). 그렇게 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변화입니다. 이런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변화를 위한 몸부림’이 필요합니다. 변화는 가만히 있는데 일어나느냐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변화되려면 무엇인가 결단하고 도전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변화하려면 하나님의 관계속에서 열심을 내야 됩니다. 기도해야 하고, 예배 열심히 참여해야 하고, 말씀을 가까이하는 개인적인 열정이 회복되어야, 신앙적인 활성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변화를 위한 위대한 결단이 없이는 어떤 변화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으로서 변화를 위해서 먼저 진정한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1). 교회의 본질적인 사역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하는 예배입니다. 몸으로 산제사로 드리라는 것은 내 몸이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분의 영광을 위하여 그 분 중심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아름다운 변화를 위해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2). 내가 무엇을 얻으려면,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고 살아가는 삶에서 단절하고 내려놓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런 것들을 과감하게 결단하고, 내려놓을 때에 새로운 변화의 상황으로 진입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늘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2). 마음이라는 것은 나의 속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말투가 바뀌고 습관 좀 고쳤다고 해서 마음이 새롭게 된 것 아닙니다. 속사람이 바뀌어야 그 사람도 바뀌는 것입니다. 이 세대는 육신에 욕망을 따라 사는 세상입니다. 신앙인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유행을 쫒아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아 갈 때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사는 승리하는 삶이 가능한 것입니다. 

결단과 적용

- 영적 예배자가 되기 위해 나의 예배생활에서 개선점을 생각해 봅시다. 

- 이 세대를 본받지 않기 위해 내려놓아야 할 목록들을 정리해 봅시다.

- 승리하는 삶을 위해 중요한 것은 오늘부터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입니다. 

오늘의 기도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선택하시고 불러주심을 감사합니다. 저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바르게 알게 하시고, 미래를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 세대를 본받지 않도록 지혜를 주시고, 변화를 위한 위대한 결단 앞에 머뭇거리지 않게 하시며, 새 마음을 주시어 범사에 바른 예배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이상한 언론 보도
인문학 나눔

“예수가 죄 없는 자는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 한 것을 

한 언론은 ‘예수,매춘부 옹호 발언 파장’(중략),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 하자언론은 ‘소크라테스,

악법 옹호 파장’으로 보도.  이순신 장군이 ‘내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하자 

언론은 ‘이순신,부하들에게거짓말하도록 지시, 도덕성 논란 일파만파’라고 보도.   

최영 장군이‘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한 것을 언론은

 ‘최영, 돌을 황금으로속여 팔아 거액 챙긴 의혹’이라고 보도.

”이동원 저(著) 《쉽게 풀어 쓴 요한의 복음이야기1》(두란노, 201쪽)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전깃줄에 참새 열 마리가 있었습니다.  

포수가 총알 한방으로 다 사냥하려 했는데 열 번째 참새만 죽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참새가 “앗, 총알이다” 하며 피했습니다.  

두 번째 참새도 “총알”하며 피했습니다.  

그런데 아홉 번째 참새가 “앗, 콩알이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열 번째 참새가 입을 쩍 벌리며 “아~~”하다가죽었습니다.  

중간에서 말을 살짝 비틀면 비극이 일어납니다.‘

서울시 체육회’를 잘못 옮기면‘서울 시체 육회’가 됩니다.

‘부산시 장애인 복지관’은 ‘부산시장 애인 복지관’이 되고,

‘희망 의상실’은 ‘희망의 상실’이 됩니다.바울 사도는 자신을 가리켜 

영혼들을 고귀한 신부로 단장시켜 신랑이신 예수님에게도 

인도하는 중매자라고 하였습니다.  

“중매를 잘하면 혼사절반을 다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선한 중매자가 절실히 필요한 시대입니다.

기독 메시지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11:2상)

그림 큐티더 보기
로마서 12장 2절
고린도전서 15:10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Do not conform any longer to the pattern of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Then you will be able to test and approve what God's will is--his good, 

pleasing and perfect will.(NIV)

도서 큐티더 보기
인간의 존엄을 지키시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종교 행위 중에

아모스는 아비와 아들이 같은 처녀에게 드나들며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것은 향락 문화가 빚어낸 파렴치한 일탈 행위처럼 보이지만

 또 다른 가능성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것은 경제적인 예속 상태에 처한 사람들을

 강자들이 성적으로 착취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 

사람을 수단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이건 정말 악마적이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이런 일이 만연하는 것을  

탄식만 하고 있어도 되는 것인가?

-김기석 목사의 ‘하나님과 맞서지 말라’에서-

 

바알 신전에는 신전 창녀들이 있었고 종교행위는

 늘 성적인 일탈과 결합되곤 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였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이들을

 욕망의 충족을 위한 수단으로 대하는 순간,

 인간의 존엄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영광 또한 가려집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음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시기를 원하십니다.

탄식만 하지 마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