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유럽 아프리카

북극 비사(秘事) 그린란드 빙하

鶴山 徐 仁 2020. 2. 2. 08:49

한반도 10배 면적에 5만여명만 살고 있는 ‘얼음왕국’의 사연


그린란드 중서부 일루리사트. 경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아이스피오르 빙하의 빙붕면. 빙하는 주름을 만들며 흐르다가 이곳에서 폭포처럼 떨어져 바다로 흘러간다. 최정동 기자

그린란드 중서부 일루리사트. 경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아이스피오르 빙하의 빙붕면. 빙하는 주름을 만들며 흐르다가 이곳에서 폭포처럼 떨어져 바다로 흘러간다. 최정동 기자


 ⑩ 얼음왕국 그린란드

 
백두산 높이보다 더 두꺼운 최대 3000m가 넘는 얼음이 한반도 면적의 10배가 넘는 땅의 80%를 덮고 있고, 그 엄청난 얼음의 무게 때문에 땅의 중심부는 해수면보다 300m 가까이 낮아져 있는, 이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얼음이 지배하는 땅 그린란드. 북반구에서 얼음을 가장 많이 품고 있는 얼음창고 같은 곳이다.
 
2016년 국제회의 참석을 위해 방문했을 당시 그린란드 수도 누크(Nuuk)로 직접 갈 수 있는 국제항공로는 딱 하나가 있었다. 한때 같은 덴마크 왕국 소속이었다가 1918년 독립한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의 도심공항(RKV)이 그곳이었다. 이 도심공항 역시 국내선 전용공항이지만 해외공항으로는 그린란드 누크공항과만 연결되어 있다. 누크공항에는 심지어 덴마크 본국과의 직항노선도 개설되어 있지 않다. 누크공항이 활주로 여건상 제트여객기의 이착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최근 미국과 중국이 그린란드에서 마주 서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린란드의 수도 누크 공항. 여름이 시작된 6월인데도 눈보라가 날린다. 최정동 기자

그린란드의 수도 누크 공항. 여름이 시작된 6월인데도 눈보라가 날린다. 최정동 기자


빙하 얼음으로 끓여 먹은 한국 라면

 
부산에서 출발하여 인천과 핀란드 헬싱키~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를 경유한 비행기가 그린란드 동쪽 해안에 접근하자 얼음이 지배하는 왕국의 낯설고 거대한 하얀색이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 봄을 맞은 5월의 누크는 조금 쌀쌀하고 바다 위에는 드문드문 얼음이 떠다니기는 했지만, 사람들이 반팔 소매 옷을 입고 다닐 정도로 온화한 날씨였다. 물론 겨울이 되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겠지만 말이다.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얼음을 바다에서 건져 만들었던 위스키 온더록과 라면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사실 동행한 언론사 기자가 가져온 얼음의 위생상태에 대해 약간 걱정도 있었지만, 차갑게 보존된 지구 북반구 마지막 청정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린란드에서만 가능한 짜릿한 경험이었다.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얼음 조각으로 라면을 끓이고 위스키온더락을 만들었다. 최준호 기자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얼음 조각으로 라면을 끓이고 위스키온더락을 만들었다. 최준호 기자


고립된 도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

 
지구 북반구 끝에 놓인 희디흰 삭막한 삼각형 모양의 거대한 땅에는 누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이 땅에는 세계 인구의 0.0007%인 5만6000명 정도가 살고 있다. 인구밀도는 불과 1㎢ 당 0.03명에 불과하다. 지구상에서 독립된 영역을 가진 곳 중에서는 가장 인구밀도가 낮다. 비교하자면 서울 강남구 전체 면적의 땅에 단 한 명만이 사는 수준이다. 늘 인파에 익숙해져 있고 식사조차도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 우리의 생활 기준으로는 상상이 안 가는 여유로운 공간이다. 하지만 도시와 도시가 바닷길이나 하늘길로만 연결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생활공간은 고립되어 있고 이러한 환경 때문인지 안타까운 일도 생긴다.  
 
