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세대전투기 선정, 재검토 여지 있다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국 공군도 High급, Medium급, Low급 등 다양한 성능을 가진 전투기들을 혼합한 형태(Mix)로 항공력을 유지발전 시키고 있다. 성능이 서로 다른 전투기들을 보유하는 이유는 작전의 특징과 타격대상에 따라 소요되는 전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적진 깊숙한 곳에 위치한 전략적 거점들을 타격하기 위해서는 스텔스 기능과 전자전 기능을 갖춘 고성능 전투기가 필요하지만, 이런 전투기를 간첩선을 잡는데 사용한다면 낭비와 비효율이 수반될 것이다. 소를 잡는 도끼를 닭을 잡는데 사용할 필요는 없다.
전투기의 세대별 구분
또한 전투기는 발전의 정도에 따라 1세대에서 5세대까지로 구분된다. 제1세대 전투기는 1950년대에 등장한 초기의 제트엔진 전투기를 말한다. 2차대전 중 독일은 사상 최초로 제트엔진을 장착한 Me-163를 개발하여 연합국 공군을 위협했으나 양산이 늦어지면서 전쟁에 큰 기여를 하지 못했다. 종전과 함께 연합국들이 독일의 제트기 기술을 획득하여 이착륙 장치를 개선하고 작전거리를 늘림에 따라 안정적인 제트기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6.25 전쟁에 등장한 미국의 F-86 세이버, 소련의 MIG-15, MIG-17 등이 그렇게 하여 등장한 제1세대 전투기들이다. 제2세대 전투기는 초음속에 레이다를 장착한 제트기를 말하는데, F-110, F-5, MIG-21 등이 여기에 속한다. 제3세대가 되면서 전투기들은 전천후 작전능력과 중장거리 미사일을 장착하게 되는데, F-4, MIG-23 등이 여기에 속한다. 제4세대 전투기로는 현재 한국 공군의 최첨단기인 F-15K Slam Eagle 및 F-16 Fighting Falcon, 미 해군이 사용하는 F-14 Tomcat 및 F-18 Super Hornet, 러시아 공군의 MIG-29 등인데 고기동성에 정밀유도무기를 운용한다. 제5세대 전투기는 스텔스 기능과 능동 전자주사식 위상배열(AESA) 레이다를 갖추고 독자적 정보융합 및 전자전 능력을 발휘하는 전투기로서 현재 강대국들이 치열한 개발경쟁을 벌이고 있다. 현재, 이 급의 전투기로는 미국의 F-22 Raptor가 단연 최강이나, 러시아가 개발 중인 T-50 PAK-FA, 중국이 개발 중인 J-20 및 J-31, 미국이 최강의 전투기로 판명난 F-22 전투기의 보급형으로 개발하고 있는 F-35 Lightning 등이 있다. 현재 F-35는 미국의 록히드마틴사가 주축이 되어 영국, 호주, 캐나다 등 9개국과 공동개발하고 있다. 스텔스 기능은 미약하지만 야타 분야에서 우수한 성능을 갖춘 유로파이터 Typoon T3B도 4.5세대 전투기로 분류되는데, 현재 영국, 독일, 스페인, 이태리 등 4국이 공동개발중이다. 높은 수준의 성능을 가진 고기능 무인전투기도 제5세대로 분류된다.
