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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병국·최중경·정동기·김동수·김석동·김영란(왼쪽 위부터) /조선일보DB
이명박 대통령은 31일 장관급 6명을 포함한 부분 개각을 단행했다.
지난 6월과 9월 공석이 된 국민권익위원장과 감사원장에는 각각 김영란 전 대법관과 정동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내정됐다.
지난 8·8 개각에서 교체키로 했던 문화체육관광부장관과 지식경제부장관에는 한나라당 정병국 의원과 최중경 경제수석이 각각 내정됐다. 또 공정거래위원장에는 김동수 한국수출입은행장이, 금융위원장에는 김석동 전 재정경제부 1차관이 임명됐다.
차관급인 공정거래부위원장에는 정재찬 공정거래위 상임위원, 국민권익위 부위원장에는 김대식 전 민주평통사무처장이 임명됐다.
홍상표 청와대 홍보수석은 “정 감사원장 내정자는 검사장 당시 기업경영 혁신기법을 검찰에 처음 도입했고 민정수석으로서 개혁성과 추진력을 평가받아 국가기강 중추 기관장으로 손색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내정 배경을 밝혔다.
홍 수석은 “정 문화장관 내정자는 문화, 홍보 및 미디어정책의 전문성이 탁월해 문화체육관광 행정을 창의적으로 선진화해나갈 적임자이며, 최 지경장관 내정자는 경제정책과 실물경제, 국제경제 분야를 망라한 전문성을 갖춰 대외경제협력 확대와 국내 산업지원 업무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실에 대한 인사도 실시했다.
신설된 국가위기관리실장에는 안광찬 전 국가비상기획위원장이 임명됐다. 박형준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사회특별보좌관에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언론특별보좌관에 임명돼 청와대로 복귀했다.
또 국제경제보좌관에 이종화 고려대 교수, 총무비서관에 신학수 전 동아시아연구원 총무부장, 통일비서관에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 정보분석비서관에 유현국 전 한미연합사 정보참모부장, 위기관리비서관에 김진형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장, 지방행정특별보좌관에 김진선 전 강원지사, 여성특별보좌관에 김영순 인구보건복지협회장이 각각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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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를 지켜온 자타가 공인하는 ‘문화.미디어 전문가’.
이명박 정부의 미디어 정책 입안에 깊이 관여했으며, 지난해 미디어관계법 국회 통과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오랜 기간 문화예술.미디어 분야에 몸담아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고, 올해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으로 선출된 직후에는 두 달간 현장을 누비며 정책대안을 발굴하기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한 뒤 대통령 제2부속실장을 역임했고, 16대 총선부터 경기 양평.가평에서 내리 3선에 성공했다.
18대 국회 들어서는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비롯해 미디어발전특별위원장, 서민행복추진본부장 등 당의 요직을 지냈다.
특히 2004년 한나라당 내 소장파 의원 모임인 ‘새정치수요모임’ 대표를 맡으면서 당 개혁을 주창, 남경필, 원희룡 의원과 함께 ‘남.원.정’이란 신조어를 낳는 등 개혁그룹의 간판 이미지도 갖고 있다.
연극과 미술, 오페라에도 조예가 깊고, 외모와 뿔테안경, 그리고 특유의 추진력과 성실함 때문에 ‘슈퍼맨’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부인 이상희(47)씨와의 사이에 1남1녀.
▲경기 양평(52) ▲성균관대 사회학과 ▲16∼18대 의원 ▲한나라당 원내부총무, 언론발전특별위원장, 홍보기획본부장 겸 홍보위원장, 21세기 미디어발전특별위원장, 사무총장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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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요직을 두루 거친 정통 재무관료.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근무하다 막바로 실물경제를 총괄하는 지경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긴만큼 현 정권의 국정기조를 정확히 이해하는 인물로 꼽히며 이에 일치하는 정책을 펼칠 것으로 평가된다.
대학 졸업 후 공인회계사로 삼일회계법인에서 일하다 행정고시 22회로 관가에 입문했다.