최근 감소하고는 있지만 그린란드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83명에 달한다. OECD 국가 중에서 10년 넘게 자살률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비교해도 3배가 넘는 숫자이다. 인구가 많지 않은 그린란드로서는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로 받아들여진다.
 
현지 원주민어로 ‘곶’이라는 의미를 가진 그린란드의 수도 누크의 또 다른 이름은 고트홉(Godthab), 덴마크어로 희망이라는 뜻이다. 300년 전인 1721년 5월 한스에이일이라는 노르웨이 출신의 덴마크 선교사가 노르웨이의 베르겐을 떠나 두 달 후 도착할 그린란드로 향하면서 가슴 속에 품었던 단어가‘희망’이 아닐까 한다. 그의 바람이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동상이 세워진 바닷가 언덕에 오르니 300년 만에 완전히 현대화된 모습의 지구 최북단의 수도 도시 누크를 만날 수 있었다.
노르웨이 출신의 덴마크 선교사 한스에이일의 동상이 서있는 누크 바닷가 언덕. 최정동 기자

노르웨이 출신의 덴마크 선교사 한스에이일의 동상이 서있는 누크 바닷가 언덕. 최정동 기자


기후변화가 이어준 동서양의 극적인 만남 

 
그린란드의 역사는 기후변화와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 빙하기에 아시아와 북아메리카가 육지로 연결되었을 때 건너온 대담한 아시아인들은 마침내 기원전 2500년경, 북미대륙의 동쪽 끝 그린란드에 도달한다. 8세기 초부터 약 300년간 무인도의 시기를 보내기도 했지만, 10세기 말 기온이 따뜻해지면서 북유럽의 용맹한 바이킹이 바다 건너 서쪽으로 진출했고, 말 그대로 인류가 중앙아시아에서 갈라져 각각 동서를 향해 떠난 지 수십만 년 만에 지구의 반대쪽 얼음의 땅에서 마침내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15세기 중반, 다시 소빙하기가 도래하면서 바이킹들은 떠났고 동서의 만남은 끝이 난 듯했지만, 1721년 한스에이일에 의해 다시 유럽과 이어졌고, 불행히도 1814년 덴마크의 식민지가 되면서 북아메리카의 다른 인디언들과 마찬가지로 서양 문화권으로 종속되고야 말았다.
그린란드 수도 누크에서 볼 수 있는 현지 주민들. 유럽 백인의 모습에서부터 아시아인에 가까운 얼굴까지 마치 다인종 국가처럼 보인다. 최정동 기자

그린란드 수도 누크에서 볼 수 있는 현지 주민들. 유럽 백인의 모습에서부터 아시아인에 가까운 얼굴까지 마치 다인종 국가처럼 보인다. 최정동 기자

 

그린란드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속내

 
21세기에 들어서 이번에는 인간에 의해 기후가 다시 요동치자, 그린란드의 운명에 대한 논의가 또다시 확대되는 것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 환경적으로 그린란드 빙상이 급속히 녹으면서 북대서양의 해양환경을 크게 변화시키고, 지구적인 수준의 해수면 상승 우려가 퍼지고 있다. 정치적으로 그린란드는 독립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1953년 식민지 상태를 벗어나 덴마크왕국으로 편입되었나 1979년부터 자치권을 확대해 왔고 2009년에는 국방과 외교권을 제외한 자치권을 확보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중국이 북극 진출을 위해 그린란드의 자원과 누크 등 공항개발에 대한 전략적인 시각을 드러내자 미국은 그린란드 매입이라는 놀라운 제안을 했다. 지난해 말에는 66년 만에 수도 누크에 미국 영사관을 재설치하는 것이 확정되기도 했다. 이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견제와 본격적인 북극전략 대전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물론 그린란드와 덴마크는 미국의 매입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지만, 한스에이일이 도착한 지 꼭 30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이곳에 차갑게 숨겨져 있던 어마어마한 정치ㆍ경제ㆍ환경적인 잠재력이 또 다시 기후변화로 인해 부각되면서 이제 그린란드는 북극이라는 공간을 넘어 세계적으로 가장 뜨거운 지역이 되고있다.
한국에서 접하기 어려운 그린란드 음식. 얼린 광어회를 간장과 함께 외국 방문객들에게 내놓았다. 최정동 기자

