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견의 몽유도원도
▲ 안견, 몽유도원도(조선 1447년, 38.6 x 106.0cm 일본 덴리대도서관
▲ 몽유도원도 전도
▲ 안평대군의 발문
한국미술사의 불후의 명작인 안견(安堅)의 <몽유도원도 夢遊桃源圖>는이제까지 국내에서 세 번 전시되었다.
1986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옛 조선총독부 건물에 재 개관할때 보름간 전시된 것이 국내를 떠난 뒤 처음 공개된 것이고,
1996년 호암 미술관의 "조선 전기 국보전" 때 두 달간 전시된 것이 두 번째이며, 2010년 "국립중앙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전"에 9일간 전시된 것이 세 번째다.
생각하기에 따라선 남의 유물을 가져가 놓고 빌려주는데 뭐 그렇게 인색하냐고 원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소장처인 일본 덴리대(天理大) 도서관은 상설전시는 절대로 하지 않고 대여해주는 일도 거의 없을 정도로 작품 보존에 엄청난 신경을 쓰고 있다.
안견이 안평대군의 청을 받아 이 그림을 그린 것은 1447년의 일이다. 그러니까 560년이 넘은 작품이다.
흔히 "견오백지천년(絹五百紙千年)"이라고 해서 비단은 오백 년 가고 종이는 천 년 간다며 무생물도 수명이 있음을 말하곤 하는데 <몽유도원도>는 신기할 정도로 보존 상태가 완벽해서 마치 어제 그린 그림 같다.
몽유도원도, 즉 "꿈속에 도원을 노닐다"라는 이 그림의 내력은 안평대군이 발문에 밝힌 바대로 그의 꿈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정묘년(1447) 4월 20일 밤, 깊은 잠 속에 꿈을 꾸었다. 박팽년과 더불어 깊은 산 아래 당도하니 층층이 묏부리가 우뚝 솟아나고 깊은 골짜기가 그윽하고도 아름다웠다.
복숭아꽃 수십 그루가 있고 오솔길이 숲 밖에 다다르자 어느 길로 갈지 모르겠는데 산관야복(山冠野服)의 한 사람이 북쪽으로 휘어진 골짜기로 들어가면 도원이라고 하여 박팽년과 말을 달려 찾아갔다.
산벼랑이 울뚝불뚝하고 나무숲이 빽빽하며 시냇물은 돌고 돌아서 거의 백 굽이로 돌아 사람을 홀리게 한다.
골짜기로 들어가니 도화 숲이 어리비치고 붉은 안개가 떠올랐다. 박팽년은 참으로 도원경이라며 감탄했다.
곁에 두어 사람이 있어 짚신감발을 하고 실컷 구경하다가 문득 잠에서 깨었다.
이에 안견으로 하여금 그리게 하였더니 3일 만에 완성되었다.
비해당의 매죽헌에서 이 글을 쓴다."
그림의 구도를 보면 안평대군의 꿈대로 화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무게중심을 옮겨가면서 험준한 산세가 이어지고 그 사이로 흐르는 그윽한 시냇물을 따라가다 보면 마침내 아름다운 복숭아꽃이 핀 마을에 다다른다.
꿈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니만큼 구도가 몽환적이며 도원경의 느낌과 신선다움으로 가득하다.
필치는 강하면서도 부드러운데 비단 깊숙이 먹빛의 강약이 스며 있어 역시 명작은 세부 묘사가 아름답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더욱이 그림에는 안평대군의 제발(題跋)이 붙어 있고, 연이어 김종서, 신숙주, 이개, 하연, 고득종, 서거정, 정인지, 성삼문, 김수온, 박연 등 당대의 문인 20명의 제시(題詩)가 들어 있으니 새삼 그 가치를 말할 필요가 없다.
이는 미술사, 서화사를 넘어 문화사적으로 국보 중 국보라 할 만하다.
덴리대도서관도 그 가치를 잘 알고 있어 1980년대에<몽유도원도>의 정밀한 복제본을 만들었다. 고구려의 화승(畵僧) 담징(曇徵)이 그린 호류지의 금당벽화가 불타버렸지만 다행히 복제본이 남아 있었던 것을 전례로 삼은 것이라고 한다.
10년 전 필자는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위촉으로 해외문화재를 조사할 때 덴리대도서관 수장고에서<몽유도원도>의 진본과 복제본을 한자리에서 배관(拜觀)한적이 있었다.
그때 도서관장이 두 점을 동시에 펴놓고 보여주는데 어느 것이 진품인지 알 길이 없었다.
다만 시축(試軸)에서 신숙주의 시 중 제8행에 "요지로 가는 길" 이라는 글귀를 보니 원본은 종이를 덧붙이고 땜질한 자국이 남아 있으나 복제본은 땜질 자국을 그림으로 나타내어 구별할 수 있었다.
귀신같은 복제술이었다.
덴리대도서관은 웬만한 전시회에는 복제본을 대여해준다고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도 똑같은 복제본이 한 점 소장되어 있다.
- 유홍준의 국보순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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