F-X 사업의 개요
F-X사업이란 1980년대 말에 출범한 공군의 High급 전투기 확보 사업으로 그동안 1,2,3차로 나누어 추진되어 왔다. 이에 비해 KF-X 사업은 국산 전투기를 생산하여 Medium급 전투기로 운용하겠다는 별개의 사업으로 일명 ‘보라매 사업’이라고도 부른다. F-X 사업중 1,2차 사업은 사실상 완료된 상태로 한국은 이 사업을 통해 60대의 F-15 전투기를 확보하여 운용 중이다. 원래 F-X 사업은 120대의 구매하는 사업이었으나 1996년 60대로 축소 조정되었다. 이후 IMF사태가 발생하면서 40대로 축소하여 1차분을 구매했고, 2007년에 2차 사업을 통해 20대를 추가로 구매했다. 현재 F-15K Slam Eagle은 한국 공군의 주역기이자 동북아 최강의 전투기인데, 통상 전투기가 한번 취역하면 40년 가량 사용하게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전투기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동안 영공의 수호자로 활약하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급속히 달라지고 있는 전략환경과 안보수요에 부응해야 하기 때문에 F-X 3차에서 요구되는 성능(ROC)은 지금까지와는 많이 다르다. 북한의 핵위협을 억제하고 국지도발에 대응해야 하는데다 주변국들이 조만간 스텔스 공군력을 보유하게 될 전망이어서 한국 공군으로서는 이런 점들을 유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 중국과 러시아가 개발 중인 스텔스기들은 이미 최초비행을 실시한 단계이며 2010년대 후반기에 양산이 시작될 전망이다. 일본도 42대의 F-35 전투기를 구매하기로 결정한데 더하여 스텔스 전투기 ‘심신(心神)’을 자체 개발 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투기 구매의 담당부서인 방위사업청은 2010년 F-X 3차 사업비로 8조3천억 원을 확정했다. 1,2차 사업에 소요된 예산이 7조 7천억 원인 점을 감안하면 F-X 3차 사업은 창군이래 최대 규모의 무기구입 사업이 될 전망이다. 이어서 2011년 방사청은 사업추진 방법을 ‘경쟁입찰을 통한 국외구매’로 결정했으며, 2012년 1월에 입찰을 공고하여 미국의 록히드마틴, 보잉,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 등 3개 업체로부터 제안서를 접수했다. 2012년 7~9월 동안에는 공군이 제시한 요구성능(ROC)에 의거한 140개 항목에 대한 시험평가가 실시되었는데 3개사가 제시한 F-35, F-15SE, 유로파이터 등이 모두 통과했다. 이에 따라 방사청은 2013년 6~8월 이들 3개 기종을 대상으로 2차에 걸쳐 가격입찰을 실시했는데, 이 과정에서 록히드마틴의 F-35와 EADS의 유로파이터가 탈락함에 따라 사실상 보잉사의 F-15SE만 최종심사 대상으로 남아 있다. F-35는 방사청이 제시한 예산 8조 3천억 원을 초과하는 가격을 제시하여 탈락했고, 유로파이터는 복좌(複座) 전투기의 대수를 임의로 적게 제시하여 부적격으로 처리된 것이다. 방사청이 요구한 대수가 단좌형 45대와 복좌형 15대였음에도 EADS가 가격을 맞추기 위해 임의로 복좌기를 6대로 줄여서 제시하여 가격 조건을 인위적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방사청이 지금까지 진행된 절차를 스스로 문제삼지 않는 한 한국의 차세대 전투기로 보잉사의 F-15SE로 거의 결정되었으며, 현재 방사청과 방위사업추진위원회의 최종 결정만을 남겨두고 있다.
그렇게 되면 차세대 전투기 선정은 깨끗하게 마무리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대로 F-15SE가 차세대 전투기로 확정된다면 많은 아쉬움이 남게 될 것이며, 15년 쯤 후 역사는 F-X 3차 사업에 대해 “한국 정부와 방사청이 예산 맞추기에 급급하여 전략 마인드를 발휘하지 못했던 결정”으로 기록하게 될지도 모른다.
