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의 기원- 전곡 선사박물관을 찾아서... 2012/06/18 08:01 | 추천 0 스크랩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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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전곡의 선사 박물관의 토층 박물관 정원에 있는 구석기인들의 사냥 장면...
전곡 선사박물관 토층박물관 마당에 있는 구석기여인들의 삶의 모습
전곡 선사박물관에 여러번 갔지만, 어제는 좀더 상세히 전시물들을 돌아보려 다시 한번 갔다. 원래 전곡 선사박물관에는, 구석기인들의 유물인 주먹도끼의 발굴 현장을 보존하고 전시하기 위한 전곡리토층박물관이 건립되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현대식 구석기박물관이 가까운 경내에[ 새로이 건립되었다. 이곳은 전곡리구석기 박물관이라기 보다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대의 여러가지 유뮬과 문헌을 포괄적으로 전시하는 곳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므로 진짜 전곡리 구석기 유물과 그 발굴 현장을 보려면 수십미터 떨어져 있는 원래의 전곡 토층박물관에 가봐야 한다. 흔히들 인간의 삶이 지구상에서 시작하기 시작한 시기를 연대적으로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구석기...약 기원전 2천만년 전에서 일만년 전까지 신석기...약 기원전 일만년 전에서 기원전 천년 전까지 청동기...약 기원전 천년 전부터 기원후 300년 전까지 철기....약 기원후 300년부터 현재까지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수 십만년 전 구석기 시대부터 였다. 구석기 시대의 한반도에는 추운 빙하기와 따뜻한 간빙기가 번갈아 나타났다. 빙하기 때는 바다가 얼어붙어 바다물의 수위가 현저하게 낮아졌고, 따뜻한 간빙기 때는 바다가 녹아 수면이 높아졌다. 바다물의 수위가 낮아지는 빙하기 때는 중국과 한반도, 일본열도, 대만까지 하나로 붙어 있었다. 바닷물이 녹아 스며들기 시작하면 지금의 지형과 비슷한 형태로 분리되었다. 이러한 현상이 되풀이 되다가 결국 지금의 형태로 굳어졌다. 현재 지구 상에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은 호모사피엔스(현생인류)이다. 호모사피엔스라는 말은 라틴어인데,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호모사피엔스는 약 20만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기원하였다. 약 6만년 전에서 10만년 전, 호모사피엔스는 아프리카를 벗어나, 중동 아시아 유럽 등지로 흩어졌다. 이들은 새로운 대륙으로 확산해 가면서 기존에 존재했던 고대인류들을 하나씩 멸망시켰다. 결국 전 지구를 장악하기에 이른 것이다. 민족 혹은 주민 기원연구는, 체질인류학적인 연구와 문화인류학적인 연구, 사회학적인 연구 혹은 언어학적인 연구가 있다. 오늘날 가장 신빙성을 갖춘 연구는 체질인류학적인 연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극도로 발달한 DNA 분석기술은, 현생 인류의 조상이 누구이며, 이들은 어디에서 살았으며, 어떤 경로로 퍼져 나갔는가를 가늠케 해주고 있다. 물론 이들은 어떻게 고대인류를 지구상에서 멸종하게 만들고 자신들의 생명을 전지구에 퍼트렸는가를 이 DNA 연구는 밝혀내고 있다. 이 지구상에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는,유기체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유전정보가 있고, 이것을 운반하는 디옥시리보핵산 즉 DNA를 가지고 있다. 어머니로부터 자식들에게 전해지는 미토콘드리아 DNA와,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만 전해지는 Y염색채 DNA가 있다. 이 DNA를 역추적하면, 인간의 생명의 흐름을 계산해 낼 수 있다. 인간과 침팬지가 600 만년 전까지는 공동조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도 이 DNA 연구결과이다.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사피엔스가 아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를 시작한 것이 약 6만년 전이라는 것도 역시 DNA 연구가 밝혀 주었다. 아프리카를 출발한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사피엔스가 고대인류들인 호모 에렉투스 계열의 여러 종족들,인류 최초의 발자국 화석을 남긴 오스트랄로피데쿠스를 비롯하여 고대 호모에렉투스 족 계열의 자바인 베이징원인, 플로레시안시스로 분류되는 네안델탈인까지 멸망 시켰다는 사실도 이들이 남긴 화석을 통한 이들의 DNA연구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들 호모사피엔스가 어떤 경로로 고대 인류들인 호모에렉투스를 멸망시켰는지는 확연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고 한다. 이들 호모사피엔스는 아프리카를 탈출하여, 아시아로 유럽으로 흩어져 갔는데,아시아로 흩어진 그들은 크게 두 갈래로 다시 분파되었다.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인도네시아반도 중국남부로 뻗어간 계열과, 중앙아시아 몽고 시베리아로 흩어져간 계열이 그것이다. 이들이 한반도로 흘러들었는데 DNA 연구결과 북방 계열과 남방 계열이 6 대 4의 비율이라고 한다. 고대 국가인 가야의 건국왕 김수로왕의 왕비가 남방에서 왔다는 허왕비라는 기록도 이런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구석기인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주먹도끼>를 사용하였다는 사실이다.