한국에서 접하기 어려운 그린란드 음식. 얼린 광어회를 간장과 함께 외국 방문객들에게 내놓았다. 최정동 기자


바다가 지배하는 그린란드의 경제

 
육지가 대부분 얼음으로 덮여 있다 보니 그린란드의 경제는 현재 바다가 지배한다. 총 수출액의 90%는 수산물이다. 그린란드에서 잡힌 수산물은 유럽은 물론 일본과 중국에서 고급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그린란드 할리벗(넙치)의 크기는 우리의 상상을 가볍게 넘어선다. 그린란드 해역에서 서식하는 그린란드 상어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사는 척추동물로 알려져 있다. 400년을 살 수 있다고 추정되며, 150살이 넘어야 번식을 할 수 있는 성숙도를 가진다고 한다. 그린란드 주변해역은 17세기와 18세기 고래를 잡는 사냥터였다.
 
우리나라와 그린란드는 아직은 협력분야가 많지 않지만 과학분야와 자원개발을 위한 연구협력이 조금씩 확대되고 있다. 2016년 방문 당시 그린란드 외무부 장관을 맡고 있던 비투스 장관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첨단기술과 해양수산부문의 역량은 그린란드의 미래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태권도와 김치를 너무 좋아하는 친한파라고 여러 번 강조를 했다. 그리고 어른을 공경하는 이누이트의 문화가 한국과 너무나 유사한 점에 놀랐다고 한다.

 
그린란드 수도 누크의 해변에 늘어선 주택들. [중앙포토]

그린란드 수도 누크의 해변에 늘어선 주택들. [중앙포토]


그린란드에 정착한 한국 여인

 
놀랍게도 수천 년 전 이누이트(사람들이라는 뜻)들과 마찬가지로 북미대륙의 동쪽 끝 이곳 그린란드로 달려온 한국인이 있다. 10년 전 이곳을 여행하면서 마음을 빼앗겨 5년 전부터 유학생활과 함께 누크에 살고 있는 유일한 한국인 김인숙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외국인 최초로 그린란드 대학교에 입학하여 석사과정을 밟았고, 2년 전 그린란드인과 결혼하여 정착하였다. 지난해 9월엔 『그린란드에 살고 있습니다』라는 책을 통해 얼음이 지배하는 세상과 그녀가 겪는 일상생활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K팝은 누크에서 ‘한국스타일 커트’라는 헤어스타일을 만들어냈고, 한국 화장품에 대한 관심도 크게 높였다고 그녀는 전한다. 문화의 힘이다. 아직은 미약한 우리와 그린란드의 인연이 과학과 바다. 그리고 문화와 그린란드 유일의 한국인을 통해 더욱 깊어지고 아름다워지길 바란다.
 
⑪회에서 계속

배너_김종덕의 북극비사



[출처: 중앙일보] 한반도 10배 면적에 5만여명만 살고 있는 ‘얼음왕국’의 사연



지구 온난화의 현장, 하루 40m 녹아 흐르는 그린란드 빙하


그린란드 일루리삿 빙산. 북극권인 그린란드 일루리삿 앞바다에 설산같은 빙산이 떠 있다. 그러나 물 위에 드러난 것은 일각일 뿐 바다 속에 태산과 같은 몸을 감추고 있다. 날개를 활짝 펴고 비행하는 바다갈매기가 작은 점(사진 오른쪽 아래)처럼 보인다. 최정동 기자

그린란드 일루리삿 빙산. 북극권인 그린란드 일루리삿 앞바다에 설산같은 빙산이 떠 있다. 그러나 물 위에 드러난 것은 일각일 뿐 바다 속에 태산과 같은 몸을 감추고 있다. 날개를 활짝 펴고 비행하는 바다갈매기가 작은 점(사진 오른쪽 아래)처럼 보인다. 최정동 기자


