릭 왜고너부터 메리 바라 CEO까지… GM의 10년 변화, 韓 정부는 몰랐다
.진상훈 기자
입력 : 2018.02.17 06:00
지난 13일 제너럴모터스(GM)가 한국GM 군산공장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산업계는 이번 군산공장 폐쇄가 GM의 한국시장 철수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만약 GM이 한국을 떠날 경우 협력업체 등까지 포함해 약 3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돼 국내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GM이 이미 수년전부터 내실 강화에 주력하며 여러 차례 한국 시장 역시 정리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와 노조는 이같은 움직임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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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M 철수의 다음 타깃은 한국일까. 메리 바라 GM 회장이 지난해 매각을 결정한 유럽 자회사 오펠의 로고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블룸버그
지난 2002년 옛 대우자동차를 인수할 당시 릭 왜고너 전 회장이 이끌던 GM은 글로벌 시장에서 한창 외형 성장에 주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과정에서 파산 위기를 겪은 후 GM은 군살을 빼고 내실 경영에 초점을 맞춘 경영구조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특히 2014년 메리 바라 회장이 취임한 후 GM은 글로벌 사업장을 잇따라 정리하며 구조조정에 더욱 속도를 높이고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군산공장 폐쇄 발표 전날까지도 GM에 중장기 사업계획부터 가져오라며 ‘허황된 배짱’을 부렸다”며 “정부의 시계는 여전히 릭 왜고너 회장이 대우차를 인수한 후 흡족해 마지 않았던 2002년에 멈춰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 “GM대우는 GM 살릴 원동력” 극찬했던 릭 왜고너…금융위기로 불명예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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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자동차를 인수했을 때 나는 흥분을 감추기 어려웠다. 선진국은 물론 신흥국에서도 통할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경쟁력있는 회사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릭 왜고너 전 GM 회장은 지난 2006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GM테크 투어’ 행사 당시 각국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2002년 GM이 대우차를 인수할 당시 GM 총괄 사장(CEO)을 맡고 있던 왜고너는 잭 스미스 당시 회장을 도와 인수 작업의 실무를 주도했다.
그는 “GM대우(한국GM의 옛 이름)는 적절한 원가구조를 갖추고 있는데다 제품개발과 생산능력도 강력해 앞으로 GM 전체의 성장을 이끌 중요한 회사가 될 것”이라고 극찬하며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기도 했다.
왜고너 회장은 2000년대 중반까지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꼽혔다. 하버드대 경영학석사(MBA) 출신으로 1977년 GM에 입사한 그는 38세였던 1992년 CFO(최고재무책임자)에 오르는 등 성공 신화를 써내려 갔다. 2000년 CEO 취임 이후에는 글로벌 사업 확장에 주력하며 GM의 외형 확대를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미스터 GM’으로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왜고너 회장은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추락했다. 극심한 경기침체와 함께 외형 성장 과정에서 누적된 채무가 드러나며 GM이 경영 위기에 몰린 것이다. 2008년 GM은 309억달러(33조원)의 천문학적 손실을 냈고 왜고너 회장은 ‘GM 100년 역사에서 최악의 CEO’라는 불명예를 안은 채 2009년 자리에서 물러났다.
◇ “배부른 과거는 잊어라”…‘금융맨’ 댄 애커슨, GM 방만경영에 칼을 겨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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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실적 부진과 재무구조 악화로 파산 위기에 몰린 GM에 ‘해결사’로 등장한 인물은 댄 애커슨 전 회장이다. 왜고너 회장 퇴임 후 에드워드 휘태커 회장이 잠시 GM을 맡았지만 방만경영 개선에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하자,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칼라일그룹 출신의 ‘금융맨’ 애커슨을 회장으로 투입하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애커슨 회장은 오랜 기간 미국 금융가에서 인수합병(M&A) 전문가로 일했다. 재무구조 개선과 조직관리에서 걸출한 능력을 인정받았던 그는 GM 회장이 된 후 곧바로 구조조정을 통한 체질 개선작업에 들어갔다.
