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CTS 새벽종소리] 2012년04월7일 QT - 사람을 얻으려면 (도서/사진/말씀)

鶴山 徐 仁 2012. 4. 7. 18:27



사람을 얻으려면


상처받기를 두려워하면 어떤 사람도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더 많이 상처받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꼭 쥔 채로 다른 사람이나 그의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이 귀하고 그 사람이 가진 것이 소중한 것이라면, 그것을 얻기 위해서 내가 가진 것 중에서 내어주는 것도 있어야 합니다.
-김형원의 [행복한 크리스찬] 중에서-

먼저 자신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도움도 받을 수 있고, 함께 울어줄 친구도 얻습니다. 내 것을 먼저 내어주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고 다른 사람을 먼저 대접하도록 만들어 놓으신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가장 비참한 자 - 욥 7:1-6
1. 이 땅에 사는 인생에게 힘든 노동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그의 날이 품꾼의 날과 같지 아니하겠느냐

2. 종은 저녁 그늘을 몹시 바라고 품꾼은 그의 삯을 기다리나니

3.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달째 고통을 받으니 고달픈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

4. 내가 누울 때면 말하기를 언제나 일어날까, 언제나 밤이 갈까 하며 새벽까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구나

5. 내 살에는 구더기와 흙 덩이가 의복처럼 입혀졌고 내 피부는 굳어졌다가 터지는구나

6. 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희망 없이 보내는구나

욥은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인생의 강력한 일격인 재앙이나 슬픔 가득한 고뇌로부터는 한 치도 면제된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가장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지극히 순조로운 인생 항로를 가다 졸지에 천길 벼랑의 심연으로 곤두박힌 사람입니다. 산산조각이 난 그 인생의 가장 어두운 흑암 속에서 그는 거의 상상할 수도 없는 정서적, 정신적인 붕괴를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주님도 결국은 그렇게 무덤에 갇히셨습니다. 욥처럼 흑암한 스올에 떨어지신 겁니다.

품꾼의 날
<이 땅에 사는 인생에게 힘든 노동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그의 말이 품꾼의 말과 같지 아니하겠느냐>(1절).
욥이 지금 자신의 하루하루가 노역에 시달리는 <품꾼의 날>처럼 고단하고 고통스럽다고 한탄합니다. 혹독한 감독 밑에서 순간순간을 힘겹게 살아가는 지친 노예 신세라는 것입니다. 여기 <힘든 노동>이란 말의 원문의 뜻은 <전쟁>입니다. 그렇습니다. 삶에는 고단한 노역 아닌 게 없고, 치열한 전쟁 아닌 게 없습니다. 주님의 짧은 33년의 생애도 그렇게 고달픈 나날이었습니다. 주님은 늘 품꾼처럼, 늘 전쟁처럼 사시다 또 그렇게 참혹한 최후를 맞으셨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 53:2-3).

고달픈 밤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달째 고통을 받으니 고달픈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3절).
당시 욥에게서 밤이란 늘 최악의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누울 때면 말하기를 언제나 일어날까, 언제나 밤이 갈까 하며 새벽까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는구나>(4절). 왜 새벽까지 그렇게 뒤척이며 힘들어하고 괴로워했을까요? <내 살에는 구더기와 흙덩이가 의복처럼 입혀졌고 내 피부는 굳어졌다가 터지는구나>(5절). 온몸을 뒤덮고 있는 부스럼 때문에 구더기가 생겼고, 상처의 딱지들이 흙덩이처럼 굳어져 피부가 다 갈라지고 터졌습니다. 만신창이가 된 몸 때문에 갈수록 고통이 심해 밤을 견디기가 더욱 힘들어진 것입니다. 주님 역시도 이 땅에서의 최후의 밤을 그렇게 고문과 심문을 당하시며 지새우셨습니다.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마 27:27-31).

베틀의 북
<나의 말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희망 없이 보내는구나>(6절).
누구나 삶은 정해진 시간을 향해 급히 달려갑니다. 욥도 지금 자신의 껴져가는 생명의 불꽃을 느끼며 오래지 않아 생을 다할 것이라고 예감합니다. <나의 시간이 거의 끝나간다. 내 생의 모래시계에 모래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 베틀의 북과 같이 자신의 삶을 직조합니다. 그리고 그 베틀의 북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이쪽 끝에서 저쪽 끝을 오가며 인생이라는 천을 짭니다. 주님도 십자가에 달리셔서 <엘리! 엘리!>(마 27:46)를 외치시며 <크게 소리 지르시고 그 영혼이 떠나가셨다>(마 27:50)고 했습니다. 생명의 베틀 북이 거기서 멎은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흑암한 무덤 속에서 하나님이 내리신 우리 모두의 죄악에 대한 무시무시한 응징을 홀로 당하고 계십니다.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일세. 요단강을 건넌 후 영원 안식 얻네>(새찬송가 439 후렴).
지금 주님이 겪고계신 하나님의 저주가 당신과 우리 모두의 영원한 생명이됨을 확신합시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