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G20 정상회의 참석차 독일을 방문하면서 김정숙 영부인이 첫 공식 일정으로 김일성 추종자인 작곡가 윤이상의 묘지를 찾았다. 김정숙 여사는 7월5일(현지 시각) 베를린 교외의 가토우 공원묘지를 찾아 윤이상의 고향인 통영에서 대통령 전용기로 공수해온 동백나무를 한 그루 심었다. 김 여사는 “윤 선생이 살아생전 일본에서 타신 배로 통영 앞바다까지만 와서 보고 정작 고향땅을 못 밟으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도 많이 울었다. 그래서 통영에서 동백나무를 가져왔다. 선생의 마음도 풀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같은 해 9월17일 문재인 대통령은 작곡가 고(故) 윤이상 출생 100돌을 맞아 페이스북에 추모글을 남겼다. 문 대통령은 “많은 사람의 존경 속에 악보 위의 線을 자유롭게 넘나들던 그였지만 한반도를 가른 분단의 선만큼은 끝내 넘지 못했다. 지금 윤이상은 베를린에 잠들어 있습니다. 윤이상이 사랑했던 이 땅, 이 바다, 이 하늘의 소리를 그의 음악에서 발견하고 즐길 날을 기대해본다”고 밝혔다.
그리고 2018년 2월25일, 경남 통영시는 많은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윤이상 작곡가의 유해를 베를린에서 이장해 통영시 정량동 추모공원 봉안당에 임시 안치했다. 유해는 통영국제음악제 개막일(3월30일)에 맞춰 통영국제음악당 내 묘소에 안치된다. 지난해 7월 대통령 부인이 가져다 심은 통영 동백나무도 추후에 따로 들여올 예정이다.
윤이상은 ‘동양의 정신을 서양의 악기로 표현했다’는 평을 받으며 20세기 5대 작곡가로 꼽혔지만, 정치적으로는 일관된 親北활동을 벌여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됐었다. 동백림 사건은 당시 유럽에 유학했던 유학생 등을 중심으로 동백림(동베를린) 주재 북한대사관과 북한을 왕래하며 벌어진 공안사건이다. 윤이상은 이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10년형 판결을 받아 복역하다 1969년 석방돼 독일로 돌아갔고 1971년 독일로 귀화했다. 이후 고국땅을 밟지 못하고 베를린에서 1995년 숨을 거뒀다.
윤이상은 또 현재 서울에 거주 중인 오길남 박사와 吳 박사 가족인 경남 통영 출신 신숙자 씨와 두 딸 오혜원·규원 씨 3모녀의 入北(입북)을 사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吳 박사 가족은 윤이상의 권유로 1985년 독일을 떠나 北으로 갔다가 이듬해 吳 박사만 홀로 탈출해 1992년 귀국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오길남 간첩 사건’ 수사 발표를 통하여 吳 씨의 주장이 사실임을 확인한 뒤 윤이상이 “북한의 조종을 받아 활동하는 북한의 문화공작원”이라고 밝혔었다. 북한정권은 윤이상을 ‘애국자’로 칭송하며 윤이상음악당·윤이상음악회·윤이상음악연구소 등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통영시의 윤이상 유해 이장 강행 및 안치에 반발한 시민들은 윤 씨 유해가 안치될 오는 30일까지 통영시청 앞에서 토요일을 제외하고 날마다 반대 집회를 열 예정이다. 매주 일요일에는 통영시 중앙동 강구안 문화마당과 도남동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집회를 이어간다.
아래는 윤이상 유해 통영 移葬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3월8일 오전 통영시장을 만나 한 시간 가량 가진 면담 녹취록이다.
李知映(조갑제닷컴)
*윤이상 유해 송환 반대 통영시민과 통영시장 면담 녹취록
일시: 2018. 3. 8. 오전 11시~
장소: 통영시장실
면담자 시민 6명(김동우, 박순옥, 이익환, 차상재, 강정미, 최막이, 천둘선) / 시청 관계자 3명(김동진 통영시장 등)
*김동진 시장(이하 시장)
도비(道費)가 180억, 우리가, 시비(市費)가 80억 들어가서 국제음악당이 만들어졌고, 그 이후에 2002년부터 시작된 통영국제음악제가 15회째 진행돼오고 있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통영국제음악제가 윤이상 음악을 중심으로 해서 아시아 쪽에서 현대음악에 관한 뿌리를 내리게 됐죠. 제가 말한 건 팩트입니다.