허왕비는 물론 구석기인이 아니다. 시기적으로 청동기인에 해당한다. 그러나 의미상 허왕비의 한반도 도래설은 한민족의 이런 원시 도래설과 무관하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구석기인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주먹도끼>를 사용하였다는 사실이다. <주먹도끼>가 구석기인들의 상징이라면, 기원전 일만년 경에서 기원전 천년 경까지 지속된 신석기인들의 상징은 <빗살무늬 토기>이다. 구석기인들의 삶이 수렵과 방랑 그리고 야수와의 생존투쟁이라면, 신석기인들의 삶의 특징은 정착과 농경생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삶의 영위를 위해 가장 필요한 도구가 구석기인들에게는 주먹도끼(타제석기)가, 신석기인들에게는 간석기(마제석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바드대학의 모비우스 교수는, 호모사피엔스 중 아시아 쪽으로 간 부류들은 주먹도끼를 사용할 줄 몰라 유럽쪽으로 흘러간 그들이 남긴 프랑스의 아슈리 지방에서 보는 바와같은 주먹도끼가 없었기 때문에 문명적으로 열등하다는 주장을 폈고 그것이 학계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전곡리 유적은 프랑스식 아슐리안 주먹도끼의 대량 발굴로 그의 오랜 학설은 깨어지고 말았다.
지구상에 인간의 흔적이 나타난 구석기 시대에의 관심을 더욱 확대하여, 지구 그 자체 그리고 지구가 속한 태양계 그리고 태양계가 속한 우주 자체로 관심을 확대해 보는 것도 바람직한 일인 것같다. 인간들은 이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를 종교적 감각으로 이해하려 했다. 즉 신에 의한 창조가 그것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그런 종교적인 감각으로 우주와 태양계와 지구의 탄생을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지금까지의 모든 경험과 지식 그리고 지혜를 총동원하여, 우주가 존재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200억년 전부터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시기에 대폭발 즉 Big Bang이 일어나 우주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그 형성되어진 우주는 빛의 속도로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태양계가 형성된 것은 대략 45억년 전이며, 비슷한 시기에 지구도 형성되었다. 지구의 역사를 양분하는 선캄브리아기는 약 45억년 전에서 6억년 전까지의 매우 긴 시간이었다. 즉 6억년 이후부터가 후기캄브리아기인데, 사람들은 이 시기를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로 구별한다.
지구상에 언제부터 어떤 생물체가 존재하였는가는 자연적으로 형성되어진 화석에 의해 밝혀지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생물체의 화석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서 오스테레일리아 지방에서 출토된 약 35억년 전의 바라우나 층에서 나온 생물체화석이라고 한다.스트로마톨라이트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생물체의 화석은 이후 선 캄브리아기의 화석에서도 종종 발견된다고 한다.
