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돈과 종교는 서로 대척점에 서있는 것처럼 생각을 많이 하십니다.
어떻게 종교가 돈을 밝히느냐 종교를 신실하게 믿는다면 돈을 멀리 해야 하고 돈을 밝히는 사람은 종교적으로 신실할 수 없는 것처럼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돈과 종교는 굉장히 친합니다.
중세는 서로마가 망한 476년부터 동로마가 망한 1453년까지를 보통 중세라고 합니다.
중세는 교회가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땅을 많이 가지고 있었죠.
그 다음에는 지식을 보관하고 전수하는 역할을 교회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죽고 난 다음 천당을 갈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부분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세 1000년 동안 실질적인 권력자는 교회였습니다.
돈을 비롯한 모든 권력을 교회가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돈과 종교는 굉장히 가깝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어떻게 돈을 인식하고 있느냐?
성경차원에서 보면 마테복음 6장에는 '하나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마르코복음 10장에는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운 일이다.'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마테복음에서는 하나님을 선택할래 돈을 선택할래 하고 이야기 하지만 마르코복음에서는 상당히 완화되어서 나옵니다.
그러다 마테복음 25장에는 달란트비유가 나옵니다.
주인이 길을 떠나면서 종 세 명에게 돈을 나누어 줍니다.
나중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느 한 종은 그 돈이 없어질까 봐 땅속에 묻어서 보관했고 다른 종 하나는 열심히 노력해서 그 돈을 크게 불렸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돈을 묻어둔 1달란트를 빼앗아서 열심히 불려서 10달란트를 마련한 친구한테 주라고 합니다.
열심히 돈을 불린 행위를 좋게 보는 겁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8장에는 예수님을 도운 여인들이야기가 나옵니다.
12제자를 데리고 다니면서 많은 언행에서 보여줍니다.
12제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다니는 데 5개의 빵과 2마리의 물고기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먹이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매 식사때마다 오병이어로 해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때 예수님을 도운 여인들이 막달라마리아, 요한나, 수산나 같은 여인들이 자신의 재산을 바쳐서 그런 부분들을 해결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여인들이 자신의 재산을 내놓지 않았다면 끼니때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매번 하셨어야 할 겁니다.
이렇듯 성경에서는 돈에 대한 인식을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8장에 나온 것처럼 종교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가르침을 퍼트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공자님 역시 현실에 발붙이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돈이 필요했습니다.
공자님은 귀족 출신이지만 따로 귀족 지위에 적절한 부를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3천명 제자들을 가르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공자한테 상당히 도움을 준 제자가 있습니다. 바로 자공이라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50이 넘어서도 취직을 하기위해서 많은 제후들을 만나러 다녔습니다.
그렇지만 취직이 잘 안되어서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수험료를 받아서 생계를 유지했는데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아 자공이라는 인물이 많은 경제적 도움을 줬다는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공자는 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느냐 논어에 보면 이런 내용들이 나옵니다.
소부유근(小富由勤), 대부유천(大富由天) 작은 부는 근면하면서 나온다. 부지런하기만 해도 작은 부자는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큰 부자는 하늘이 내린다. 그래서 저는 열심히 일하는 데 이렇게 가난합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해주었던 이야기입니다.
작은 부는 근면하기만 해도 가능하다. 큰 부자가 되지 못하는 것은 하늘이 돕지 않았다고 핑계 될 수 있지만 작은 부자도 안 되고 최소한의 경제적 생활마저 되지 않는다면
그건 전적으로 내 탓이다는 말씀으로 생각 됩니다. 그 다음에 부이무교이(富而無驕易) 빈이무원란(貧而無怨難) 부자이면서 교만하지 않기는 매우 쉽다. 부자이면서 겸손한 척 꾸미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가난하면서 원망하지 않기는 굉장히 어렵다. 부자이면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교만하지 않는 척 하기는 별로 어렵지 않지만 가난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기는 매우 어렵다.