*면담자(여1)
원래는 윤이상 이름이 들어갔는데 이름이 빠졌잖아요. 빠지게 된 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게 왜 빠졌습니까? 빠지게 된 이유가 있잖습니까? ‘윤이상이라는 이름을 빼야 된다, 왜? 그 사람은 공산당 행동을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윤이상 이름을 달 수 없다’, 그렇게 결론 내려지면서 윤이상이라는 이름을 떼고 국제음악당으로 된 겁니다. 원래는 ‘윤이상 국제음악당’이었잖아요. 근데 윤이상이라는 이름을 뗐지 않습니까? 그걸 왜 그냥 넘어가십니까? 연장선으로 보시면 안 되죠. 통영시민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 반대를 한 거고, 모든 음악교도 마찬가지고 ‘이 사람은 도저히 이름을 달고 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판단 하에 이름을 뗐던 거 아닙니까? 물론 그 사람 업적이 음악적으로 문화적으로 뛰어난 거는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이 사람의 사상은... 우리가 지금 휴전국가고, 전쟁 중이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다 해서 윤이상이라는 이름을 뗐습니다.
*시장
그 부분은 말씀을 자제하시고요, 제가 그 다음을 이야기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윤이상음악제가 자리를 잡고 왔습니다.
*면담자-여1
윤이상 음악제가 아니죠, 국제음악제죠.
*시장
네, 국제음악제가. 그런데 사실은 우리 윤이상 선생을 두 가지 측면에서 나누어서 보셔야 되는데 그분의 음악세계가 있고 삶이라는 측면이 있습니다. 삶은 상당히 많이 굴곡이 졌죠. 그분의 삶을 1971년과 그 이후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그분이 1967년도에 동백림 사건으로 해서 우리나라로 압송되어 와가지고 그 당시 박정희 대통령 제3공화국 때 여러 가지 고초를 당해가 무기징역을 받았습니다. 여러 세계적인 음악가들의 칼라얀이라든지 스트라빈스키라든지 독일연방정부라든지의 구명운동에 힘입어서 1971년도에 독일로 갔어요. 가서 얼마 안 되어 귀화를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그분은 법적으로 독일 사람입니다. 독일 국적을 가지고 작품활동을 활발히 했죠.
2006년도 노무현 정부 들어서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열려, 거기서 동백림 사건을 재조명했습니다. 거기서 ‘동백림 사건은 국가공권력에 의해 과장된 사건이었다. 정부가 사과해야 될 사안이다’라고 일단 한번 결론을 맺었어요.
*면담자-남1, 여1
거기서 윤이상만 빠졌잖아요. 그 이야기를 정확하게 하셔야죠.
*시장
아니 아니, 그렇게 해서 매듭을 한번 졌습니다. 거기에는 동백림 사건에 관련된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진실 규명을 했다기보다는 동백림 사건 전체를 가지고 조명을 했던 겁니다.
*면담자-여1
윤이상 혼자 빠졌죠.
*시장
그런 소리는 세상에 저는 처음 듣는 소리고...
*면담자-여1
신문에 다 나왔습니다.
*시장
그거는 기록을 가지고 나중에 검증을 해봐야 될 겁니다. 제가 읽은 기록에는 없었어요.
그 다음에 윤이상 선생이 1972년도 뮌헨올림픽이 올리는 그때 개막공연을 윤이상 선생이 작곡한 심청 5부작이 전(全)세계적인 반향을 크게 일으키면서부터 아주 유명한 작곡가로서 세계에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그분의 음악을 애호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많은 연주도 열리고 독일에서 명성을 갖게 되고 1980년대 들어오면서부터는...
