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건강관리 마당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만 자랑합니다 외 2

鶴山 徐 仁 2016. 5. 19. 04:55
5월 18일 (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만 자랑합니다 고린도전서 1:22-31
   
 

(고전 5:9)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고전 5:10)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고전 5:11)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고전 5:12)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고전 5:13)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두 가지의 잣대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고 고린도교회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만일 (교회 안에서)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고 말합니다.

쉽게 말해서, ‘세상 사람들 가운데 죄를 짓고,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이라도 친구로 사귀라’고 말하면서, ‘교회 안에서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숭배를 하거나 술 취하거나 빼앗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사귀지도 말고, 함께 먹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먼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교회 안에 있는 형제가운데 이와 같은 죄를 범하는 사람은 무조건 사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자신이 죄를 범하고 살면서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합리화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을 사귀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요? 만약에 그 사람 지속적으로 교회 안에서 음행을 범하고, 죄를 범하면서도 스스로 회개하지 않는다면, 교회 공동체는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정체성을 흔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도 용기를 얻어서 죄를 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세상 밖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만나서 전도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에 그들과 사귀고 만나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세상의 죄를 기뻐하는 모습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잠수함이 되어야 합니다. 잠수함은 바다 속으로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잠수함에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잠수함은 가라않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 속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가장 낮은 자리, 가장 천한 자리, 죄인이 있는 자리에 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에 ‘죄’가 들어오면, 우리는 가라앉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똑같이 죄를 범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사도 바울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죄를 몰아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죄악 속에 깊이 들어가서 세상을 치유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사명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인 것을 확신합니다.

 
   
   
 

당신에게 세상에서 죄인이라고 불리는 친구가 있습니까? 만약에 없다면, 오늘 그런 친구에게 연락하고 복음을 위해서 교제해 보십시오. 그러나 아직 내안에 죄에 대한 유혹이 강하다면, 멈추십시오. 그렇다면, 오히려 내 안에 세상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을 달라고 구하십시오.

 
   
   
 

- 하나님! 우리가 거룩한 교회 공동체 안에서 머물러서 우리만의 구원을 이루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을 향해서 통곡하고 눈물 흘리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이 땅의 황폐함과 죄악의 관영함에 눈을 뜨고 기도하게 하소서!
- 주님! 아직 내 안에 해결되지 않은 죄가 있습니다. 그것을 합리화하고 반복하며 기뻐하는 죄가 있습니다. 오늘 내 삶에서 성령의 은혜로 죄를 이기는 능력을 부어주시옵소서!

 
   
     
 

인생의 전쟁에서 이기려면

인생은 전쟁이다. 물론 인생 전부가 전쟁은 아니다.
그러나 인생은 항상 전쟁이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중요한 이유는
이 사실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기도는 어둠과 불신의 세력에 대항해 전진하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교회 선교에 있어서는 전시용 무전기다.
우리에게 기도는 전방 전력이라는 중요한 의미이며,
하나님에게 드리는 기도는
무한히 공급하시는 자의 영광을 보여주는 통로가 된다.
-존 파이퍼의 ‘열방을 향해 가라’에서-

 
     
 
   
 


제자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지시를 받으며,
적진으로 침투하는 루트를 제공받습니다.
제자가 기도하지 않으면 전쟁 같은 인생 속에서
하나님의 지시를 받지 못하기에 적진으로 침투하지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정욕의 포로로 살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믿음의 전쟁을 죽을 때까지 치르면서,
결코 놓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기도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이 전쟁에서
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1서 5: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And if we know that he hears us--whatever we ask--we know that we have what we asked of him.

 
       
 
   
  금성교회 김호성 목사
  금성교회 김호성 목사
   
   



5월 17일 (화)
신앙인의 이웃사랑 야고보서 2:1-13
   
 