후기캄브리아기의 신생대로 접어들자, 그간 형성되어진 포유류는 폭발적으로 분화하고, 각 계통마다 진화하였다. 원시 원숭이류는 신생대 3기에 타나났다.약 3000 만년 전에는 사람과 원숭이의 공동조상이 존재하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사람으로 진화해간 원인은 약 1500만 년 전에 존재하였으며, 고대인류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호모엘렉투스는 약 150 만년 전에 나타났다고 한다.
그리고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사피엔스의 출현을 약 20 만 년 전으로 보고 있다
우리 한반도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는가는 중국에서 발견된 화석과 구석기 유물로 보면, 원시인류인 호모엘렉투스계열의 원시 인류가 백만전부터 살았으리라 추측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멸종되었고, 유전학적으로 현대인들의 DNA를 가진 호모사피엔스가 한반도로 들어온 것은 대략 4만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한반도에 남아 있는 전기 구석기 유적으로는, 평안남도 상원 검은모두 동굴과 경기도 연천 전곡리 유적 뿐이다. 즉 여기에서는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발굴 된 것이다. 후기구석기 유적으로는 함경북도 굴포리 유적과, 강원도 양구 상무룡리와 충청남도 공주 석장리 유적과 충청북도 단양 수양개 유적이 있다. 그러므로 한반도 남쪽 전기 구석기 유적지로는 전곡리 유적이 유일하다. 연천 전곡리 선사박물관에 가서 주먹도끼를 꼭 관람하여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석기 인들이 쓰다가 버린 주먹 도끼들이 수집되어 전시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현물대로 자세히 관찰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한반도의 토양이 산성이기 때문에 인골들의 유구가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아, 구체적으로 한반도에 살았던 구석기인들의 모습을 재현하기는 대단히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평양의 석회암 동굴에서 후기구석기인들의 인골들이 확인되고 있는데,덕천인 역포인 용골인등 호모사피엔스 계열의 구석기인들이다. 특히 용포인은 두개골이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어서, DNA 추적이 가능하며, 그 결과 호모사피엔스 계열의 구석기 인으로 대략 7만년 전에서 4만년 전에 한반도에 살았던 후기구석기인으로 판명된다고 한다. 전곡리 구석기 유적은 다량의 아술리안 주먹도끼가 출토되기는 했으나, 인골이 수습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후기 캄브리아기의 최후기에 해단하는 신생대 4기에 임진 한탄강 유역의 추가령지구대를 따라서 용암이 분출되었다. 이 용암이 옛 한탄강의 유로를 따라 채워짐으로서, 전곡리 유적 일대에는 평탄한 용암대지가 형성되었다. 이 용암대지 위로 다시 한탄강이 흐름으로써 현무암 절벽같은 독특한 지형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그후 세월이 흐림에 따라, 토사가 쌓이고, 바람에 의해 모래가 쌓임으로서 지금의 토충이 조성된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토층 속에 그 당시에 여기에서 살았던 구석기인들의 유물 즉 주먹도끼가 다량 출토된 것이다.
필자는 이 분야의 전문가는 물론 아니다. 다만 한민족의 기원이 어디에서 시작하였을까 하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전곡리 선사박물관을 여러 차례 방문하였고, 각종 문헌들을 뒤적여 그 이해의 폭을 넓혀 보고자 했다. 이 글의 서두에 제시한 두 개의 사진은 조금 오류가 있는 것같다. 구석기인들은 전혀 옷을 입지 않았고, 원숭이들과 마찬가지로 전신이 털로 덮혀 있었다. 구석기 박물관 정원의 구석기인들의 디오라마이지만, 부끄러운 데를 가리지 않고는 아마도 구석기인들을 공개적으로 제작하기에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추가령 지구대로 흘러내린 용암이 맨 아래츨의 현무암층을 형성, 그 위 강의 모래의 퇴적층, 그 위 바람에 의한 모래층, 지구표면 층으로 형성되어진 전곡리 토층 구조와 현무암 층에서 발견된 주먹도끼들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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