⑪ '빙산'이란 이름을 가진 곳 그린란드 일루리삿

 
자연의 힘이 얼음과 눈으로만 빚어낸 조각작품, 빙산(氷山)과 직접 맞닥뜨리는 경험은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빙산은 말 그대로 ‘산’(山)이다. 특히 해수면 위로 100여m가 넘게 솟아오른 푸른 빛도는 하얀 빙산아래 서보면, 그 거대함에 압도되어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물론 해수면 밑에는 그 크기의 9배가 감춰져 있다. 빙산은 그런 태고적 자연풍경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하지만 풍경만으로 빙산의 가치를 다 설명할수 없다. 빙산은 바다새, 바다표범이나 북극곰 같은 북극동물의 휴식처나 사냥터가 되기도 하고, 다른 해역에 비해 영양분이 부족한 극지의 바다로 육지의 영양분을 옮겨다 주는 중요한 전달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푸르고 깨끗한 보기 좋은 빙산보다는 흙이나 자갈을 포함해서 좀 지저분해 보이는 빙산이 사실 생태계에는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 90%가 물속에 잠겨 있는 빙산은 때때로 바다를 항행하는 인간에게는 큰 위협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일각’(一角)만으로 빙산을 평가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빙상(氷床)이나 빙하(氷河)에서 빙산이 분리되는 속도와 빈도, 그리고 크기는 지구 온난화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지표로도 이용된다. 북위 69도, 그린란드 캉기아 피요르드는 만년설에서 흘러내린 빙하가 빙산으로 떨어져 나가는 곳이다. 150년 넘게 이어져온 지구의 기후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곳이기도 하다. 이 곳의 빙하가 1850년 이후 약 100년간 후퇴한 거리와 최근 20년간 후퇴한 거리를 비교해 보면 급속히 진행되는 온난화의 실태를 알수 있다. 이 빙하는 2004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캉기아 피요르드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인구 5000명 남짓의 그린란드 제3의 도시 일루리삿은 그래서인지 그린란드어로 ‘빙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린란드는 면적으로 한반도의 10배가 넘지만, 전체 인구는 5만6000명에 불과하다. 수도인 누크는 그린란드 내 가장 큰 도시임에도 인구가 1만7000명 정도다.)
 
그린란드 일루리삿 빙산.

그린란드 일루리삿 빙산.

타이타닉호 침몰시킨 빙산이 탄생한 계곡
 
일루리삿의 빙산들은 만년빙 ‘승믁꾸얄륵’(Sermeq Kujalleq)에서 떨어져 나와 40여㎞를 흘러 일루리삿에 도착한다. 하루이동거리가 무려(?) 40m에 이르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격렬한 빙하로도 알려져 있다. 이동이 빠르다 보니 만년빙에서 분리된 거대한 빙산이 그 크기를 유지하고 피요르드 입구까지 도달하는 경우도 많다. 필자가 방문했던 4년 전에도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유빙들이 피요르드를 벗어나 북대서양으로 향하고 있었다. 1912년, 절대 침몰하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하던 타이타닉호의 첫 항해를 마지막 항해로 만든 유빙도 이 곳 일루리삿에서 태어나 북대서양으로 흘러간 빙산이라고 알려져 있다. 타이타닉호의 침몰로 충격을 받은 국제사회는 이후 ‘국제유빙감시대’(International Ice Patrol)를 설치해 지금까지 100년 넘게 운영하고 있다. 
 
2008년 5월, 북극해를 끼고 있는 미국ㆍ러시아ㆍ덴마크(사실은 그린란드, 덴마크령이지만 고도의 자치권을 가지고 있다)ㆍ캐나다ㆍ노르웨이 등 5개 연안국의 외교장관들은 이곳 일루리삿에서 만나, 북극에서는 유엔해양법 이외에 남극과 같은 새로운 규범이 필요 없음을 선언하고, 사상 처음으로 5개 연안국이 주도하는 북극해 관리를 선언한 바 있다. 이 선언은 2007년 여름, 북극의 해빙(海氷)이 사상 최저수준으로 줄어들면서 세계적인 관심이 북극으로 모아지자, 북극 연안국들은 자신들이 그 논의의 중심에 서야한다는 것을 천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일루리삿 바닷가에서 뜰채로 물고기를 잡고있는 어린 친구들을 만났다. 평평한 갯바위쪽으로 산란기를 맞은 꽁치같이 생긴 ‘암마쌋’(Ammassaat)이라는 이름의 물고기가 떼로 몰려들고 있었다. '물반 고기반'이 아니라 '물 하나 고기 아홉'은 돼 보였다. 최준호 기자

