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저주의 문명이 되지 않으려면

鶴山 徐 仁 2013. 11. 28. 12:58



저주의 문명이 되지 않으려면


시날에서 벽돌로 고층 빌딩 바벨탑을 쌓아올린 것은
역사적으로 보면 위대한 문명의 꽃피움이며,
첨단 기술의 총 집합 장이었다.
인류의 화합과 일치로 일궈낸
타임지에 대서 특필될만한 쾌거였다.
그러나 그것이 자본, 기술, 인력 등
선진 문명의 총체적 집합체였지만
그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인간의 영광이었다.
그래서 '바벨'은 오늘까지 저주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데이비드 페디즈-목사의 ‘바벨탑, 무엇이 문제인가?’에서-

성경은 과학 기술의 발달을 두둔하지도 않고,
반대로 죄악시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반은총입니다.
그러나 신앙이 빠져버리고 인간의 그 기술이
이기적이고 상업적으로 사용된다면, 인류를 돕는듯하지만,
실제는 인류에게 대재앙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경외신앙과 윤리성이 확보되지 않는
과학의 진보와 발전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지 않고 인간에게도
축복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저주의 문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주와 같이 길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오늘도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이었는지 돌아봅니다.  
"우리주님 걸어가신 발자취를 밟겠네."
솔직히 그러지 못하네요... 
자꾸 한걸음 두걸음, 예수님보다 먼저 가고 있는 내 모습을 봅니다.  
이제는 잠깐 멈춰서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걸음 한걸음 주예수와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걷겠네."
내 마음으로 외치는 고백이 되어지겠습니다. 
 
"바로 오늘 그런 하루가 되겠습니다."
글쓴이 : 김성은
인덕대만화과 졸업
빈아트 일러스트
한성대 애니메이션과 졸업
당신은 범사에 형통하고 있습니까? - 창세기 39장 10-23절
10.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11.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12.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13.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14.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15.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16.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17.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18.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19.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20.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요셉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야곱이 노년에 얻은 아들이어서 다른 형들보다 더 큰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그것으로 인해서 형들은 요셉을 미워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요셉은 부모님과 형들 앞에서 자신이 꾼 꿈 이야기를 꺼냅니다. 꿈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밭에서 곡신 단을 묶어놨는데, 요셉의 단이 일어서고 다른 모든 단들이 그 단을 향해서 절을 했다는 겁니다. 형들은 그 말을 듣고서,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고 말하면서 더욱 미워하게 됩니다.

또 한 번 요셉이 꿈을 꿉니다. 해와 달과 열한 별들이 요셉에게 절했다는 겁니다. 이 말을 듣고서 형들은 시기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말을 마음에 간직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가정에서 동생이 나보다 잘 될 때, 진정으로 축복하는 마음보다 시기하는 마음이 들지는 않습니까? 직장에서 다른 사람이 나보다 앞서거나 내가 그 사람을 높이는 자리에 있을 때, 불편한 마음을 갖지 않습니까?

또 교회에서는 어떻습니까? 나보다 한 참 뒤에 교회 나온 사람이 중요한 직책을 맡으면 시기하는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이 이야기가 비단 과거에 있었던 요셉의 이야기뿐 일까요?

오늘날 가정과 교회에서, 아니 가장 가까운 사람끼리 시기하는 마음 때문에 상처를 주고, 깨지고, 원수 맺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물론, 요셉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보고 느낀 그대로 말한 것을 꾸짖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형들이 그렇게 말하는 동생을 기특하게 생각하고, 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듬어주고, 안아줄 수 있었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할수록 마음의 창이 넓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초보적인 신앙, 아직 미숙한 신앙에 머물러 있는 사람을 용납해 주고, 기다려 주고, 도와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 먼저 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닐까요? 동생 요셉이 계속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 먼저 신앙인이 된 사람의 길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내 주변에 이렇게 나를 뛰어넘는 꿈을 꾸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가 진심으로 기도하고 돕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글쓴이 : 전기철 서울신학대학,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졸업
미국 보스톤 조직신학 석사(S.T.M)/연세대학교 박사학위(Ph.D)
강남새사람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