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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세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너무 모른다/ 중앙일보

鶴山 徐 仁 2014. 3. 1. 15:51

 

아베, 세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너무 모른다

[중앙일보] 입력 2014.03.01 00:23 / 수정 2014.03.01 10:21

'일본의 양심' 나카쓰카 나라여대 교수

일본 나라여자대학 나카쓰카 아키라 명예교수. 1960년대 청일전쟁 연구를 시작으로 근대 한·일관계사에 천착해 왔다.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 책임을 추궁하고 일본 정부의 역사왜곡을 규탄해 일본의 양심으로 꼽힌다. 일본학술회 회원을 지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3·1 운동은 평화를 갈망하는 비폭력 저항 운동이었다. 그런 운동의 취지가 무색하게 요즘 한·일 양국의 긴장감은 어느 때보다 팽팽하다. 일본 정부의 극우화 움직임 때문이다.

 일본 나라여자대학 나카쓰카 아키라(中塚明·85) 명예교수는 이런 상황을 매우 우려하는 역사학자다. 그는 의암손병희선생기념사업회 초청으로 28일 오후 서울 경운동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3·1 독립선언의 정신과 동아시아 평화’를 주제로 강연했다.

 나카쓰카 교수는 일본 사료는 물론 한국 사료를 꼼꼼히 살피며 일본 제국주의 침략사를 객관적으로 연구한 첫 일본인 학자로 꼽힌다. ‘일본의 양심’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날 강연에 앞서 그를 만났다. 그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세계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너무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일본의 오늘과 어제에 대한 자성을 촉구했다.

- 일본의 우경화가 심상치 않다. 언론 보도가 과장된 건가.

 “전체 분위기를 속속들이 알지는 못한다. 일본 정치권의 역사왜곡에 반대하는 집회에 일반 시민도 많이 참가한다. 양심적인 시민사회 차원에서 위기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러나 1867년 메이지(明治)유신 이후의 역사왜곡에 대해 대부분의 일본 국민은 무지하다. 일본 언론도 마찬가지다. 큰 문제다.”

 -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논란도 커지고 있는데.

 “일본 교과서의 메이지 유신 이후 한국에 대한 서술은 편견투성이다. 역사적 진실을 가린다. 일본 정부는 몇 년 전부터 극우세력의 발언을 방치해 왔다. 한국을 혐오하는 극우 시위에 반대하는 변호사 모임 등 풀뿌리 수준의 양심적 움직임이 있지만 그나마 언론에서 크게 다루지 않는다. 그런 목소리는 전국적으로 보면 소수다.”

 - 왜곡된 역사교육의 결과는.

 “한국이 일본을 무조건 적대시한다는 오해로 나타난다. 그런 생각은 과거 일본이 한국에 나쁜 짓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몰라서 생기는 것이다. 2006년부터 일본 시민을 모집해 동학농민군의 봉기 현장을 찾고 있는데, ‘한국에 가면 위험하지 않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인이 이유 없이 일본인을 미워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난해 말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고 하지 않았나. 일본 사회와 정부가 한국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 인식의 틀을 드러낸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 일본의 정치인마저 역사를 잘 모르는 것인가. 아니면 진실을 외면하는 건가.

 “잘 모르는 것 같다. 1945년 태평양전쟁 패전 이후 제국주의 일본의 잘못을 전혀 가르치지 않아서다. 일본 역사 교과서는 중세까지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근현대는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 역사 교육의 부재다.”

 - 일본의 식민지배를 사과한 95년 ‘무라야마(村山)담화’ 등은 어떻게 나올 수 있었나.

