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政治.社會 關係

서영교와 김수민 스캔들의 後果 외 1

鶴山 徐 仁 2016. 6. 27. 16:34

조갑제닷컴





서영교와 김수민 스캔들의 後果

야당, 민주화 운동 출신, 진보세력, ‘새 정치’ 운운은 더 이상 성역(聖域)도 아니고, 正義의 총판(總販)도 아니고, 언터처블도 아니다.

류근일(블로그) 



서영교와 김수민. 서영교는 학생위원장 출신으로 중년이 돼 금배지를 달았다. 김수민은 서영교보다 훨씬 이른 갓 서른에 금배지를 달았다. 그러면서도 이 둘을 둘러싼 스캔들이 두 야당에 끼치고 있는 ‘후과(後果)’는 아주 비슷하다. 어떻게?
 
 여당은 이승만 박정희 이래의 더러운 세력-반(反)민주-반(反)민족-반反)민중-유신부활-부정부패-친(親)재벌-친미친일-사대매국-전쟁 세력-헌 정치 집단이고, 반면에 야당은 깨끗한-거룩한-신성한 세력-반(反)이승만 독재-반(反)박정희 유신-반(反)전두환 신군부-민주-민족-민중-반(反)신식민주의-정의-진리-평등-평화-새 정치 세력이라고 하는 케케묵은 ‘전설’에 다시 한 번 “헛소리 그만” 하고 감자를 먹인 점에서 바로 그렇다.
 
 이제 정의는 아무 데도 없다. 정의를 독점했다고 자부-자처-자임할 특권계급이 완전히 없어졌단 말이다. 옛날 옛적엔 정의와 진리를 혼자서 장악했다고 뽐내던 고생대 인류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민주화와 진보만 내세우면 그런대로 ‘인정’을 받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아니다. 이렇게 된 데엔 두 가지 경로가 있었다. ‘민주화운동가들의 기여+산업화세대에 의한 민주화의 물질적 토대 구축+세계사의 진운’으로 인해 민주화란 다급한 구호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 ‘세상의 변화’가 우선 그 하나다.
 
 또 하나는, 왕년의 민주화 운동가들의 기득권화, 권력화, 세속화, 타락사례, 구닥다리 화(化), 지적(知的) 노후화, 떼거지 문화, 전체주의적 사고(思考)의 잔재, 반(反)세계시장-반(反)근대주의(anti-modernity), 기타 등등이 그들의 지적(知的)-도덕적-문화적 생명력을 스스로 말라죽게 만든 ‘자살 꼴’을 꼽을 수 있다. 가만 내버려 뒀는데도 그들 스스로 나태해지고 정신적으로 늙어버리고, 욕심이 생기고, 얼굴 두꺼워진 탓이랄까.
 
 서영교의 경우는 그 자신이 얼마나 시인했는지 몰라 여기서 함부로 단정할 순 없지만, 대체로 가족들을 ‘금배지의 향연’에 불러들였다는 점이다. 족벌주의(nepotism)였던 셈이다. 이는 학생운동을 비롯한 모든 '정의를 위하여!' 운동 출신들로선 득세(得勢) 후에 절대로 해선 안 될 대표적인 부도덕 -불명예-불미 사례라고밖엔 할 수 없다. 박완주란 야당의원은 “무시하세요…”라고 서영교에게 격려의 문자를 보냈다지만, 글쎄 그걸 그렇게 간단히 무시해버릴 수 있을지?
 
 김수민의 경우는 현재 수사 중인 사건이라 멀리는 이다음 대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는 뭐라고 판단을 하기가 그렇게 쉽진 않다. 다만 현재까지 알려진 바대로 그녀가 당(사무부총장?)의 지시대로 움직였을 뿐이라고 한 그녀 측 자복(自服)대로라면 이 사건이 국민의 당과 안철수의 ‘새 정치’에 끼얹을 흙탕물의 강도(强度)는 히로시마 핵폭탄 못지않을 것이다. ‘헌 정치’를 하는 집권당이나 ‘헌 야당’도 아니고, 그 둘의 더러움을 다 같이 매도하는 데서 자신들의 탄생의 이유와 존재의 근거와 존립의 명분을 세워온 ‘새 정치’ 주역들에게는 그야말로 이 사건은 장희빈이 마신 사약(賜藥)만큼이나 ‘죽을 맛’일 것이다.
 
 두 야당이 이 문제에 끝내 함구하거나, 딴전을 피우거나, 시침을 떼거나, 뻣대거나, 피해가거나, 반발하거나, 검찰 욕이나 하거나,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할 경우 그건 “남이 하면 스캔들, 내가 하면 로맨스” 소리나 자초할 뿐이다. 야당, 민주화 운동 출신, 진보세력, ‘새 정치’ 운운은 더 이상 성역(聖域)도 아니고, 소도(蘇塗)도 아니고, 면죄부도 아니고, 특권도 아니고, 독야청청(獨也靑靑)도 아니고, 정의(正義)의 총판(總販)도 아니고, 치외법권도 아니고, 언터쳐블(untouchable)도 아니다. 그저 자기들이 왕년에 대들었던 상대방이나 다를 바 없는, 똑같은 부정-부패-타락-누추함을 저지를 개연성을 함께 나누어가진, 그저 그렇고 그런 세속 정치 끗발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네들이 내세우던 ‘도덕적 우위’는 이미 오래 전에 없어졌다.
 
 
 류근일 2016/6/ 25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정치인들의 타락만큼 낮아지는 국민 수준

만약 스위스에서 실시된 '無償복지' 국민투표가 우리나라에서 실시되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문무대왕(회원) 



국회의원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요즘 언론에 오르내리는 도덕성에 발목 잡힌 일부 국회의원들의 모습은 너무 추해 보인다.
 
 리베이트와 가족 채용 등등… 이는 권력을 남용한 명백한 '甲질'이다. 당사자로 지목된 인사들은 '사려(思慮)깊지 못했다'느니 '관례' 운운하며 변명하는 데 급급하다.
 
 이런 사람을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하고 비례대표로 선정한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당'이 과연 정의(正義)를 말하고 도덕성을 말할 수 있겠는가? 이런 파렴치한 자들을 국회의원으로 선출한 유권자들 또한 민주시민의 양식(良識)을 가졌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과거 김영삼 정부가 한국의 국제화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 이화여대 K교수에게 용역의뢰한 보고서에 따르면, 스위스, 덴마크 등 선진국에 비해 우리 경제는 45%, 문화·교육은 15%, 정치는 5% 수준이었다고 한다. 2流도 안되는 3流 수준이었다.
 
 지금은 달라졌을까? 일단 정치권의 비리는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 나오니 정치인들의 수준은 거의 변한 게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럼 국민의 수준은 나아졌을까?
 
 얼마 전 스위스 국민들은, 한달에 300만 원씩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무상(無償)복지 국민투표에서 전체의 76.9%가 반대표를 던져 부결시켰다. 선진국 국민다운 시민의식이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스위스와 같은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면, 스위스와 전혀 상반된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백성들로부터 금품(金品)이나 뜯어 가는 탐관오리들을 척결하기 위해선 국민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치인들을 견제할 국민의 수준 또한 그리 높지 않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정치인들의 타락만큼 국민 수준도 거의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 2016-06-27, 15: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