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7.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평생을 함께 지낸 가족간에도 어색하고 잘 모를 때가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다 아십니다.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생각까지 아시는 그분께 숨길 것이 없고, 진실하고 솔직한 기도를 드릴 때 응답을 주십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평가하기 참 어려운 존재입니다. 왜냐면 인간은 끊임없이 변하고 성장하기 때문에 사람을 선입견을 가지고 외적인 조건으로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즘은 외모지상주의에 함몰된 시대이기에 외적 조건으로 차별하고 평가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엄한 존재이고, 근본적으로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 시대는 모순된 사회로 빈부의 차별이 심한 구조에서 살아가지만, 예수님은 차별의 벽을 허물어 지극히 작은 자, 연약하고 힘이 없는 자에게 친구가 되어 주셨고, 남녀노소, 빈부귀천 누구를 막론하고 사랑하시고 구원하기 원하셨습니다.
야보고 기자는 교회 안에서는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1). 구원 받은 믿음의 공동체가 빈부에 따라 외모적인 모습으로 차별하고, 대우한다면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것이라고 경고합니다(2-4) 교회는 문턱이 낮아야 되며, 누구나 와서 은혜 받고 구원 받을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하며, 사회적 지위나 빈부에 따라 부류를 만들거나 차별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형제로 맞아들이고, 복음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을 하나로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신앙인들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항상 의식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십니다(5절). 비록 경제적으로 가난해도 하나님께 사랑받고 믿음에 부요한 자가 될 때 더 귀한 존재가 됩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될 때 영적으로 보이는 것들이 많고, 갈급함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신앙이 됩니다. 물질적인 부요함으로 인하여 교만하고 억압 착취한다면 큰 문제입니다. 반대로 삶의 태도가 게을러서 오는 가난의 경우와 거짓과 탐욕의 잘못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부가 아니라면 서로 비난하거나 차별할 것이 아니라, 존중하며 각자 있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성경은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는 것이 잘하는 것이고,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는 것이 죄를 짓는 것이며, 아무리 모든 율법을 다 지켰을지라도 이웃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면 모든 율법을 범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도 강조하고 있습니다(8-11). 크리스천 삶에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긍휼을 베푸는 것임을 말씀합니다(13) 그것은 빈부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거나 차별하지 않고, 친절하게 대하며, 존중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십시다. 그 결과 마지막 날에 그분께 칭찬과 상급을 풍성히 받은 은혜가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 사람들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고, 차별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고 고백하십시다.
- 나는 사람을 의식하고 사는지, 하나님 말씀따라 사는 자인지 점검해 봅시다.
- 이웃을 향한 나의 사랑은 어느 정도입니까? 긍휼을 실천하기를 결단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면서도 그동안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고 살았습니다. 용서해 주시옵소서. 이제는 하나님을 의식하고 말씀을 따라 살아가며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사는 아름다운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약함과 강함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약함이 아니라 강함을 숭상한다. 물론 1세기에도 마찬가지였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쓸 때 약함이 좋다는 게 그들에게 받아들이기 힘든 개념임을 잘 알았다. 고린도는 사치스러운 생활양식을 자랑하는 화려한 도시이자, 음란이 판을 치고 밤새도록 술 마시며 몸을 흔들기 좋아하는 방탕아들의 땅이었다. 그곳은 방종의 땅이요 인간의 능력과 성공을 강조하는 땅이었다. 현대의 대도시와 아주 흡사하다고 보면 된다. 이런 식으로 살면 오직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것에서 멀어지게 되어 있다. 바울은 약함이 하나님의 강하심을 경험할 수 있는 열쇠임을 어렵게 깨달았다.
-카일 아이들먼의 [나의 끝, 예수의 시작]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역설의 진리입니다. 역설의 진리는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만나는 상황에 대한 신앙고백이 다릅니다.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달라집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나라는 약함을 통해 강함을 부끄럽게 합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면 스스로 강함을 지키거나 유지하려고 합니다. 그렇기에 강함을 잃으면 스스로 무너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함을 통해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강하게 하십니다. 약함은 부끄러움이 아니며 하나님이 믿음을 설명하시는 방법입니다.

 
     
       
 

마태복음 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Therefore, whoever humbles himself like this child is the greatest in the kingdom of heaven.

 
       
 
   
  금성교회 김호성 목사
  금성교회 김호성 목사
   
   




5월 16일 (월)
부모, 넘치는 축복 창세기 48:8-16
   
 

