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렵게도 결국 학생들의 주검을 우리는 목도하게 될 것 같다. 말을 잊게 된다. 설명이 안되는 참사였기에 더욱 분노는 허공을 맴돈다.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사고 이후 일련의 장면들은 사고만큼이나 한국인의 정신 수준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분노는 절제 없이 타오르고 모든 연쇄적인 행동들을 정당화하고 만다. 언론들은 무참한 억지와 어이없는 폭로로 슬픔을 자극하고 상처에 소금을 뿌려댄다. 누가 사건을 더 극적으로 끌고가는지를 경쟁할 정도로 총체적인 혼란을 조성한다. 거짓말이 난무하고 루머가 활개친다. 그것에 확성기를 달아주는 것도 언론이다. 말초신경 이상 비대 증후군이다.
후쿠시마 대지진에서나 뉴욕의 9·11 테러에서나 이토록 거침없는 보도를 별로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슬픔을 절제하는 것, 분노를 갈무리하는 것, 격양된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것이 인격의 성숙이다. 개인이든 사회든 성숙해질수록 내면의 감정을 추스르고 분노조차 이성의 견제를 받도록 자기 감정을 다스린다. 슬픔이 일탈을 정당화할 수도 없다. 슬픔은 타인의 그것과 뒤섞이기를 거부한다. 슬픔은 각자의 것이다. 그것이 교양 사회요, 이따위 엉터리 사고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차분한 사회다.
언론들은 자칫 한쪽으로 쏠리거나 폭발할 수 있는 감정들을 적절히 순화하는 의무를 지게 된다. 촬영했다고 해서 모든 장면을 내보내는 TV는 이미 TV가 아니다. 희대의 장면들도 가치 판단에 따라 적절하게 질서가 부여된 다음에 방영된다. 그게 문명이다. 그게 아니라면 작은 실수를 거대한 참화로 키워간 그 어리석은 선장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감정을 격동시키고 각자의 슬픔을 드러내면서 집단적 공격 성향으로까지 몰아가도록 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아비투스다. 퇴행적이고 후진적이며 단세포적인, 그래서 즉물적 감정지배 사회인 그런 1차원적 사회가 기어이 되고 마는 것이다.
사고를 저주로 둔갑시키는, 분노 조절에 실패하는 그런 사회다. 언론들은 저마다 사고원인을 제멋대로 예단하는 것을 사실보도인 것처럼 경쟁하고 있다. 아직 아무 것도 밝혀진 것이 없다. 아니 원천적으로 선박의 설계 잘못인지조차 우리는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은 벌써 속죄양을 만들고 악마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구조대가 냉정하게 수습할 시간을 주기는커녕 모든 등급의 언론들이 가세해 현장을 혼란에 빠뜨린다. 구조팀을 다그쳐가는 언론들은 그 자체로 무정부다. 그것의 종합이 바로 어처구니 없는 사고수습 수준이다.
불난 극장에서 ‘불이야!’라고 고함을 질러대는 것과 적절히 통제된 수단으로 관람객을 안전하게 빠져나오도록 안내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단말마적 반응을 경고라고 할 수는 없다. 허우적댈수록 함정에 빨려들 듯 온통 ‘불이야!’를 경쟁적으로 외쳐대면 모든 자는 더욱 혼돈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유족들의 태도 역시 유감스럽다. 사고를 당한 아픔은 형언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모든 행동들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필사적으로 물속에 뛰어드는 구조대원을 핍박하는 등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고수습을 위해 현장을 찾은 총리에게 욕설을 퍼붓는 것도 딱한 장면이다. 구조대원들은 지금 자신의 생명조차 던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을 극한의 조건에 내모는 것은 세월호 선장만큼이나 어리석은 행동이다. 비록 위로를 받아야 하는 처지라고 해서 그것으로부터 아무렇게나 행동할 권한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해는 가지만 청와대로 행진한다고 무슨 문제가 풀릴 것인가.
분노 조절이 불가능하거나 슬픔을 내면화하여 누그러뜨리지 못하는 감정 조절 장애에 함몰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진정 우리 사회가 이런 수준인지…. 격앙된 감정을 조절하는 것, 위기에 처할수록 냉정하게 대처하는 그런 치밀하고 성숙한 태도는 불가능한 것인지…. 진도 앞 바다의 일렁이는 파도가 가슴에 밀려든다.
한국경제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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