북한이 무서워하는 무기를 구입해야
우선, 방사청이 정한 평가기준을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방사청은 처음부터 투명성을 강조하여 비용(30%), 성능(33.61%), 운용적합성(17.98%), 경제적·기술적 편익(18.41%) 등 네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기종을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가격을 문제삼아 F-35와 유로파이터를 탈락시켰다는 사실은 평가기준들을 두루 감안하기보다는 가격만을 고려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대해 방사청은 “총사업비 한도를 초과하지 않는 가격이어야 한다”는 점을 전제하고 입찰을 진행했기 때문에 절차상 하자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나, 그 전제 차체가 문제일 수 있다. 북한으로부터의 안보위협이 가중되고 동북아 해양에서의 국가간 힘겨루기가 진행되는 시기에 돈을 무기에 맞추지 않고 무기를 돈에 맞추었다는 비난을 받을 소지가 있는 것이다. 이는 결코 국민의 세금을 함부로 사용하자는 말이 아니다. 당장 돈이 더 들어가더라도 북한이 무서워하는 무기를 확보하는 것이 당장은 돈이 더 들어갈 수 있어도 멀리 보면 더 값싼 국방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방사청의 기종 선정 절차가 합당했는가를 따져보기 위해서는 방사청이 정한 평가기준들과 배정한 비중이 합리적이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필자는 현재의 동북아 및 한반도 안보상황과 전략환경을 종합한 필자의 평가기준들을 제시해보고자 하며, 방사청이 제시한 평기기준들을 좀 더 이해하기 쉬운 용어와 개념으로 대체하면서 새로운 평가의 틀을 마련해보고자 한다. 필자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평가기준은 성능이며, 그 다음으로 기술이전, 가격, 유지정비, 납품 시기, 동맹에 대한 정치적 배려 등이 뒤를 잇는다. 전투기의 성능에 대해서도 세부기준들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스텔스 기능, 공대지(空對地) 능력, 연합작전 능력(상호운용성), 공대공(空對空) 능력 등이 전투기이 주요한 성능인데, 이 중에서 단연 중요한 것은 스텔스 기능이라 할 수 있다.
현존하는 안보위협 중 정도면에서의 최대 위협은 북한의 전면전 도발이고, 빈도면에서의 최대 위협은 북한의 국지도발이며, 최대의 잠재적 위협은 주변국으로부터의 해양 및 도서에 대한 위협이다. 이런 위협평가는 국방부와 합참도 인정하고 있다. 전쟁발발시 공군은 적의 레이다와 대공방어망을 돌파하여 전략적 목표물들을 타격하는 Pre-ATO 작전을 수행해야 하는데, 이는 전쟁의 향방을 판가름하는 진실로 중요한 임무이다. 이런 점에서 스텔스 능력은 현재 한국 공군이 필요로 하는 최우선 성능일 수밖에 없다. 전략 목표물에 도달한 후 타격을 위해서는 정밀유도무기들을 가급적 많이 탑재하여 지상을 향해 공격해야 하므로, 공대지 능력 역시 중요하다. 또한, 공군은 북한의 도발시에는 도발원점을 확실하게 응징해야 하는데 이 점에 있어서도 스텔스 기능이 결정적이다. 독도에 대한 주변국의 위협이 발생하는 경우 공군은 즉시 출동하여 무력을 과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작전반경과 공대지 및 공대공 능력이 필요하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한미 연합작전 능력일 것이다. 한국은 전작권의 분리 이후에도 연합공군사령부를 구성하여 공동방어에 나서게 되며, 유사시 미 공군으로부터 지원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양국 전투기 간의 상호운용성이 매우 중요하다. 이 점에 있어서는 당연히 미국제 전투기를 구입하는 것이 유리하다. 공중우세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적기와의 조우는 불가피하기 때문에 공대공 능력도 중요하다. 백 마리의 참새가 한 마리의 매를 이기지 못하듯 기술적으로 상위인 전투기 앞에 하위의 전투기는 맥을 추지 못하게 되어 있다. 더 먼 거리에서 먼저 탐지하여 정밀 무기를 발사하는 전투기가 반드시 이기게 되어 있다.
평가기준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이 기술이전이다. 한국은 당장은 강대국들이 생산하는 High급 전투기를 생산하여 이들과 경쟁할 수 없지만, 언젠가는 첨단 전투기를 생산하는 항공선진국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현재 공군이 추진 중인 KF-X 사업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보라매’는 일정 수준의 스텔스 능력과 음속 이상의 속력에 고성능 AESA 레이다까지 탑재한 고기능 Medium급 전투기로 High급에 비해 무장능력이 떨어지고 작전반경이 짧지만 한반도 공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태에 대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생산하는 이런 전투기는 가격대비 경쟁력에서 강대국의 전투기에 비해 불리할 수 있으나, 한국이 2020년대 항공산업 G-7에 진입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는 의미에서 비용효과만 따질 문제는 아니다.
