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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대한민국 제1호] 고무신

鶴山 徐 仁 2011. 1. 8. 14:25

 

 

 

                   대한민국 제1호 고무신

 

 

순종이 신은 대륙표 고무신

 

고무신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널리 신던 서민들의 대표 신발이었다. 질겨서 잘 찢어지지도 않고, 비가 와도 새지 않아 누구에게나 인기였다. 고무신엔 신분도 유행도 없었다. 누구나 사서 신을 수 있어서 ‘사회적 평등’의 표상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고무신이 소개된 것은 1910년대로, 첫 고무신 공장은 외부대신을 지낸 이하영이 1919년에 한일합자회사로 만든 ‘대륙고무공업주식회사’이다. 이하영은 주미공사 시절 갓 쓰고 도포 차림으로 서양 춤을 잘 춰 워싱턴 사교계에서 인기를 끌었던 인물이었다.

어려서부터 찹쌀떡 장사, 상점점원, 요리사 등으로 사업수완을 보였던 그는 한일강제병합 후 예순이 넘은 나이에 고무신 공장을 차렸다. 고무와 가죽을 섞은 일본 고무신을 개량해 고무로만 만든 ‘조선식’ 고무신을 만들었다.

1922년 9월 21일자 신문에 ‘순종과 왕자·공주, 나인들이 널리 애용해 이번에 주식회사로 출범했다. 다른 회사가 조악한 제품을 본사 제품이라 사칭하는 경우가 있으니 본사 상표 〈대륙〉에 주의하시옵소서’라는 광고까지 냈다. 고무신이 인기를 끌면서 1921년 중앙 상공주식회사, 평양에 정창 고무공장이 설립되는 등 1933년에는 전국에 고무신 공장이 72개에 달했다.

대륙고무의 특약점 광고

해방 전 인기를 끈 고무신은 ‘거북선’표의 서울고무, ‘별표’ 중앙상공, ‘천(天)자표’ 천일고무 등도 있었다.

개항 후 ‘최고 히트 상품’으로 꼽히는 고무신의 경쟁이 어찌나 치열했는지 ‘별표 고무, 꼭 한번만 신어 주시오. 모양 있고 질긴품으로 고무신중에 제일’ ‘이강(순종의 아우인 의친왕) 전하가 손수 고르셔 신고 계시는 만월표고무신’ 등의 광고전(戰)까지 나올 정도였다. 고무신은 제조업체뿐만 아니라 한국인 판매상들의 판매·광고 경쟁도 치열했다.

1945년 해방 이후 고무신 산업은 중흥기를 맞는다. ‘왕자표 신발’로 유명한 국제고무공업(현 국제상사)이 부산에 설립됐고, ‘범표’ 삼화고무, ‘기차표’ 동양고무(현 화승) 등 전문 업체들이 속속 탄생했다.

고무신은 수출에도 ‘효자’ 노릇을 했다. 1962년 미국 첫 수출 이후 월남전 군납 등을 거쳐 1968년엔 수출 실적이 1100달러에 달했다.

 

 

 

 

출처 : 藝術村
글쓴이 : viv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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