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의심

鶴山 徐 仁 2010. 10. 9. 12:33



의심


우리는 회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진리를 믿고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직한 회의는
진리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이동원 목사의 ‘당신은 예수님의 VIP' 중에서-

때론 의심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더욱 깊게 합니다.
주를 알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에겐
의문과 의심 또한 없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의 구원과
사랑의 은혜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과 달리 말씀에 대한 의심이 드십니까?
뭔가 좁혀지지 않는 하나님과의 거리로 인해
구원마저 의심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주께서 직접 우리 삶을 통해
우리 자신에게 찾아와 주시기를 간구하십시오.
또 믿음의 회의에 빠져있는 자신의 고민을
믿음의 선배들에게 털어놓고 함께 기도하십시오.
의심 그 자체에서 머물지 말고
주를 더욱 알기를 소망함으로
더욱 굳은 믿음 가운데 서길 원합니다.




“나보다 더 나은 나”로..
오랜 시간 초록 잎 간직하다가..
이렇게 점점 물들어 갑니다.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순간입니다.

이 고운 빛 다하는 날..

조용히 떠나야 할 때..
겸손히 낮아져 스스로 짐으로써..

겨울을 나고..
다시 찾아오는 봄을 기다릴 것입니다.

주님은 항상..
부족한 나를 “나보다 더 나은 나”로 변화시켜 가십니다.
글쓴이 : 이선영 이화여대 신학대학원 졸업
호산나 “Good Journal Photo Essay” 연재
“일산에서 그림그리는 사람들” 전시회(2009. 10. 16 ~ 11. 16)
넘어질 뻔 미끄러질 뻔 - 시편 73:1-20
1.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2.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4.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5.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6.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7.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8.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9.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10. 그러므로 그의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11.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는도다
12.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13.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14.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
15.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그들처럼 말하리라 하였더라면 나는 주의 아들들의 세대에 대하여 악행을 행하였으리이다
16.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18.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19.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20.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왜 아삽이 넘어질 뻔하고 미끄러질 뻔 했을까요?(2절) 아삽은 레위 지파 자손으로 성전에서 찬양대를 지휘한 수석 악장이었던 당대의 경건한 의인이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람이 왜 실족할 뻔했다는 것입니까?

악인의 형통 때문에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3절). 아삽의 정직한 고백이 우리를 당황스럽게 합니다. 악인의 형통을 질투하여 <거의> 시험에 빠질 뻔 했다는 것입니다. 집필자 역시 목사임에도 동창이나 동기들의 형통을 보며 축하하고 기뻐하기보다 가슴이 쓰리고 마음이 몹시 불편할 때가 없지 않습니다. 아삽도 지금 그런 심사입니다. 악인들이 도리어 만사형통하고 아무런 고난도, 재앙도 없이(5절) 잘 살며, 심지어는 죽을 때도 고통 없이 평안하게 가더라(4절)는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자기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다>(14절)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원래 악인들의 삶은 거의 간섭하시지 않습니다. 그냥 잘 살게 두십니다. 따라서 그들은 늘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다 하며 삽니다. 그러나 그것은 형통이 아니라 아버지 없는 사생자의 방종일 뿐입니다. 반면 의인들은 일일이 하나님이 간섭하십니다. 그럼에도 그것은 불행이 아니고 아버지가 계신 아들 만의 행복임을 깊이 깨달을 일입니다.

악인의 교만 때문에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8,9절).
악인들의 교만은 가히 하늘을 찌릅니다. 하나님 모욕도 서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11절)는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조롱이며 빈정댐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항상 평안하고 재물이 더욱 불어나는>(12절) 모순에 대해 아삽이 지금 견딜 수 없는 분노와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갈등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게 바로 하나님의 공평이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죽어 고통 가운데 처할 악인들은 살아서나마 세상 낙을 즐기고 교만하게 굴며 자기의 원대로 사는 삶을 허용하신 겁니다. 그럼에도 그것은 잠시 잠깐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곧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18절) 던지신다고 하잖습니까? 부디 악인의 교만과 안하무인으로 인해 실족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우매함 때문에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22,23절).
그렇습니다. 우리가 악인의 형통과 또 그들의 교만을 보며 흔들리고 회의에 빠지고 낙심하며 시험에 드는 것은 결국 내 자신의 우매함과 무지함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속 깊으신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미련함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아삽은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깨달았다>(17절)고 합니다. 현실 속에서 만나는 많은 모순과 수수께끼 앞에서 성급하게 좌절하고 시험에 들고 마음에 모진 상처를 입는 것은 다 나의 무지함과 우매함 탓입니다. 기도하고 사색하며 말씀을 묵상하면 주께서 반드시 깨달음을 주실 것임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이야말로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할 것임>(24절)을 확신하십시오. 그래야 우리도 의인 아삽처럼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26절)이심을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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