성능과 기술이전에 이어 세 번째로 중요한 것이 가격일 것이다. 정부와 군이 국민의 세금을 가급적 아껴 써야 함은 기본이며, 복지예산의 압박으로 나라의 살림살이가 힘든 여건에서 방사청이 예산 맞추기에 신경을 써는 것을 탓할 수만은 없다. 고가의 첨단 무기를 구입하는 나라의 입장에서 ‘바가지’를 쓰지 않기 위해 이런 저런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당연하며, 이런 맥락에서 방사청이 ‘8조 3천억 원’이라는 상한선을 그어놓은 것을 이해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가격을 지나치게 중시하여 안보환경이 요구하는 성능을 제쳐둔다면, 이를 두고 ‘전략적인 판단’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네 번째 평기기준은 유지정비이며, 그 다음으로 납품 시기, 동맹에 대한 정치적 배려 등을 꼽을 수 있다. 유지정비란 창정비, 부품공급 등의 용이성과 비용을 의미하며, 납품 시기 역시 공군이 민감하게 생각하고 있는 대목이다. 현재 한국 공군의 470여기의 전투기를 운용하고 있으나 절반 이상이 30년이 넘은 노후기종인 F-5, F-4 등이다. 이 기종들은 현재 도태중이어서 2010년도 후반기에 전투기 숫자의 공백이 우려되고 있다. 해서 공군은 어떤 경우에도 보유 전투기 대수가 430대 이하로 내려가서는 안 된다고 보고 있으며, 이를 염두에 두고 차세대 전투기가 공급되기 시작하는 시점을 2017년으로 잡고 있다. 마지막으로, 동맹에 대한 정치적 배려도 중요한 평가기준이 될 수 있다. 어느 국가든 무기구매를 특정국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이미 많은 무기들을 미국으로부터 구입하는 한국의 경우 수입선 다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전투기는 현존하는 무기 중 가장 고가품이자 최첨단 무기이기 때문에, 유사시 동맹을 통해 국가안보를 담보해야 하는 한국이 동맹국이외의 국가로부터 전투기를 구입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문제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장단점의 혼재
이러한 기준들을 적용하여 입찰에 참여한 세 개의 기종들을 비교해보면 장단점들이 복잡하게 혼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F-35를 보면 성능면에서 최고점을 받는다. F-35의 기본 제원은 전장 15.7m, 최고속도 마하 1.8, 탑재중량 약 8톤, 작전반경 1,100km 등으로 작전반경이나 무장능력에서 F-15SE나 유로파이터에 열세이며, 단발엔진을 사용하는 점도 단점이다. 가격이 높고 기술이전에 인색하며, 유지정비와 관련해서 ‘바가지’ 비용이 우려되고 있는 것도 단점이다. 일본이 미구으로부터 공동개발국 level1의 지위를 인정받아 자국에서 생산된 부품들을 F-35 구매국들에게 판매할 수 있게 되어 있기 때문에 향후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부품을 공급받게 될 수도 있다는 ‘정치적 민감성’ 문제도 있다. F-35의 경우 미국정부 보증 대외판매(FMS) 방식이 적용된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이는 미군에게 납품하는 조건과 동일한 조건으로 해외에 판대하는 방식으로, 이 경우 성능 보장에 이점이 있으나 가격협상에서는 유연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또한 F-35는 개발과정에서 기술상의 결함들이 발견되고 있어 일부 전문가들은 2020년이 되어야 성능의 안정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때문에 적기 납품이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물론, 록히드마틴은 해군·해병대용으로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F-35B에서 결함이 발견되고 있지만, 공군용 F-35A의 개발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이미 미군과 공동개발국들이 3,200대 이상의 구매계획을 가지고 있는 등 양산체제를 갖추어가고 있기 때문에 성능의 안정성 문제란 있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F-35가 성능에서 최고점을 받는 이유는 엄호 없이 독자적으로 적의 대공방어망을 뚫고 들어가서 전자광학표적장치(EOTS: Electro- Optical Targeting System)와 정밀유도무기(PGM)로 전략목표들을 타격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최저피탐지(VLO: Very Low Observable) 스텔스 능력이다. 또한 F-35는 미국이 주축이 되어 제작되는 전투기로 한미 공군 간의 상호운용성에 있어서 유리하고 동맹에 대한 정치적 배려 차원에서도 장점을 가진다.
