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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事 資料 綜合

전시 작전통제권에 대한 올바른 이해

鶴山 徐 仁 2013. 2. 2. 16:27

 

전시 작전통제권에 대한 올바른 이해

written by. 김성만

 

 

 

대한민국 성우회장(고명승)은 2013년 1월 29일 “한미연합사 해체 및 전작권 전환을 즉각 백지화해야 하며, 남북통일 여건이 성숙될 때까지 한·미동맹을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고 차기 정부에 주문했다(한미연합사 해체 백지화하라, 조선일보, 2013.1.29). 조갑제 대표는 2013년 1월 28일 “연합사 해체는 전쟁 가능성을 크게 높인다. 특히 자신은 핵무기를 갖고 한국군은 핵무기를 갖지 않은데다가 연합사 해체로 미국이 제공하기로 한 핵우산도 찢어졌다고 판단하면 北은 전쟁에의 유혹을 더 느낀다.”고 강조했다(韓美연합사 해체를 무기연기하든지 核개발에 착수해야, 조갑제 닷컴, 2013.1.28). 박세환 재향군인회장은 2013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특히 국가안보를 공고히 할 수 있도록 2015년 12월에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의 무기한 재 연기를 반드시 관철시켜야 합니다.”라고 말했다(박세환 향군회장, 癸巳年 신년사, konas. 2013.1.1). 그리고 서먼 한미연합군사령관은 2012년 11월 7일 한미연합사 창설 34주년 기념사를 통해 “연합사는 한미동맹의 상징으로 한국 국민들이 평화와 번영 속에서 살 수 있도록 도발을 억제하고 한국을 보호하는 임무를 실행하는 데 기여했다”고 강조했다(한미동맹, 밝고 굳건한 미래 기대, 국방일보, 2012.11.8).

이들이 한미연합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전작권 전환(한미연합사 해체)의 위험을 경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정부(참여정부, 2007년)의 잘못으로 2015년 12월 1일 전시작전통제권이 전환되고 한미연합사가 해체되기 때문이다. 즉 전시에 한미연합사에 위임된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이 한국 합참으로 전환되고, 미군은 주한미군사령부로 전환된다. 이로 인해 연합작전(Combined Operation)을 하기위해 창설된 한미연합사는 자동으로 해체된다. 자세히 살펴보자.

 

작전통제권(OPCON: Operational Control (Authority))은 특정 임무나 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설정된 지휘관계를 의미하며, 해당부대에 대해 임무 및 과업을 부여하고 부대전개 및 재 할당 등의 지시를 할 수 있는 권한으로서, 이는 행정 및 군수, 군기, 부대편성 및 교육훈련 등에 관한 권한이 포함되지 않는다. 작전통제권은 작전지휘권의 하위개념이고, 작전지휘권은 지휘권(Command)의 하위개념이다. 작전지휘권과 작전통제권은 국가주권과는 관련이 없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는 안보를 위해 연합작전기구에 가입하고 자국군(自國軍)에 대한 전시 작전통제권을 이 기구에 맡겨놓고 있다. 연합국방(聯合國防)을 하면 전쟁의 위험에서 벋어날 수 있고, 설사 전쟁을 하더라고 연합작전을 하면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연합작전을 하지 않으면 전쟁에서 이길 수가 없다. 2개국 이상의 군대가 연합작전을 하기 위해서는 연합군사령부를 구성하고 지휘통일(Unity of Command)이 되어야 한다. 전쟁사의 교훈이다.

전쟁의 아픔을 많이 겪었던 유럽 국가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연합국방을 위해 1949년 NATO연합군사령부를 만들었다. 현재 28개국이 전작권을 이곳에 맡겨두고 있다. 이후 지금까지 유럽은 전쟁이 억제되고 있다. 오랫동안 자주국방을 고집해오던 프랑스가 단독국방의 어려움을 알고 2009년에 나토연합사에 재 가입했다. 지금도 여러 국가들이 나토 가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판문점도끼만행사건(1976.8.18)이후 무력도발 억제를 위해 1978년 한미연합군사령부를 만들었다. 한국군(일부)과 미군(주한미군, 美증원전력)은 한미연합사에 전작권을 맡기고 있다. 이후 북한의 무력도발은 거의 억제되었다. 한미연합사는 나토사령부를 벤치마킹한 조직으로 효율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연합작전의 중요성은 전사(戰史)에서 그 교훈을 찾을 수 있다(김성만,『한국국민의 두가지 선택』,상지피앤아이, 2009, pp.56-60). 한국전쟁(6.25전쟁)은 처음부터 지휘통일의 원칙이 철저히 시행되어 성공한 케이스다. 1950년 6월 27일 유엔회원국들에게 “대한민국 영역에서 무력공격을 격퇴하고 국제평화와 안전을 회복하는데 필요하게 될 원조”를 제공할 것을 촉구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유엔안보리)의 결의안에 의하여 다수의 국가에서 군대를 파견하자, 우방국들은 이러한 군대들을 통합적으로 지휘하기 위한 조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하고, 유엔에 필요한 조치를 건의하였다. 그 결과 1950년 7월 7일 유엔안보리는 회원국들에게 군대 및 기타의 지원들을 ‘미국 지휘하의 단일사령부’에 제공하도록 조치하였고, 그 사령부에게 유엔기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였다. 이에 따라 미국은 7월 8일 맥아더 장군을 유엔군사령관으로 임명하고 7월 24일 유엔군사령부를 동경에 창설하여 미국합참의 지휘를 받도록 함으로써 지휘통일을 위한 조치를 완성하였다. 이승만 대통령도 7월 14일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유엔사에 이양함으로써 한반도에서의 모든 작전은 유엔군사령관이라는 단일 지휘관에 의해 수행되었고, 그 결과로 낙동강 방어선에서 방어에 성공하여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전세(戰勢)를 역전시킬 수 있었다.

