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여호와께 돌아가자(호세아 6장 1-6절) 외 1

鶴山 徐 仁 2020. 2. 5. 14:46
CTS기독교TV
CTS Social Network
새벽종소리 - 365일 하나님과 행복한 삶의 동행!
새벽종소리는 매일 새벽마다 다양한 테마의 큐티를 성도님의 메일함에 매일 새벽 배달하는 서비스입니다. CTS 새벽종소리와 함께 매일 경건의 시간을 가져보세요.
   02월 05일 (수)
말씀 큐티더 보기
성경 본문 여호와께 돌아가자(호세아 6장 1-6절)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4.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5.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본문 해석

최근 ‘MBC PD수첩’에서 다룬 명성교회 이야기 때문에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어쩌다가 한국교회가 이렇게 되었을까...”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탄식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이것은 비단 한 교회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교회에서 말하는 이야기가 우리 많은 교회들의 메시지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지 못해서 부러워하는 것이 우리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바라보며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여호와께로 돌아갑시다.”

 

 오늘 호세아 말씀은 익숙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호와께 돌아가자.”라고 말할 때, 이것을 신앙적인, 영적인 의미로 해석합니다. “예배 빠지지 말아야지.”,“기도해야지.”,“성경 읽어야지.”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것이 “여호와께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모든 예언서에서 “여호와께 돌아가자.”라고 말할 때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고와와 과부를 돌아보라.”,“정의를 지키며 살아라.”,“가난한 자를 억압하는 일에서 돌이켜라.”라는 명령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와서 예배하고 기도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며,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어야 합니다. 예배 가운데 ‘참회기도’가 있는 것은 이렇게 살지 못했음을 하나님 앞에 애통하며, 돌아서는 회개의 길로 가는 것이 우리의 신앙의 목적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나와서 신앙생활하면, 나의 삶의 모든 것들이 면죄부가 얻는 것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적어도 우리는 우리의 죄를 비추시고, 우리의 잘못을 알게 되었을 때,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무릎 꿇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호세아는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실을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키자.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의 모든 것을 싸매주시는 분이시니 용기를 가지고 우리의 행실을 회개하자.”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것을 얻으려고 나아오는 곳이 되면 안 됩니다. 내 힘으로는 안 되지만 사랑하려고 오는 곳이 교회여야 합니다. 내 힘으로 안 되지만, 하나님의 정의를 이 땅 가운데 이루려고 오는 곳이 교회여야 합니다. 

 

 영화 ‘쉔들러리스트’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가운데 사업가였던 ‘오스카쉰들러’가 유대인 천 백 명을 살려서 그들이 고마움의 표시로 반지를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때 ‘오스카쉰들러’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왜 내가 이 차를 팔지 않았을까... 10명은 더 살릴 수 있었는데...”,“왜 내가 이 반지를 팔지 않았을까... 2명은 더 살릴 수 있었는데...”,“내가 하지 않은 겁니다.”라고 통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가 이 땅에 더 사랑하고, 더 하나님의 정의를 나타내는 삶을 살아가는 길에는 끝이 없습니다. 항상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항상 회개하고, 항상 돌이키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그런 삶이 시작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결단과 적용

 오늘 하루 여호와께 돌아가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통회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삶에 보여주시는 사람을 사랑하고 정의를 실천하는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찾고 순종해 봅시다. 

오늘의 기도

 주님! 나는 지금까지 주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예배 참석하고, 기도했으니까 돌아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임을 고백합니다. 오늘 삶의 작은 부분에서 순종하며 그 길을 걷지 않으면 나는 아직 주님께 돌아가지 못한 것임을 깨닫고, 순종하기를 주저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순종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신호와 소음
인문학 나눔

“신호는 진리다.  소음은 우리가 진리에 다가서지 못하게끔

 우리의 정신을 산만하게 한다.”

네이트 실버 저(著) 이경식 역(譯) 《신호와 소음》 (더 퀘스트, 36쪽)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네이트 실버는 통계학과 미래 예측의 슈퍼스타라고 불리워집니다.  

그는메이저리그 야구선수들의 향후 성적을 놀라운 적중률로 예측했으며, 

2008년 미국 대선에 50개 주에서 49개의 주를, 

2012년 미국 대선에서는50개 주 모두의 선거결과를 정확히 예측해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현대를 가리켜 ‘빅데이터의 시대’라고 합니다.  