일루리삿 바닷가에서 뜰채로 물고기를 잡고있는 어린 친구들을 만났다. 평평한 갯바위쪽으로 산란기를 맞은 꽁치같이 생긴 ‘암마쌋’(Ammassaat)이라는 이름의 물고기가 떼로 몰려들고 있었다. '물반 고기반'이 아니라 '물 하나 고기 아홉'은 돼 보였다. 최준호 기자


기후변화가 가져온 변화, 그들의 선택

 
그로부터 꼭 10년이 지난 2018년 10월, 5개 연안국과 5개 비연안국 정부의 대표들이 다시 일루리삿에 모였다. 이번에는 과학적 근거가 마련될 때까지 북극해의 약 20%를 차지하는 공해(公海)에서의 상업적 수산업활동을 16년간 유보하는 예방적 조치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 합의에서 눈여겨 볼 점은 사상 처음으로 북극관련 협정에 비북극권 국가들이 직접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5개 연안국에 더해 EUㆍ아이슬란드ㆍ중국ㆍ일본 그리고 한국이 서명국에 포함됐다. EU에는 핀란드ㆍ스웨덴과 같은 북극권 국가가 이미 가입되어 있고, 아이슬란드도 북극국가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비북극국가로 서명국에 포함된 나라는 중국ㆍ일본ㆍ한국, 3개국이었다. 이 협정은 우리나라가 북극해에 대한 과학정보를 확보하고 지속가능한 북극해 이용을 위한 논의에 보다 깊숙히 관여하는 토대를 제공할 것이다. 10년 전에는 생각치도 못했던 아시아 국가들이 북극문제의 핵심 이해관계자가 된 것이다.
 
 
곳곳에 빙산과 얼음덩이들이 떠 있는 일루리삿 바닷가에서 물고기를 잡고있는 어린 친구들을 만났다. 그 친구들은 놀랍게도 뜰채로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아무리 물고기가 많기로서니 뜰채어법이라니! 그런데 잡는 양이 장난이 아니다. 그 조그만 두 손으로 한번 물을 휘휘저어 뜨면 3-4kg 정도는 간단히 잡는다. 도전을 해봤는데 어린 친구들이 잡는 양의 10%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여름철에 산란을 위해서 오는 꽁치같이 생긴 ‘암마쌋’(Ammassaat)이라는 이름의 물고기가 해변으로 몰려든다. 현지인들은 이를 잡아 썰매개들의 사료로 주로 쓰는데, 밀가루를 입힌 뒤 기름에 튀겨 먹기도 한단다.  

 
 
그린란드 일루리삿의 어항. 밤이 없는 여름철 백야에는 어부들도 거의 잠을 자지 않았다. 하루에 두 번 출어를 했다. 넙치(광어) 등 찬 바다에 사는 어족 자원이 아주 풍부했다. 최준호 기자

그린란드 일루리삿의 어항. 밤이 없는 여름철 백야에는 어부들도 거의 잠을 자지 않았다. 하루에 두 번 출어를 했다. 넙치(광어) 등 찬 바다에 사는 어족 자원이 아주 풍부했다. 최준호 기자

