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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들었지만 제대로 모르는 장군의 이름

鶴山 徐 仁 2011. 1. 13. 18:42

august 의 軍史世界

 

많이 들었지만 제대로 모르는 장군의 이름

 

 

 

중공군의 갑작스런 등장은 자신만만하게 북진을 이끌던 미 8군 사령관 월튼 워커(Walton H. Walker 1889~1950)를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 관련글 참조 ) 적의 공세는 거셌고 지금까지의 북진하였던 길을 뒤돌아 후퇴하여야 했을 만큼, 명령을 내린다고 중공군을 막을 수 있던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이제 워커에게 부여된 임무는 단 하나, 최대한 후퇴 속도를 조절해 전선을 최대한 빨리 고착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 한국전쟁 초기 미 8군 사령관이었던 월튼 워커 ]

 

후방에 튼튼한 방어선을 만들려면 우선 중공군의 남진을 최대한 지연시켜 시간을 벌어야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중공군에 놀라 도망가기 바쁜 일선 부대의 분투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워커는 바닥까지 떨어진 예하부대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제일선을 찾아다니며 동분서주하였습니다.  원래 워커는 야전을 돌아다니며 직접 상황을 파악하는 것을 즐겼지만 지금은 더욱 열심히 돌아 다녀야 할 상황이었던 것이었습니다.

 

[ 그는 전선을 직접 순시하며 현장에서 지휘하는 저돌적인 지휘관이었습니다 ]

 

1950년 12월 23일, 워커는 경원축선에서 중공군과 맞서 방어전을 펼치던 미 24사단과 영 27여단을 방문하기 위해 의정부 북방으로 출발했습니다.  서울의 재포기가 예상되었을 만큼 상황이 나빠서 군은 물론 민간인도 함께 안전하게 소개하려면 이들 부대가 좀 더 오래 동안 이곳을 방어해내야 했습니다.  또한 그는 이번 기회에 미 24사단에서 중대장으로 근무하는 외아들 샘 워커(Sam S. Walker 1925~)대위도 오랜만에 만나려 했습니다.

 

[ 방한한 콜린스 미 육군 참모총장에게 아들 샘 워커를 소개하는 월튼 워커
그는 대를 이어 군인이 된 아들을 상당히 자랑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

 

그런데 오전 11시 경 워커를 태운 지프가 현재의 서울 도봉동 596-5번지 지점을 통과하여 의정부로 향할 때 반대편에서 남하하던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했고 이 사고로 그는 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비록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에 비하여 세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유엔군 지상군의 주력인 미 8군을 이끌며 최전선을 종횡무진 활약하던 명장의 어이없는 죽음이었습니다. * 그동안 많은 자료에 사고 장소가 경기도 포천의 축성령 인근으로 알려졌는데, 위 주소지 임이 공식 확인되었습니다. ( 관련글 참조 )

 

[ 사망 60주년을 맞아 지난해 12월 사고현장에서 벌어진 추모제 (사진-연합뉴스) ]

 

이를 안타까워한 미군 당국은 한국에 있던 외아들 샘 워커 대위로 하여금 아버지의 시신을 미국으로 운구토록 조치하였습니다.  그런데 샘은 남아서 싸우겠다고 고집하여 결국 맥아더가 직접 불러 운구지시 명령을 내렸습니다.  강골이었던 그의 아버지처럼 전형적인 무인이었던 샘 워커는 이후 최연소 미 육군 대장에 올랐고 이것은 아직까지 미군 역사상 부자가 대장에 오른 두 차례 밖에 없는 희귀한 예가 되었습니다.

 

[ 고인의 뒤를 이어 미 육군대장에 오른 아들 샘 워커 ]

 

워커의 이름은 한국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편인데 그 이유는 사실 그의 업적보다 호텔의 이름 때문입니다.  국내에 변변한 시설이 없어 휴가 때마다 일본이나 태국으로 놀러 가는 주한미군들을 유치할 목적으로 1963년 4월 한강변에 설립한 호텔을 워커 장군으로 이름을 따서 워커 힐(Walker Hill)로 명명하였는데 그 이유는 전쟁 영웅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미국인들의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급 호텔로 자리매김한 워커힐 ]

 

하지만 그는 지난 한국전쟁 당시 가장 위태로웠던 낙동강전선을 성공적으로 사수한 맹장이었습니다.  그가 지휘한 미 8군과 국군의 분투가 있었기 때문에 아군은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켜 역전타를 날리고 감격스런 북진을 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중공군의 참전으로 통일의 꿈이 무산되고 그 또한 불의의 사고로 생을 마감하였지만 한국전쟁 초창기에 그가 남긴 족적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컸습니다.

 

[ 지난해 6월에 미 8군 영내에서 있었던 워커 장군 동상 제막식 (사진-연합뉴스) ]

 

그런데 흔히 언급 되는 것과는 별개로 그가 이러한 인물이었는지 제대로 아는 이들은 사실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를 기리기 위해 지난 6월 23일, 사망한지 60년이 지나고 나서야 용산 미 8군 사령부내에서 동상이 제막되었지만 이 또한 일반인들이 접하기 힘든 위치입니다.  맥아더 동상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 때문에 미군 당국에서 동상을 보호할 수 있는 장소에 세우기를 원했기 때문이라 합니다.  60년 전 이맘 때 자유를 수호하던 중 이국땅에서 생을 마감하였지만 호텔이름으로나 간간히 들어왔던 그의 이름를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 august 의 軍史世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