1979년 재무부 사무관을 시작으로 재정경제부 금융협력과장, 외화자금과장, 증권제도과장, 국제금융국장 등을 지냈으며 2005년부터 세계은행 상임이사로 선출돼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국제통화기금(IMF)과 특별지원자금을 협상했다.
세계은행 상임이사 재직 때는 ’금융부문 지원전략 임시위원회’를 만들어 의장을 맡아 직접 전략을 만들기도 했다. 세계은행에서 이사회가 직접 임시위원회를 꾸려 현안을 다루는 ’톱 다운’ 방식을 택한 것은 그가 처음으로, 세계은행에서는 ’초이(Choi) 모델’이라는 이름을 붙여 활용하고 있다.
판단이 빠르고 추진력이 있다는 평이다. 과감한 외환시장 개입을 놓고 ’최틀러’라는 별명도 회자된다.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이 아끼는 후배. 2008년 강 위원장이 기획재정부 장관을 맡았을 때 재정부 1차관으로 호흡을 맞추다가 고환율 정책 논란과 함께 물러났지만, 곧 필리핀 대사에 임명되면서 ’보은 인사’라는 평을 낳기도 했다.
▲경기 화성(54) ▲서울대 경영학과 ▲하와이대 경제학 박사 ▲재경부 외화자금과장 ▲금융정책과장 ▲비서실장 ▲국제금융국장 ▲세계은행 상임이사 ▲인수위 경제1분과 전문위원 ▲기획재정부 1차관 ▲주 필리핀 대사 ▲청와대 경제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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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출신으로는 첫 감사원장에 올랐다.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로 탁월한 기획력과 정책판단 능력을 갖췄으며 치밀한 업무 처리와 실천력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는다.
2004년 대구지검장으로 있을 때 당시 정상명 대구고검장과 함께 기업경영 혁신기법인 ‘6시그마’ 운동을 검찰에 최초로 도입,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보호감호, 보호관찰제도 분야 최고 전문가로 저서 ‘보안처분제도론’과 ‘보호관찰제도 10년의 평가’ ‘보호감호제도를 위한 변명’ 등 다수의 논문을 내며 우리나라 보호관찰제도를 정착시킨 주인공으로 인정받는다. 사회봉사명령제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법조계에서는 손용근(58.사법시험 17회) 사법연수원장에 이어 한양대 출신 법조인 2호로 통한다.
재조 시절 자기 관리에 철저하고 지휘 통솔력이 뛰어나며 조직애가 강해 선후배의 신망이 두터웠다.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법무행정위 간사를 맡아 이명박 정부와 인연을 맺었으며 2008∼2009년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을 역임한 뒤 정부법무공단 이사장을 맡아왔다.
부인 김외숙(54)씨와 사이에 1녀.
▲서울(57.사시18회) ▲한양대 법대 ▲서울지검 북부지청 ▲법무부 검찰4과장 ▲서울지검 형사 3, 5부장 ▲인천지검 1차장 ▲서울고검 공판부장 ▲서울고검 형사부장 ▲법무부 보호국장 ▲대구지검장 ▲인천지검장 ▲대구고검장 ▲법무부 차관 ▲대검 차장 ▲인수위 법무행정위 간사 ▲대통령 민정수석 ▲정부법무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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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물가 관리 분야의 요직을 두루 거친 경제 관료이다.
행정고시 22회로 1979년 옛 경제기획원의 사무관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해 재정경제부에서 소비자정책과장, 생활물가과장, 물가정책과장 등을 역임했다.
물가 부문을 담당하면서 제조물책임법,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등을 제정해 소비자 보호를 위한 기본법의 토대를 닦았고, 서민 주거생활 안정을 위해 주택보급을 확대하고 전세보증금 융자제도도 도입했다.
이후 국무조정실 규제개혁2심의관, 외교통상부 다자통상국장으로 잠시 파견 나갔다가 2006년 재정경제부로 돌아와 경제협력국장, 정책홍보관리실장, 차관보, 제1차관을 역임했다.
