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ree Opinion

[넷향기] 공병호 박사의 "'Why?' 아닌 'How?'에 집중하라!" 외 3

鶴山 徐 仁 2015. 9. 22. 11:20

'Why?' 아닌 'How?'에 집중하라!
공병호

여러분 우리는 참 좋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저는 경남 창녕에서 강의가 있었고 저녁에는 서울에서 강의가 잡혀 있는 빡빡한 일정이었습니다.
과거에 우리가 새마을호를 타고 다닐 때는 창녕까지 4시간을 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2시간 2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으니깐, 당연한 얘기 같지만 대단한 시대에 살고 있는 셈입니다.
창녕 강연은 90분 강연이었는데 3시 20분에 반드시 마쳐야 하는 강연이었습니다. 그래야 4시 6분에 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연에 너무 몰입을 해서 3시 50분 정도에 강연을 마쳤습니다. 제가 착오를 한 것입니다.
4시 26분에 차를 탈 수 있을 것이다..는 판단 미스를 한 것입니다.

이제 제가 3시 50분에 강연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4시 6분 차는 탈 수가 없는 상황이였고 저는 상당히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관계 되시는 분들에게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하고 부랴부랴 차를 타고 밀양역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전화를 직원에게 걸었습니다. “이거 어떻하냐? 내가 50분 강연을 마쳤는데...” 제 얘기를 듣고 직원도 당황을 했습니다.

여러분 살다 보면 이렇게 황당한 상황들이 발생할 때가 있죠.
저도 삶을 야무지게 사는 편이지만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저녁 모임은 서울역 주변에 있는 장소였고 반드시 7시까지 참석해야 되는 모임이였습니다.

위급 상황이 발생 할 때는 절대 당황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죽는 문제가 아니면 세상에 그렇게 당황해야 할 일은 별로 없습니다. 이 두 가지를 여러분도 항상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에는 얼굴은 좀 구기겠지만 양해를 구하고 강의를 취소할 수도 있는 겁니다. 욕은 좀 먹겠지요 ^^ 그리고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저는 밀양을 가면서 생각했습니다. 밀양을 가면 차를 놓치고 동대구 역으로 가면 어떻겠나 싶어서 직원이 확인을 해보니깐 4시 55분차와 5시 10분차가 있었습니다.
4시 55분 차를 타면 충분히 강의장에 도착할 수 있겠다고 직원이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사분에게 물었습니다. 그때 시계가 4시 8분 정도 지나고 있었는데 기사 분 말씀이 밀양에서 동대구역까지 한 시간 10분정도 걸린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조금 빨리 달리기로 하고 운을 걸어봤습니다.

다행히 4시 47분에 내려서 4시 55분 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해서 7시 강연에 무사히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사건을 만나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 당시에 내가 만일 상당히 당황하고 내가 잘못했지만 직원에게 왜 강연 일정을 이렇게 잡았냐고 왜? 라는 부분에 집중 했으면 두 사람 다 열받았을 겁니다. 그리고 분명히 강연을 참석하지 못했을겁니다.

여러분 그래서 항상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면은 절대 ‘왜? why?’ 란 단어를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항상 ’어떻게?‘ 라는 why? 대신에 How?라는 단어를 가지고 자신과 대화를나누고 타인과 대화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그날 why가 아니고 How에 집중했기 때문에 우리는 동대구역이라는 대안을 선택할 수 있었고 그것을 통해서 강의장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던 겁니다. 여러분 제가 말씀 드리는 네 가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위급 상황이 발생하면 절대로 당황하지 말 것
두 번째 죽는 상황이 아니라면 세상에 그렇게 위급한 것은 없다!
세 번째는 Why? 대신에 항상 How?라는 부분을 가지고 고민을 하시고 자기 자신을 추스릴 것
네 번째는 지나치게 자책하지 말 것

사람을 실수나 실패를 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항상 주어진 상황 속에서, 이미 엎질러진 물에 대해서 선택 가능한 대안에 대해서 좀 더 넓게 생각해 보시고 그 가운데서 신속하게 대처를 하실 수 있으면 일차 방어선이 무너지더라도 2차 3차에서는 그와 같은 부분들을 보호 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일을 통해 실수나 실패도 어쩌면 더 큰 실수와 실패를 피할 수 있는 좋은 길잡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좋은 기회였습니다.

