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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스리시는
하나님 - 욥 38:8-18 |
8
바다가 그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에 문으로 그것을 가둔 자가 누구냐 9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옷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10 한계를 정하여 문빗장을 지르고 11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더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높은 파도가 여기서 그칠지니라
하였노라 12 네가 너의 날에 아침에게 명령하였느냐 새벽에게 그 자리를 일러주었느냐 13 그것으로 땅 끝을 붙잡고 악한 자들을 그
땅에서 떨쳐 버린 일이 있었느냐 14 땅이 변하여 진흙에 인친 것 같이 되었고 그들은 옷 같이 나타나되 15 악인에게는 그 빛이
차단되고 그들의 높이 든 팔이 꺾이느니라 16 네가 바다의 샘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 밑으로 걸어 다녀 보았느냐 17 사망의 문이
네게 나타났느냐 사망의 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느냐 18 땅의 너비를 네가 측량할 수 있느냐 네가 그 모든 것들을 다 알거든 말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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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뮬러가 원장이었던 영국 브리스톨(Bristol) 고아원은 하나님이 늘 직접 그 모든 필요를 채워주셨던 고아원으로 유명합니다. 한 번은 은혜의
비결을 묻는 사람에게 뮬러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나의 의견, 내가 선호하는 것, 내 의지에 대해 전적으로 죽었습니다. 나는 세상과
세상의 인정, 혹은 세상의 비난에 대해, 심지어는 내 형제들과 친구들의 인정이나 비판에 대해서도 죽었습니다. 나는 오직 하나님께 인정받기만을
기도해왔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실은 이게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욥이 이르러야 할 경지라는 것이 오늘 본문의 분명한 메시지입니다.
욥은 모든 자신의 이기심과 욕망에 대해 죽어야 했고,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 무조건 복종하는 결단을 통해 자신의 의지에 대해서도 온전히
죽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에 대해, 모든 존재에 대해 진정한 주권자, 유일하신 주권자시라는 게 오늘 말씀의
가르침입니다.
바다의 한계를 정하신 분 <한계를 정하여 문빗장을 지르고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더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높은 파도가 여기서 그칠지니라 하였노라>(10-11절). 이것은 셋째 날 하나님이 바다를 창조하신 사건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창 1:9). 당시 바다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큰 깊음과 혼돈으로부터 마치 모태의 양수처럼 터져 나왔다고 합니다. 바다는 아주 거대하고 그 움직임이 종종 말할 수 없이 격렬하지만
하나님은 그 바다를 철저하게 당신의 통제 아래 두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네 높은 파도가 여기서 그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할 이유(렘 5:22)이자, 우리가 하나님께 힘을 얻어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바다의 포효와 거센 파도가
내는 천둥 같은 소리도 잠잠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야말로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만민의 소요도 친히 진정시키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시 65:7).
하루에 두 차례 반복되는 조류는 하나님이 명령만 하신다면 언제라도 바다가 이 땅을 덮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뜻하는 자연계시일 수도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새벽의 자리를 일러 주신 분 <네가 너의 날에 아침에게 명령하였느냐 새벽에게 그 자리를
일어주었느냐>(12절). 빛은 모든 가시적인 사물 가운데서 그 존재성을 가장 확실하게 드러내는 것임과 동시에 그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거나 확정하는 데 또 가장 갈피를 잡을 수 없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다 아침을 환영하고 낮이 오는 것을 기뻐합니다. 빛은 우리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있었기 때문에 우리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우리가 그 자리나 시간을 정해 준 것도 아니며, 낮과 밤의 변함없는 주기
역시 우리가 고안해 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빛이 나타내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고 우리가 한 일이 아닌 하나님의 손이 하신 일들을 드러냅니다(시
19:1-2). 진실로 인류에게 아침빛보다 더 위로가 되는 것은 없습니다. 빛의 혜택은 모든 곳에 미칩니다. 낮에게 이 땅을 찾아와 대기를
통하여 아침빛을 흩뿌리도록 명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것, 땅은 마치 진흙에 인친 것 같이 손쉽게 빛을 받아들이고(14절), 빛은 마치 인장이
밀랍에 그 형상을 뚜렷이 남기듯 땅 전체에 퍼져나가서 온 땅을 순식간에 환하게 만들며 새옷을 입은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그래서 땅은 아침마다
새로운 표정을 짓고 빛을 덧입습니다.
땅의 너비를 측량하신 분 <땅의 너비를 측량할 수 있느냐 네가 그 모든 것들을 다
알거든 말할지니라>(19절). 하나님은 지금 욥에게 어디 할 수 있으면 이것을 설명해 보라고 도전하십니다. 우리의 거처는 이 땅에
있고 하나님은 이 땅을 우리 인생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누가 이 땅을 측량해 본 적이 있거나 이 땅의 면적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땅은 전체 우주에 비하면 한 점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작은데도 우리는 이 면적을 정확히 말할 수 없습니다. 욥도 그 주위의 그
누구도 배를 타고 세상을 일주해 본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 땅의 너비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었기 때문에 거대한 아메리카 대륙조차도
까마득한 옛날부터 거기 있었음에도 실제 발견한 건 불과 수백 년 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완전하심은 땅보다 더 오래됐고 또 더 넓습니다.
그러므로 땅의 너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과 모략들의 깊이를 다 헤아리려 든다는 것은 무모하고 주제넘은 일 일 것입니다.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느 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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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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