지난해부터는 수출입은행장을 맡으면서 세계 일류 수출기업을 키우기 위한 ‘히든 챔피언 육성사업’ 등을 펼쳤다.
인화를 중시하며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데 능숙하고 합리적이어서 정책 조정에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충남 서천(55) ▲고려대 경영학과 ▲美 하와이대학원 경제학 박사 ▲경제기획원 예산실 ▲재정경제부 생활물가과장, 물가정책과장 ▲국무조정실 규제개혁2심의관(2급) ▲재정경제부 정책홍보관리실장 ▲기획재정부 차관보 ▲기획재정부 제1차관 ▲수출입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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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정책 분야의 요직을 두루 거친 정통 경제관료 출신.
관료 시절 별명이 ‘대책반장’일 정도로 큰 현안이 터질 때마다 전면에서 진두지휘할 만큼 강한 추진력과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직원들과 친화력도 대단하다는 평가다.
행시 23회로 대학 졸업 후 무역회사에 다니다 뒤늦게 관료의 길로 들어섰지만 연이은 초고속 승진으로 요직을 거쳤다.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과장, 감독정책1국장을 거쳐 2004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을 맡았다. 2005년 2월 1급인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에 취임할 때는 행시 20회 고참 국장들까지 추월하는 파격 인사로 회자됐다.
이후 4개월 만에 재경부 차관보 자리를 옮겼고 1년4개월 뒤에는 금감위 부위원장에 올랐으며, 2007년에는 재정경제부 1차관이 됐다.
5.8부동산 특별대책반장(1990년), 금융실명제대책반장(1993년), 금융개혁법안 대책반장 및 부동산 실명제 총괄반장(1995년), 한보대책 1반장과 금융개혁법안 대책반장(1997년) 등을 맡았다.
참여정부에서도 4.3카드 대책, 신용불량자 대책, 8.31 부동산대책, 11.15 부동산대책, 1.11 부동산대책 등에 관여했다.
외환은행 매각과 LG카드 처리 등을 주도했으며 2003년 카드사태 당시 관치논란에 대해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며 정부의 시장 개입이 필요하다는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부인 윤계숙 씨와 사이에 1남1녀.
▲부산(57) ▲경기고, 서울대 경영학과 ▲재정경제원 금융부동산실명제실시단 총괄반장, 부동산반장, 외화자금과장 ▲재경부 증권제도과장 ▲금감위 법규총괄과장, 감독정책과장 ▲금감위 감독정책1국장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재경부 금융정보분석원장, 차관보 ▲금감위 부위원장 ▲재정경제부 1차관 ▲농협경제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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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하고 온화한 성품과 뛰어난 재판 능력으로 법조계에서 신망이 두텁다.
2004년~10년 대법관으로 재직하면서 여성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신장하고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성의 종중원 자격을 인정하고 학교의 종교행사 참여 강요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의견을 냈다. 또 사형제와 호주제에 반대했고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 도입에 찬성했다.
경기여고를 나와 서울대 법대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78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사법부 내에서 여성법관으로서 길을 개척해왔다.
여성부 남녀차별개선위원회 비상임위원을 역임했고 ‘정치 1번지’ 종로선거구에서 첫 여성 선거관리위원장으로 선임돼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강금실 전 법무장관과 여고ㆍ대학 동기로서 각별한 사이로 알려져 있으며, 문학과 음악, 미술 등 예술 전반에 조예가 깊다. 청소년보호위원장을 지낸 검사 출신의 남편 강지원 변호사와 사이에 2녀.
▲부산(54) ▲경기여고ㆍ서울법대 ▲78년 사법시험 합격(20회) ▲81년 서울민사지법 판사 ▲93년 대법원 재판연구관 ▲98년 수원지법 부장판사 ▲2000년 사법연수원 교수 ▲2001년 여성부 남녀차별개선위 비상임위원, 서울 종로구 선관위원장 ▲2003년 대전고법 부장판사 ▲2004년 대법관 ▲2010년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