 

 

 

 

 

공부, 즐거울 수 있나?
이시형

지난 시간에 공부는 즐겁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많은 시청자 여러분으로부터 “박사님은 박사니까 즐겁지요.” 그런 항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공부가 즐겁다는 것은 믿으셔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공부란 것을 다 잊어버리고 ‘우리가 무엇을 하니까 즐겁더냐?’ 라는 문제를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뇌는 새로운 변화를 좋아합니다.
맨날 똑같은 일만 하니까 지겹지요. 권태에 빠지고, 소위 매너리즘에 빠집니다.
‘어린이들이 왜 그렇게 즐거우냐?’ 어린이들 눈에는 무엇이든지 신비롭고, 새롭기 때문에 호기심에 찬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나이가 들수록 맨날 보던 것이니까 ‘아이구 지겹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공부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새로운 것을 익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새로운 것을 접한다는 것이 즐거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뇌는 새로운 변화를 좋아한다. 이것이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공부라는 것이 힘듭니다. 사실 공부라는 것이 쉽지가 않지요.
그러나 그 힘든 것도 조금만 참으면 됩니다.
달리기 해보셨나요? 달리기, 마라톤을 할때 보면 퍼스트 윈드, 세컨드 윈드라고 하지요. 힘든 고비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비만 조금만 참고 넘기면 그다음부터는 상당히 편해집니다.
그것을 “Runners’ High." 달리는 사람이 고양된 기분으로 된다. 별로 고통스럽지가 않습니다.
마라톤 선수가 우리처럼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우면 어떻게 42.195Km를 달릴 수 있겠습니까?
조금만 참으면 그다음부터는 상당히 좋아지듯이, 생각하는 사람도 그 순간을 넘기면 상당히 편해지는 것입니다.
공부하다보면 졸리고, 지겨워도 그것만 잘 넘기면 한 시간, 두 시간은 잘 견디고 졸리지 않는 이런 경험을 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심리적으로 Red Zone이다. 붉은 지역이다. 조금 위험한, 그렇다고 생명이 위험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상당히 정신적으로 힘든 고비만 잘 넘기면 그다음부터는 좋아지는 것입니다.
뇌는 그런 힘든 것을 했다는 생각이 들때 굉장한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고 좋아합니다.
뇌라는 것을 항상 편한 것만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 힘든 것을 했다는 자부심도 뇌가 좋아합니다.

그다음에 뇌가 좋아하는 것은 발전과 성장을 좋아합니다.
우리가 공부를 하면서 익히면 무언가 한 걸음 한 걸음, 내가 입학시험에 합격을 했다든가, 무슨 시험이든지 정말 먼 인생의 목표를 위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먼 목표가 있어서 한걸음 다가설 때 무언가 나의 미래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굉장히 내가 성공한 미래상, 입시에 합격한 미래상도 좋겠지요.
그렇게 되면 여러분들은 당장 힘들어도 발전과 성장을 한다는 느낌이 있을 때는 우리 뇌는 완전히 심포닉한 무드로 약간 고양된 상태에서 흥분상태가 유지되고 대단히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 다음에 뇌는 불확실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수학도 너무 쉬운 것은 재미 없지요. 퍼즐을 풀어도 너무 쉬운 것은 재미가 없습니다. 너무 어려워도 안되지만 아슬아슬하게 적당한 긴장을 좋아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무슨 공부를 할때도 너무 목표가 크거나 너무 시시해도 재미가 없습니다.
적절한 부하를 걸어준다는 것이 굉장히 도전적이고 우리 뇌를 의욕적으로 만드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가 있습니다. 

그다음에 공부라는 것은 하나의 지적 작업을 주고 지적 쾌감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공부를 할 때 ‘아하! 이것이 그래서 그렇구나.’ 심리적으로 아하 반응이라고 합니다.
아하! 무릎을 탁치는 지적인 쾌감을 받았을 때에는 머리에 불이 번쩍 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젊음과 건강의 비결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강화학습이라는 말, 조금 어렵습니다.
공부라는 것이 어렵지만 일단 시작하면, 지난시간에도 작업 흥분이라는 것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상하게 자기도 모르게 빠져 들어가요. 공부에 재미가 붙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되면 보상물질이 분비가 됩니다. 도파민, 세로토닌과 같은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기분이 좋아요.
아주 재미가 있고. 그렇게 반복을 하게 되지요. 그러면 습관이 됩니다.
자꾸 목표에 한걸음 한걸음 다가간다는 발전과 성장, 달성감이 들면 ‘기분 좋다.’ 는 긍지와 자부가 생기기도 하지요.
이런 것을 강화 학습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적당한 Pressure를 주는 것, 압력을 주는 것도 뇌는 좋아합니다.
항상 편한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이겨냈을 때를 뇌는 좋아하기 때문에 또 공부를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완전히 경지에 빠져들게도 만듭니다.
이것을 플로우(Flow)라고도 이야기를 하지만, 이런 모든 것들이 바로 공부로부터 얻어지는 즐거움들입니다.
그러니까 공부가 즐겁다는 것은, 제가 이야기 했던 몇가지 사실들처럼 정말 뇌가 즐거운 것입니다.
고로 공부는 즐겁다는 저의 결론에 여러분 찬성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이요셉