‘자동차 문외한’이 GM을 살릴 수 있겠냐는 비아냥 속에 취임한 애커슨 회장은 부실자산을 정리 후 청산해 재무구조를 개선했다. 또 연료 효율이 낮아 외면을 받던 대형차 라인업을 축소하고 고연비 소형차 라인업을 확대해 판매량을 확대해 갔다. 금융위기 직후 파산보호 신청까지 하며 주식시장에서도 퇴출됐던 GM은 빠른 구조조정 덕에 2010년 재상장에 성공했다.
GM이 글로벌 사업장에서 철수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GM은 2013년말 GM은 ‘유럽지역 브랜드 강화전략’을 발표하면서 쉐보레 브랜드의 유럽 철수를 결정했다. 불과 며칠 뒤에는 호주에서 운영하는 홀덴공장도 2017년까지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 “해외 확장 대신 미래 신기술에 올인”…메리 바라, 구조조정 속도 더 높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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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애커슨 회장이 2014년 자리에서 물러난 후 새로운 GM의 수장(首長)으로 발탁된 인물이 바로 메리 바라 현 회장이다. 암에 걸린 아내를 돌보겠다며 갑작스럽게 사의를 밝힌 애커슨 회장은 자신의 뒤를 이어 GM의 구조조정과 사업재편을 지휘할 적임자로 당시 상품개발 담당 부사장으로 일하던 메리 바라를 낙점했다.
메리 바라는 GM 인스티튜트(현재 케터링대학교)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 출신이다. 당시 미국 자동차 업계에서는 여성으로 연구개발 직군인 그가 애커슨이 이끌던 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을 지 의심스러운 눈초리가 많았다. 그러나 바라 회장 취임 후 GM의 글로벌 사업장 철수는 오히려 더 빠른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GM은 2015년 인도네시아와 태국, 러시아 등 신흥시장에서 잇따라 생산시설을 폐쇄했다. 지난해에는 독일 자회사 오펠과 영국 복스홀을 매각해 유럽에서 완전히 손을 뗐고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철수결정을 내렸다. 바라 회장은 최근 “현재와 같은 구조로는 한국에서 더 이상 사업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발언하며 한국 시장에 대해서도 철수 가능성을 내비쳤다.
메리 바라 회장이 글로벌 사업 철수를 강력하게 추진한 것은 완성차 판매에서 미래 신기술을 통한 수익 창출로 사업구조를 재편하기 위해서였다. 미국과 중국 등 돈이 되는 거대시장에만 집중하고 구조조정을 통해 절감한 비용과 자산은 자율주행차와 전기차 등 신기술 개발에 투자하겠다는 것이 바라 회장이 추진하는 GM의 ‘큰 그림’이었던 것이다.
◇ “韓 강성 노조가 생산 경쟁력 떨어뜨려”…스테판 자코비가 던진 ‘경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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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형 성장에서 내실 경영으로 GM의 사업중심이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GM에 대해서도 ‘조치’가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2015년 GM의 해외사업 부문을 총괄하던 스테판 자코비 사장은 디트로이트 모터쇼 기간 중 한국 기자들과 가진 만찬에서 “한국의 자동차 산업이 높은 인건비와 강성 노조 문제 때문에 경쟁력을 잃고 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자코비 사장은 “가장 큰 문제는 최근 몇 년간 너무 올라 버린 과도한 인건비”라며 “임금 상승에 따른 급격한 비용 증가는 한국GM 뿐 아니라 한국 자동차 산업 전체에 대한 도전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강성 노조에 대해서도 불만을 제기했다. 자코비 사장은 “한국에서 매년 열리는 임금 협상은 너무 소모적”이라며 “특히 2년에 한 번씩 바뀌는 노조위원장이 성과를 내기 위해 강성 움직임을 보여 노사는 장기적인 대화를 하기 어렵고 서로의 신뢰마저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5년 초 한국GM은 쉐보레 브랜드의 유럽 철수로 수출 물량이 크게 줄면서 판매실적이 꺾이고 있었다. 지난 2013년 78만대에 달했던 판매량은 2014년 65만대로 1년만에 20% 급감했다. 당시 자코비 사장의 발언은 실적이 악화되는 과정에서도 임금 인상과 성과급 지급 등을 요구하며 강성 일변도로 나선 노조에게 작심하고 던진 ‘경고장’이었다.
