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강력한 브랜드의 힘… 창립 5년 만에 아시아 최고
입력 : 2016.08.27 03:05
[Cover Story] 호권핑 회장 반얀트리 호텔 앤 리조트
1984년 11월 아내와 함께 태국 푸껫 방타오만(灣) 해변을 거닐던 30대 싱가포르 출신 사업가 호권핑(何光平)은 암초로 둘러싸인 지형을 발견했다. 바닷물은 새파랗고 주변에 제대로 된 나무가 한 그루도 없어 이국적인 느낌이 들었다. 당시 하와이에서 리조트 사업이 붐을 일으키는 것을 알고 있던 그는 "푸껫에도 하와이 같은 리조트를 지으면 성공할 것"이라며 덜컥 부지를 매입했다. 하지만 호씨는 이후 푸껫에 대한 조사를 하면서 자신이 큰 실수를 한 것을 깨달았다. 그가 산 부지는 주석 탄광 개발로 심하게 오염돼 유엔개발계획(UNDP)이 '회복 불가능한 땅'으로 분류한 곳이었다. 물이 유난히 파란 것도 탄광에서 흘러나온 산성 성분 때문이었다. 위기를 맞은 호씨는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기회로 삼았다. 호씨 부부는 이 땅에 푸껫 토종 식물을 비롯해 7000여 그루의 나무를 심고 바닷물 정화에 나섰다. 그리고 10년 후인 1994년 '반얀트리(Banyan Tree)' 리조트를 세웠다. 인도인들 사이에 새 생명과 쉼터를 주는 나무로 알려진 반얀트리에서 이름을 따왔다.- ▲ 태국 푸껫에 있는 반얀트리 리조트는 반얀트리가 1994년 설립한 첫 번째 리조트다. /반얀트리 호텔 앤 리조트 제공
―반얀트리가 단기간에 아시아 최고 수준의 호텔 리조트로 성장한 비결은 무엇인가.
"반얀트리 성공의 핵심은 '소비자와 정서적인 교감'에 있다. 요즘 많은 대형 호텔에 가보면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다. 호텔 방에 들어가면 호화스럽지만 편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대다수 호텔이 단순히 '하루 잘 곳'을 제공하는 역할만 한다. 반얀트리는 고객의 감성에 울림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화려하게 치장해서 고객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보다 이용객의 지친 심신을 달래고 내 집보다 더 편하게 쉴 수 있는 리조트를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우리는 '럭셔리'란 말도 쓰지 않는다."
―반얀트리는 모든 객실에 개별 수영장을 두는 '올 풀 빌라(all pool villa)' 리조트를 최초로 설립해 유명해졌다. 이는 굉장히 럭셔리한 것 아닌가.
"1994년에 첫 리조트인 반얀트리 푸껫을 지을 때 부지가 바닷가에서 떨어져 있어 투숙객이 바다를 곁에서 느끼지 못했다. 이런 단점을 극복하려고 객실마다 별도 수영장을 뒀다. 수영장 주변에 벽이나 울타리를 쌓아 객실 이용객은 수영장에 앉아서 바깥 경치를 볼 수 있지만 바깥에선 안을 볼 수 없도록 설계했다. 비밀스럽고 사적인 분위기 때문에 많은 이용객이 풀 빌라를 좋아했다. 이후 새 반얀트리 리조트를 열 때마다 모든 객실에 수영장을 넣었다. 울퉁불퉁한 언덕이나 절벽에 리조트를 짓는 경우 사적인 분위기의 풀 빌라를 설계하기가 어렵지만 그래도 수영장을 설치한다. 그렇지만 객실마다 수영장을 짓는 것이 럭셔리한 리조트로 보이기 위한 것은 아니다."
- ▲ 호권핑 회장 반얀트리 호텔 앤 리조트
"다른 리조트에 가서 객실 수영장에 누워 있으면 외부에 그대로 노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얀트리는 객실 수영장을 고객이 마음 놓고 편하게 쉬면서 감정을 달랠 수 있는 장소로 만들기 위해 바깥에선 볼 수 없도록 설계한다. 내 어머니께서 홀로 반얀트리 리조트에 묵은 적이 있는데, 나중에 집에 돌아와 나에게 속삭였다. '팔십 평생 처음으로 옷을 다 벗고 수영하고 일광욕도 해봤다. 감히 상상도 못했던 일인데 말이야.'"
―호텔의 스파도 새로운 방식으로 개발했다고 들었다.