8. 이스라엘이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 이르되 이들은 누구냐
9. 요셉이 그의 아버지에게 아뢰되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그들을 데리고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10. 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말미암아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두 아들을 이끌어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니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입맞추고 그들을 안고
11.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이 내게 네 자손까지도 보게 하셨도다
12. 요셉이 아버지의 무릎 사이에서 두 아들을 물러나게 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고
13. 오른손으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왼손을 향하게 하고 왼손으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향하게 하여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14. 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
15.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16.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인생은 기나긴 여행과 같습니다. 지나온 삶의 여정을 돌아보면 만나고 헤어지고, 기쁜 일과 슬픈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그 길을 가고 있고, 언젠가는 이 여행은 끝이 날 것입니다. 야곱도 우리 못지않게 굴곡의 삶을 살았습니다. 쌍둥이 동생으로 태어나 형만을 좋아하는 아버지로 인해 불만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이러한 편애는 야곱을 이익에만 밝은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야곱은 형의 약점을 이용하여 장자권을 빼앗고, 형이 몫인 아버지의 축복도 가로챕니다. 분노하는 에서를 보면서 리브가는 야곱을 오빠인 라반의 집으로 보내기로 결심합니다.
이삭은 야곱이 떠나기 전에 그를 향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생육과 번성의 복을 주시기를 축복합니다(28:3-4).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점입니다. 중요한 것은 축복하는 자도 받는 당사자에게도 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히11:6).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면 상황과 사람도 바꿀 수 있습니다. 불행을 행복으로, 불통을 형통으로, 실패자를 승리자로 바꾸시는 그 하나님을 바라보고, 붙들고, 기도하고, 충성해야 합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셔야 합니다(시편37:4)
야곱은 이 기도를 받고 외삼촌 집에서 20년간 살아갑니다. 아버지의 편애로 어린 시절을 힘들게 보냈던 야곱이었지만, 그 역시 많은 자녀들 중에 요셉만 편애하는 것을 보며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존재인가 봅니다. 형들은 요셉을 시기하여 대상들에게 팔아버리고, 아버지에게는 요셉이 들짐승들에게 찢겨 죽었다고 합니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처럼, 20년이 넘도록 야곱은 가슴앓이를 하며 큰 고통의 세월을 보냅니다. 그러나 요셉은 장성하여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연로한 야곱은 애굽으로 가서 아들을 만나게 됩니다. 볼품없는 유목민 노인이 천하를 호령하던 바로를 축복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생각하게 됩니다(47:7-10).
요셉은 아버지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녀들과 함께 병문안을 갑니다. 야곱은 그들을 보자 힘을 내어 침상에 앉습니다(48:1-2). 이후 야곱은 벧엘 언약을 상기시키며(창28), 요셉에게 넘치는 축복기도를 해줍니다(15-16, 창49:22).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을 아버지의 품에 안겨드리며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이 모습은 자녀인 우리가 부모님을 향한 효도의 모범이 됩니다. 연세가 드신 부모님이 원하시는 것은 값진 선물이나 용돈이 아니라, 손자 손녀들과 함께 찾아뵙고 안아드리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수고와 희생과 사랑을 알아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권으로 자녀에게 넘치게 복을 빌어주어야 합니다. 자녀는 요셉처럼 부모님을 공경해야 하고, 부모로부터 마음껏 축복기도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큰 유산이며, 하나님의 복을 대물림하는 사명이 부모에게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는 미래를 위해 심는 것이며, 심지 않고는 거둘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 나의 편애로 자녀들의 불만은 없는지요. 극복하기 위해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 부모로서 자녀를 축복하고 있는지요, 더 축복하고 싶은 내용을 정리합시다.
- 부모님을 공경함에 소홀함이 있었다면 지금 회개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짐합시다.

 
   
   
 

전능하신 하나님, 야곱처럼 욕심으로 살았던 저를 용서해 주옵소서. 이제 하나님 앞에서 축복의 계승자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공경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시옵소서. 우리 부모님의 건강과 믿음을 붙들어 주시어 주님과 동행하는 은혜를 주시옵소서.

 
   
     
 

헌신의 기쁨

가장 불행한 사람은 헌신할 대상이 없는 사람, 부를 노래가 없는 사람, 들어야 할 깃발이 없는 사람, 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 좋은 형편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 좋은 조건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가야 할 길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부를 노래가 있어야 합니다. 기꺼이 죽어 줄 수 있는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죽어 줄 대상이 있는 사람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은 헌신자를 찾으십니다. 지금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지, 어떤 형편에 있든지, 나이가 얼마든지 간에 이 시간에 하나님께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헌신하면 이곳에 갈까 저곳에 갈까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갈 길은 오직 한 길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용조의 [나는 선교에 목숨을 걸었다] 중에서-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헌신자입니다. 헌신자가 세상을 움직입니다. 헌신자를 통해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열정이 있는 헌신자는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헌신하였기에, 우리 역시 주님의 제자 되어 헌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내가 머무는 곳에서 헌신을 준비해야 합니다. 헌신이 없으면 손님처럼 살게 되며, 헌신을 잃으면 무기력에 빠지게 됩니다. 헌신은 우리의 생명을 건강하게 만듭니다.

 
     
       
 

시편 94:14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자기의 소유를 외면하지 아니하시리로다
For the LORD will not reject his people; he will never forsake his inheritance.

 
       
 
   
  비전교회 윤여재 목사
  창조정 명력의 위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