 “일본은 90년대 들어 한국·동남아 등으로 적극 진출하려 했다. 한데 당시 정치인들은 과거 침략전쟁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반성하지 않으면 해외 진출이 어렵겠다고 인식했다. 그런 배경에서 담화가 나왔다고 본다. 그러나 학자의 입장에서 볼 때 당시 반성의 수준은 상당히 애매했다. 국제법을 어겨가며 동학혁명을 진압한 사례 등 역사적 사실을 세밀하게 밝힌 바탕 위에서 반성을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런 애매한 반성이 지금의 우경화를 불렀다고 생각한다. 물론 평가할 만한 일도 있다. 담화에 따라 제국주의 일본이 침략 과정에서 남긴 각종 자료를 보관하는 아시아역사자료센터가 만들어졌다. 안타깝게도 이곳을 찾는 이는 많지 않다.”

 - 일본의 역사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은 이유는.

 “일본의 역사교육 전체가 잘못됐다는 얘기는 아니다. 한국 침략의 본질과 의미, 이런 것들을 은폐했다는 거다. 태평양전쟁의 명령권자가 천황이었기 때문에 패전 후 당연히 천황에게 책임을 추궁하고 재판에 회부했어야 하는데, 당시 양심적인 지식인을 포함해 모든 사람이 어떻게 해서든 천황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강했다. 전후 일본 역사교육의 근본적 결함이 생겼다.”

 나카쓰카 교수는 스승 야마베 겐타로(山邊健太朗·1905∼77)로부터 영향을 받아 일본의 조선 침략사를 연구했다. 사회주의자이자 역사학자였던 스승은 “45년 이전 일본 근대사 연구는 조선 문제를 빼놓고는 성립할 수 없다”고 가르쳤다.

 - 조선이 일본 근대사 연구에 중요한 이유는.

 “한국이 희생양이 되지 않았다면 일본의 제국주의 열강으로의 도약은 불가능했다. 45년 도쿄대 총장으로 임명된 야나이하라 다다오(矢內原忠雄·1893∼1961)는 일본이 대만을 식민 지배한 과정은 책으로 남겼지만 조선을 지배한 과정은 쓰지 못했다.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일본의 모순을 너무 많이 드러낼 수밖에 없는 과제였기 때문이다.”

 - 근대 일본은 한국을 어떻게 바라봤나.

 “메이지유신부터 청일전쟁에 승리한 1895년까지 28년간 일본에는 조선을 정벌해야 한다는 정한론도 있었지만 그에 대한 비판론도 있었다. 하지만 청일전쟁 승리로 일본이 겁이 없는 나라랄까, 제국주의화됐다. 균형적 사고나 주장은 점차 사라졌다. 침략주의적 시각에서 동학혁명군은 근대 문명에 반대하는 야만적 세력이기 때문에 모조리 죽여도 좋다고 여겼다. 일본식 오리엔탈리즘이다. 이후 조선은 뒤처진 나라라는 낙오론, 일본의 고대사에 머물러 있다는 정체론, 스스로 개혁할 수 없다는 타율론 등이 자리를 잡았다.”

 - 그런 시각이 일본의 극우화와 관련 있나.

 “깊은 관련이 있다. 현재 일본 정치인들은 과거 피압박 민족의 자주적 움직임에 대해 어떤 것도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 같다. 제국주의적 사고방식과 직결되는 태도다. 그런 시각에서 피침략국의 자주적 움직임은 무조건 반일로 치부된다. 피침략국은 일방적인 치안의 대상일 뿐이다. 그런 태도는 지금도 남아 있지 않나. 가령 재일 한인들은 큰 차별을 받고 있다.”

 강연에서 나카쓰카 교수는 “3·1운동의 정신은 지금도 유효한 비폭력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한·일 관계를 정상화할 묘안을 물었다.

 
 “일본인 스스로 올바른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주체적 역량을 키우는 것 외에는 길이 없다. 물론 단기간에 실현 불가능한 일이다. 아베의 발언과 생각은 당장 일본 사회에서는 먹힐지 모르지만 미국을 포함해 세계 어떤 나라도 공감하지 않는다. 일본 정부는 막대한 부채, 인구 고령화 등 풀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해결책은 한국 등과 우호적이고 평화적 관계를 만드는 것뿐이다. 제국주의 일본이 부정했던 한국·중국 등의 자주성을 인정하고,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