*면담자-남1
잠깐만요, 얘기 듣다보니까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시장
팩트를, 팩트를...
*면담자-남1
우리 쟁점만 이야기합시다.
*시장
쟁점이 뭡니까, 그래서.
*면담자-남1
최근 김정숙이가 동베를린 무덤에 갔다가 갑작스럽게 몇 개월 만에 유해까지 일로 오거든요. 몇 개월 안 되는 그 과정에서 어떻게 유해를 이까지(여기까지) 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셨습니까? 그 유해를 가져오는 데 시민 돈이 들어가는지 안 들어가는지 그것 좀 밝혀주십시오.
*시장
예, 알겠습니다. 지금 통영에 윤이상 선생 미망인과 그 따님이 살고 계십니다. 여기에 정착을 한 지가 4~5년 되나요? 정확히 날짜는 기억 못 하겠는데, 상당 시간 흘렀습니다. 이수자 여사가 구순이 넘으셨어요. 제가 작년(2017년) 초에 그분께 한번 여쭤봤어요. 지금 구순이 넘으셨는데...
*면담자-남1
작년 초면, 김정숙 여사가 동백꽃 가져가기 전입니까?
*시장
훨씬 전이죠.
*면담자-남1
스스로 물어봤단 이야깁니까?
*시장
네 스스로 제가 물어봤어요. 왜 물어봤냐면, 우리 시민이지 않습니까. 구순이 넘으셔서 사후(死後)에 어떻게 하실 생각인지를 우리가 알고 있는 게 도움이 되겠다, 그때 “내가 죽으면 통영 땅에 묻히고 싶다. 내 혼자 묻히기보다도 베를린에 묻혀 있는 우리 영감하고 같이 좀 통영 땅에 묻히면 싶다. 우리 영감이 살아서 오매불망 통영을 그리워했는데 죽어서라도, 유해라도 갖고 와서 통영 땅에 같이 묻히고 싶다” 그런 의사를 표명을 했습니다.
*면담자-남1
그게 작년 1월입니까?
*시장
작년에... 날짜는 확실히 모르겠어요. 작년 초쯤 됐어요.
*면담자-남1
그래서 가만히 있다가 김정숙 여사가 하니까 본격적으로 추진하신 겁니까?
*면담자-여1
그럼 통영의 딸에 대해서는요?
*시장
제가 지금 자료를 하나 갖고 왔습니다. 그건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고 난 뒤에 제가 문재인 정부 들어오고 난 뒤에 이게 우리 통영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나라 전체적인 문제고 세계적으로 관심을 가질만한 그런 문제라는 생각을 접하고서 중앙부서 문화관광체육부, 국정원, 청와대, 외교부 이런 데를 쭉 순방했습니다. 담당 국장들, 담당 고위직을 만나서 이 부분을 의논을 했어요. 이수자 여사님이 이렇게 원하는데 이걸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그러니까 우리 정부차원에서 좋은 생각이라고...
*면담자-여2
(웃음) 기가 찬다.
*면담자-여1
시장님은, 말씀 중에 이수자 여사가 통영시 대표 시민입니까? 이수자를 뺀 15만 통영시민은 필요가 없습니까? 이수자 그 여자, 한 사람. 북한에도 윤이상 동상이 있다 아닙니까.
*시장
이런 식이면 제가 더 이상 이야기 진행을 못합니다. 내 의견에 반한다 해서 이야기를 그냥 막고...
*면담자-남2
대표자 질문에 응답하는 식으로 (진행) 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면담자-남1
제가 주도적으로 물어볼게요.
*면담자-남2
시장님께서 서두를... 어느 정도까지 팩트만 말씀하고 끝내주셔야...
*면담자-여2
간단 간단하게.
*면담자-여1
계속 그냥... 우리는 지금 연설을 들으러 온 것 같습니다.
*시장
제가 그럼 말을 안 할게요. 말씀을 하세요.
