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주호 원자력학회장이 보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고리 1호기 폐쇄 이튿날인 20일 황주호(61·경희대 부총장·원자력공학과 교수) 한국원자력학회장을 만나 이른바 ‘에너지 전환 정책’의 바람직한 방향을 들어봤다. 그는 지난 1일 전국 29개 대학 에너지 전공 교수 230명의 탈핵 반대 성명을 주도했다.
- 질의 :19일 고리 원전 1호기의 영구 중단 행사를 본 소감은.
- 응답 :“마흔 살 먹은 국내 첫 원자력 발전소의 퇴장을 보면서 감회가 컸다. 원자핵공학과 75학번인데 재학 중인 1978년 고리 1호기가 완공됐다. 한국에도 원전이란 게 돌아가기 시작했구나, 이제 내가 할 일이 있겠구나 가슴 부풀었던 기억이 난다.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인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일찍이 50년대 후반 원자력연구소를 세우고 300명 가까운 인재를 미국에 유학 보냈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안 되는 시절이었다. 고리 1호기는 이승만·박정희 정권 ‘원자력 입국’ 정책의 결실이었다. 원전이 없었으면 ‘한강의 기적’이 불가능했을 테지만 한국 원전의 발전사 자체도 기적이라고 생각된다.”
- 질의 :어떤 면에서 기적인가.
- 응답 :“오늘날 원전을 수출하게 됐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는가. 원전 25기를 갖춘 원전 대국 우리나라는 30여 년 동안 한국표준형원전 건설을 반복해 온 경험에다 차세대 원자로를 개발해 건설 단가가 외국보다 훨씬 낮다. 가격과 기술 경쟁력이 뛰어나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에 가서 프랑스 같은 원자력 선진국들과 4파전을 벌인 끝에 원전 수주의 쾌거를 이뤘다. 냉각재 펌프나 발전·설계용 소프트웨어 같은 핵심 부품을 포함해 95%의 부품을 국산화해 일국 내에 부품 생태계를 이룬 드문 사례로 기록된다. 미국·프랑스에서도 신형 원자로 하나 지으려면 우리보다 공기(工期)가 두 배 이상 된다. 원전을 오랫동안 짓지 않다 보니 산업 생태계가 무너진 탓이다. 요즘 ‘일자리, 일자리’ 하는데 원전산업에는 전후방 10만 명 양질의 일자리가 있다. 원전 억제 정책을 쓰면 생태계가 죽고, 좋은 일자리와 인재가 떠나간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각국의 원전 시장이 조금씩 열리는 마당에 우리 원전이 수출산업으로서의 동력을 잃을지 모른다. 특정 국가에 원전을 수출하는 것은 자동차나 휴대전화 파는 것과 비할 수 없다.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 줬듯이 대한민국이 UAE에 새로운 삶을 열어 주는 거다. 공사 계약에 따라 원자력에 관해서는 우리가 그 나라를 통제하게 된다. 100년 이상 그런 관계가 이어진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를 통제한 적이 있나. 한국전력이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 입찰에 뛰어들 준비를 하자 일부 여당 국회의원이 탈핵 기조에 어긋난다고 반대한 일이 얼마 전 있었다.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다.”
- 질의 :문재인 대통령은 고리 1호기 행사에서 새 정부의 탈핵 노선을 더욱 강조했다.
- 응답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를 추구하겠다는 여론과 새 정부 입장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기념사에서 우리 원전을 세월호 비극에 빚댄 대목에선 참담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원전 운영 허가의 연장은 세월호의 선령을 연장하는 것과 다른 문제다. 원전은 대부분 가동을 연장하는 것이 보통이고 이는 무척 까다로운 국제 공인기관의 승인을 받는 사안이다. 원자력은 어느 나라나 매우 민감한 이슈이기 때문에 영향력 있는 인물의 한마디 한마디가 큰 파장을 낳을 수 있다.”
원전·신재생에너지는 안보 두 기둥
원전 퇴출로 신재생 추진 동력도 몰락
과도한 원전 공포 부추기지 말아야
전기요금 얼마나 뛸지 국민 설득 필요
- 질의 :환경단체를 비롯해 원전에 대한 공포나 거부감이 국민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게 현실이다.
