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한계와 과제
지난 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56.9%를 기록했다. 9월보다 10% 정도 하락한 것이지만, 국정원 대선개입 문제가 박근혜 정부를 계속 괴롭히고 있다는 점과,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첫해 지지율이 17% 안팍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높은 지지율이라 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이렇게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주로 다음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 그간 朴 대통령이 기품 있는 언행으로 대통령의 품격과 대한민국의 국격을 크게 높여 놓았다는 점이다. 역대 대통령들에게 실망해온 우리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통해 우리 국가지도자에 대한 자부심을 한껏 느낄 수 있게 되었다.둘째로는 원칙 있는 대북정책으로 안보위기를 극복하고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국민들은 한반도 정세가 이 정도로 안정된 것은 박 대통령의 뚝심과 원칙 있는 대북정책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순항할 것인지 여부는 매우 불투명하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중요한 결함을 갖고 있는 데다 최근 대북정책 추진과정에서 여러 가지 미숙함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불투명한 한반도 프로세스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남북 간에 신뢰를 조성하여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평화를 정착시켜 통일기반을 조성하겠다는 정책이다. 이 정책은 ‘대화와 압박’ 이라는 두 가지 수단을 균형 있게 활용하여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내려 한다는 점에서 대화․협력 일변도였던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과 압박 일변도였던 이명박 정부 정책의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성공하는 데는 여러 가지 문제점과 장애요인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첫째, 남북이 기존합의를 존중하고 이행함으로써 상호 신뢰를 쌓도록 하겠다고 하나, 이제까지 대부분의 합의사항들을 헌신짝 같이 파기해온 북한이 앞으로 합의사항을 제대로 이행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점이다.
둘째, 대화와 협력을 통해 북한이 변화할 수 있은 여건을 조성하겠다고 하나, 북한이 이에 응하도록 유인 또는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셋째, 북한의 핵 포기를 신뢰조성의 중요한 전제조건으로 하고 있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작동되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북한은 개성공단 정상화에 합의한 후 5주 만에 추석 이산가족 상봉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등 예전의 행태를 반복하고 있어 앞으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험난한 과정을 겪게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남북관계에 대한 인식의 오판
박근혜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 중인 대북정책들이 미숙함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첫째 개성공단 국제화의 추진이다. 우리 정부는 개성공단의 국제화가 한반도의 평화와 개성공단의 안정적 운영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여 북한과 개성공단 국제화에 합의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엔리쿠 레타 이탈리아 총리에게 투자를 권유하는 등 적극적인 세일즈에 나섰다. 그리고 나중 취소되기는 했지만, 10월 31일 외국기업을 위해 남북 공동 투자설명회도 개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가 개성공단의 안정적 운영을 보장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간 중국기업에 대한 태도 등에 비추어 북한이 외국기업 때문에 남북 간의 합의를 존중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또 북한이 한국기업에 대해서만 차별적 조치를 할 가능성도 많다. 더욱이 우리 정부가 외국기업의 투자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설 경우 유엔의 대북제재가 사실상 무력화 되거나, 국제사회에 북한 핵 문제로 야기된 한반도 위기가 해소됐다는 인식을 줄 가능성이 많다. 스위스정부는 북한 스키장 리프트 수출을 불허했는데,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투자유치에 열을 올린다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동참을 주장할 명분이 사라지게 된다.
둘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대표작’이라는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 제의도 전혀 시기에 맞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전쟁종료나 평화노력을 기념하기 위해 평화공원을 조성한 경우는 있으나, 적대국가 간에 공원을 만들어서 평화를 이룩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따라서 DMZ 평화공원 제의는 남북 간의 긴장완화와 평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 채 국제사회에 남북관계가 호전됐다는 잘못된 인식만을 줄 가능성이 많다.
셋째, 지난 8월 류길재 장관이 북한의 천안함 사과가 있어야 5? 조치를 해제할 수 있고, 금강산 관광도 진상규명, 신변안전 보장, 재발방지 약속이 있어야 재개될 수 있다고 언급한 것도 부적절하다. 5?조치 해제와 금강산 관광재개 문제는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보다는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안 2087호 이행에 미칠 영향을 중심으로 검토돼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對北정책 재검토해야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 이후 우리는 너무 ‘허황된 성공’에 도취돼 왔다. 북한이 개성공단 정상화에 합의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원칙 있는 對北정책의 결과도 아니고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거둔 성과도 아니다. 실제로 북한이 변했거나 양보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북한이 달러가 급해서 개성공단 정상화와 금강산 관광 재개에 목을 매고 있다는 주장은 더 더욱 사실이 아니다. 북한의 의도는 금강산 관광 재개와 5? 조치 해제를 통해 유엔의 제재를 무력화시키려는 데 있다. 그렇게 되면 6자회담을 再開하여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면서 핵과 미사일 기술을 고도화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러한 북한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한 채 계속 허황된 승리에 도취되어 있다면,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보다 훨씬 더 참담한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 박근혜 정부가 제발 초심대로 중심을 잡고 對北정책을 추진해 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