저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상담을 많이 합니다.
사람들이 참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할 때가 많아요. “이것만 없었으면, 이 상처만 없었으면, 누구와 만나지 않았으면….” 이런 마음을 많이 갖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어느 죄수가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하루가 너무너무 시간이 가지 않는 거예요.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하다 보니까 벽면에 낙서가 많이 되어 있는데, 그 낙서의 내용 중에 하나를 보니까 이런 내용이 적혀 있더랍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그런데 그 단어가 자기 삶에 큰 용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주 힘이 들고 어려울 때마다 그 글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대요.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참 재미있게도 시간이 잘 지나가더래요. 1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또 힘들고 지루할 때면 그 단어를 되뇌었대요.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그 사람이 감옥에서 출소하게 되었습니다.
사회에 나가서 생활하다 보니까 너무나 힘든 것이 많은 거예요. 이렇게 힘들고, 저렇게 힘들고…. 힘들 때마다 또 외쳤다고 합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근데 그 힘들고 어려웠던 것이 지나가더라는 것이죠.

그런데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서 병원에 갔더니, 거기에서 의사 선생님이 “당신은 암에 걸렸습니다. 삶을 정리하셔야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너무나 큰 절망의 상황 속에서 그 사람은 또 말하기 시작합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그러면서 투병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몸에 좋다는 음식을 먹기도 하고, 희망과 용기를 갖고 열심히 생활하다가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난 어느 날 병원에 갔대요. 그랬더니 의사 선생님이 말하더랍니다.
“암이 지나갔습니다.”
그 삶 속에서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계속 그 말을 되뇌었다고 합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허허.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허허.”
삶의 아픔이 올 때마다 삶의 상처가 올 때마다 계속 말했대요.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허허.”
이 사람이 인생의 마지막에 생을 정리하는 그때에 아들과 딸을 모두 모아 놓은 다음 마지막 유언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 마지막 유언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귓속말로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삶의 죽음도, 삶의 두려움도 다 지나간다는 것이지요.

군대에서 생활할 때 그쪽으로 오줌도 누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인생 최고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버리잖아요.
저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면 내 삶을 멋지게 살았을 것인데, 하지만 그 사람을 만났던 아픔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을 도와줄 수 있기도 하고요.
저는 삶 속에서 공부를 못했었거든요. 시험 치면 떨어지고, 재수하고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그런데 이제 저는 공부를 못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아요. 제가 공부를 못해 봤기 때문에.
저는 키가 작기 때문에 키가 작은 사람의 아픔을 안다는 것이죠.
우리가 생각할 때 너무나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그 마음속에서 그것들이 추억으로, 다 지나간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정말 삶이 멋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경기가 어렵다, 환율이 어떻다, 너무나 어렵다고 말하지만 이것도 지나가거든요.

제가 어느 서비스 회사에 갔습니다. 고객이 너무 괴롭힌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말을 알려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여직원이 고객이 불평할 때 이렇게 속으로 말을 했답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그런데 갑자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하고 마음속에서 평화가 올라오기 시작하더랍니다.

여러분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이 힘든가요? 너무나 어려운가요? 그때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하면서 함께 웃어 버린다면 삶이 멋지지 않을까요?
한번 해 보자고요. 힘들고 어려웠던 사건과 일들을 떠올리면서 이렇게 해 보는 겁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하하하하하하하.”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여러분, 오늘도 모두 다 지나갑니다. 내 마음속에서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느끼려면 다시 한 번 말해 봅시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엄마의 따뜻한 젖가슴을 제공하라
이병준

지난주에 ’영원한 어린아이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드렸었죠? 그럼 그 남편을 어떻게 대할까? 거기에 대한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엄마의 따뜻한 가슴을 제공하라." 그냥 가슴이 아닌, 젖가슴을 제공하라는 얘기입니다.

