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기적들
글쓴이 : 지만원 |
하늘이 돈쪽만한 산골에서 어리광으로 자란 13살 막내가 하루아침에 서울로 올라온 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기적이었다. 중고등학교 6년 중 다니다 말다 야간으로 겨우 3년간 학교에 나간 후 육사에 간 것도 기적, 키가 2-3미리 모자라 불합격 도장을 찍었는데 판정관 소령이 나타나 "요놈은 신발을 신고 키를 재라" 해서 합격, 몸살을 앓아 몸무게가 모자라 불합격 도장을 찍었는데 한 대령이 나타나 물을 먹였고, 그래도 안 되자 하사관이 대령의 얼굴을 보아 합격시켜 주었다. 이건 내가 생각해도 기적이었다. 사관학교 졸업 후 야전과 전쟁터와 고급사령부에 근무하면서 책을 놓은 지 9년 만에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유명한 미해군대학원 경영학 석사과정에 가게 된 것도 기적, 문과 석사에서 응용수학 박사과정으로 점프하여 학위를 받은 것도 기적이었다. 이것은 비단 나만의 기적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미 해군대학원 전체의 기적이었다. 더구나 박사논문에서 수학분야의 최고급과정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수학공식 두 개와 정리 6개, 알고리즘 1개를 창조한 것은 나도 놀랄 기적이었다. 중령시절 국방연구원에 근무하면서 전군에 5 년동안 예산개혁을 촉발-주도했던 것도 기적, 2억 5천만 달러짜리의 공군의 방공자동화사업을 단돈 25달러 가치도 없다 하여 군을 떠들썩하게 한 죄(?)로 몇 사람들의 미움을 사 자의 반 타의반으로 대령예편을 하자마자 미 국방성의 초청으로 미국에 가고 거기에서 바로 모교인 미해군대학원에서 교수를 한 것도 기적이었다. 1991년 처녀작인 “70만경영체 한국군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책을 써서 소설을 제끼고 베스트셀러 1위를 7주간 연속한 것도 기적, 전국구 자리, 장관 자리, 국영기업체 자리 제안을 모두 뿌리친 것도 기적이었다. 사람들의 정체를 모르던 시절, 김대중, 임동원 등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을 향해 “너는 빨갱이”하고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은 사실들도 기적이었다. 18만쪽에 달한다는 역사바로세우기재판 수사자료 및 재판자료를 5년 동안이나 집요하게 분석하여 12.12와 5.18의 진실을 밝히고, 북한자료들을 입수하여 5.18광주에 북한 특수군이 왔다는 것을 증명해낸 것도 기적이었다. 세계적인 영상분석 능력을 보유한 영상분석 팀장 ‘노숙자담요’를 만나 477명의 광수를 찾아낸 것도 기적, 이후의 팀워크 체제를 갖추게 된 것도 기적이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과거를 살 때에는 어렵고 고통스러웠지만 지나고 나면 넓고 아름답다고, 하지만 내가 살았던 인생길은 뒤돌아 볼 때 더욱 아슬아슬한 벼랑길이었다. 마츠시타 고노스케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자기 일에 몰두하는 모습’이라 했다. 내가 수많은 벼랑길을 걸으면서 추락하지 않은 것은 언제나 정의와 의협심에 나를 내던지는 모습을 아름답게 지켜보는 우군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령 때 전라도 육사출신 10년 선배 대령을 만나 고과점수 최하위를 받았지만 진급심사에 참여했던 여러 대령님들이 나를 중령으로 특진시켜주었다. 나는 늘 정도를 걸으면서 불의에 도전했다고 장담한다. 아무런 배경도 없는 내가 소위 때 대위를 패버렸고, 중위 때 정일권 애첩의 동생을 패버리면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이때마다 주위에는 항상 나를 돕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쓴 보고서로 인해 김인기 공군총장과 이기백 국방장관이 전두환 대통령에 불려가 혼쭐이 났으니 이들이 어찌 일개 육군대령을 가만 둘 수 있겠는가? 내가 생각해봐도 나는 겁 없는 인간처럼 살았다. 그런데 미국 국방성에서 단 한차례 세미나를 가졌던 사람들 중, 나를 향해 “당신 같은 사람 한국이 안 쓰면 미국이 쓰겠다”며 충분한 과제비를 주어 미국방성과 미해군대학원에 근무하게 해준 고위관리를 만난 것도 믿기 어려운 기적이었다.
2016.7.27. 지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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