이론상으로 데이터가더 많으면 예측은 더 나아져야 합니다.  

그러나 이른바 ‘체리 피킹(cherry picking)’이라고 일컬어지는, 

입맛에 맞는 데이터만을 뽑아내는 오류, 혹은 데이터들에 대한 

잘못된 결합과 연결 등을 통해, 잘못된 예측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빅데이터속에서 신호와 소음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소음’은 가짜 신호입니다.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무작위적 패턴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빅 데이터에는 신호보다 소음이 더 많이 존재합니다.  

특히 ‘소음’은‘신호’보다 더 자극적이기 때문에 ‘소음’에 가린 ‘신호’를 찾아내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 

즉 하나님의 신호보다도,사단의 말, 즉 소음을 경청하여 죄가 시작되었습니다.  

경청이 핵심이아닙니다. 무엇을 경청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지금도 세상에는 우리를 혼돈케하고 멸망으로 이끄는 수많은 소음들이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정확한 신호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기독 메시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3:16)

그림 큐티더 보기
갈라디아서 5장 25-26
고린도전서 15:10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Since we live by the Spirit, let us keep in step with the Spirit. 

Let us not become conceited, provoking

and envying each other.(NIV)

도서 큐티더 보기
시험중에 기뻐하라

시험을 당했는데 어떻게 기뻐하란 말인가. 시험은 무너지는 일이다. 

시험 속에서 우리는 무엇인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경험한다. 

자신을 보호하고 있던 성벽이 무너지고, 자신이 기대고 있던 담벼락이 넘어지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경험한다. 

깨어져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여러모로 고통스럽고 황당하고 

경황이 없고 무엇보다 두려운 일이다.

-채영삼의 [지붕없는 교회] 중에서-

 

시험을 당했을 때, 그 시험이 믿음의 시험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기뻐합니다. 

이 시험을 통과하면 하나님 앞에서 소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시험은 우리를 무너뜨리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를 다시 세워가는 궁극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진정으로 내가 깨져야 할 시간이기에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맞이하여 

하나님의 지혜를 경험하고 시험을 통과한 

단단한 영적 거장이 되길 소원합니다.



CTS기독교TV
CTS Social Network
새벽종소리 - 365일 하나님과 행복한 삶의 동행!
새벽종소리는 매일 새벽마다 다양한 테마의 큐티를 성도님의 메일함에 매일 새벽 배달하는 서비스입니다. CTS 새벽종소리와 함께 매일 경건의 시간을 가져보세요.
   02월 04일 (화)
말씀 큐티더 보기
성경 본문 목마르거든(3)(요한4:20-26)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본문 해석

예배의 문제는 모든 민족과 사람들에게 중요한 이슈입니다. 예배하지 않는 민족이나 개인이 없습니다. 다른 신에게 예배하든지 아니면 사람과 자신을 예배하는 어리석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이 신뢰할만한 어떤 것이든지 신을 섬기고 경배하는 것은 보편적인 행위입니다. 사마리아 여인도 생활에 있어서는 비도덕이고 비윤리적이었지만, 조상들로 내려온 전통적인 예배에 대해서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배의 장소보다 대상이 중요합니다. 여인은 자신들은 사마리아에 있는 그리심산에서 예배하고 있는데,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해야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아마 이 여자는 조상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지 직접적으로 왜 예루살렘에서 예배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배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예배의 장소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어디에서 예배해야 하지를 몰라서 방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교회가 좋은지 저 교회가 좋은지를 저울질하면서 교회를 배회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주님은 무엇이라고 대답하셨습니까? 그리심산에도, 예루살렘산에서도 말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때가 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의 대상이 누구인지 알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면서도 누구에게 예배하는지를 모르고 드린다면, 그것은 분명히 미신적인 예배일 것입니다.

예배자는 신령과 진리로 예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바른 예배를 드리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영으로 예배하고, 진리로 예배해야 합니다. 신령으로 예배하라는 것은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경배해야 합니다. 진리로 예배함은 진실된 마음과 태도로서 예배를 드려야 할 것을 말합니다. 이방 종교는 육신적으로 쾌락을 추구하며 제사를 드렸고,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예배를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그러한 잘못된 종교의 의식과는 다르게 예배를 드려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여로보암이 세운 두 금송아지를 예배하는 의식이 그곳에 남아 있을 수 있었습니다. 보이는 것을 예배하는 것은 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들의 편리 주의를 따라서 예배한 것이기에 진리로 한 것이 아닙니다.

