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영접

鶴山 徐 仁 2010. 11. 14. 14:06



영접


하나님을 체험하고 사랑하는 것과
그분을 믿고 의지하는 것 사이에는
본질적인 연관성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접촉한 만큼
그분을 사랑하게 된다.

-브래넌 매닝의 ‘하나님의 은혜’ 중에서-

처음 주의 복음과 구원의 은혜를 마음에 영접했던 것처럼
매일 주가 우리와 함께 하심을 감사하며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도록 그를 영접하길 원합니다.
주를 아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주를 아는 지혜가 우리의 삶 가운데 드러나며
그로 인해 더욱 주를 갈망하기를 원합니다.
매일 새로운 은혜로 우리의 삶을 두드리시며
매일 새로운 축복을 부어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주의 부르심이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고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움직여
삶 가운데 주의 영광이 드러나길 원합니다.
“주님, 어서 오십시오.
주께서 행하실 일들에 가슴이 뛰고
새벽이슬과 같은 깨끗한 믿음을 지닌
주의 제자가 여기 있습니다.”



주님만이
사람들은 이루고 싶은 간절한 꿈이 많은가 봅니다.
갈급함으로 저를 의지하지만
저는 그들의 바램을 이뤄줄 힘도..
능력도 없는데..
저를 이렇게 높은 곳 위에 쌓아둡니다.

제가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하고,
제가 해야 할 몫이 있듯이..

주님만이 저들의 소원과 간절함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의 몫이기에 주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시편142:1)
글쓴이 : 이선영 이화여대 신학대학원 졸업
호산나 “Good Journal Photo Essay” 연재
“일산에서 그림그리는 사람들” 전시회(2009. 10. 16 ~ 11. 16)
비탄 - 시편 88:1~18
1.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야로 주 앞에서 부르짖었사오니
2. 나의 기도가 주 앞에 이르게 하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기울여 주소서
3. 무릇 나의 영혼에는 재난이 가득하며 나의 생명은 스올에 가까웠사오니
4. 나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이 인정되고 힘없는 용사와 같으며
5. 죽은 자 중에 던져진 바 되었으며 죽임을 당하여 무덤에 누운 자 같으니이다 주께서 그들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시니 그들은 주의 손에서 끊어진 자니이다
6. 주께서 나를 깊은 웅덩이와 어둡고 음침한 곳에 두셨사오며
7. 주의 노가 나를 심히 누르시고 주의 모든 파도가 나를 괴롭게 하셨나이다 (셀라)
8. 주께서 내가 아는 자를 내게서 멀리 떠나게 하시고 나를 그들에게 가증한 것이 되게 하셨사오니 나는 갇혀서 나갈 수 없게 되었나이다
9. 곤란으로 말미암아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
10. 주께서 죽은 자에게 기이한 일을 보이시겠나이까 유령들이 일어나 주를 찬송하리이까 (셀라)
11. 주의 인자하심을 무덤에서, 주의 성실하심을 멸망 중에서 선포할 수 있으리이까
12. 흑암 중에서 주의 기적과 잊음의 땅에서 주의 공의를 알 수 있으리이까
13. 여호와여 오직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이르리이다
14. 여호와여 어찌하여 나의 영혼을 버리시며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시나이까
15. 내가 어릴 적부터 고난을 당하여 죽게 되었사오며 주께서 두렵게 하실 때에 당황하였나이다
16. 주의 진노가 내게 넘치고 주의 두려움이 나를 끊었나이다
17. 이런 일이 물 같이 종일 나를 에우며 함께 나를 둘러쌌나이다
18. 주는 내게서 사랑하는 자와 친구를 멀리 떠나게 하시며 내가 아는 자를 흑암에 두셨나이다
시편 88편은 시편 중에서 가장 비통한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표제어에 나오는 <마할랏르안놋>은 <고통스러운 질병>이란 뜻인데 그만큼 처절한 고난 가운데서 <주야로 주 앞에 부르짖었다>(1절)는 탄원이요 기도였을 것입니다. <나의 기도가 주 앞에 이르게 하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기울여 주소서>(2절).

무덤에 누운 자
<무릇 나의 영혼에는 재난이 가득하며 나의 생명은 스올에 가까웠사오니 나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이 인정되고 힘 없는 용사와 같으며 죽은 자 중에 던져진 바 되었으며 죽임을 당하여 무덤에 누운 자 같으니이다. 주께서 그들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시니 그들은 주의 손에서 끊어진 자니이다>(3-5절).
그 절망감이 얼마나 크고 그 현실이 얼마나 참혹했으면 <스올>에, 또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고, <죽은 자 중>에 누운 것 같았을까요? 시인은 심지어 <주의 손에서 끊어진 자>라는 표현까지도 쓰는데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그게 다 주님의 간섭이요 주님의 진노요 주님이 보내신 모진 파도라는 고백입니다. <주께서 나를 깊은 웅덩이와 어둡고 음침한 곳에 두셨사오며 주의 노가 나를 심히 누르시고 주의 모든 파도가 나를 괴롭게 하셨나이다(셀라)>(6,7절).

두 손을 든 자
<곤란으로 말미암아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9절).
내가 매일 두 손을 들었다는 것은 만세를 불렀다는 뜻이 아니라 투항했다는 뜻입니다. 무덤 같은 현실에 항복했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께 백기를 들었다는 얘깁니다. 마치 아말렉과의 전쟁 때 모세가 높은 산에 올라가 두 손을 들었던 것처럼 주님 앞에 투항함으로 현실의 항복을 받아 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시인의 선택과 주님 앞에 두 손을 든 그 결단에 무한한 존경과 갈채를 보냅니다. 그것만이 칠흑 같은 절망을 이기고 무덤 같은 어두움을 몰아내는 비결임을 확신합니다.

아침에 기도하는 자
<여호와여 오직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이르리이다>(13절).
때묻지 않은 아침기도는 반드시 주 앞에 상달 됩니다. 새벽기도가 소중한 이유입니다. 구별된 이른 아침, 구별된 성소에서 주께 부르짖어 보십시오. 주님도 이 땅에 계실 때 이른 새벽 산이나 광야로 나가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하루의 첫 시간인 새벽은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새벽을 바치면 하루를 다 바치는 것입니다. 새벽은 기적의 시간이고, 또 은혜의 시간입니다. 만나도, 홍해도, 여리고도 다 새벽에 기적이 임했습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나의 영혼을 버리시며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시나이까>(14절) 하고 부르짖으셔서 새벽에 역사하시는 주의 은혜를 깊이 체험해 보십시오. <내게서 사랑하는 자와 친구를 멀리 떠나게 하시고 내가 아는 자를 흑암에 두셨던>(18절) 주께서 그 뜻을 돌이키사 모든 이들을 내게로 다시 오게 하시고 밝은 빛 가운데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Faith - Hy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낙심하지 마라  (0) 2010.11.15
살아갈 이유  (0) 2010.11.15
아바 아버지  (0) 2010.11.13
나는 생각되어 진다  (0) 2010.11.13
동행의 기쁨  (0) 2010.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