- 응답 :“하지만 원전의 위험성이 과장되곤 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지구촌에 580여 기의 원전이 건립돼 몇 차례 사고가 있었지만 지진으로 인한 사고는 없었다. 근래 경주 인근 지진으로 원전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아시다시피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지진이 아니라 쓰나미가 덮친 때문이다. 후쿠시마 사고는 담만 높게 쌓았어도 막을 수 있었다. 본질적으로 원전의 문제가 아니었다. 후쿠시마 인근의 오나가와 원전은 담을 13m 높이까지 쌓은 덕에 무사했다. ‘어릴 적 쓰나미가 발전소 건설 부지까지 온 걸 본 적이 있다’는 촌로의 이야기를 듣고 원전 소장이 담을 높였다.”
- 질의 :일자리 증대를 통한 국민성장 이론이 시대정신이듯이 탈핵 역시 시대정신이라고 새 정부는 이야기한다. 원전의 순기능이 컸지만 시대 변화에 따라 퇴장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이른바 ‘에너지 민주주의’ 논의다.
- 응답 :“권위주의 시절의 표현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에너지 민주주의가 중요한 만큼 에너지 안보도 중요하다. 안보 없이 민주주의가 되는가.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에너지 독립은 사활의 명제다. 우리가 전쟁 없는 시대를 오래 살아 감각이 무뎌진 것이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의 카타르 봉쇄로 이 나라 가스의 최대 수입국인 한국 에너지 업계가 좌불안석이다. 중동은 앞으로도 끊임없는 화약고다. 중동 오일·가스에 코를 박고 사는 우리 같은 나라는 에너지 독립이 더욱 절실하다. 원전 연료인 우라늄은 비교적 정세가 안정된 나라에 많이 분포돼 있다. 연료 보관 비용도 적다. 원전 설비는 거의 국산화됐으니 준국산 에너지다. 이처럼 저렴하고 무공해이고 수급 차질이 적은 에너지는 없다. 먼 장래의 이야기인 신재생에너지에 목을 맬 수는 없다.”
- 질의 :신재생에너지는 신기루일 뿐이라는 뜻인가.
- 응답 :“에너지 독립을 위해 우리가 다가가야 할 목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원전을 급격히 줄여 가는 것은 문제다. 시간을 갖고 국민과 소통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전기요금이 꽤 올라간다는 사실을 좀 더 소상히 국민에게 설득해야 한다. 해외 에너지 전환 정책을 봐도 10년 이상 고민해 바꿨다. 촛불시위와 대통령 탄핵처럼 단숨에 될 일이 아니다. 당분간 원전 하나 닫으면 하나 열고 하는 식으로 현 상태를 유지하면서, 기름도 때고 가스도 때면서 신재생에너지 연구개발과 보급을 늘려 가야 한다. 급하면 탈 난다. 원전산업에 너무 충격을 주면 전문인력이 빠져나가 원전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셧다운하는 일조차 어려워진다. 새로운 기술이 원전을 대체할 말미를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재생에너지도 잘 안 된다. 그래서 신재생은 원자력과 함께 가야 한다.”
- 질의 :신재생에너지 모범 국가라는 독일을 우리 정책이 많이 벤치마킹하는 것 같다.
- 응답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독일을 일컬어 ‘돈으로 살 수 있는 최상의 에너지 혁명’이라고 했다. 좋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묘한 표현이다. 원전을 줄이는 대신 신재생에너지 인프라를 확 늘리는 데 성공했지만 비싼 대가를 지불했다는 뜻이다. 독일의 총 발전용량은 200GW(기가와트)인데 태양광·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무려 절반에 이른다. 우리나라 발전용량 100GW 중 신재생에너지는 5%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런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달성하는 데 독일은 10년 동안 200조원의 예산을 쏟아부었다. 우리나라 한 해 예산의 절반이다. 독일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10년간 78% 올라 유럽 최고 수준이 됐다. 지금도 매년 25조원 이상 투자하고 있다. 우리 새 정부의 탈석탄·탈원전 정책을 일정대로 밀고 나갈 경우 향후 10년 동안 170조원 정도 소요된다고 전문기관은 추정한다. 독일은 그렇게 신재생에너지에 투자하고도 안정적 전력 운영을 위해 주변국에서 전기를 수입한다. 섬과 다름없는 반도국가 대한민국은 전기를 사 올 곳조차 없다.”
원전산업, 좋은 일자리 10만개 보고
독일보다 영국 반면교사 삼아야
대만도 탈원전에서 유턴 움직임
에너지 민주주의 과하면 안보 저해
- 질의 :그렇다면 독일을 제대로 따라 하긴 어렵다는 이야기인데.
