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CTS 새벽종소리] 2012년04월19일 QT - 은총의 힘을 보유하기 (도서/사진/말씀)

鶴山 徐 仁 2012. 4. 23. 00:43



은총의 힘을 보유하기


거룩하게 되기와 제자가 되는 근본적인 소명은 그저 예수에게 봉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에 의해 받은 섬김의 소명은 그의 은총의 보답으로 우리가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이웃들에게 봉사하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에 하나님이 필요로 하거나 원하는 것을 그에게 줌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과 그가 우리를 위해 그 자신 속에 입수해 온 모든 것을 우리가 받음으로써 하나님을 예우하는 것입니다.
-스티브 힐의 [하나님과 동행하는 행복] 중에서-

우리는 가끔 모든 출발을 나에게서 시작하려고 합니다. 불완전한 나로부터 시작되는 봉사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불평과 불만이 생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총 때문에 순종하는 봉사는 사람을 세우고 기쁨을 누립니다. 항상 ‘내 인생의 시작을 내가 할 것인지?’ ‘하나님이 시작하게 하실 것인지?’를 구분하는 일은 하나님의 은총을 힘입어 살아가기 위해 선택해야 할 일입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빌닷의 교훈 - 욥 8:1-7
1.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으며 어느 때까지 네 입의 말이 거센 바람과 같겠는가

3. 하나님이 어찌 정의를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4. 네 자녀들이 주께 죄를 지었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버려두셨나니

5.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고

6.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7.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이제 욥의 세 친구 가운데 두 번째 주자인 빌닷이 나섭니다. 엘리바스의 담론과 욥의 반응을 살피던 빌닷이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들을 쏟아 냅니다. 그러나 빌닷은 엘리바스가 자기 주장의 근거로 한밤중의 <신비한 꿈>(7:17)을 언급한 것과는 달리 과거 세대들의 집단적 지혜에 호소합니다.

간구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고>(5절).
빌닷은 욥의 <자녀들이 주께 죄를 지었으므로 주께서 그들을>(4절) 심판하사 요절했기 때문에 <네 처소가 평안하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하나님을 찾고 또 전능하신 이에게 부지런히 간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빌닷의 이런 언설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것이 욥의 경우에 적용되는 게 옳으냐 하는 것인데 결코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욥의 자녀들은 그들의 죄 때문에 죽은 게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빌닷은 졸지에 당한 모든 화를 다 죄값으로 치부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분명 그렇습니다. 열심히 하나님을 찾고 부지런히 전능하신 이에게 빌면 하나님이 그의<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십니다. 아닌게 아니라 욥기 마지막 장인 42:2에서는 욥도 <주께서는 못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을 안다>며 기도했습니다. 더욱 하나님을 찾고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십시오. 그래서 늘 당신의 처소가 평안하시길 빕니다.

정직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6절).
마찬가집니다. 일반적으로는 마음이 청결하고 정직하면 재앙보다는 평안을 베푸시고, 사망보다는 생명을 더하사 복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욥의 경우는 결코 그가 청결하지 못하고 정직하지 못해서 죽음과 각종 화를 당한 게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엄연히 하나님의 특별하신 뜻과 경륜이 있으셨던 예외적인 케이스였습니다. 그럼에도 빌닷이 모든 경우를 일반화했다는 데 오류가 있었습니다. 성경은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니라 하셨느니라>(벧전 3:15-16)고 했습니다. 또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라>(마 5:8) 했고,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딤전 1:5)이라 했습니다. 정직한 삶으로 당신의 처소를 평안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십시오. 당신의 청결한 마음에 비친 하나님의 모습을 뵙는 영광이 있으시길 빕니다.

비전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7절).
이것은 믿는 자들의 가정이나 특히 개업하는 사업장에 예외없이 걸려있는 대표적인 축복 성구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나 시작은 미약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비전이 있습니다. 따라서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마 13:32)고 하셨습니다. 또한 천국은 가루 서 말을 전부 부풀게 하는 한 줌 누룩과도 같다(마 13:31)고 하셨습니다. 비전을 가지십시오. 지금 초라하고 볼 품 없다고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겨자씨처럼, 누룩처럼 그렇게 나중은 심히 창대하여 당신의 존재감을 널리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