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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 文化參考

이미 개시 되었던 남침

鶴山 徐 仁 2012. 7. 6. 01:05

august 의 軍史世界

 

이미 개시 되었던 남침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폭풍'이라는 남침 암호를 하달 받은 북괴군이 04시에 일제히 포격을 개시하면서 발발한 것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즉, 준비를 완료한 북괴군이 전면 남침을 개시한 때가 04시였고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전쟁의 공식 발발시간입니다.  그런데 북괴군이 38선 이남으로 월경한 것을 전쟁 개시 시점으로 본다면 실제로 전쟁은 그보다 1시간 앞선 03시에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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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4시에 북한군의 포격이 개시되면서 한국전쟁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왜냐하면 비록 38선 전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북괴군 일부가 6월 25일 03시에 38선을 넘어 이미 남침을 개시하였기 때문입니다.  바로 북괴군 특작부대에 의한 동해안 상륙작전입니다.  우리는 한국전쟁 당시 상륙작전하면 인천 상륙작전을 먼저 떠올릴 정도로 전쟁 중 시도된 대부분의 상륙작전은 제해권을 확보한 유엔군의 주도로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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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을 대표하는 인천 상륙작전 ]

 

하지만 한국전쟁 중 최초로 벌어진 상륙작전은 북괴군의 동해안 상륙작전이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03시 북괴군 제766부대가 동해안의 임원진으로 그리고 제945부대가 인근의 정동진으로 기습 상륙하였습니다.  이것은 전쟁 개시 시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북괴가 주장하는 한국전쟁 북침설이 허구임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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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괴군의 동해안 상륙과 강릉전투 상황도 ]


이 작전은 연대 규모의 경무장 북괴군들이 03시에 상륙 후 현지에서 암약하던 공비 세력과 연결하여 국군을 고립시키는 임무를 담당하였습니다.  때문에 38선을 경비하던 국군 제8사단은 개전 첫날 남침하여 내려온 북괴군 주력과 배후를 압박하던 이들 상륙부대에 의해 순식간 고립된 형국이었습니다.  밝혀진 기록에 따르면 북괴 스스로 이를 대단히 성공적인 기습이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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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포화 속으로'에 묘사된 북한군 제766부대 ]


다행히도 국군 제8사단은 놀라운 투혼을 발휘하여 무사히 후퇴할 수 있었고 이것은 한국전쟁사에 있어 가장 성공적인 철수 사례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 관련글 참조 ) 그런데 동해안에서 벌어진 바로 이러한 개전 초기의 상황은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선 38선 일대에 포격을 날리기 이전에 북한은 정규군을 우리 후방으로 침투시켜 이미 도발을 감행했고 그렇다면 한국전쟁 개시 시간을 03시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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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시에 전쟁이 벌어졌음을 기록한 남침사적비 (사진-흰꼬리수리) ]


이것은 또한 한국전쟁을 지금까지도 북침이라 왜곡 선전하는 북괴의 주장이 거짓임을 입증하는 증거입니다.  개전 당일 후방으로 대규모 병력을 상륙시킨다는 것 자체가 북괴군의 남침을 입증합니다.  상륙작전은 규모의 대소여부를 떠나서 사전에 충분한 사전준비를 마친 후에나 실시할 수 있는 군사작전이므로 도발을 받자마자 즉각 반격하여 상대의 배후로 연대규모의 부대가 상륙을 펼친다는 자체가 말이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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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연한 남침을 왜곡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범죄입니다 ]

 

따라서 북괴의 북침설은 개전당일 동해안에서 벌어진 상륙작전만으로도 거짓임이 여실히 입증됩니다.  이처럼 1950년 6월 25일 03시 동해안에서 벌어진 북괴의 기습상륙작전은 개전 시기에 대하여 한 번 정도 생각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북과의 남침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증거로 적극 활용될만한 역사적 사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분명히 기록된 역사를 부인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범죄입니다. [ august 의 軍史世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