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같이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을 을씨년스런 날씨라 표현한다. 이런 날에는 괜스레 마음이 울적하여지고 까닭모를 슬픔이 가슴속 깊은 곳으로부터 밀려들곤 한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슬픔이요 외로움이란 느낌이 들게 한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에 집을 나가 일 년 반 가까이를 무전여행을 다닌 적이 있다. 행장이라야 칫솔 하나에 헤르만 헤세 시집 한 권이었다. 그 시절 삼랑진 부근 낙동강 둑을 걸으며, 마산 부둣가 선창 길을 걸으며, 여수 오동도 동백꽃 숲을 지나며 헤세의 시를 읽고 읽었기에 지금도 헤세의 시만큼은 몇 수를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 같은 날에는 꼭 떠오르는 시가 있다. ‘안개 속에서’란 제목의 시이다.
-안개 속에서- Hermann Hesse
신기하도다. 안개 속을 지나는 것은! 모든 나무 덤불과 돌이 외롭다. 어떤 나무도 다른 나무를 보지 못한다. 누구든 혼자이다.
나의 삶이 아직 환했을 때 내게 세상은 친구들로 가득했다. 이제, 안개가 내려, 더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어둠을, 떼어 놓을 수 없게 나직하게 모든 것으로부터 그를 갈라놓는 어둠을 모르는 자 정녕 그 누구도 현명치 않다.
신기하도다,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삶은 외로이 있는 것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알지 못한다. 누구든 혼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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