- 응답 :“오히려 영국 모델에 착안할 필요가 있다. 영국은 온실가스 감축 국제 기후협약에 부응하기 위해 석탄·원자력 발전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를 확충하려고 했다. 『폭풍의 언덕』 같은 소설에서 보듯이 바람이 많아 풍력에 유리한 입지다. 하지만 의회가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신재생에너지 예산안을 부결하는 바람에 다시 원전으로 회귀했다. 이에 따라 2020년대 후반까지 새로 15기를 지어야 한다. 영국은 왕년에 원전을 41개까지 돌리던 나라였다가 독일처럼 신재생에너지 쪽으로 가려 했으나 이제 신재생에너지+원전 혼합 모델로 가고 있다. 일국의 에너지 기술은 ‘선택과 집중’이 아니라 포트폴리오 형식의 중용이 필요함을 일깨우는 사례다.”
- 질의 :이달 초 교수들 성명에 대해 ‘원전 마피아’라는 비판이 탈핵 진영에서 나왔다.
- 응답 :“지난 1일 에너지 전공 교수들이 성명을 발표했을 때 우리가 한국전력 자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의 시녀인 양 매도당했다. 성명에 서명한 230명 교수 중 원자력 전공은 절반이 안 되는데도 말이다. 우리가 원자력이라는 학문과 제자들, 원자력 기술·산업의 앞날을 걱정해 단체행동에 나선 걸 밥그릇 챙기기라고 욕한다면 달게 받겠다. 과거 열댓 명의 원전부품 납품 비리를 10만 원자력 종사자의 전형인 양 욕했고, 이번에는 학자와 전문가들의 호소를 원전 마피아로 매도했다.”
- 질의 :원전론자와 탈핵론자의 화해 지점은 어디일까.
- 응답 :“신재생에너지는 비싸다. 풍력 1㎿ 생산시설에 25조원, 바다에 세울 경우는 50조원이 든다. 집 지붕에 태양전지라도 올리는 사람은 그래도 집 한 채 소유주 아닌가. 신재생에너지는 가진 자의 비즈니스다. 그런데 원전이 LNG·신재생에너지로 대체돼 전기료가 올라가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계층은 서민과 영세자영업자·중소기업이다. 원전을 줄이면 보수적으로 잡아 전기료가 20~30% 오른다. 신재생과 원전이 함께 가야 한다. 현 정부 정책 일정을 보면 원자력뿐 아니라 석탄도 이른 시일 내에 발전시장에서 퇴출될 듯하다. 석탄은 지구상에 부존량이 많은 에너지원이다. 석탄 활용 기술은 앞으로도 소중하게 유지·발전시켜야 한다. 에너지원이 없는 나라가 기술 자체를 죽일 수 있는 정책을 순식간에 결정하는 것을 보면서 공학도로서 안타깝다.”
황주호 한국원자력학회장은 …
상아탑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인 원자력에 관해 사회와 소통하고 정책 개발에 간여해 온 참여형 학자다. 경기고와 서울대 원자핵공학과를 나와 미국 조지아텍에서 핵공학 박사를 받았다. 방사선 및 방사성폐기물 분야로 해외 박사를 취득한 첫 사례다.
한국원자력연구소 선임연구원 등을 거쳐 경희대 부총장(원자력공학과 교수)으로 재직 중이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장,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국가주도기술 전문위원장, 한국에너지공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노무현 정부 때 지속가능발전위원회에서 반핵학자 등과 1년 머리를 맞댄 끝에 당시 뜨거운 감자였던 사용후 핵연료의 관리 정책 및 공론화 방안을 도출해 냈다. 에너지기술연구원장 3년간은 원전 이외에 석유·가스·석탄·신재생에너지 등 에너지 전반에 관한 연구와 정책 개발에 힘썼다.
한국원자력연구소 선임연구원 등을 거쳐 경희대 부총장(원자력공학과 교수)으로 재직 중이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장,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국가주도기술 전문위원장, 한국에너지공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노무현 정부 때 지속가능발전위원회에서 반핵학자 등과 1년 머리를 맞댄 끝에 당시 뜨거운 감자였던 사용후 핵연료의 관리 정책 및 공론화 방안을 도출해 냈다. 에너지기술연구원장 3년간은 원전 이외에 석유·가스·석탄·신재생에너지 등 에너지 전반에 관한 연구와 정책 개발에 힘썼다.
홍승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