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윤영신 사회정책부장
'대학등록금 1000만원' 시대의 불씨는 9년 전에 생겼다. IT 버블이 꺼지고 카드대란(大亂)이 발생해 우리 경제가 장기불황에 접어들고 그 후유증으로 빈곤층은 더 가난해지고 중산층이 무너지던 때였다. 값싼 중국제품과 환율정책, 공공요금 억제로 물가는 2~3% 선에서 잡혔지만 대학등록금은 예외였다. 수십년간 유지돼온 등록금 규제의 빗장이 김대중 정부 마지막 해인 2002년에 풀리면서 국공립대가 먼저 등록금을 7.4% 올렸고, 이어 사립대들이 6.9% 인상했다. 이를 시작으로, 국공립대가 앞장서면 사립대가 따라가는 식의 등록금 인상행진이 7년간 이어져 '1000만원 시대'가 왔다.
경제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분배 쪽에 더 신경을 썼다. 대학들엔 '등록금 자율화'라는 각자도생(各者圖生)의 살길을 주고, 많은 재원을 복지로 돌려 복지예산 비중이 처음으로 10%를 넘어섰다. 불황 속에서 커진 복지와 나랏빚이 교육예산을 압박했다. 노태우·김영삼 정부 때 연간 17~18% 늘어났던 교육예산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5.5% 증가율에 그쳤다. 등록금 자율화 조치로 발생한 추가부담을 학생과 학부모가 떠안은 것이다.
어느 한쪽이 강조되면 다른 한쪽이 위축되는 복지와 교육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치솟은 등록금을 단번에 절반 잘라내겠다는 것이 '반값 등록금'이다. 반값 등록금이 되면 민주당 입장에선 집권기에 학생·학부모들에게 신세졌던 것을 한꺼번에 갚는 셈이 된다. 한나라당의 속내도 비슷한 것 같다. 민주당의 반값 등록금에 올라타려다 포퓰리즘이란 비판을 받고 일단 물러섰지만 지금도 등록금 이슈를 놓지 않고 있다.
정상적인 국정(國政)이라면 총리실이나 주무부처인 교과부가 관계부처 협의를 주도하고 공청회를 열어 대책을 모색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하지만 이런 기본적인 정책의 결정 시스템이 생략된 채 등록금 논의는 계속 당(黨)에서 맴돌고 있다. 등록금이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게임으로 된 것이다. 등록금이 정치권을 떠나지 않으면 결론도 정치적 논리에서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 원내대표가 덜컹 '반값 등록금' 약속을 해버린 한나라당이 이 문제를 쥐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반값은 아니더라도 그에 가까운 것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비싸서 소득 상위 20% 이내의 가정도 힘겨워하는 대학등록금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적어도 돈을 버느라 공부할 시간이 부족한 학생에겐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대학생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반값, 또는 그에 가까운 내용의 해법은 여러 가지 위험을 안고 있다. 그 전제로 논의되고 있는 부실대학 퇴출부터 말처럼 쉽지 않다. 이미 빈사 상태에 있는 몇몇 대학을 문 닫게 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각 지역에서 호족(豪族) 같은 존재로 뿌리내린 '좀비 대학'들도 만만치 않다. 더구나 내년엔 두 차례 선거까지 있다.
정치권에서 어떤 모양으로든 '반값 등록금'과 유사한 대책이 나온다면 그것은 한국을 세계 초유의 '대학 진학률 100%' 나라로 만들고, 대학 졸업장 장사는 더 심해질 것이다. 우리나라의 핵심생산인구가 지난해 처음 감소했다. 저출산의 재앙은 어느 순간 우리를 덮칠 것이다. 저출산의 재앙과 맞서 싸워야 할 우리 젊은이들이 이렇게 대학을 나와서, 부모세대를 부양하는 것은 둘째치고 자기들의 기본적인 삶을 유지할 능력을 갖출 수 있을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