*면담자-남1
그 부분을 얘기하다 마셨는데 상담을 다 했더니 좋은 뜻이라고 이야기됐지 않았습니까? 그 부분이 거기서 유해를 가져오려면 비용도 필요하고 사람도 필요하다 아닙니까, 그죠? 국가차원이나 통영시 차원에서 지원했는지? 또 하나는 국가차원이나 통영시에 있는 돈이 들어갔다면, 우리 통영시민 15만의 의사도... 충분히 소통하고 그러셨는지 그 부분이 궁금합니다.
*시장
중앙부서의 의견을 확인하고 우리가 베를린시 정부에다가 이수자 여사가 쓴 편지를 외교부를 통해서 외교부 공문으로 만들어서 전달했죠. 베를린시에서 언제든지 파가도 좋다, 그런 회신을 받고서 이게 진행이 됐습니다. 그런데 우리 여기에 유해를 운송하러 갈 때에 거기에 우리 쪽에서 시청소속으로 가신 분들은 시의 경비를 갖고, 윤정 씨도 갔습니다. 윤정 씨가 갈 때는 개인 경비로 갔고. 그래서 유해만...
*면담자-남1
이수자 선생님은 안 가시고요?
*시장
안 갔습니다. 그래서 가지고 오게 된 겁니다. 여기까지가 팩트입니다.
*면담자-여2
제가 또 하나 질문하겠습니다. 도남동 국제음악당 옆에 공원으로 쓴다고 우리가 얘기를 듣고, 알고 있는데 (유해가) 유족이 원해서 오는 거니까 유족이 이 부지를 샀는지? 우리가 알기로는 그쪽이 그린벨트 지역이 되가지고... 전국에 관광객들이 다 거기를 거쳐야 되는데...
우리 국민들이 알고 있기로는 (윤이상을) 간첩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 땅 부지를 어떻게, 누가 구입했는지 그 부분을 좀.
*시장
거기는 우리 시(市)유지고 우리 시에서 산 땅이고 음악당 경내입니다. 음악당 한 부분으로 되어 있고 여기다 묻으면 어떻겠느냐, 유족하고 협의해서 동의를 받아서...
*면담자-여2
이수자 여사님도 그쪽으로 가시겠네요?
*시장
돌아가시고 나면,
*면담자-여1
왜 그 사람이 거기로 갑니까?
*면담자-남1
잠깐, 그러면 그 비용이 다 통영시에서 내는 겁니까?
*시장
무슨 비용을...
*면담자-남1
그러니까 이장하고 관리...
*면담자-남2
시유지면 찬반투표를 했어야지.
*시장
그것가지고 찬반투표를 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시 의회 간담회를 통해서 여러분들이 뽑은 대표자를 통해서 결정을 한 겁니다.
*면담자-남2
시 의회에서 통과를 했습니까?
*시장
시 의회 설명회를 우리가 했죠.
*면담자-여1
시 의원들도 투표를 안 했대요. 제가 다 여쭤보니까 전혀 몰라요.
*시장
그런 정도는 시 의회 승인 사항이 아니고 시 의회 보고 사항입니다.
*면담자-여1
‘이 정도’입니까? 이게? 조선일보에도 연일 나오고 있는데 전국에서 뭐라 하냐면 ‘통영이 빨갱이 동네 됐는데 관광 다시는 안 간다’ 지금 이렇게 수십 건의 댓글들이 올라와 있습니다. 시 의원들 승인도 없이 시장님
*시장
그거는 두고 보세요.
*면담자-여1
뭘 두고 본단 말입니까?
*시장
관광객이...세상에 이런 찬반이 있고 의견이 다를 수가 있습니다. 다른 의견을 서로 존중할 줄 알고, 다수에 의해서 결정된 안은 수용할 줄 알아야 됩니다.
(면담자들 고함 난무)
*면담자-여2
내가 한번 이야기해볼게요. 윤이상이가 우리 통영 땅 부지에 묻힐 정도로 통영시에 기여를 한 바가 있습니까?
*시장
윤이상 선생은 음악을 통해서 통영을 엄청나게 세계에 알리신 분입니다.
*면담자-남3
빨갱이 고향을 알린 사람이 또 윤이상이 아이가.
*시장
허허 참.