가난하면 차림새, 육체만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문제가 있어 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자기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적 수준은 자기가 책임지고 갖춰야지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는 병든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있다고 말씀 하신 겁니다.
부처님은 작은 소국의 왕자였습니다. 29살에 출가를 해서 6년간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노력을 한 다음 깨달음을 얻고 45년간 그 깨달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다가 80세에 돌아가십니다.
그런데 35살에 깨달음을 얻고 제자들이 찾아오는 데 천명 정도의 제자가 모아졌습니다.
인도에는 우기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는 데 우기동안에는 천명이 쉴 자리도 없었습니다.
그때 마가다왕국이라는 강대국의 빈비사라왕이 대나무숲을 기증합니다. 그리고 가란타라는 인물이 그 숲에다 건물을 지어줍니다.
그 대나무숲에 지은 절을 죽림정사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기원정사라는 절을 기부받게 됩니다.
죽림정사, 기원정사 같이 쉴 공간이 마련되면서 불교는 더 전파가 될 수 있었습니다.
돈과 종교관계 뿐만 아니라 권력과 돈의 관계역시 굉장히 가깝습니다.
기독교라는 종교를 세운 사람은 예수님이 아니고 저는 바호로라고 봅니다.
예수님은 공생활 3년을 하시면서 언행을 보여주신 것이고 그것을 로마제국 전체에 퍼트린 인물은 바로 바호로입니다.
바호로가 안티오피아를 중심으로 해서 퍼트리는 데 12제자가 한 역할보다 바호로가 한 역할이 크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건 바로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전달하는 내용이 적혀진 신악 27권 중에서 13권을 바호로가 썼습니다.
어떻게 바호로가 이렇게 큰 역할을 할 수 있었을까? 바호로는 로마시민이었고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습니다.
사회적인 지위도 없고 영향력도 없는 인물이 좋은 진리의 말씀이라고 전달할 때 현실적으로 전달이 잘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호로는 로마시민이면서 최고의 지식인 인물이 예수님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깨달음을 얻어서 말씀을 전파하기 시작하니까 그게 굉장히 강력하게 퍼트려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로마라는 제국의 네트워크가 기독교가 퍼지는 데 있어서는 크게 작용한 것입니다.
기독교가 퍼진 또 하나를 말씀드리면 스토아철학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전에 사상, 철학은 민족이나 특정지역 내에 국한되는 것이었는 데 스토아철학은 범세계적인 주의였습니다.
그래서 스토아철학이 로마제국의 민족, 국경을 떠안는 보편적인 가치
이런 것들을 주장하는 환경을 만드는 상태에서 기독교가 그 힘으로 인해 빨리 퍼질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우뚝 서고 오늘날까지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당대최고의 지식인 바호로, 당대 세속적인 최고권력 로마제국, 스토아철학때문이었습니다.
유교는 BC136년에 동중서라는 인물이 한무지한테 건의를 하는 데 한황조가 들어선지 100년 가까이 되니까 우리도 정신적으로 통일을 해야 됩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정신적 통일을 해야 하느냐 유교가 어떨까요 하는 것입니다.
유교가 좋다해서 그때부터 유교가 중국의 중심사상이 되고 관학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동양철학에서는 경학시대라고 합니다.
그전에는 자학시대라고 합니다. 자학시대는 유교뿐만 아니라 많은 사상들, 주장들이 있었습니다.
BC136년에 한황조가 유교를 중심사상으로 채택하면서 그때부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동양사상의 중심인 유교가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불교도 마찬가지로 부처님은 왕족입니다.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미칠수 있고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주장하는 내용이니 뭐가 있겠다 생각합니다.
부처님이 돌아가신지 약250년 뒤에 아시오카왕이라는 출중한 인물이 인도땅에 등장합니다.
아시오카왕으로 인해 불교가 인도뿐만 아니라 주변국가에도 확산이 됩니다.
아시오카왕이 없었다면 불교는 일부지역의 종교로 남아있었을 겁니다.
돈과 종교의 관계, 권력과 돈의 관계는 사실 알고 보면 굉장히 밀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