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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믿으면서 확인할 것은
예수를 믿으면서 끊임없이 확인해야 할 것은? 첫째, 내 주인이 바뀌었는가? 둘째, 사랑의 대상이 바뀌었는가? 셋째, 참된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이다. 예수를 믿으면서 내 주인이 돈, 쾌락, 명예, 부귀영화, 권세 등이라면 그 사람은 아직 하나님 나라와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자기 자신과 가족, 친구를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한다면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와는 거리가 멀다. -한태완 목사의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임 받는 일’에서
예수 믿으면서 자유롭지 못하고 죄와 율법, 죽음 등에 억매어 있다면 이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은 그냥 가만히 있는 데 이루어지 않습니다. 열정만으로도 안 되고. 기도만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기도한 만큼 내가 희생하고 손해 볼 때 이루어집니다. 내가 어디에 매어있는지, 내가 사랑하는 것은 누구인지 참 자유를 누리고 있는지를 점검해보십시오. 또 하나님 보다 사랑하는 것들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지지는 않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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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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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높고=뗌습�교만한=� |
시편 101:5 자기의 이웃을 은근히 헐뜯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하지 아니하리로다 Whoever slanders his neighbor in secret, him will I put to silence; whoever has haughty eyes and a proud heart, him will I not end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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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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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외치라 - 마가복음 사 58:1-5 |
1. 크게 외치라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높여 내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리라
2.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공의를 행하여 그의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거워하는도다
3.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시나이까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4.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5.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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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십자가를 앞두시고 제자들에게 보혜사를 약속하시며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위로와 격려에 앞서 먼저 책망하시는 분이십니다.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높여 내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리라>(1절). <크게 외치라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는 것은 단호하게 죄를 알게하고 허물을 깨닫게 하여 회개에 이르게 할 뿐 아니라 격려와 위로를 받기에 합당한 심령으로 새로워지게 하라는 뜻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찾고 공의를 행하며 하나님 가까이 함을 즐거워하는 심령으로(2절) 거듭나게 하라는 것입니다.
금식하며 오락하다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시나이까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3절). 바리새인들은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며 <하나님이여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나이다>(눅 18:12)하며 자신의 의로움과 경건생활을 과시했습니다. 이사야 시대 유다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금식했고, 스스로 마음을 괴롭게 하며 <남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마 6:16) 했습니다. 그러면서 <주께서 돌보지도 않으시고 알아주지도 아니하셨다>며 불평을 터뜨렸습니다. 하나님은 위선자들, 겉만 그럴듯하게 치장하는 종교행위들을 배격하십니다. 금식을 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오락을 하는가 하면 그 이상의 짓도 벌였다는 것입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사순절이나 고난주간을 맞아 금식한다고 하면서 하루 종일 PC방에 틀어박혀 게임만 즐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의 금식을 받지 않으시는 이유는 그게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치 못하기 때문입니다. 형식과 무늬만 금식일 뿐 중심을 담아 바치는 참된 금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지도 듣지도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금식하며 주먹으로 치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4절).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기 위해 금식을 선언하고도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심판을 경고 받는 이 모순. 금식하는 날에는 자신을 살피며 더욱 회개해야 함에도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도리어 남을 정죄하기에 바빴습니다. 잔인한 사람들은 금식 날에도 자기가 부리는 종들을 때렸고, 빚을 갚지 못하는 자들을 흉악한 자들에게 넘겨 죽도록 두들겨 맞게 했습니다. 따라서 이는 금식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삶이었습니다. 그런 금식은 자신을 위해서도 아무런 유익이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도 전혀 영광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금식기도는 아예 하나님 앞에 상달되지도 않습니다. 금식은 단지 식음을 멈추는 행위가 아닙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원초적인 욕망을 금하는 결단인 만큼 일체 다른 행위도 삼가고 자제하며 경건을 실천해야 합니다. 단지 경건의 모양만 흉내내는 금식 기도는 하나님을 기만하는 종교적 위선에 불과합니다. 부디 사람에게 보이려고 일부러 슬픈 기색을 연출하거나 금식 기도를 한다고 하면서 돌아서서는 다시 주먹을 휘두르며 남을 치는 외식,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동한 위선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