◇ “노조, 지속 가능한 미래를 생각해 달라”…물거품 된 제임스 김의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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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미래를 생각해 주십시오.”
제임스 김 전 한국GM 사장은 지난 2016년 9월 전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이같이 호소했다. 임금 인상과 성과급 지급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는 노조를 염두에 두고 보낸 메시지였다.
김 사장은 “한국GM은 내수 부진과 경제 위기, 경쟁업체들의 잇따른 신차 출시로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가장 중요한 과제인 임단협을 무사히 타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4년부터 판매량이 급감한 한국GM은 2016년 들어서도 판매 부진이 거듭됐다. 9월 판매량은 1만2773대로 전달보다 11.1% 감소했다. 그러나 당시 한국GM 노조는 기본급 15만2050원 인상, 성과급 400% 지급 등을 요구하며 부분파업을 벌였다.
한국GM 노사의 대립은 지난해에도 계속됐다. 노조는 실적 부진 속에서도 오히려 전년보다 높은 기본급 15만4883원 인상, 성과급 500% 지급을 요구하며 지난해 5차례 부분파업을 진행했다. 줄곧 노조와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임금 협상에서 어려움을 겪던 제임스 김 사장은 결국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지난해 9월 중도 퇴임했다.
“GM이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임금 인상만을 요구하며 파업에만 몰두하는 노조의 행태는 스스로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할 겁니다.”
퇴임 의사를 밝히기 직전 제임스 김 사장이 한국GM 사장으로서 던진 마지막 메시지다.
◇ “추가지원 원하면 중장기 계획부터 들고 오라”…상황파악 못한 한국 정부 장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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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이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서고 한국의 경직된 노사 문화에 대해 불만을 제기해도 정부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심지어 GM의 한국 시장 철수 가능성이 점차 현실화되는 과정에서도 정부는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했다.
자코비 사장에 이어 지난해 GM 해외사업 총괄을 맡은 배리 엥글 사장은 올들어 계속해서 한국을 방문하며 한국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이미 자동차 업계에는 엥글 사장이 정부 관계자를 만나 추가 자금 투입 등을 요구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지만, 정부는 모두 “사실과 다르다”며 손사래를 쳤다.
GM의 한국 철수 가능성이 수면 위에 오른 뒤에야 비로소 정부는 엥글 사장과 접촉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김동연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9일 국회에 출석해 “엥글 사장을 만나 한국GM이 처한 상황을 듣고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는 요청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유상증자 등 구체적인 요구는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정부의 대응은 오히려 ‘배짱’에 가까웠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2일 “엥글 사장에게 자금 지원을 받으려면 먼저 중장기적으로 어떻게 발전을 할 것인지 계획을 갖고 오라고 했다”고 국회에서 발언했다.
백 장관은 “현재 GM의 경쟁력은 문제가 있다”며 “외국인 투자기업이 한국에서 사업을 할 때는 최소한의 이윤구조를 가질 수 있는 방향이 무엇인지부터 고민해야 한다”며 GM에 ‘일침’을 놨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인 13일 GM은 군산공장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 “견제하기 부족한 점 있다” 끌려다닌 2대주주 산업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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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이 지분 17%를 보유한 2대 주주임에도 GM 본사에 일방적으로 끌려 다녔다. 산업은행은 2대주주 자격으로 한국GM 측에 회사 운영에 관한 정보 공개를 여러 차례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국GM은 GM 본사와의 관계를 이유로 이를 사실상 거부해 왔다. 그동안 자동차업계에서는 한국GM이 GM 본사에 지나치게 높은 대출 이자와 부품 조달비를 내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해 왔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해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GM의 국내 철수설과 관련해 “한국GM의 소수주주로서 대주주의 모든 행동을 견제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산업은행은 한국GM 자금지원과 관련해 고민이 많다. 산업은행은 한국GM에 대한 회수 가능금액을 지난 2014년 기준 2694억7200만원에서 단계적으로 낮춰 결국 0원으로 회계 처리했다. 한국GM 보유 지분을 무수익자산으로 분류한 것이다. 지분가치를 0원으로 회계 처리한 회사에 신규로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많은 논란이 될 수 있다.