유로파이터의 기본 제원은 전장 15.96m, 탑재중량 12.5톤, 최대 속도 마하 2, 작전반경 1,390km 등이다. 토네이도의 후속타로 개발된 전투기로 탐지거리 200km의 AESA 레이더와 다양한 정밀무기를 장착하여 무장능력과 뛰어난 공중전 능력을 가진 기종으로 공중지배에 유리하다. 유로파이터는 공동개발국 4개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오스트리아 등으로부터 이미 700여대를 주문받아 이중 300여대가 배치된 상태이어서 F-15SE나 F-35보다는 한 단계 더 검증이 이루어진 상태이다. 그러나 스텔스 기술이 매우 제한적이어서 공대지 능력에서 F-35에 비해 열세라 할 수 있다. 미국제가 아니기 때문에 미군과의 상호운용성이나 동맹에 대한 정치적 배려 차원에서도 불리하지만, 제작사는 서방의 무기시스템과의 호환성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기 때문에 미국의 무기들을 장착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로파이터의 최대 장점은 파격적인 기술이전 조건이다. 유로파이터는 구매대상 60대중 48대를 한국에서 조립하겠다고 제안했는데, 이 방식이 적용되면 한국은 12대만 직구입하고 나머지는 한국우주항공산업(KAI)가 조립하게 된다. 그 만큼 국내에 항공기술이 축적된다는 뜻이다. 또한 EADS는 국내조립을 위해 설계, 항공전자, 무장체계 통합 등 전투기 생산에 필요한 핵심과정의 기술들을 한국에 이전하겠다고 제시하고 있으며, 한국의 KF-X 사업을 위해 AESA 레이다 기술 등 핵심기술들을 이전하겠다고 제안하고 있다. 기술이전에 인색한 미국과는 크게 대비되는 부분이다. 따라서, 한국이 향후 KF-X 사업의 성공과 독자적 항공기 생산능력 함양을 중시한다면 F=X 3차 사업의 대상기종으로 유로파이터가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특히 KF-X 사업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보면 더욱 그렇다. 공군은 2010년대 중반에 개발을 마치고 2020년부터 양산체제에 들어간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으나, 국회가 본격적인 예산배정을 거부하여 여전히 ‘탐색’ 단계에 머물고 있다.
기존 F-15의 개량형이 될 F-15SE는 전장 19.45m, 최고속도 마하 2.5, 탑재중량 약 12톤, 작전반경 1,680km 등의 기본 제원을 가진 기종으로 경쟁 기종 중에서 덩치가 가장 크고 무장능력이 탁월하며 속도와 작전반경에 있어 최강이다. 하지만, 스텔스 능력이 미흡하다는 점이 최대 단점이다. 즉, 일단 스텔스 기능을 통해 초기의 공중우세를 확보한 이후에는 F-15의 막강한 무장능력이 빛을 발할 수 있지만, 적진 침투를 위해서는 적의 대공방어망을 뚫는 과정에서 전자전 능력을 가진 항공기나 여타 엄호를 받아야 한다는 불편이 수반된다. 결국, F-15SE는 스텔스 기능에 있어 F-35에 밀리고 공중지배 능력에서는 유로파이터를 따라잡지 못하는 ‘어정쩡한 선택’이 될 수 있다. 보잉사는 현재의 F-15 기체에 스텔스 도료를 입히고 기체의 일부를 변형시켜 무기를 내장화하는 방법으로 스텔스 기능을 도입하겠다고 하지만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며, F-15의 장점인 무장능력의 감소도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F-15 개량형은 4세대도 5세대도 아닌 4.5세대 전투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F-15기는 1960년대에 설계가 완성되어 1970년대부터 생산한 기종으로 한국이 이 기종을 선택할 경우 1970년대에 만든 항공기 기체를 2050년대까지 사용하는 셈이 되어 부품 독점공급 체제가 가져올 ‘바가지’ 비용을 우려해야 할 입장에 있다. 그럼에도 공군의 입장에서 보면 2016년부터 공급받는데 문제가 없는 기종이며, 이미 60대의 F-15K를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조종사 양성이 유리하고 손쉽게 운용의 안정성을 기할 수 있다.