*면담자-남3
이거는 우리가 사상적으로 빨갱이라카면...
*시장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면담자-여1
아니, 근거가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나오지 않습니까?
*면담자-남1
지금 시장님 말씀은 시 의회에다가 이래이래 하겠다라고 설명도 하시고, 승인은 시장님 권한이란 얘기죠?
*시장
그렇습니다.
*면담자-남1
시장님이 말씀하신 거는 인터뷰에서도 봤지만 음악성이 뛰어나다보니 그 음악으로 인해서 통영시가 문화시로 더 발전돼서 경제적 이익이나 문화적 이익이 나을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셨는데 반대로 우리 선생님들(면담자들)이 묻는 거는 그럼 음악성에 대해서 강조하셨는데 윤이상이 95년도에 죽기 전에 김일성한테 충성편지라든가-이수자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했던 부분도 잘 아시고, 그분의 사상이 어떤 사상, 주체사상이라고 하지만 사실 김일성을 사랑하는, 흠모하는 정도의 엄청난 이야기를 했거든요. 그 부분도 반영이 된 결정이십니까?
*시장
우리는 그분을, 윤이상 음악을 향해서만 기념사업을 하는 것이지 그분의 사상이나 생각까지를 깊이 거론할 상황은 아닙니다.
(면담자 일동 탄식 및 헛웃음)
*면담자-여1
그러면 가수 유승준이는요? 유승준은 군대 안 간 거 하나만으로 지금 한국 땅에 오지도 못합니다.
*면담자-남1
요지가 뭐냐면, 윤이상의 음악성에 대해서는 (인정합니다) 옛날 박정희 대통령도 초청한 적이 있었고 김영삼도 초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가(한국정부가) 요청했던 건 뭐냐면, ‘당신(윤이상)이 김일성을 위대한 수령이라고 했던 그 부분을 사과할 수 있느냐? 그러면 당신은 우리나라에 들어올 수 있다’고 두 번이나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거절했거든요, 죽으면서까지도 거절했고.
제 말은, 지금 기념관이나 국제음악당 이름을 빌려서 엄청난 음악회를 하고 있습니다. 음악성을 갖고 있는 건 이미 되어 있는 것을 굳이 그 사람의 주체사상이나 그런 게 어느 정도 스며들어있는 유해를 음악성을 가장해서 가져와서 무덤이 서 있으면 모르는 통영시민들은 그 주체사상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사람을 숭배하고 헌화하고 인사하게 될 거 아닙니까? 자기도 모르게. 통영 시민들을 다 반국가단체에 국가보안법 위반자로 만든다, 이게 요지입니다. 그걸 인지하시는지?
*시장
그것도 충분히 이해를 합니다. 해볼 만한 이야기이고. 지금까지 논란이 많이 됐는데, 저는 통영행정을 맡은 수장으로서 이러한 행위가 과연 우리 통영에 도움이 되느냐 마이너스가 되느냐 하는 쪽을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면담자-남1
그건 경제적 측면이고, 법률적 측면에서 이야기 해보세요.
*면담자-여2
통영 시민으로서 부끄럽습니다.
*시장
우리가 예를 들어서 박경리 선생을 모시고 와서 묘소가 있는 덕분에....
*면담자-여2
그분하고 비교하시면 안 되죠. 어떻게 그분하고 비교를 하세요?
(면담자들 흥분, 소란)
*시장
문화적, 예술적인 업적은 윤이상 선생은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친 분이고, 박경리 선생은 국내적으로 떨치신 분입니다. 우리가 그런 분을 모셔옴으로써 많은 문학도들의 성지순례 코스가 되듯이 우리 윤이상 선생도 여기에 모셔놓고 나면은 국제적인 많은 음악도들이 아마 순례하러 올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논리 같으면, 음악도들이 와서 윤이상 선생을 추모하고 추념한다면 그 사람들이 다 빨갱이겠어요? 그렇게 그만큼 극단적인 표현은 우리가 서로 자제하자 이겁니다. 사람은 다 양면이 있을 수가 있고...
*면담자-여1
우린 지금 휴전 국가입니다. 우리 주적이 누굽니까?
