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政治.社會 關係

[기자의 시각] 분노? 무관심이 더 무섭다

鶴山 徐 仁 2016. 11. 8. 18:16


[기자의 시각] 분노? 무관심이 더 무섭다




    입력 : 2016.11.08 03:13


    오윤희 국제부 기자
    오윤희 국제부 기자




    지난 5일 광화문광장에 모인 4만여명(경찰 추산)은 대부분 평범한 시민이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 어린아이를 목말 태우고 나온 젊은 부부, 교복을 입고 나온 중·고등학생도 있었다. 이들을 광화문으로 모이게 한 것은 비선(秘線) 실세의 꼭두각시 노릇을 한 대통령과 거기에 동조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했던 정치인들을 향한 분노였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것을 허무하게 만들어 버린 최순실 일가를 향한 분노였고, 그런 일을 가능하게 만든 이 사회를 향한 분노였다. 그 분노의 힘이 그들을 광화문광장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사회와 정치권을 향한 국민의 좌절감이 항상 '분노'라는 형태로 표출되지는 않는다. 지난달 31일 스페인의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는 300여일 만에 무정부 상태를 끝내고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작년 12월 이후 두 차례 총선거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한 정당이 없어 10개월 이상 정부를 구성하지 못했던 스페인으로서는 커다란 결실을 본 셈이다. 그러나 막상 스페인 국민은 별다른 감흥을 보이지 않았다. 무정부 상태가 끝나기 전 AP통신은 "스페인이 장기간 정부를 구성하지 못하고 있지만, 신경 쓰는 국민은 거의 없다"고 보도했다. 정부의 무능과 정치인들의 고질적 부패에 질린 국민은 "정부가 있건 없건 무슨 차이인가"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5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2차 범국민행동' 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있다. /연합뉴스


    스페인보다 더 오래 무정부 상태를 겪었던 나라도 있다. '최장 기간 무정부 상태'라는 불명예스러운 세계기록도 갖고 있는 벨기에다. 2010년 민족주의 정당 새 플랑드르 연대(NVA)가 최다 의석을 차지하자, 주요 정당이 연정(聯政) 참여를 거부해 벨기에는 541일 동안 내각을 구성하지 못했다.

    벨기에 국민은 "정부가 없으니 나라가 더 잘 돌아간다"며 내각 구성조차 하지 못하는 정치권을 냉소했다. 하지만 정부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사이 사회 안전망엔 조금씩 균열이 생겼고, 국가 기능이 마비돼 있는 동안 벨기에에 테러리즘 세력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현재 벨기에 몰렌베크 지역은 '유럽의 테러리스트 양성소'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프랑스 사회운동가 출신 스테판 에셀은 2010년 92세에 쓴 책 '분노하라'에서 분노를 '참여 의지'로 해석했다. 시민이 분노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회와 정치 문제에) 참여할 기회와 의지를 상실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런 면에선 무관심보다는 분노가 사회에 훨씬 건전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국민이 정치권에 느끼고 있 을 분노의 수위는 그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역설적으로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분노가 차갑게 식어 무관심이 되고, 사회를 바꾸겠다는 의지가 무기력으로 변할 때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정치권을 향한 국민의 가장 무서운 심판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직도 자신의 안위와 책임 회피에 급급한 정치인들은 깨달아야 할 것이다.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