"과거 서양 호텔의 스파는 실험실 같았다. 마사지사들이 의사처럼 흰 가운을 입고 치료하듯 마사지를 했다. 친밀감이 부족했다. 반얀트리는 에어컨을 틀지 않고 새 소리와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마사지를 받는 상품을 개발했다. 동남아에선 맨발이 상대방에 대한 존경의 표시인 점을 감안해 마사지사들이 맨발로 손님을 맞이했다. 유럽의 호텔 전문가들은 너무 덥고 위생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반얀트리 스파는 소비자들의 감성을 붙잡았고, '아시안 스파'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호권핑 반얀트리 호텔 앤 리조트 회장은 현재 싱가포르 혁신 기업인의 아이콘이지만, 과거엔 '반항아'의 길을 걸었다. 호 회장은 미국 스탠퍼드대 경제학과에 들어갔으나 학생운동을 하다 쫓겨났다. 그는 싱가포르에 돌아와 경제잡지 기자로 활동하다 정치적으로 선동적인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두 달간 감옥살이를 했다. 출소 뒤 그는 아내와 함께 홍콩 남서쪽의 작은 어촌 룽수완(榕樹灣)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룽수는 중국어로 반얀트리를 가리킨다.
- ▲ 몰디브에 있는 앙사나 리조트. 앙사나는 반얀트리 그룹의 가족형 리조트 브랜드다. /반얀트리 호텔 앤 리조트 제공
"내 아버지는 일본 샤프의 전자계산기와 미국 나이키의 운동화를 만들어 납품했다. 하도급 공장이었다.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내가 가업을 물려받아 태국에 신발 공장을 열었는데, 1년 만에 문을 닫아야 했다. 선진 기업들이 태국보다 인건비가 저렴한 인도네시아로 주문을 돌렸기 때문이다. 그때 나만의 독보적 기술이 있든가, 강한 브랜드가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얀트리도 이런 철학에서 시작했다. 우리는 기술 업체는 아니므로 강력한 브랜드 가치를 내세웠다. 그렇다고 비싼 리조트를 만들자는 것은 아니었다. 남들보다 더 싼 요금을 받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경쟁력이 되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얘기다." -다른 호텔에 비해 광고를 적게 하면서 어떻게 브랜드 힘을 키웠나.
"입소문(word of mouth) 덕분이다. 소비자들은 고급 리조트를 선택할 때 잘 꾸며진 광고보다 최근 리조트를 다녀온 사람의 솔직한 체험기를 더 중요하게 본다. 반얀트리를 이용한 소비자들이 가족과 친구들에게 '정말 좋은 곳에 다녀왔다'고 말하는 것이 광고보다 10배 넘는 효과가 있다."
-고객이 감동하는 데 수영장과 스파만으론 부족하지 않은가.
"반얀트리 리조트 직원들의 능력은 경쟁 업체에 비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솔직히 말해 호텔 업무는 정말 힘들다. 겉으론 화려하지만, 엄청난 노동을 해야 한다. 무거운 짐을 나르고, 주말에도 쉬지 못하며, 밤늦게까지 일하기도 한다. 호텔 서비스에 불만족한 손님이 하루 종일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 반얀트리는 경쟁 호텔보다 직원들의 급여를 인상하고 복지도 개선했다. 직원들이 여러 국가의 반얀트리 리조트를 옮겨 다니며 일할 수 있게 했다. 직원들이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이용객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2011년 태국 방콕에 대규모 홍수로 이재민이 발생했을 때, 호 회장은 반얀트리 방콕 호텔 객실 50개를 이재민이 된 직원 가족 300명에게 두 달 넘게 개방했다. 매출은 줄었지만 반얀트리는 돈보다 직원들을 먼저 챙기는 기업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최근 반얀트리는 하위 브랜드를 만들어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데, 이유가 있나.
호 회장은 지금도 세계 곳곳을 다니며 새로운 리조트 부지를 탐색하고 있다. 좋은 위치를 선점하는 것이 리조트의 성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는 "손님의 입에서 '우와'하는 탄성이 나올 수 있는 부지를 찾느라 지금까지 해변 1000여 곳을 가봤다"고 말했다.
-리조트 부지를 선정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반얀트리는 자연 지형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두면서 설계하기 때문에 자연과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창업할 때부터 생태보호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처음 푸껫에서 주석 탄광으로 폐허가 된 곳을 정화하고 복구 작업을 하면서 자연을 파괴하는 것도, 보호하는 것도 우리 손에 달렸다는 것을 알게 됐다. 몰디브에 리조트를 지을 때는 거북이들이 해변에 와서 알을 낳고 떠나는 것을 봤다. 나중에 알에서 태어난 수백 마리의 새끼 거북이들이 혼자서 바다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수가 죽는다. 반얀트리는 그때부터 여러 리조트에서 거북이 보호실을 운영하며 알에서 깨어난 새끼들이 바다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30년 후 반얀트리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 반얀트리는 작지도 않지만 크지도 않은 애매한 위치에 있다. 아프리카 영양들은 매년 떼를 지어 강을 건넌다. 대다수 영양은 강을 건너는 데 성공하지만, 일부는 악어에게 잡아먹힌다. 반얀트리는 이 영양들처럼 지금 강을 건너고 있다. 인터콘티넨털이나 스타우드만큼 큰 규모의 호텔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작은 규모는 아니다. 내가 30년 후에도 이 자리에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여행의 낭만을 느끼게 하고 감동을 준다는 기업 가치와 사람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문화를 지켜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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