*면담자-남1
시장님, 제가 묻는 말에 음악은 이미 충분히 인터넷 통해서 감상할 수 있고 찬양하는지 모르겠지만 유해라는 거는 들어오면 묘가 생길 거 아닙니까? 거기에 뭣 모르고 추념하고 묵념하고 할텐데... 그 앞에 ‘이 사람은 김일성 주체사상, 김일성주의 사상자다’ 써놓으면 그 사람들이 인사 하겠습니까? 근데 거기에 그렇게 안 쓸 거 아닙니까? ‘위대한 음악가’ 이렇게 쓸 거 아닙니까? 음악과 사상은 분명히 분리를 해야 되는데 음악은 인터넷 매체로 됐고 사상은 분명히 그 사람이 죽을 때까지 김일성 주체사상을 했으니까 유해는 딴 데 가라 이거죠.
모든 사람을 김일성 주체사상 (추종한) 사람한테 뭣 모르고 절하게 하면... 방금 말씀하신 건 잘못된 거죠.
*시장
제가 판단컨대 우리 시민 대다수는 윤이상 선생 유해를 모셔오는 것에 찬성한다고...
*면담자-남2
여론조사 해봤어요? 대다수요?
(면담자 일동 흥분, 소란)
*면담자-여1
제가 마이크 잡고 통영에서 집회를 하면서 돌아다녔습니다. 윤이상 유해 결사반대 집회를 합니다. 수많은 분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눈물 흘리고 박수를 쳐주시면서 감사하다고.
어떤 분은 제 차가 지나가는데 달려와서 ‘정말 감사합니다’하면서 눈물 뚝뚝 흘리는 분이 수십 명이었습니다. 그분들 눈물은 뭡니까, 그러면?
*시장
그러나...
*면담자-여1
(호통) ‘그러나’가 아니죠! 그런 사람들은 ‘개돼지’입니까?
*면담자-남1
이 부분을 법무부 쪽에, 국가보안법 위반사항이 아닌지는 충분히 검토하셨습니까?
*시장
그 부분은 아까 말씀드렸듯이 한국 국내법의 적용 대상이 아닙니다.
*면담자-남3
아닌 사람을 뭐할라꼬 델꼬오노?
*시장
그분은 독일 사람입니다.
(면담자 일동 흥분)
*면담자-여1
독일 사람을 왜 통영 땅에 데리고 옵니까?
*시장
제가 이분(면담자-남1)의 질문에 답하고 있습니다. 그게 국가보안법에 위반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물었기에 제가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분은 이미 1972년부터 독일 사람으로 귀화를 하셨기 때문에 우리 국내법의 적용 대상이 아닙니다.
*면담자-남1
국가보안법에는 이렇게 되어 있거든요. ‘반국가단체에 충성하거나 주체사상을 따라서 그 실행으로 인해서 반국가단체로 지정된 사람을 일반 사람이 숭배하거나 찬양하게 되면 그 동조자도 국가보안법에 위반된다.’ 명확한 팩트는 그거지 않습니까? 그 사람(윤이상)은 분명히 국가보안법에 의해서 2년6개월 살다 나왔죠?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추방을 한 거고,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귀화했다 이건데 어쨌든 우리는 단 한 번도 그 사람이 반(反)국가단체, 김일성주체사상이라는 거에 대해서 풀어준 적이 없습니다.
이 사람이 독일 사람이든 뭐든 간에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인데,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헌화를 하거나 추모를 하게 되면 주체사상을 따른 사람을 추모하고 찬양하는 꼴이 되어버리는데 이 부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시장
우리 법을 집행하는 사법기관이 시퍼렇게 살아 있잖아요? 검찰도 있고 경찰도 있고 국정원도 있고 법원도 있고 많습니다. 만약에 이 유해를 갖고 오는 자체가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면 우선 저부터 성하겠습니까? 사법기관이 가만있겠어요? 만약에 위반이라면. 생각해보세요.
*면담자-남3
허허 참, 합리화시키라꼬 하네.