그린란드 수산물 생산 절반을 감당
 

일루리삿은 그린란드 수산물 생산량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어항이다. 항구에 나가면 이곳의 특산물인 헐리벗(넙치)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어부들은 넙치 생산량은 많이 늘었지만, 그 크기가 예전에 비해 좀 작아졌다고 말한다. 대신 과거에는 보기 힘들었던 북극대구가 많이 잡힌다고 한다. 차디차가운 이곳 바다속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항구에는 국영수산기업인 로얄그린란드와 어민들의 회사인 헐리벗그린란드 건물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그동안 독점적 지위를 가졌던 로얄그린란드는 수산물 가격을 결정해 왔는데, 몇해전 44명의 어민이 공동설립한 민간기업 헐리벗그린란드가 출현하면서 수산물 가격이 크게 변했다고 한다. ㎏당 9크로네(약 1600원)에 불과했던 넙치가격이 35크로네까지 올라 어민소득이 크게 나아졌고, 어민들의 수산물판매도 더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국영기업이 독점하던 체제에서 경쟁체제로 전환되면서 그 이익이 어민들에게 돌아가게 된 것이다. 이곳 원주민들도 이제 조직화된 경제활동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온난화가 바꿔놓은 북극의 생태. 그린란드 중부 일리마나크 원주민 마을의 썰매개들. 온난화로 썰매를 끌 일이 줄면서 그린란드의 썰매개는 5년 사이 3분의 1로 줄었다. 최정동 기자

온난화가 바꿔놓은 북극의 생태. 그린란드 중부 일리마나크 원주민 마을의 썰매개들. 온난화로 썰매를 끌 일이 줄면서 그린란드의 썰매개는 5년 사이 3분의 1로 줄었다. 최정동 기자

 


썰매개의 본산, 일루리삿

 

일루리삿의 거리를 다니다 보면 무섭게 생기고 덩치가 늑대만한 썰매개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그 숫자는 거의 인구수와 비슷하다. 일루리삿이 ‘썰매개의 수도’라 불리는 이유이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개들의 하울링 소리도 거의 늑대와 다름없다. 이 개들은 원주민인 이누잇들과 4000년 동안이나 눈과 얼음으로 덮히는 겨울철을 중심으로 사냥이나 고기잡이를 위한 이동수단으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었지만, 최근 스노우모빌에게 그 자리를 내주고 있다. 이제는 관광객들의 개썰매 체험에 더 많이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그린란드 개들은 특유의 용맹함과 복종심, 그리그 끈질긴 성격 덕분에 로버트 피어리의 북극점 정복, 로알드 아문센의 남극점 정복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지구정복자의 후손이다. 안타깝게도 기후가 변하여 이 곳의 여름이 길어지면서 썰매개가 쇠줄에 묶여있는 시간도 그만큼 길어졌다.
 
 
관광은 이곳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산업이다. 거주인구의 약 20배에 이르는 9만명의 관광객이 매년 일루리삿을 찾아온다고 한다. 인터뷰를 위해 배로 2시간 정도 가야하는 원주민 마을로 필자를 데려다 준 카알 선장도 고기잡이보다 관광사업에 더 많은 시간을 쓴다고 했다. 자신의 아들이 같은 일을 하는 것을 여느 아버지처럼 자랑스러워 하고, 앞으로 좀 더 좋은 세월이 올 거라는 희망을 이야기 한다.  
       
한국에서 접하기 어려운 그린란드 음식들. 고래고기 수프. 최정동 기자

한국에서 접하기 어려운 그린란드 음식들. 고래고기 수프. 최정동 기자


의외인 것은 기후변화의 상징이라고 할수 있는 일루리삿 원주민들의 기후변화에 대한 생각이 외부와는 약간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도 기후변화를 크게 걱정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자신들이 수 천년동안 이 극한의 땅에서 다양한 변화에 적응하면서 살아남은 강하고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마을 박물관 앞마당에 백야기간동안 당근을 길러내는 소박한 유리온실이 이네들의 적응의지를 살짝 보여준다. 그리고 멀리서 온 손님들을 위해 아껴둔 고래고기로 따뜻한 국밥을 끊여준 예니와 제니 부부의 너그러운 웃음이 자연에 의지하고 적응하면서 살아온 낙천적인 그들의 역사를 설명한다. 그들의 적응의지와 웃음이 결코 멈추지 않기를 진심으로 . 그들의 적응의지와 웃음이 결코 멈추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⑫회에서 계속  