이런 노래 기억하십니까?
“그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늘은 울고 싶어라~”
가수 김수희 씨의 ‘애모’라는 노랩니다. 나중에 보면 ’당신은 나의 남자다’라는 얘기가 나오지만, 사실 이 노래는 여자가 남자를 향해서 부르는 노래라기보다 남자의 노래라고 해야 옳을 듯 싶습니다.
관계적으로 볼 때 아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싶은 대상은 바로 남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남자들은 나이 들수록 지독한 외로움의 공격을 받기 때문입니다.

특히 인생의 하프타임을 넘어서 나른함이 찾아오는 오후 3,4시의 시점의 나이가 50세 정도입니다.
그때쯤이면 속에서 본질적인 외로움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것을 인정하기 싫은 남자는 계속 일을 한다든지, 목표를 향해서 달려간다든지, 아니면 영웅으로 남아있는 방식을 선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영웅이 되고 나면 외롭지 않아도 되고 용기가 가득 차 있고, 주도면밀하게 앞서가면 되니까. 이래서 남자가 50이 되면 감투가 50개라도 모자란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외로움이 있어도 선뜻 관계 속에 나오지 못하는 것은 누군가 받아줄 안전성(safety)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아내의 가슴이 엄마의 가슴처럼 ’절대가슴’이 되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언제라도 받아주는 넉넉한 젖가슴, 좋은 대상, 이런 것들을 절대수용이라고 표현합니다.

물론 남편이 아내에게 "나, 안기고 싶다. 위로가 필요하다"고 정식으로 요청하면 될 텐데,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걸 잘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성숙한 사람이지요.
아내들도 오랫동안 살다보면 ’아하, 남편이 나에게 지금 들어오려고 문고리를 잡고 지금 주저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돼 있지요.
그래서 어떤 아내들은 문을 열고 손으로 잡아당겨주기도 하는데요, 사실 그거 쉽지 않다는 거지요.

나이 50을 넘어서게 되면 아내의 힘이 상상도 못할 정도로 커져 있다는 사실에 남편들은 깜짝 놀랍니다.
이런 거 혹시 기억나시나요?

30대에는 외출하려면 ’윤허’수준이었지요. 3개월 전부터 아부하고 서비스하고 온갖 작업을 다해서 "2박 3일인데, 2박 3일은 꿈도 안 꾸고 하룻밤만 자고 올게." 그럼 남편이 "죽으려고 환장했어?" 그러면 깨갱하고 돌아와야 됐었잖아요.
그러다가 30대를 넘고 40대가 되면 ’윤허’ 차원이 ’보고’ 차원으로 바뀝니다.
"여보, 1박 2일 갔다 와야 되는데, 당신이 허락 좀 해줘." 그러면 남편이 인상을 팍 쓰기도 하고 그렇게 되지요.
이러다가 40대 후반쯤 가면 ’보고’가 조금 레벨이 달라집니다.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이 되면 ’보고’가 ’통보’ 차원으로 바뀝니다. "나, 간다이~!" 이러면서 그냥 훌쩍 떠나게 됩니다.
그러다가 50대 후반쯤 되면 통보마저도 하지 않습니다. ’무통보’가 되지요.
그러다가 60대가 되면 ’무통보’도 아니구요, ’명령’으로 바뀝니다.
그때쯤 되면 남편들이 집에 있는 경우가 많지요. 아내가 2박 3일이든 3박 4일이든 훌쩍 떠나면서 남편이 해야 될 지침을 냉장고에 딱 붙여놓고 갑니다. 파워가 세졌으니까.

이런 여성들을 ‘까불지마라족’이라고 합니다.
운을 한 번 띄워 주세요.

까 - 가스 불 잘 잠그고
불 - 불 잘 끄고
지 - 지퍼 딴 데서 내리면 죽을 줄 알아!
마 - 마누라 있는 걸로 감사하고
라 - 라면이나 끓여먹고 있어!