참된 예배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드리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시며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하셨으며, 왜 예배해야 하는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무엇인가를 알고 예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방 종교들처럼 맹목적인 것은 금물입니다 여기서 설교가 예배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되는 원인이 있습니다. 설교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고 어두운 마음을 깨우쳐 줍니다. 그래서 설교를 예배 요소 중에 지성소라고 합니다. 설교와 가르침을 통해서 은혜를 받으면 예배를 진정으로 드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우리도 어쩔 수 없이 한 시간 예배하러 나오는 태도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영의 예배, 진리의 예배가 아닐 수 있습니다. 준비된 영혼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경건하고 장엄하게 예배하고, 그리고 자기 유익올 위한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께 바쳐지는 산제사로서의 진질함과 정적함이 곁들여진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 예배를 통하여 인생의 목마름을 채우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배에 승리가 신앙 승리이고, 신앙의 승리자가 인생의 승리자입니다. 

결단과 적용

- 참된 예배가 무엇인지 알고 있으십니까? 혹 대상보다 장소에 치우치지 않았나요?

- 하나님을 영으로 예배하고 진정으로 준비된 예배를 드리지 못함을 회개합시다.

- 목마른 예배자가 되기 위하여 버리고 준비할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리해 보십시다. 

오늘의 기도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저를 구원하시고 예배자로 받아주심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나의 욕심을 따라 예배해 왔습니다. 

이제 참된 예배자를 찾으시는 주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예배의 성공자가 되게 하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훌륭한 사람들과의 대화
인문학 나눔

“우리의 신분에 상관없이 언제라도 우리가 원하는 만큼 

길게 대화를나눠 줄 사람들이 대기합니다.  

최고로 엄선된 언어로 말하며 우리가경청하면 우리에게 감사할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점잖고 그 수가 매우많으며 접견을 허락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만나기 위해서 종일토록주변에서 기다려 줍니다.

존 러스킨, 마르셀 프루스트 저(著) 유정화 이봉지 역(譯) 

《참깨와백합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민음사, 154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예술가이며 사회운동가인 존 러스킨은, 

독서란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있는 지혜롭고도 

훌륭한 사람들과의 대화라고 하였습니다.  

위대한 왕들로부터 정치가, 현인들, 예술가, 

우리와 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 아주머니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대 모든 부류의 사람들과대화하는 것이 독서입니다.  

더군다나 ‘훌륭한 사람’을 간접적으로만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독서입니다.

‘좋은 만남’은 주님이 주신 복중의 복입니다.  

좋은 책을 만나게 하시고, ‘좋은 책’ 속에서 ‘좋은 만남’을 가지게 하시는 것은 

주님이주신 복입니다.  

감옥에서도 독서에 힘썼던 바울 사도는 이렇게 부탁합니다.

기독 메시지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딤후4:13)

령충만했던 바울 사도도 독서를 좋아했습니다.

그림 큐티더 보기
고린도전서 3장 3절
고린도전서 15:10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You are still worldly. For since there is jealousy and quarreling among you, 

are you not worldly? Are you not acting like mere men?(NIV)

도서 큐티더 보기
새로워지는 교회

교회와 기독교에 대한 비그리스도인들의 오해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그 원인은 대부분 교회와 기독교 내부에서 찾을 수 있다. 

그중에 가장 주목할 것이 비그리스도인들의 눈에 비친 그리스도인들의 부당한 삶의 모습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교회와 기독교를 판단한다. 

그것이 결국 아무런 죄도 없는 예수 그리스도까지 연결된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이런 안타까운 일들이 교회 안에서, 

교회를 통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김태현의 [세상에 없던 교회] 중에서-

 

어쩌면 우리는 더 많은 선행을 행해야 인정받는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우리의 삶, 말과 행동이 어떤지를 살펴보는 일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관계 속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하게 핍박으로 생각하기보다 

자신의 삶이 어떻게 비춰지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우리입니다. 

온 누리에 주님을 전해야 하는 것은 내가 머무는 지금, 

여기서 살아내는 삶에서 출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