[출처: 중앙일보] 지구 온난화의 현장, 하루 40m 녹아 흐르는 그린란드 빙하



중앙일보

"일주일에 한명 이상 극단선택"..'북극 후예' 이누이트의 눈물

최준호 입력 2020.02.15. 12:00 수정 2020.02.15. 15:52

               
버려진 섬 코르노크의 정상에는 이 땅에서 태어나 살다간 사람들의 무덤들이 있었다. 최준호 기자



⑫이누이트의 눈물

'쿵 쿵 쿵' 바다 위에 떠 있는 얼음들이 조그만 배의 선체와 무심히 부딪힌다. 커다란 얼음은 피하면서 구불구불 이어진 검푸른 피요르드를 따라 한 시간여 물살을 갈랐다. 갑자기 큰 호수로 들어선 듯 협만이 넓어졌다. 만년설을 덮어쓴 뾰족산과 그 산에서 떨어지는 폭포를 지나니 한폭 그림같은 섬마을이 나타났다. 조그만 십자가를 올린 교회, 학교, 그린란드 특유의 빨강ㆍ노랑ㆍ파랑 색색깔을 한 주택들…. 일행을 데리고 온 배의 엔진이 꺼지고 나니 섬마을에 완벽한 정적이 흘렀다. 마을 회관에 걸려있는 깃발만이 미풍에 조금 흔들릴 뿐, 새조차 한 마리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적막한 방음부스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다. 극지방이라 나무가 없는 때문일까. 공기는 청정 그 자체이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무색무취. 해발 20m 남짓한 마을 정상에 올라서니 흰색 십자가 5개가 삐뚤빼뚤 외롭게 꽂혀있다. 이곳에 태어나 살다 간 이들의 마지막 흔적이다.

창문 너머로 이런 풍경이 펼쳐진 곳이 또 있을까. 창문 한가운데 붙은 파리 끈끈이가 상상속 그림이 아니라 현실의 공간임을 증명해준다. 그린란드의 버려진 원주민 섬마을 코르노크. 최준호 기자



잃어버린 고향을 그리며

그린란드 수도 누크 인근의 외딴 섬마을 코르노크 모습이다. 수년전 5월, 필자 일행이 코르노크를 찾았을 때 그 마을에서 단 한 사람의 여인을 만날 수 있었다. 예순 남짓 돼보이는 그녀는 이곳이 태어난 고향이지만, 사는 곳은 아니라고 했다. 얼음이 녹아 배를 탈 수 있는 여름이 오면 휴양차 한두달 코르노크에 돌아와 머무르다 돌아간다고 했다. 그녀의 오두막엔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어, 전기가 들어오고 온기가 돌았다. 주방 창 너머로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눈덮힌 봉우리 셋, 계곡과 폭포ㆍ전나무숲으로 꾸며진 전형적인 ‘이발소 그림’이 이런 지구촌 숨은 절경을 모델로 하고 있음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처럼 마을사람들은 섬을 뒤로 한채 모두 도시로 떠났다. 그린란드 기록에 따르면, 코르노크에 사람이 산 것은 무려 기원전 2200년 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도 마을 곳곳에 원주민 이누이트들이 사용했던 도구와 주거지 등 고고학적 흔적이 남아있다고 한다. 그들은 개썰매를 타고 북극곰을 사냥하고, 해빙(海氷)이 녹는 여름철엔 카약을 타고 물고기와 물개ㆍ바다표범ㆍ일각고래를 사냥해 살았다. 코르노크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마을을 떠난 건 1972년. 이제는 그 시절 마을 소년ㆍ소녀들이 반백의 머리를 하고 여름철 휴양지 삼아 이곳을 찾을 뿐이다.