웃고 넘기기에는 서글픈 일입니다.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황혼이혼현상, 남편이 정년퇴직할 때 이혼해 버리는 그런 일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래서 남자들이 관계보험을 잘못 들어놓으면 나중에 나이 들어 완전히 왕따 당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남자들은 외로움에 가득 차 있습니다. 정말 설 자리가 없습니다.
자신이 가졌던 건강이나, 어떤 타고난 지력, 혹은 사업을 위한 돈의 힘, 그런 것들이 별로 없습니다.
그럴 때 아내의 도움, 가족의 따듯한 도움이 정말 필요하지요. 왜요? 그때야말로 그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싶은 것이 남자들의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늘 받아보는 좋은 편지글이 있는데요, 이걸 읽으면서 정말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나이 오십에 회사로부터 정리해고를 당한 한 남편은 절망 끝에 서 있었습니다. 그는 회사의 창립멤버였습니다.
회사와 그 사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회사의 살아있는 역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회사로부터 조용히 정리해고를 당한 겁니다. 그 실망이 얼마나 컸든지 삶을 포기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아내는 뭔지는 모르겠지만 남편에게서 변화가 일어났고, 뭔가 심각한 문제가 일어났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남편은 소극적이고 조용한 사람이어서 물어도 대답을 하지 않으니까 알 수가 없었다는 겁니다.
때마침 남편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자녀들을 모아놓고 남편을 위한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놓고, 남편의 나이가 50이니 지금껏 결혼해서 살아오면서 남편에게 고마웠던 점, 나의 남편이 자랑스러웠던 점 50 가지를 편지글로 썼습니다.
또 대학교 다니는 아들과 딸은 아빠가 자랑스러운 이유 50가지를 적었습니다.
아내가 남편이 자랑스러운 점 50가지를 읽어나가는 순간, 또 아들이 차례로 읽어나가는 동안 남편은 말없이 뚝뚝 눈물을 흘리다가 마지막 딸이 읽어 내려가는 즈음에 그만 통곡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가족들이 놀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왜 그렇게 우시냐고 물었더니 그때 남편이 무릎을 꿇습니다.
미안하다고. 그리고 정리해고 당한 사실을 얘기합니다.

"나는 이 일이 너무 크기 때문에 삶을 포기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어.
그런데 오늘 가족 이벤트를 통해서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내가 모든 걸 잃은 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
내가 잃은 것은 직장뿐이지 다른 것을 잃은 게 아니었어.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인데, 가족이 이렇게 멀쩡하게 있는데…
그래서 내가 다시 용기를 내어서 새 일을 시작해 보려고 해."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는 겁니다.

아내와 아이들의 이벤트가 가족을 살려낸 케이스입니다.
실망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때로는 따뜻한 말 한 마디가 그 사람을 살려내게 됩니다.

저도 사실은 상담을 해오면서 어떤 분이 아주 급하게 쪽지를 보내온 사실이 있습니다.
제가 시큰둥하게 반응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은 절박감에 도움을 요청하기 때문에 제가 정말 정성스럽게 답신을 써서 보냈습니다.
나중에 그분이 상담을 오셨는데요, 그때 속으로 아차 했습니다. 잘못했더라면 큰일 날 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 이분이 마지막 히든카드로 저에게 쪽지 보내놓고, 혹시 반응이 없으면 그냥 삶을 포기하려고 수면제 모아놓고 있었구요, 매스컴을 통해서 삶을 포기하는 방법들에 대해서 조사를 다 해놓고 있었던 겁니다. 연탄도 사 놓고.

그 분이 제가 쓴 쪽지를 받아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통곡하고, 상담을 가봐야 되겠다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때 제가 대충대충 했거나, 너무 무성의하게 했으면 한 생명을 잃게 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자 전율이 흘렀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받아준다는 것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소중한 일이 됩니다.
가족 사이에 이런 일이 만들어지면, 조금 전의 이 가족처럼 이런 일이 만들어지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래서 남편은 가족들의 힘을 통해서 새로운 힘을 얻게 됐다는 겁니다.

이렇게 엄마의 가슴을 필요로 하는 것은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남자의 공통점입니다.
어려운 일을 겪을 때, 답답한 일을 겪을 때, 혼자 외로울 때, 본능적으로 그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의 가슴은 남자들의 충전소입니다.
아내의 가슴에 안겨서 실컷 울 수 있는 남자는 정말 행복한 남자입니다.
아내의 젖가슴 냄새를 맡으면서 울 수 있고, 아내가 따뜻하게 엄마처럼 안아주게 되면, 그 남자는 새롭게 힘을 얻고 일어날 수 있다는 겁니다.
영원한 어린아이지만 때로는 엄마가 돼서 안아줄 때 새로운 남자로 부활될 수 있다는 사실, 그 사실을 기억하시구요,
부부간에 펀(Fun)이 더해지는 가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