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취재 인사이드] 한일 국교 2013년 11월2일 단절?
입력 : 2013.10.29 03:03 | 수정 : 2013.10.29 10:25
- 도쿄=안준용 특파원
“한일 국교 단교 선언. 2013년 11월 2일(日韓国交断交宣言.平成25年11月2日).”
이 문구는 한일 양국 정부의 발표나 방침은 아닙니다. 일본내 대표적 극우 단체인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 이른바 ‘재특회(在特会)’가 준비하고 있는 집회 이름입니다.
재특회 측은 이번주 토요일인 2일 지바(千葉)현에서 ‘한일 국교 단교 선언’ 집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다음날 지바에서 열릴 한국 음식 축제에 앞서, 지바 한인타운을 반대하고 일본 정부에 양국 국교 단절을 촉구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홈페이지에서 이번 집회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한국은 서울의 높은 방사능 수치에도 불구하고, 근거 없이 지바를 포함한 일본 8개 현의 수산물을 수입 금지하는 ‘폭거’를 보였다. 한국의 실체를 알리고, 반드시 한국과의 국교 단교를 선언하자!”
- 지난 9월 신오쿠보 혐한 시위.
2007년 1월 발족한 재특회는 일본 도쿄의 최대 한인타운 ‘신오쿠보(新大久保)’ 일대에서 “조센진을 죽이자”, “바퀴벌레 같은 한국인들” 등의 혐한(嫌韓) 구호를 외치며 시위하는 극우 집단입니다.
재특회의 활동은 작년 작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직후 본격화했습니다. 한일 양국 관계 급랭으로 재특회 시위는 더 잦아졌습니다. 올 들어는 신오쿠보에서만 열 두차례 시위를 했습니다. 시위 현장에서 이들은 혐한 구호를 외치는가 하면, 한국 음식점이나 한류 매장 앞에서 손님들을 향해 손가락질이나 욕설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실제 일본 내 한국인들이 직접 체감하는 위협은 어느 정도일까요.
◇신오쿠보 상인들, “시위는 안 무섭지만…”
주일한국대사관에 따르면 현재 신오쿠보 일대 한국인이 운영하는 업소는 식당 120여곳과 술집 20여곳을 비롯해 400여곳에 이릅니다. 이들 업소들은 대부분 “극우단체 시위 자체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고 말합니다.
혐한 시위를 이미 충분히 경험했고, 일본 내 치안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오쿠보 주점에서 일하는 김영태(29)씨는 “처음엔 재특회 사람들이 ‘산보(散步·산책)’라는 이름으로 골목을 돌면서 욕을 하고 영업까지 방해했지만, 지금은 거리 행진 위주”라며 “영업장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거나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재특회 측은 “회원 수가 1만2000명을 넘어섰다”고 주장하지만, 신오쿠보 혐한 시위에 참가하는 인원은 매번 100∼200명에 불과합니다. 시위 현장에 가보면 재특회보다 이들에 맞서는 ‘반(反)혐한 시위대’의 규모가 더 큰 경우가 많습니다. 반혐한 시위대는 재특회를 향해 야유를 보내는 것은 물론,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고 격한 욕설을 하면서까지 ‘혐한 시위 중단’을 요구합니다.
- 지난달 22일 도쿄 신주쿠 거리에서 열린 '평화대행진'. 극우단체의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도쿄 시민 1000여명이 행진에 참여했다.
이의형 재일한국식음업협회장은 “(혐한 시위 관련) 일본 내 자성의 분위기도 커지고 있어 시위 자체가 두려운 건 아니지만, 이것이 결국 매출 감소, 즉 ‘먹고 사는 문제’로 이어져 고통스럽다”고 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요즘 신오쿠보 거리는 한산하기 그지 없습니다. 특히 하루 유동 인구가 400만에 달하는 신주쿠역과 가까워 한류 초기 한인타운 중심지였던 ‘쇼쿠안 거리’에서는 저녁 시간에도 손님 하나 없는 음식점들을 쉽게 찾아볼 정도지요. 한국 업주들은 “작년 상반기와 비교하면 월 매출이 30∼50% 줄었다. 장사하면서 요즘처럼 어렵긴 처음”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두세 달만에 가게 주인이 바뀌는 경우가 잦고, 폐업하거나 업종을 바꾸는 가게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재일한국인연합회는 상권 타격의 주 원인 중 하나로 ‘혐한 시위’를 꼽습니다. 체면과 눈치를 중시하는 일본인들의 습성상 혐한 시위가 신오쿠보를 찾는 한류 팬들에게 영향을 줬다는 겁니다. 연합회 관계자는 “일본 한류 팬들이 혐한 시위의 살벌한 분위기를 접한 뒤 놀라게 되고, 이것이 대놓고 한류를 즐길 수 없는 분위기로 이어졌다”고 분석합니다.