그린란드 수도 누크의 도심 한가운데 주거용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외벽에는 그린란드 원주민 이누이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최정동 기자



원주민의 이촌향도, 변화하는 삶과 강요되는 적응

이누이트들은 왜 이런 그림같은 마을과 삶을 버리고 도시로 갔을까. 그들은 가족 단위로 수렵생활을 하면서 수천년을 살아왔다. 때문에 그들을 통치할 국가나 기구가 존재할 수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중심 도시 같은 집단 거주지도 없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부터 서구문명의 본격적인 침범과 함께 전통적 삶을 포기하는 이누이트가 생겼다. 시장경제와 임금노동을 바탕으로 하는 도시가 생겼고, 현대적 삶을 추구하는 이들이 늘었다. 국가와 정부라는 지배체제가 생기고, 이런 국가조직이 국민을 대상으로 세금을 걷고, 미성년을 교육하고, 지원했다. 정치를 하기 위해서라도 가족이나 부족 단위의 거주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도시 형태의 삶이 유리했던 측면도 있다. 그린란드를 관할하는 덴마크 정부가 외딴 곳에 점점이 흩어져 살아오던 원주민들을 도시로 불러모았다는 말도 들었다. 실제로 누크 다운타운 한가운데엔 1950~60년대 건설된 복도식 아파트가 길게 늘어서 있다. 당시 덴마크 정부가 펼쳤던 도시화ㆍ현대화 정책의 산물이다. 지금은 사라져 공터로 변했지만, ‘블록 P’라는 이름의 가로 길이가 200m에 이르는 거대한 아파트도 있었다고 한다. 그 아파트엔 그린란드 인구의 1%가 살았단다. 그렇게 한반도의 10배가 넘는 광활한 땅에 살아오던 5만~6만명의 이누이트들은 누크와 일루리삿ㆍ까코톡 등 몇몇 도시로 몰려들었다. 그 결과 코르노크와 같이 소멸된 마을들이 생겨났다. 그린란드판 이촌향도(離村向都)가 일어난 것이다.

그린란드 수도 누크의 전통박물관. 이땅에 5000여년 살아온 원주민 이누이트의 삶이 묘사돼 있다. 최정동 기자

하지만 전통적 삶을 누리던 고향 마을을 떠난 이누이트들이 도시에 모여살 때는 부작용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수렵을 생계 삼던 이누이트들이 갑자기 도시로 나와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결과가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그린란드는 인구 10만명 당 자살률이 82.8명으로 세계 첫번째 위에 있다. 취재 중 만난 누크 시장 아시나루프는 “그린란드 전체 인구 5만6000명 중 일주일에 한 명이상 자살자가 나온다”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개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우리나라(2018년 기준 26.6명)가 비교가 안될 정도다. 주 원인은 바로 갑작스런 삶의 변화일 것이다. 전통사회 붕괴에 따른 두려움과 우울증, 상태적 박탈감, 알코올 의존증, 백야로 인한 불면증 등이 자살 원인으로 꼽힌다고 한다. 그린란드 정부는 주민들의 과도한 주류구입을 막기 위해 슈퍼마켓에서 술을 살 수 있는 시간을 제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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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그리움과 눈물

2010년 개봉한 ‘북극의 후예 이누크’는 이런 그린란드 원주민들의 고뇌를 담은 영화다. 정통 이누이트의 후예인 16살 이누크는 어린 시절 사고로 북극곰 사냥꾼인 아버지를 잃고 엄마와 함께 도시에서 생활한다. 하지만 엄마는 알코올 중독자. 늘 술에 취해있는 엄마의 모습을 견딜 수 없었던 사춘기 소년 이누크는 결국 집을 나온다. 사회복지시설에 정착한 소년은 그곳 또래 아이들과 전통 이누이트 사냥꾼의 원정에 참여하게 된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이누크는 이 사냥여행을 통해 자신의 몸 속에 사냥꾼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린란드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 유네스코에 등록된 세계자연유산 ‘일루리삿 빙하’와 그림보다 더 그림같은 옛 원주민의 마을 코르노크는 누구든 인생 ‘버킷 리스트’에 올려놓고 싶을 정도로 뛰어나다. 또 비록 얼음에 묻혀있지만 어마어마한 자원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아름다움과 잠재력의 뒷면에는 수천년 이어온 전통의 삶을 갑자기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이누이트의 눈물’도 있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을 이해해야만 그들의 진정한 친구가 될 터이다. 그린란드를 떠나던 날, 활기찬 누크와 아름다운 일루리삿, 그리고 사라진 옛마을 코로노크에서 그들의 험란했던 현대사의 기억을 엿본다.

⑬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