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태양광 비판 시사프로, 靑의 사과방송 요구는 과잉
방송법은 법에 의하지 않은 프로그램 규제나 간섭 금지
靑, 비공식적 시정 요구 노출되자 피해자 코스프레 하는 것 아닌가
KBS가 6월 18일 밤에 내보낸 [시사기획 창]의 '태양광 복마전' 프로그램을 둘러싼 논란이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방송 3일 후인 21일,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청와대 브리핑을 통해 동 프로그램이 사실 확인 없이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고 비난하고 KBS 측에 사과 방송을 요구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도 했다. "(KBS에) 즉각 시정 조치를 요구했지만 사흘이 지났는데 아무 답변이 없었다."
심상치 않아 찾아본 프로그램의 내용은 기대 이상이었다. 들판과 산을 깎아 설치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태양광 패널들을 드론으로 내려다본 장면은 충격을 넘어 섬뜩했다. 프로그램은 현 정부의 선거 캠프에서 농어민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았던 최규성 전 농어촌공사 사장의 의심스러운 태양광 업체를 파고들었다. 제주도 서부지역에 태양광 발전소를 짓겠다고 43만㎡에 달하는 목장을 사들이고 100여명이 넘는 투자자를 모집했다. 취재진은 동 업체의 우편함에 국민정치연구소 민주연대라는 표지가 붙어 있고, 그 사무실은 노영민 현 대통령 비서실장이 쓰던 사무실임을 밝혔다. 대통령이 좋아했다는 전언에 저수지 수면 면적 10%였던 패널 설치 비율 제한이 풀렸다는 최 전 사장의 증언도 확보했다. 국민적 관심사인 태양광 발전 사업의 난맥상을 제대로 다룬 프로그램이었다.
이에 대한 청와대 측의 대응은 너무도 서툴러 딱한 느낌이 들 정도다. 우선 KBS에 대한 사과 방송 요구다. 2012년 헌법재판소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사과 방송 명령이 위헌임을 판결했다(전원재판부 2009헌가27, 2012.8.23.). 이러한 지적에 윤 수석은 방송통신위원회라는 행정기관이 행정 행위로서 사과 방송을 '명령'하는 것이 위헌이지, 방송사에 사과 방송을 '요청'하는 행위 자체가 위헌은 아니라는 취지의 반박을 제기했다. 하지만 보도의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통상의 정정 보도를 넘어 사과 방송을 요구하고, 그것도 방통위보다 더 큰 권력인 청와대의 국정홍보책임자가 강도 높게 요청했다면 행정기구의 명령과 과연 얼마나 다른 것인지 의문이 남는다.
국민소통수석은 또한 KBS가 당사자인 청와대에 사실 확인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취재기자가 사실 확인을 위한 정상적 취재 절차(춘추관장에게 한 차례 전화 시도, 2회 문자, 대변인에게 2회 문자)를 거쳤지만 청와대 측으로부터 어떤 응답도 받지 못했음이 밝혀졌다. 사실 확인을 하지 않은 것은 취재 기자가 아니라 국민소통수석이었던 셈이다. 윤 수석은 이에 대해 대통령 대변인은 해외 순방 중인 대통령을 수행해야 했고, 청와대 춘추관장은 연락을 받은 바 없다며, 공문으로 질문이 온 것도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숙제를 안 해온 초등학생의 변명도 이보다는 나을 것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KBS에) 즉각 시정 조치를 요구했지만 답변이 없었다'고 밝힌 대목이다. 방송법 제4조(방송 편성의 자유와 독립)는 법에 의하지 않은 방송 편성에 관한 규제나 간섭을 금한다. 문제가 있으면 언론중재위 등을 통해 공식적으로 대응해야지, 은밀하게 프로그램 시정 조치 등을 압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KBS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시정 요청을 한 것인지를 밝히라는 요청에 윤 수석은 '아차' 싶었는지 KBS가 가해자고 청와대가 피해자라고 한 걸음 물러섰다. 전형적인 피해자 코스프레다. 6월 26일 이사회에 출석한 KBS 사장은 청와대 보도 외압을 묻는 질의에 "청와대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거짓말일지언정 그게 답일 것이다.
종합적으로, 국정 운영의 방향을 잘 설명해서 언론의 협조를 이끌어내야 할 청와대 국정홍보의 책임자들이 태양광 정책이란 중대한 국정 현안, 그것도 대통령 및 대통령 비서실장이 관련된 보도에 대한 적극적 해명 기회를 무책임하게 흘려보냈다. 자신들의 능력 내에서 할 말이 없었다는 게 사실이었을 수도 있다. 궤변과 거짓말을 늘어놓은 사후약방문식 브리핑은 안 하니만
못했다. KBS 집행부 역시 논란이 생긴 후 문제를 유야무야하려는 입장을 보였다. 6월 22일로 예정되었던 해당 프로그램 재방송을 결방시켰고, 기자들의 항의성명을 "로 키(Low Key)로 가자" "2~3일만 지나면 잠잠해진다"며 막았다. 태양광 정책(좀 더 근본적으로 탈원전 정책), 국정 소통, 그리고 공영방송의 미래가 달린 의미심장한 논란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