◇유학생들, “밤에 혼자 귀가할 때 조심, 또 조심”… 대사관은 日 왕족 섭외하면 ‘안도’
한인 유학생들은 생업에 타격을 입은 상인들과는 조금 다른 입장입니다. 일본 내 반한 감정이 극에 달한 작년 하반기나 올 초보다는 줄었다고 하지만,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재특회 등 극우주의자들의 과격 성향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남아있습니다. 재특회는 2009년 교토의 조선인학교에 난입해 난동을 부린 전력 등이 있고, 올 6월 신오쿠보 시위 현장에서는 회원 4명이 반혐한 시위대 4명과 함께 폭행 혐의로 경찰에 입건되기도 했지요.
유학생 김선경(23)씨는 “시위 현장에서야 극우단체 사람들을 경계하고 조심할 수 있지만, 길거리에서는 어떻게 알겠느냐”며 “밤에 혼자 귀가할 때는 치한만큼 (극우주의자들이) 신경 쓰여 골목길이 아닌 큰길로 다닌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도쿄 신오쿠보 지역 중심으로 활동하던 재특회가 이달 초 지요다(千代田)구 아키하바라(秋葉原)공원에서 혐한 시위를 벌인 것도 이런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시위 장소로 유동 인구가 더 많은 번화가를 택해 혐한·반한 감정을 확산하려 한다는 분석도 나왔지요.
일본의 모 대학에 재학 중인 이현정(21)씨는 “가급적이면 공원·전철·학교 같은 공공장소에서는 한국 말을 안 하려 한다”고도 했습니다. 실제 한국인을 상대로 한 극우주의자의 테러 등이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가장 위험에 노출돼있다고 할 수 있는 유학생들이 이처럼 조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지 모릅니다.
주일한국대사관도 각종 행사 때마다 재특회 등 극우단체 활동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재특회는 ‘왕족이 참석하는 행사에서는 시위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어, 대사관 측은 주최 행사에 일본 왕족의 참석이 확정되면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요즘 재특회는 여러모로 곤란한 처지에 놓였습니다. 일본내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그들의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혐오 발언) 활동에 대해 법원이 배상 판결을 내렸습니다. 학교법인 교토 조선학원이 ‘학교 주변에서 시위를 벌여 수업을 방해하고 민족 교육을 침해했다’며 재특회와 회원 9명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교토지법은 “피고 측이 1226만엔(약 1억3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과 함께 학교 반경 200m 내 선전(宣傳) 활동을 금지했습니다.
재특회 측은 즉각 항소했습니다만, 반한·혐한 시위 관련 첫 배상 판결이기도 한 이번 판결이 갖는 의미는 큽니다. 그들의 활동에 대해 일본 법원이 직접 ‘위법’이라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지요. 이는 그동안 ‘표현의 자유’를 들어 재특회 활동을 제지하거나 처벌하지 않았던 일본 정부의 입장과도 배치됩니다.
앞으로 법원의 1심 판결이 어떻게 결론나고 재특회가 어떤 변화를 보일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일본 내에서도 혐한 시위를 바라보는 시선이 비판적으로 바뀌고 있고, 긍정적인 변화의 움직임들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확실한 것은 재일 한국인 53만여명이 염원하는 것은 하나, ‘한일 관계의 회복’입니다. 취재 도중 신오쿠보에서 만난 한 상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한국 뉴스를 읽는데, 요즘 한국에서 나오는 일본 관련 기사 댓글을 보면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재특회 구호처럼 ‘일본인들 죽어라’든지 ‘또 대지진이 나면 좋겠다’든지…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지금 한국에 있는 일본인들도 우리와 같은 마음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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