*면담자-남1
충분히 자문을, 물어보셨냐 이거죠.
*시장
그거는 물어보든 안 물어보든 이렇게 하는 것이 위법이라면 사법기관에서 저를 가만히 두겠어요?
*면담자-남1
알겠습니다. 그럼 정서면에서는 어떻습니까? 그분이 마지막까지 주체사상을 하고 김일성을 흠모했던 정서상으로는 어떻습니까?
*시장
정서상으로는, 전체적으로 제가 보기에는 판단컨대 우리 시민들은 그분의 음악성을 높이 평가하지 싶습니다.
*면담자-여1
그럼 눈물 흘렸던 그분들은요?
*시장
모든 일은 양면이 있습니다. 눈물을 흘린 분이 과연 우리 시민의 대다수인지 아닌지는 냉정히... 제가 보기에는 반기는 분들이 대다수입니다.
*면담자-남1
집행된 예산이 나와 있는 게 있습니까?
*시장
우리가 여비 나간 건 있지요.
*면담자-남1
30일 이장할 거 아닙니까? 그런 부분에 대한, 전반적인 비용은...
*시장
이장은 돈 드는 거 아닙니다.
*면담자-남1
아니, 이 앞에서 거기로 옮기는 차비도 들 거고 인건비도 들 건데 그런 돈도 다 예산이 잡혀 있습니까?
*시장
여러분들이 그 예산이 공개되면 의회에서 그 예산집행에 대한 사무감사도 받게 되고 나중에 인터넷에 공개가 됩니다.
*면담자-남1
정확히 얼만진 모르지만, 예산이 들어간다 그거죠? 통영시민 돈이 들어간다는 얘기잖아요.
*시장
조금 경비가 들어가겠지요.
*면담자-남1
조금이든 뭐든 들어간다는 거죠?
*시장
네.
*면담자-남3
시장님, 윤이상 유해가 좋으면 시민들이랑 이렇게 찬반논쟁으로 시끄럽게 하지 말고 당신 집안에 부모 옆에 모시고 그래가 살지 뭐할라꼬 시민들을 자꾸 불편하게 만드느냐 이겁니다.
*시장
제 판단은 모시고 오는 게 통영에 도움이 됩니다. 두고 보시면 아실 거예요.
*면담자-여2
그분은 국적이 독일이라고 안했습니까. 그런데 왜 통영시민 돈으로, 시비(市費)로 합니까?
*시장
통영에서 태어나시고 통영 분이었고...
*면담자-여1
산청에서 났습니다. 산청은 아무 말도 안 하는데 왜 혼자서 그럽니까. 시민들 아무도 의견 묻지도 않고, 의원들 아무한테도 의견 묻지도 않고.
*시장
시 의회가 반대하고 정부가 반대하고 대다수가 반대하면 이걸 할 수가 있겠어요?
*면담자-여1
찬성한 사람이 없는데요?
(면담자들 아우성)
*면담자-남3
이 정부한테는 좋다고 표창장 받을끼고 내일모레 동상도 세워준다고 하더라고, 이 양반(윤이상)을. 이 정부에서 최고 앞장서는 게 지방분권을 갖다가 ... 저 양반이 말이야 이 정부에 코가 꿰어가지고 할 수 없이 앞장을 서가 있다고.
*시장
(관계자에게) 이거 좀 녹음해라. 이거야말로 유언비어다.
(면담자들 고성, 흥분)
*면담자-남2
시장님은 이 일로해서 역사의 죄인이 될 겁니다. 기록될 겁니다. 이 일이 그리 좋은 일이라면 사후(死後)에 일반 역사가들이 평가해가 유해를 모시던 하지 왜 시장님 독단적으로 하냐 이 말입니다.
*시장
역사적으로 저를 평가 하십시오.
*면담자-남2
이 일을 중단 하십시오.
*면담자-여2
지금 기념비를, 동상을 시장님이 세운다고 하시는데 저는 지나가면서 침을 뱉겠습니다. 통영시민으로서 부끄럽소.
*시장
뱉으세요. 시민은 각자의 자유행동을 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