산업은행은 현재 한국GM에 대한 증자 및 대출 등 자금지원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손실규모와 회사 운영상황, 그동안 논란이 됐던 GM과의 금전 거래 등을 파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GM의 불투명한 회계처리 뿐 아니라 지난해 10월 효력이 만료된 산업은행의 매각 거부권(비토권)도 자금 지원시 쟁점사항이 될 수 있다. 산업은행은 지난 2002년 한국GM 전신인 대우자동차를 GM에 매각할 때 향후 15년간 GM이 보유한 지분을 팔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비토권 협약을 맺었다. 산업은행은 비토권을 통해 한국GM 철수를 간접적으로 막아왔지만 지난해 10월 비토권 효력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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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2.17 06:00
문제는 GM이 이미 수년전부터 내실 강화에 주력하며 여러 차례 한국 시장 역시 정리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와 노조는 이같은 움직임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점이다.
- ▲ GM 철수의 다음 타깃은 한국일까. 메리 바라 GM 회장이 지난해 매각을 결정한 유럽 자회사 오펠의 로고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블룸버그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군산공장 폐쇄 발표 전날까지도 GM에 중장기 사업계획부터 가져오라며 ‘허황된 배짱’을 부렸다”며 “정부의 시계는 여전히 릭 왜고너 회장이 대우차를 인수한 후 흡족해 마지 않았던 2002년에 멈춰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 “GM대우는 GM 살릴 원동력” 극찬했던 릭 왜고너…금융위기로 불명예 퇴장
릭 왜고너 전 GM 회장은 지난 2006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GM테크 투어’ 행사 당시 각국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2002년 GM이 대우차를 인수할 당시 GM 총괄 사장(CEO)을 맡고 있던 왜고너는 잭 스미스 당시 회장을 도와 인수 작업의 실무를 주도했다.
그는 “GM대우(한국GM의 옛 이름)는 적절한 원가구조를 갖추고 있는데다 제품개발과 생산능력도 강력해 앞으로 GM 전체의 성장을 이끌 중요한 회사가 될 것”이라고 극찬하며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기도 했다.
왜고너 회장은 2000년대 중반까지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꼽혔다. 하버드대 경영학석사(MBA) 출신으로 1977년 GM에 입사한 그는 38세였던 1992년 CFO(최고재무책임자)에 오르는 등 성공 신화를 써내려 갔다. 2000년 CEO 취임 이후에는 글로벌 사업 확장에 주력하며 GM의 외형 확대를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미스터 GM’으로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왜고너 회장은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추락했다. 극심한 경기침체와 함께 외형 성장 과정에서 누적된 채무가 드러나며 GM이 경영 위기에 몰린 것이다. 2008년 GM은 309억달러(33조원)의 천문학적 손실을 냈고 왜고너 회장은 ‘GM 100년 역사에서 최악의 CEO’라는 불명예를 안은 채 2009년 자리에서 물러났다.
◇ “배부른 과거는 잊어라”…‘금융맨’ 댄 애커슨, GM 방만경영에 칼을 겨누다
애커슨 회장은 오랜 기간 미국 금융가에서 인수합병(M&A) 전문가로 일했다. 재무구조 개선과 조직관리에서 걸출한 능력을 인정받았던 그는 GM 회장이 된 후 곧바로 구조조정을 통한 체질 개선작업에 들어갔다.
