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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가 담긴 기도
기도에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목적도, 의미도 없이 의심을 품고 기도한다면 그 기도는 우리에게 소망을 주지 못할 것이다. 기도는 소원 이상이며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담겨 있다.
-도널드 맥컬로우의 ‘거침없는 은혜’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 자체만이 아닌 그 기도에 담긴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중언부언하는 기도가 아닌,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기도가 아닌, 마음의 소원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매일 새로운 기대로 주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이제는 간절함을 잃어버린 오랜 기도의 소원도, 오늘 우리의 삶을 뒤흔드는 고통과 어려움의 문제도 주님의 뜻 가운데 인도받기를 간구하며 늘 지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십시오. 우리의 중심이 변하고 마음의 초점이 주께로 향할 때 기도, 그 자체의 은혜가 우리의 삶을 비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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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종 |
주님…주님…주님…
주님의 음성을 내가 듣길 원합니다. 주님의 얼굴을 내가 보기 원합니다. 주님의 그 심장소리를, 그 마음을 듣기 원합니다.
주여…내게 알게 하소서 당신의 사랑을 사랑…그것이 전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하시는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일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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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주원 현재 연극치료, 대안학교 교사 등 활동중 동덕여자 대학원 연극치료학과 재학중 유럽, 이집트, 쿠바, 멕시코 등 사진, 배낭여행 (2001~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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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힘 나의 요새 나의 피난처 - 시편 59:1~17 |
1.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원수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일어나 치려는 자에게서 나를 높이 드소서 2. 악을 행하는 자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에게서 나를 구원하소서 3. 그들이 나의 생명을 해하려고 엎드려 기다리고 강한 자들이 모여 나를 치려 하오니 여호와여 이는 나의 잘못으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나의 죄로 말미암음도 아니로소이다 4. 내가 허물이 없으나 그들이 달려와서 스스로 준비하오니 주여 나를 도우시기 위하여 깨어 살펴 주소서 5. 주님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오니 일어나 모든 나라들을 벌하소서 악을 행하는 모든 자들에게 은혜를 베풀지 마소서 (셀라) 6. 그들이 저물어 돌아와서 개처럼 울며 성으로 두루 다니고 7. 그들의 입으로는 악을 토하며 그들의 입술에는 칼이 있어 이르기를 누가 들으리요 하나이다 8. 여호와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며 모든 나라들을 조롱하시리이다 9.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니 그의 힘으로 말미암아 내가 주를 바라리이다 10. 나의 하나님이 그의 인자하심으로 나를 영접하시며 하나님이 나의 원수가 보응 받는 것을 내가 보게 하시리이다 11. 그들을 죽이지 마옵소서 나의 백성이 잊을까 하나이다 우리 방패 되신 주여 주의 능력으로 그들을 흩으시고 낮추소서 12. 그들의 입술의 말은 곧 그들의 입의 죄라 그들이 말하는 저주와 거짓말로 말미암아 그들이 그 교만한 중에서 사로잡히게 하소서 13. 진노하심으로 소멸하시되 없어지기까지 소멸하사 하나님이 야곱 중에서 다스리심을 땅 끝까지 알게 하소서 (셀라) 14. 그들에게 저물어 돌아와서 개처럼 울며 성으로 두루 다니게 하소서 15. 그들은 먹을 것을 찾아 유리하다가 배부름을 얻지 못하면 밤을 새우려니와 16.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17.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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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은 우리 영혼의 맨 밑바닥까지를 다 드러냅니다. 우리 영혼의 섬세한 결들을 낱낱이 분해하고 그 미친 듯한 기복을 여과 없이 다 까발립니다. 그래서 칼빈은 시편을 <영혼의 해부학>이라고 했습니다. 시편이 영혼의 해부학임을 실감하기 위해서는 독자들도 시인이 빠졌던 그 깊은 웅덩이에 함께 투신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프고 쓴 부분들도 같이 묵상해야 비로소 그 쓴맛에 담겨 있는 오묘한 뒤끝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시편이 주는 쾌감 시편을 묵상하며 느끼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원수들에 대한 통쾌한 저주입니다. 이것을 <쾌감>이라 하는 이유는 차마 우리가 할 수 없었던 말들을 시편이 속 시원하게 쏟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대개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걸려 원색적인 분노와 저주를 쉽게 뱉어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시편의 원수들을 향한 거침없는 저주에 당혹해하면서도 통쾌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게 사실입니다. <주님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오니 일어나 모든 나라들을 벌하소서. 악을 행하는 모든 자들에게 은혜를 베풀지 마소서>(5절) <진노하심으로 소멸하시되 없어지기까지 소멸하사>(13절). 이런 속마음을 하나님 앞이 아니면 누구에게 쏟아놓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단지 우리의 중심을 바치면서 적나라한 소원을 아뢸 뿐 응답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몫입니다. 걱정마시고 모든 것을 고하시며 하소연 하십시오.
입의 악과 입술의 칼 이 시에는 <사울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을 죽이려고 그 집을 지킨 때에>라는 표제어가 붙어 있습니다. 사울이 보낸 저격수들이 다윗의 집을 포위하고 다윗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정작 다윗을 두렵게 한 것은 그들의 활이나 창이 아니라 입이었습니다. <그들의 입으로는 악을 토하며 그들의 입술에는 칼이 있어 이르기를 누가 들으리요 하나이다>(7절). 그들의 입은 마치 예리한 칼과 같아서 아마도 <다윗은 반란자다!> 혹은 <다윗이 왕의 자리를 넘본다!>는 식으로 그를 매도하고 악선전했던 것 같습니다. 욥의 경우도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바로 세 친구들의 말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도 가장 치명적인 흉기가 바로 말이 아닐까 합니다. 언론이 그렇고, 인터넷의 각종 댓글들이 그렇습니다. 국회가 그렇고 정부가 그렇습니다. 다 말 때문에 피흘리고 말 때문에 망하기도 하고 심지어 말 때문에 자살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혀가 얼마나 무섭고 입이 얼마나 예리한 칼인가를 과거 어느 때보다도 실감하며 사는 요즘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요새 원수들은 강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시인을 지키시는 하나님은 더욱 강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니 그의 힘으로 말미암아 내가 주를 바라리이다>(9절).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17절).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것이 세상 이치입니다. 그렇다면 믿는 자야말로 백전백승입니다. 주님보다 더 강한 자는 없기 때문입니다. 부디 <나의 힘>이요 <나의 요새>요 나의 <피난처>되신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십시오. 그것만이 내가 이 세상을 이기며 사탄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16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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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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