전략적 마인드가 아쉽다
혼재하는 장단점들을 모두 감안하여 정확하게 종합점수를 매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평가자들이 전략 마인드를 가지고 사업에 임한다면 평가기준들 간에 현격한 비중의 차이를 두게 될 것이다. 즉, 성능과 기술이전에 여타 기준들보다 월등하게 무거운 비중이 배분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성능 중에서도 스텔스 능력, 공대지 능력, 공중지배 능력, 상호운용성 등에 큰 비중이 할애되어야 마땅하며. 그 중에서도 핵심은 역시 스텔스 능력이다. 통상 대공방어 체계는 ‘감시-탐지-표적획득-추적-발사-유도-격파’라고 하는 Kill Chain을 통해 적기의 래습을 막는 시스템이다. 스텔스란 레이다에 나타나는 정도를 최소화하여 Kill Chian이 유기적으로 작동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대공방어를 무력화하는 기술이다. 이를 위해 스텔스기는 장착 무기, 연료탱크 등을 내장하여 레이다 반사면을 줄이고 회부에는 레이더 에너지의 반사를 최소화하는 도료를 칠한다. 방어자의 입장에서 보면 스텔스기는 부지불식중에 날아와서 타격을 가하는 '침묵의 암살자(silent assin)’와 같은 존재로서 북한이 겁내는 무기라 할 수 있다. 돈이 부족하다고 해서 ‘북한이 겁내지 않는 무기’ 또는 ‘주변국들이 가볍게 여길 수 있는 무기’를 구입한다면 장기적으로 더 많은 안보비용을 물게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기술이전 역시 멀리 내다보면 한국에게 더 많은 경제적·기술적 편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가 라는 측면에서 중시해야 마땅하다. 한국의 독자적 항공기 생산능력에 크게 기여하는 기종이 있다면 이 부분에서 높은 비중을 배정받아야 한다.
하늘에서 월등한 비행능력을 자랑하면서 육지에서도 잘 뛰어 다니고 물에서도 헤엄을 잘 치는 새는 없다. 그런 새를 찾겠다고 나서다가는 결국 이것도 저것도 아닌 ‘오리’를 택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리는 참매 만큼 날수 있는 것도 아니고, 펭귄 만큼 헤엄을 잘 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타조만큼 육지를 뛰어 다니지도 못한다. 이런 선택을 두고 ‘전략적’이라 할 수는 없다. 한때 한국에서는 “미국이 F-22를 괌도나 오끼나와로 이동시키면 김정일 위원장이 외부활동을 멈춘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돈 적이 있다. 이것이 얼마나 사실인지 검증된 바는 없지만, 북한의 안보위협을 억제하는 것이 당면한 최대 안보과제인 한국이라면 도발자의 간담을 써늘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무기가 진정한 억제무기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유사시 도발원점을 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고 필요시 도발을 명령한 사람의 집무실에 달린 창문을 통해 정확하게 응징수단을 발사할 수 있는 전투기가 있다면 다른 기준들에 앞서 그 점을 중시해야 한다. ‘적극적 억제’란 그런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이 독자적인 항공기 생산기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기술이전 조건을 제시하는 전투기가 있다면, 여타 기준들보다는 그 점에 많은 비중을 할애해야 마땅하다. 사실, 현재 한국 공군이 추진하고자 하는 ‘보라매’ 사업은 당장은 경제적 타당성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우수한 Medium급 전투기를 생산하는데 성공한다면 한국은 스스로 공군전력을 수급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고 장기적으로는 막대한 산업적·경제적 파급효과를 누릴 수 있다. 그것이 ‘GUK(Great Unified Korea)’ 지향하는 길일 것이다.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등지의 개도국들의 ‘틈새’시장을 수출무대로 활용하는 길도 열릴 것이며, 유수한 5세대 전투기를 생산하는 닐날이 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전략적 마인드란 그런 것이다. 