‘자동차 문외한’이 GM을 살릴 수 있겠냐는 비아냥 속에 취임한 애커슨 회장은 부실자산을 정리 후 청산해 재무구조를 개선했다. 또 연료 효율이 낮아 외면을 받던 대형차 라인업을 축소하고 고연비 소형차 라인업을 확대해 판매량을 확대해 갔다. 금융위기 직후 파산보호 신청까지 하며 주식시장에서도 퇴출됐던 GM은 빠른 구조조정 덕에 2010년 재상장에 성공했다.
GM이 글로벌 사업장에서 철수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GM은 2013년말 GM은 ‘유럽지역 브랜드 강화전략’을 발표하면서 쉐보레 브랜드의 유럽 철수를 결정했다. 불과 며칠 뒤에는 호주에서 운영하는 홀덴공장도 2017년까지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 “해외 확장 대신 미래 신기술에 올인”…메리 바라, 구조조정 속도 더 높여
메리 바라는 GM 인스티튜트(현재 케터링대학교)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 출신이다. 당시 미국 자동차 업계에서는 여성으로 연구개발 직군인 그가 애커슨이 이끌던 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을 지 의심스러운 눈초리가 많았다. 그러나 바라 회장 취임 후 GM의 글로벌 사업장 철수는 오히려 더 빠른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GM은 2015년 인도네시아와 태국, 러시아 등 신흥시장에서 잇따라 생산시설을 폐쇄했다. 지난해에는 독일 자회사 오펠과 영국 복스홀을 매각해 유럽에서 완전히 손을 뗐고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철수결정을 내렸다. 바라 회장은 최근 “현재와 같은 구조로는 한국에서 더 이상 사업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발언하며 한국 시장에 대해서도 철수 가능성을 내비쳤다.
메리 바라 회장이 글로벌 사업 철수를 강력하게 추진한 것은 완성차 판매에서 미래 신기술을 통한 수익 창출로 사업구조를 재편하기 위해서였다. 미국과 중국 등 돈이 되는 거대시장에만 집중하고 구조조정을 통해 절감한 비용과 자산은 자율주행차와 전기차 등 신기술 개발에 투자하겠다는 것이 바라 회장이 추진하는 GM의 ‘큰 그림’이었던 것이다.
◇ “韓 강성 노조가 생산 경쟁력 떨어뜨려”…스테판 자코비가 던진 ‘경고장’
지난 2015년 GM의 해외사업 부문을 총괄하던 스테판 자코비 사장은 디트로이트 모터쇼 기간 중 한국 기자들과 가진 만찬에서 “한국의 자동차 산업이 높은 인건비와 강성 노조 문제 때문에 경쟁력을 잃고 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자코비 사장은 “가장 큰 문제는 최근 몇 년간 너무 올라 버린 과도한 인건비”라며 “임금 상승에 따른 급격한 비용 증가는 한국GM 뿐 아니라 한국 자동차 산업 전체에 대한 도전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강성 노조에 대해서도 불만을 제기했다. 자코비 사장은 “한국에서 매년 열리는 임금 협상은 너무 소모적”이라며 “특히 2년에 한 번씩 바뀌는 노조위원장이 성과를 내기 위해 강성 움직임을 보여 노사는 장기적인 대화를 하기 어렵고 서로의 신뢰마저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5년 초 한국GM은 쉐보레 브랜드의 유럽 철수로 수출 물량이 크게 줄면서 판매실적이 꺾이고 있었다. 지난 2013년 78만대에 달했던 판매량은 2014년 65만대로 1년만에 20% 급감했다. 당시 자코비 사장의 발언은 실적이 악화되는 과정에서도 임금 인상과 성과급 지급 등을 요구하며 강성 일변도로 나선 노조에게 작심하고 던진 ‘경고장’이었다.