한국전쟁 시 북한군과 중공군(중국군)도 연합군사령부를 창설했다. 중공군이 한국전선에 참전한(1950.10) 이후인 1950년 12월 4일 지휘통일을 위해 ‘중·조연합사(中·朝聯合司)’를 설치됐다. 중공군 개입초기 중공군과 북한군은 통일적인 지휘체계의 미비로 작전에 차질을 빚었다. 중공군 1차공세 때 북한군은 남진하는 중공군을 적(敵)으로 오인해 공격했고, 또 군수·병참 면에서도 이를 통제하는 ‘최고연합사령부’가 존재하지 않아 작전에 혼란을 초래했다. 중공군은 작전의 혼선과 차질을 방지하기 위해 통합사령부의 설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끼고 이를 추진했다. 모든 작전 범위와 전선에서의 모든 활동은 중조연합사의 지휘를 받도록 했다. 중조연합사는 중공군 팽덕회가 사령관 겸 정치위원을, 등화가 부사령관을 각각 맡았다. 또 조선쪽에서는 김웅이 부사령관, 박일우가 부정치위원을 맡았다. 압록강까지 퇴각한 북한군은 중공군과의 연합작전으로 휴전선까지 밀고 내려올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성공사례다. 전쟁초기에 영국과 프랑스는 여전히 단일지휘관의 임명에 동의하지 못함으로써 지휘통일의 문제점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1941년 12월 아르카디아(Arcadia)회담으로부터 시작하여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과 영국의 처칠 수상이 주기적으로 회동함으로써 전체 전쟁수행 방향이 통일되기 시작하였고, 지휘통일의 보장을 위한 조치들이 강구되기 시작하였다. “지휘통일만 보장되면 연합국 문제의 9/10은 해결된다”는 미국 마샬 장군의 건의를 수용하여 영국의 와벨 장군을 사령관으로 하는 ABDACOM(Australian, British, Dutch, American Command)를 구성하고, 연합참모본부(Combined Chiefs of Staff)를 설치함으로써 지휘통일을 위한 제도적 틀을 구축하였다. 또한 1942년 후반 아프리카 작전에서부터 미국의 아이젠하워 장군을 동맹군의 최고사령관으로 지명함으로써 완전한 형태의 연합작전사령부를 구성하게 되었고, 1943년 12월에는 아이젠하워 장군을 동맹원정군 최고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이러한 지휘통일 노력은 전후에 연합국의 중요한 승리요인으로 분석될 정도로 전쟁의 향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반대로 베트남전에서는 지휘통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군사이론가 콜린즈(John M. Collins)는, 미국의 베트남전 수행에서 공중작전은 하와이 태평양사령부가 책임지고 있었고, 지상작전은 미국의 베트남 군사지원사령부가 책임지고 있었으며, 외교적 노력은 사이공의 미 대사가 책임을 지고 있었고, 베트남의 국내문제는 베트남의 다양한 단체들이 수행함으로써 지휘통일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연합작전의 차원에서도 호주와 뉴질랜드군은 미군의 작전통제를 받고 있었으나, 베트남군과 한국군에 대해서는 “병행사령부 구조”(Parallel Command Structure)의 개념에 의하여 각국의 지휘관이 통제하도록 함으로써 지휘통일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연합국들은 제반 노력을 공동의 목표로 집중하지 못하고, 결국은 패배하였다.

 

그리고 1991년 걸프전에서 미국, 사우디 등 30여국은 연합군사령부(다국적군)를 만들어 조기에 이라크군을 굴복시키고 쿠웨이트를 해방시켰다. 2002년 아프간 대(對)테러전에서 미국, 영국 등 20여국 군대는 연합군사령부(ISAF)를 만들어 조기에 탈레반 정권을 축출했다. 2011년에 발생한 리비아 내전은 영국, 프랑스, 미국, 리비아 반군 등으로 구성된 연합군사령부조직 하에 조기에 종료되었다. 이같이 현대 전쟁은 초강대국 미국이라 할지라도 단독으로 작전을 하지 않고 우방국과의 연합작전으로 승리를 보장하고 있다.

 

이같이 하나의 전구(戰區, Theater)에서 작전하는 2개국 이상의 군대는 반드시 작전통제권이 통합되어야 한다. 이것은 나폴레옹전쟁 이후 200년간 내려온 군사작전의 원칙이다. 사공(沙工, 선장)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는 속담과 같은 이치다. 앞으로 한반도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지휘통일과 연합작전의 원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연합국방은 국제적 추세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무시하고 지휘통일이 안 되는 공동작전(한국 주도-미국 지원, 베트남戰과 유사)을 선택하고 있다. 바로 참여정부(노무현 정부)가 2007년에 잘못 추진한 ‘전작권 전환과 한미연합사 해체’다. 당시 한미 군사전문가들은 이렇게 가면 한국은 안보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고는 적중했다. 전작권 전환작업이 65% 이상 진행된 상황(2009.11.29기준)에서, 북한은 2010년에 천안함을 폭침(爆沈)하고 연평도를 무차별 포격(砲擊)했다. 우리는 도발 억제에 실패했고 피격사건 직후에 연합작전도 펼치지 못했다. 이런데도 우리 정부는 전작권 전환(한미연합사 해체)은 국가 간의 약속이기 때문에 이행해야 한다고 고집하고 있다. 전쟁의 원칙도 모르고 전사의 교훈도 잊어가는 나라에 사는 우리 국민이 불쌍하다. (konas).

 

2013-02-02 오전 8:28:49

 

김성만 예비역 해군중장(재향군인회 자문위원, 전 해군작전사령관)


2013-02-02 09:3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