이런 점들을 종합한다면, F-X 3차 사업에서의 한국의 선택은 F-35이거나 유로파이터일 수는 있어도 F-15SE는 아닌 듯하다. 대북억제를 위해 한국이 갈그해 하는 성능을 갖는 것도 아니면서 기술이전에도 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검토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방사청, 국회 등 해당 기관들이 “진정 돈에 맞추어 무가를 사야 하는가”를 되물어 보고 예산문제를 재검토해볼 기회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방사청은 ‘예산 맞추기’에만 집중하여 다른 중요한 요소들에 대해 눈을 감아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방사청은 2011년 한국국방연구원이 8조3천억 원으로는 필요한 성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보고서를 냈을 때에 경청하지 않았고, 록히드마틴이 미 의회에 F-35 60대의 수출금액을 108억 달러(12조 636억 원)으로 예상한다고 보고했을 때에도 이를 무시하고 줄곧 ‘기존 총사업비 엄수’를 천명해왔다. 이를 두고 ‘현실을 고려하기보다는 여론과 국내정치를 의식한 행동’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방사청이 충분한 ‘전략 마인드’를 가졌다면 현 안보상황이 요구하는 성능을 우선적으로 중시하여 예산증액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섰을 지도 모르며, 예산증액이 불가능하다면 대수를 줄이더라도 필요한 성능을 확보하는 제3의 방안을 검토했을 지도 모른다. 또는, 어차피 원하는 모든 조건을 맞출 수 없을 바에야 미래 한국 항공산업의 발전을 내다보면서 ‘기술이전’을 중시하는 평가방안을 검토했을 수도 있다. 만약, 방사청이 ‘가격 맞추기’에만 치중하여 이런 ‘전략적 고민’들을 거치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그런 고민을 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이라도 평기기준들을 재정립하고 기준간 비중 차이를 재조정한 후 다시 한번 종합점수를 매겨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공군의 침묵은 ‘금’인가
현재 F-X 3차 사업을 둘러싸고 전문가들 사이에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정작 차세대 전투기를 운영할 공군은 의외로 조용하다. 물론, 복지예산 압박 등으로 정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에 그리고 국민 다수가 정부가 내놓았던 증세방안에 대해 화를 내고 있는 시기에 공군이 더 좋은 비행기를 사겠다면서 예산증액을 요구하기란 쉽지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공군의 침묵에는 납득하기 힘든 부분들도 없지 않다. 상식적으로만 생각한다면, 적어도 내부적으로는 F-X 3차 사업을 통해 도입되는 전투기들이 향후 수십년간 국가안보의 최첨단 수단이 된다는 점을 감안한 토론이 있어야 당연하다. 후보 기종들의 장단점을 놓고 고심하는 모습이 있는 것도 당연하며, 어떤 기종이 아니면 안 된다며 소신을 밝히는 열혈 장군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런 고심들을 감지한 국회의 해당 상임위 위원들 또한 나라를 더 안전하게 만들 선택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공군으로부터는 어떠한 목소리도 나오지 않고 있다. 함구령이 내려진 상태라고 한다. 누가 어떤 이유로 함구령을 내렸는지는 모르지만, 이것이 어떤 비행가든 제때에 공급되어 전투기 숫자의 공백만 막으면 된다는 단견의 소치가 아니었으면 한다. 애초에 요구성능(ROC)을 작성한 사람들이 책임추궁을 회피하려 하거나 정부와 국민 그리고 국방부에 밉보일 말을 하는 것을 꺼리는 보신주의에서 비롯된 침묵이 아니었으면 한다. (끝)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공군발전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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