◇ “노조, 지속 가능한 미래를 생각해 달라”…물거품 된 제임스 김의 호소
제임스 김 전 한국GM 사장은 지난 2016년 9월 전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이같이 호소했다. 임금 인상과 성과급 지급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는 노조를 염두에 두고 보낸 메시지였다.
김 사장은 “한국GM은 내수 부진과 경제 위기, 경쟁업체들의 잇따른 신차 출시로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가장 중요한 과제인 임단협을 무사히 타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4년부터 판매량이 급감한 한국GM은 2016년 들어서도 판매 부진이 거듭됐다. 9월 판매량은 1만2773대로 전달보다 11.1% 감소했다. 그러나 당시 한국GM 노조는 기본급 15만2050원 인상, 성과급 400% 지급 등을 요구하며 부분파업을 벌였다.
한국GM 노사의 대립은 지난해에도 계속됐다. 노조는 실적 부진 속에서도 오히려 전년보다 높은 기본급 15만4883원 인상, 성과급 500% 지급을 요구하며 지난해 5차례 부분파업을 진행했다. 줄곧 노조와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임금 협상에서 어려움을 겪던 제임스 김 사장은 결국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지난해 9월 중도 퇴임했다.
“GM이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임금 인상만을 요구하며 파업에만 몰두하는 노조의 행태는 스스로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할 겁니다.”
퇴임 의사를 밝히기 직전 제임스 김 사장이 한국GM 사장으로서 던진 마지막 메시지다.
◇ “추가지원 원하면 중장기 계획부터 들고 오라”…상황파악 못한 한국 정부 장관들
자코비 사장에 이어 지난해 GM 해외사업 총괄을 맡은 배리 엥글 사장은 올들어 계속해서 한국을 방문하며 한국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이미 자동차 업계에는 엥글 사장이 정부 관계자를 만나 추가 자금 투입 등을 요구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지만, 정부는 모두 “사실과 다르다”며 손사래를 쳤다.
GM의 한국 철수 가능성이 수면 위에 오른 뒤에야 비로소 정부는 엥글 사장과 접촉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김동연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9일 국회에 출석해 “엥글 사장을 만나 한국GM이 처한 상황을 듣고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는 요청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유상증자 등 구체적인 요구는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정부의 대응은 오히려 ‘배짱’에 가까웠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2일 “엥글 사장에게 자금 지원을 받으려면 먼저 중장기적으로 어떻게 발전을 할 것인지 계획을 갖고 오라고 했다”고 국회에서 발언했다.
백 장관은 “현재 GM의 경쟁력은 문제가 있다”며 “외국인 투자기업이 한국에서 사업을 할 때는 최소한의 이윤구조를 가질 수 있는 방향이 무엇인지부터 고민해야 한다”며 GM에 ‘일침’을 놨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인 13일 GM은 군산공장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 “견제하기 부족한 점 있다” 끌려다닌 2대주주 산업은행
산업은행은 한국GM 자금지원과 관련해 고민이 많다. 산업은행은 한국GM에 대한 회수 가능금액을 지난 2014년 기준 2694억7200만원에서 단계적으로 낮춰 결국 0원으로 회계 처리했다. 한국GM 보유 지분을 무수익자산으로 분류한 것이다. 지분가치를 0원으로 회계 처리한 회사에 신규로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많은 논란이 될 수 있다.
산업은행은 현재 한국GM에 대한 증자 및 대출 등 자금지원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손실규모와 회사 운영상황, 그동안 논란이 됐던 GM과의 금전 거래 등을 파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GM의 불투명한 회계처리 뿐 아니라 지난해 10월 효력이 만료된 산업은행의 매각 거부권(비토권)도 자금 지원시 쟁점사항이 될 수 있다. 산업은행은 지난 2002년 한국GM 전신인 대우자동차를 GM에 매각할 때 향후 15년간 GM이 보유한 지분을 팔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비토권 협약을 맺었다. 산업은행은 비토권을 통해 한국GM 철수를 간접적으로 막아왔지만 지난해 10월 비토권 효력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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